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연령에 맞는 책을 주로 읽습니다. 언어능력의 문제를 떠나 정서적으로 자기 연령대에 맞는 책이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자기 연령대에서 훌쩍 벗어나는 책을 읽기도 하지만 보통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죠.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아예 자기 연령과 맞지 않는 책만 읽기도 합니다. 특히 초등 고학년 독서가 중에 이런 아이들이 많습니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어른들이 읽는 책만 읽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과연 제대로 읽는 게 맞나’ 하고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왜 초등 고학년 독서가 중에는 유독 자기 연령대를 훌쩍 벗어나는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많을까요? 청소년 도서가 본격적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청소년 도서라는 게 아예 없었으니 그 시절 청소년 독서가들은 당연하다는 듯 성인 서가에서 읽을 책을 찾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청소년 독서가들이 성인 책을 별 어려움 없이 읽어냈다는 점입니다. 성인 도서의 높은 언어 수준을 힘겨워하기는커녕 동화와는 다른 재미,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자부심 덕분에 독서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초등 고학년 독서가가 자기 연령에 비해 높은 언어 수준의 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내는 현상은 독서 수업 중에도 발견됩니다. 초등 고학년 동화를 재미있게 읽는 아이 중에 청소년 소설을 어려워하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아서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 뿐 대부분 쉽게 읽어냅니다. 그런데 청소년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아이는 추리·스릴러·공상과학 같은 장르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처럼 플롯이 선명한 성인 책들도 아무 어려움 없이 읽어냅니다. 초등 고학년 동화, 청소년 소설, 장르소설 사이에는 언어 수준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 종류의 책 사이에는 진입장벽이 전혀 없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기초 언어능력 평가 점수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초등 고학년 동화를 즐겨 읽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의 언어능력은 보통 중등 2·3학년 수준으로 측정됩니다. 초등 고학년 동화를 즐겨 읽는 아이들이 청소년 소설, 대중적인 성인 도서를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언어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언어능력 평가 수치로도 확인되는 겁니다.
제가 초등 독서교육의 목표를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됐을 때 초등 고학년 동화를 부모가 뜯어 말리는데도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로 기르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어능력 발달 단계에서 초등 고학년 동화는 비판적 독서나 사색적 독서 바로 직전 단계에 위치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초등 고학년 동화를 즐겨 읽는 어린 독서가는 장르소설 수준의 성인 도서를 읽을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흥미가 가는 성인 도서를 발견하면 거리낌없이 읽을 수 있고, 운 좋게도 그 책이 정말 재미있다면 다른 성인 도서도 찾아 읽게 됩니다. 지나치게 어려운 책만 읽는다거나 독서속도가 너무 빠른 등의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자연스러운 독서의 흐름으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공독쌤의 공부머리 독서법] 초등 고학년이 어른 책을 읽어도 괜찮나요](https://img.khan.co.kr/lady/2021/12/19/l_2021121904000007800210901.jpg)
■‘공독쌤’ 최승필은?
독서교육전문가이자 어린이·청소년 지식 도서 작가다. 전국 도서관과 학교 등지를 돌며 독서법 강연을 하고 있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쓴 책으로는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과 ‘아빠가 들려주는 진화 이야기, 사람이 뭐야?’(창비) 등이 있다. 교육 잡지 ‘우리 교육’에 독서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