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작, 문고판으로 읽어도 될까요?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세계 명작, 문고판으로 읽어도 될까요?

최승필|독서교육전문가

책 육아를 하는 부모 사이에서 세계 명작은 ‘독서 이상향’ 중 하나입니다. ‘초등학교 때 세계 명작에 입문이라도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죠. 그런데 이 바람은 실현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이의 책 선택권을 지켜주는 것이 독서 지도의 제1원칙입니다. 부모가 선택하는 책 중 하나로 세계 명작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읽도록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이 자신인데, 아이가 세계 명작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세계 명작 대부분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흥미를 끌 요소가 별로 없는데다 어른도 읽기 힘들 정도로 길고, 어려우니까요. 아이들 입장에서 매력을 느끼기 힘든 책으로, 이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아이들 스스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세계 명작은 ‘80일간의 세계 일주’ ‘프랑켄슈타인’ ‘지킬박사와 하이드’ 등처럼 이야기와 소재 자체가 강렬한 작품, 그중에서도 내용을 축약한 문고판 정도입니다. 분량에 대한 부담이 적은 데다 동화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서 실제로 한번 발을 들였다가 푹 빠져서 한동안 세계 명작만 읽는 아이도 적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 명작에 빠진 자녀를 두신 부모들은 자연히 문고판 독서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책이니 축약을 했더라도 읽는 게 나은지, 아니면 원작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거나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읽지 않는 것이 나은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 스스로 푹 빠져 읽을 수만 있다면 공포 동화, 로맨스 동화도 좋은 책입니다. 하물며 세계 명작이 나쁠 리 없죠. 세계명작 문고판은 그만의 장점도 갖고 있습니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내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원작의 주제의식이 일정 정도 훼손되는 대신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한 내용은 삭제되고 이야기의 속도감은 높아집니다. 아이들이 즐기기에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인 겁니다.

다른 시대의 인물이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세계 명작 대부분은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작가들이 자기 시대의 이야기를 쓴 작품입니다. 18세기 초반의 영국 작가가 그린 18세기 초반의 영국 사람 이야기,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작가가 그린 19세 후반의 프랑스 사람의 이야기는 현대 작가가 쓴 옛날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현장감을 선사합니다. 세계명작의 주배경이 되는 18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이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대임을 감안하면 큰 장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아이가 스스로 세계 명작 문고판을 탐독한다면 당연히 응원해 줘야 합니다.

다만 문고판이 원작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각색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질이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문고판은 원작을 바탕으로 했지만 원작과 다른, 별개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이에게 읽기를 강요할 필요도, 말릴 필요도 없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좋은 책 중 하나라고 말입니다.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세계 명작, 문고판으로 읽어도 될까요?

■‘공독쌤’ 최승필은?

독서교육전문가이자 어린이·청소년 지식 도서 작가다. 전국 도서관과 학교 등지를 돌며 독서법 강연을 하고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과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사람이 뭐야?’(창비) 등이 있다. 교육 잡지 ‘우리 교육’에 독서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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