우리는 ‘비핵화’라는 표현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비핵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비핵화가 뭔지 속 시원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는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들인 남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비핵화의 정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비핵화가 뭔지 합의된 것이 없으니 비핵화 협상은 겉돌 수밖에 없다.
영어 사전 ‘메리엄-웹스터’에는 비핵화를 “핵무기를 없애고, 핵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없애고 핵 위협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데, 왜 북한과 미국은 비핵화의 정의조차 합의하지 못한 것일까?
비핵화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상태’라고 규정한다면, 이러한 취지를 가장 잘 반영한 것이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다. 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뿐만 아니라 각종 유엔 문서에서도 비핵지대가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돼 왔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중남미와 카리브해,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몽골이 비핵지대다. 지구 면적의 절반 이상이 비핵지대이고, 이를 국가 수로 환산하면 115개국이 비핵지대에 속해 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는 비핵화보다는 비핵지대가 훨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왜 비핵지대가 생소하기만 하고 한반도에서는 비핵지대 대신에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용돼 온 것일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한반도 핵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해법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비핵지대가 왜 한반도 핵 문제의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정욱식 지음 / 유리창)가 이를 제대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