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떻게 될까?”
영화든, 소설이든 스토리를 즐기게 만드는 힘은 그 다음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주인공이 외딴 섬에 조난당하면 ‘어떻게 살아남을까?’ ‘언제 어떻게 구조될까?’ 같은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끝까지 보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 궁금증의 끝은 당연히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 결말부터 읽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결말을 알고 나면 무슨 재미로 책을 읽나 싶어 물어보면 의외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결말을 안 보면 끝이 너무 궁금해서 오히려 집중이 잘 안 돼요.”
“끝을 먼저 봐도 재미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궁금하잖아요.”
“끝을 모르면 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못 견디겠어요.”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주인공의 안부가 견딜 수 없이 궁금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이 겪는 위기를 ‘어차피 잘 될 거야’ 하고 마음 편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마음도 머리도 새 살처럼 보드랍고 연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죠.
독서의 정석은 처음부터 찬찬히 읽는 것입니다만 이 정석을 따를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호기심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가 책을 처음부터 읽는다면 읽는 내내 불안과 궁금증으로 오히려 집중이 안 될 테니까요.
결말부터 읽는 버릇 자체가 독서의 질을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아이들 말마따나 끝을 안 보면 ‘어떻게 될까?’가 궁금해서 읽고, 끝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가 궁금해서 읽습니다. 끝을 보든 안 보든 책을 좋아하면 높은 집중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결말부터 보는 버릇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집니다. 자라면서 마음에도 호기심에도 굳은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위기를 함께 겪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거죠.
다만 끝을 먼저 읽는 아이가 속독에 빠질 위험이 조금 더 크긴 합니다. 결말을 먼저 확인하고 책을 읽으면 ‘왜 그렇게 됐을까?’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궁금증을 해소해 줄 열쇠는 이야기의 주요 사건들이지요. 그러다 보니 주요 사건은 꼼꼼히 읽지만 배경을 설명하거나 캐릭터를 드러내는 장면처럼 줄거리 전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분은 대충대충 읽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럴 때는 ‘원래 책은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듯이 읽는 것이고,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 작가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것’을 지나가듯 이야기해 주세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한마디가 속독을 막는 작은 방패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강한 호기심과 예민한 감수성은 지적 능력 이상으로 중요한 자질이며 능력입니다. 공부든 독서든 텍스트를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진짜 힘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호기심과 감수성이기 때문입니다. 지적 능력은 호기심과 감수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뿐이죠. 아이가 책을 결말부터 읽는 것은 이 자질, 능력이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성장에는 애정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결말부터 읽는 버릇', 독서의 질 떨어뜨리지 않는다](https://img.khan.co.kr/lady/2021/12/07/l_2021120704000003600076591.jpg)
■‘공독쌤’ 최승필은?
독서교육전문가이자 어린이·청소년 지식 도서 작가다. 전국 도서관과 학교 등지를 돌며 독서법 강연을 하고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과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사람이 뭐야?’(창비) 등이 있다. 교육 잡지 ‘우리 교육’에 독서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