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미지. 프리픽
앵무새가 장난감이나 횃대에 몸을 비비는 행동을 보이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이상 행동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일부 보호자들은 이를 막기 위해 장난감을 치우거나 수의학적 치료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이런 행동이 스트레스에 의한 문제가 아니라 새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성행동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영국 랭커셔대학교 연구진은 지난 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생태와 진화’에 발표한 논문에서 새들의 자위행위가 특정 종에 국한된 예외적 행동이 아니라 다양한 조류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밝혔다. 연구 제목은 ‘새의 자위행위 진화’다.
연구를 이끈 클로이 헤이스 박사 연구팀은 기존 학술논문과 조류 전문가, 사육사, 반려조류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자료를 종합 분석했다. 연구진이 확인한 자료에는 야생과 사육 환경을 포함해 총 120종, 22개 조류 그룹의 사례가 포함됐다.
분석 결과 자위행위는 앵무새뿐 아니라 오리, 칠면조, 닭 등 다양한 조류에서 확인됐다. 특히 연구진이 주목한 점은 해당 행동이 사육 환경보다 야생에서 더 자주 관찰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 제기돼 온 ‘좁은 사육 환경이나 스트레스가 자위행위의 원인’이라는 가설과 상반되는 결과다.
연구진에 따르면 수컷은 횃대나 나뭇가지, 장난감, 심지어 보호자의 손이나 어깨 등에 몸을 문지르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암컷은 꼬리를 들어 올리고 주변 물체에 등을 밀착하는 행동이 흔했다. 일부 개체는 날갯짓이나 평소와 다른 울음소리를 동반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수컷뿐 아니라 암컷에서도 해당 행동이 널리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연구에서는 수컷 사례의 55%, 암컷 사례의 36%에서 자위행위가 보고됐다. 또한 어린 개체와 성체 사이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자위행위가 단순히 번식 전 교미 연습이라는 기존 가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그동안 일부 수의학계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문제 행동으로 보고 중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장난감 제거, 특정 부위 접촉 금지, 호르몬 치료, 심지어 생식 기능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시행된 사례도 보고됐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러한 개입이 오히려 새의 복지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클로이 헤이스 박사는 “앵무새와 같은 반려조류의 자위행위가 외로움이나 사육 스트레스의 결과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연구 결과 이는 다양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행동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탈항 (총배설강 탈출증) 등 의학적 문제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곤, 수의사가 이를 억제하도록 권고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공동 저자인 옥스퍼드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마틸다 브린들 박사 역시 “야생 조류에서 오히려 더 많이 관찰된다는 사실은 조류 복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지금까지는 많은 사육 지침이 이러한 행동을 억제하거나 처벌하도록 권고해 왔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단순히 반려조류 관리법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동물계 전반에서 번식 목적이 아닌 성행동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자위행위는 지금까지 침팬지, 일본원숭이, 돌고래, 다람쥐, 말, 펭귄 등 다양한 동물에서 관찰된 바 있지만 조류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