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한자를 가르쳐야 하느냐 마느냐는 교육계의 해묵은 화두 중 하나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한자어 비중이 57%에 이르기 때문에 한자를 모르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도 있고, 실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단어를 제외하면 30% 남짓인데 그 어휘들은 별도의 한자교육 없이도 충분히 익힐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긴 세월 논란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양쪽 다 일리가 있다 보니 이쪽 이야기를 들으면 한자교육을 해야 할 것 같고, 저쪽 이야기를 들으면 안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독서능력의 관점에서 보면 한자 학습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기왕에 알고 있던 어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고, 처음 보는 어휘의 뜻도 좀 더 쉽게 추측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능력은 실생활과 독서, 학교 공부, 입시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죠.
이런 분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자 학습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생활한자만 공부한다고 해도 2300여 자를 외워야 하는데, 초등학생이 소화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한문을 배웁니다. 초등학생 때 한문을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선행학습이 되는 셈인데, 아이의 학습 부담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독서능력에 있어서 정작 한자를 읽고 쓰는 능력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독서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대’는 크다, ‘전’은 싸움, ‘야’는 밤처럼 소리와 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린이 책은 물론 성인 도서 대부분이 한글 전용 원칙을 따르고 있으니까요. 동양 고전, 학교 공부에서 한문이나 고전문학 정도가 아니라면 한자를 직접 읽고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한자의 소리와 뜻을 알면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른다고 해서 초등·청소년 대상 도서를 못 읽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유추하는 능력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나지만, 교과서나 책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의 뜻을 알든 모르든 어차피 사전을 찾아봐야 합니다. 한자만으로는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미술교육을 받으면 미적 감각을 키울 수 있고, 미술수업을 받을 때 좀 더 유리합니다. 음악교육을 받으면 음악적 감각을 키울 수 있고, 음악수업을 받을 때 좀 더 유리합니다. 하지만 공교육 외의 미술교육과 음악교육이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사항은 아닙니다. 한자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자를 습득하면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필수사항은 아닙니다.
부모님의 교육 철학에 따라 장단점을 곰곰이 따져 신중하게 결정하면 될 일입니다. 만약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의 뜻에 맡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자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해 보되 끝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시키지 않는 걸로요. 혹시 아나요. 뜻하지 않은 작은 계기로 한자 급수 따기 재미에 빠질지도요.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한자교육을 따로 시켜야 할까요?](https://img.khan.co.kr/lady/2021/10/24/l_2021102404000005800264951.jpg)
■‘공독쌤’ 최승필은?
독서교육전문가이자 어린이·청소년 지식 도서 작가다. 전국 도서관과 학교 등지를 돌며 독서법 강연을 하고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과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사람이 뭐야?’(창비) 등이 있다. 교육 잡지 ‘우리 교육’에 독서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