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종 ‘우리 교육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말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호기심이 강한 아이를 만나게 되면 흥분을 감추기가 힘들어집니다. 오늘은 그런 아이 중에 한 명, 초보 강사 시절에 만났던 초등 3학년 창민이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이야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호기심 넘치는 아이와 함께 수업을 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일단 눈치 없이(?) 이것저것 자꾸 ‘왜?’냐고 물어보는 통에 수업 진행이 엉망이 되기 일쑤인 데다 일단 궁금증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헤어나질 못합니다.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통에 쉬는 시간을 빼앗기기 일쑤니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에디슨을 퇴학시킨 선생님의 마음을 백 번도 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농담을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은 창민이가 엄마와 마트에 갔다가 수업시간보다 일찍 온 날이었습니다. ‘아, 궁금해’ 하고 물음표가 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지만 도리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외’가 뭐예요?”
창민이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엄마와 마트에 갔다가 과일 코너를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사과·배·포도 같은 과일을 쭉 보다가 참외가 눈에 들어왔는데, 불현듯 참외라는 이름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랍니다.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겁니다. ‘참나무는 진짜 나무, 참나물은 진짜 나물, 참외는 진짜 외. 외? 외가 뭐지?’ 이렇게 생각이 흐른 겁니다.
물론 저는 참외의 ‘외’가 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 어린 아이의 머릿속이 호기심으로 맹렬히 돌아가는 모습을 좀 더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딱 잡아뗐더니, 표정이 거의 울상이 되더군요.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도깨비 같은 질문을 쏟아내 늘 수업을 방해(?)하던 녀석이 그날은 수업시간 내내 참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저는 창민이에게 넌지시 힌트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외’ 말이야. 그거 두 개로 나눌 수 있어.”
“네?”
“‘외’가 두 개로 나눠진다고.”
한 5초 정도 골똘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창민이가 불현듯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오이? 오이! 참오이!”
그때 보여준 창민이의 눈빛과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참외의 단면과 오이의 단면, 식감 따위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그 눈빛과 표정으로 실시간 중계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창민이 같은 아이를 ‘세상을 읽는다’라고 표현합니다. 독서량에 비해 턱없이 높은 언어능력을 갖춘, 같이 한 권을 읽어도 독서효과가 어마어마한 아이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세상이라는 기계의 작동원리를 들여다보는 이 꼬마 박사들이 넘쳐날 수 있는 교육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반가운 '호기심 학생'의 귀환](https://img.khan.co.kr/lady/2020/11/01/l_2020110104000000100002101.jpg)
■‘공독쌤’ 최승필은?
독서교육전문가이자 어린이·청소년 지식 도서 작가다. 전국 도서관과 학교 등지를 돌며 독서법 강연을 하고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과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사람이 뭐야?’(창비) 등이 있다. 교육 잡지 ‘우리 교육’에 독서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