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를 멈추는 것도 독서다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읽기를 멈추는 것도 독서다

최승필(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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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육 이론에서는 ‘활자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독서’를 가장 성숙한 단계의 독서로 봅니다. 바로 ‘사색적 독서’죠. 영화를 보고 하는 생각, 여행을 가서 하는 생각처럼 책을 읽고 하는 생각이 ‘사색적 독서’입니다. 아이들이 판타지 동화를 읽다가 상상에 빠지거나 죽음을 다룬 동화를 읽고 부모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생각에 엉엉 우는 것도 사색적 독서의 일종입니다.

사색적 독서로의 이행은 아기가 팔다리에 힘이 붙으면 걸음마를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독서 자체를 즐기면서 꾸준히 읽으면 자연히 사색적 독서를 하게 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고도 독서의 메타인지로 넘어가는 독서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독서가도 많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이유가 뭘까요?

푹 빠져 읽기를 거듭하면 독서 근육이 강화되면서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한결 쉬워집니다. 예전에는 ‘읽고 이해하기’라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과부하가 걸렸지만 이제는 ‘읽고 이해하기’를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의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책을 잘 읽게 되니 분량에 대한 부담도 사라집니다. 이렇게 분량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고 책을 읽는 것 자체를 온전히 즐기게 되면 독서는 역동적인 정서활동이 됩니다. 감동과 감탄, 충격, 의문, 회상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파도가 종종 읽기를 멈추게 만듭니다.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잠시 책 속 상황에 머물며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장면에서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 보거나 불현듯 옛날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는데 그 일이 책 속 상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따져볼 수도 있고, 주인공의 대사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거듭해서 읽으면서 작품 요소요소를 일일이 다 따져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덕질’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덕질’의 과정에서 독자는 책과 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 대해 다각적인 생각을 전개합니다. 이것이 독서를 독서답게 꾸준히 했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독서의 메타인지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독서가는 이와는 다른 경로를 거칩니다. 꾸준한 독서로 얻은 능력의 여유를 더 많은 책 혹은 더 어려운 책을 읽는 데 사용합니다. 다독을 목표로 하면 독서의 속도에 치중하기 때문에 생각할 여유가 없고, 더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면 표피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에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수준 높은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읽고 나면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독서의 재미가 급격히 줄기도 합니다.

글을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닙니다. 읽기를 멈추는 것도 독서의 일부입니다. 읽기를 멈춤으로써 독자는 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 자신이 품게 된 의문을 공굴리며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독서를 독서답게 해야, 독서 자체를 즐겨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읽기를 멈추는 것도 독서다

■‘공독쌤’ 최승필은?

독서교육전문가이자 어린이·청소년 지식 도서 작가다. 전국 도서관과 학교 등지를 돌며 독서법 강연을 하고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과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사람이 뭐야?’(창비) 등이 있다. 교육 잡지 ‘우리 교육’에 독서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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