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방송 활동재개한 변진섭,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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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방황 후, 이제야 제 색깔을 찾았어요”


‘국민 둘리’ 변진섭이 11집을 내고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꾸준히 앨범을 발표해왔지만 활동이 거의 없었으니 8년 만의 컴백인 셈이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친근한 웃음, 재치 있는 말투, 감미로운 음악까지…

8년만에 방송 활동재개한 변진섭,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추억

8년만에 방송 활동재개한 변진섭,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추억

저녁 9시를 10분쯤 남겨놓았을 때였다. 스튜디오 문 밖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보다 먼저 들린 건,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소리가 울려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동네 오빠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그 목소리는 분명 가수 변진섭(41)이었다. 그가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순간 기자는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매일 밤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처음 찾았던 라이브 콘서트, 용돈을 조금씩 모아 장만했던 카세트테이프…. 그간 잊었던 시간들이 변진섭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영화처럼 펼쳐졌다.


신인의 마음으로 완성한 열한 번째 이야기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그는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의 별명 ‘둘리’를 떠올리게 하는 통통한 두 볼, 약간 헝클어진 듯한 무심한 헤어스타일, 데뷔 때의 신선함을 간직하고 있는 목소리, 편안하면서도 재치 있는 말투까지….

“3년 전 10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거의 8년 만에 다시 활동하는 셈이에요. 올해로 신인가요제로 데뷔한 지 20년이 됐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제가 ‘많이 변했을 거다’ ‘목소리도 달라졌을 거다’ ‘늙었을 거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목소리가 변할 만큼의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그가 세월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당시 함께 일했던 친구나 후배를 통해서였다.

“같이 일했던 PD는 부장이 되어 있고, 저와 형 동생하며 친했던 기자도 간부가 되어 있더라고요. 불과 몇 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을 통해 세월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세월을 느끼지 않으며 살았어요. 음악하고, 음악 하는 친구들이나 형들하고 어울리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거나 위치가 달라지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그냥 머물러 있는 거겠죠.”

지난달 변진섭은 열한 번째 음반을 발표했고, 후배 가수 양파와 듀엣 무대에 등장했으며, ‘해피 선데이’의 인기 코너인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다. 또 주요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 근황과 신곡을 들려주었다. 그의 본격적인 방송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너무 오랜만이었을까.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에서는 한동안 변진섭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제가 정말 방송을 안 하긴 했나 봐요. 방송 한번 나갔다고 검색어 1위에 오르다니요(웃음).”
사람들의 반응에 그도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방송이 나간 뒤 그를 전혀 모르는 세대까지 그의 인터넷 팬클럽이나 미니 홈피를 찾았다. 당연히 변진섭의 팬들은 그의 컴백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다. 새 음반에 담긴 감미로운 음악 역시 팬들이 이제껏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1, 2, 3집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팬들도 저를 그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지난번 10집은 내 색깔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변진섭의 음악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낯설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데뷔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작업했죠. 그때의 느낌이나 작업했던 패턴을 되살리면서요.”

10장의 음반을 내고야 자신의 색깔을 찾은 셈이다. “앨범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11집과 함께 가수로서 제2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의 남다른 각오는 이번 음반에도 잘 나타나 있다. 싱글앨범 발매가 자연스러운 요즘, 그의 앨범은 총 15곡으로 채워졌으며 모든 곡을 정성 들여 작업했다.

8년만에 방송 활동재개한 변진섭,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추억

8년만에 방송 활동재개한 변진섭,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추억

타이틀곡이 ‘사랑을 보내고…’지만, 새로운 ‘작업송’이라는 ‘평생을’, 가슴 아픈 이별 노래 ‘눈물이 흘러’, 그가 직접 노랫말을 붙인 ‘엔젤’ 등도 이에 못지않게 반응이 좋다. 새로운 방식으로 리메이크한 김현식의 ‘눈 내리던 겨울밤’도 인상적이다. 특히 이곡은 같은 시기 활동했던 가수 최호섭이 피처링해 그 의미를 더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로 노래를 불렀고, 여기에 최호섭이 원곡의 분위기를 냈으며, 후배 가수인 부가킹즈의 랩이 더해져 감각적인 곡으로 완성됐다.


음악은 좋았지만 연예인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지난날
수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변진섭을 단박에 국민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가 있다. ‘불후의 명곡’에서도 1위를 차지했던 ‘희망사항’이다. 이 곡은 이번 앨범에도 수록될 뻔했다고 한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앨범이라 어떻게 대문을 여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잊었던 나를 다시 찾게끔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느낌보다는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를 각색해서 수록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죠. 그런데 작곡자인 노영심과 의논하고, 작업해본 결과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났어요. 잘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정일 수 있으니까요. 괜히 좋았던 추억을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죠.”

‘희망사항’은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는 노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성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2집 앨범 녹음을 다 마쳤을 때였어요. 이화여대 음대생 한 명을 방송국 공개방송에서 만났는데, 자신이 쓴 곡을 들려주고 싶다는 거예요. ‘작업이 다 끝났으니 다음 앨범에 쓸게’했더니, ‘그럼 문세 오빠 줄 거예요’ 하더군요. 곡을 들어보니 분명 내 색깔은 아닌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콘서트에서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에 건전가요 개념으로 넣었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반응이 엄청 났어요. 타이틀곡으로 밀고 있었던 ‘너에게로 또다시’를 치고 올라왔죠.”

‘희망사항’은 그동안 ‘홀로된다는 것’ ‘너무 늦었잖아요’로 각인된 그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당시 희망사항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6주 동안 1위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 ‘희망사항’의 시리즈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곡들이 그의 후속 시리즈로 이어질 계획이었지만, 자신의 코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희망사항’의 인기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저에게 데미지를 준 면이 있어요. 원래의 제 색깔로 갔다면 저는 단단하게 포장되어서 성숙해졌을 것 같아요. 팬들에게도 ‘희망사항’이 베스트 원은 아니었으니까요. 이 곡은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더 인기를 얻은 곡이에요.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곡이 성공을 못했다면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골고루 받았던 가수는 못 됐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오래전 그의 소망은 국민 가수는 아니었다. 그는 가수로서는 행복했지만, 연예인으로서는 그리 맞질 않았다.

“처음부터 저는 얼굴 없는 가수로 나가고 싶었어요. 인기를 얻고 나서도 방송에 나가는 것이 즐겁지 않았죠. 남들이 듣기에는 배부른 소리겠지만, 저는 1위를 했을 때 16번 중 7, 8번은 방송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방송국하고도 사이가 안 좋았죠. 저는 아주 유명해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어요. CF를 하는 것도, 연기를 하는 것도 싫었죠. 그냥 음악 하는 사람이었으면 했어요.”

1, 2, 3집은 그를 국민 가수 대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후 발표한 음반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음악적인 방황도 길었다.

8년만에 방송 활동재개한 변진섭,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추억

8년만에 방송 활동재개한 변진섭,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추억

“내가 원하는 음악, 내 색깔을 보여주면 칭찬받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러면 그럴수록 대중하고 멀어지기만 했죠. 그게 10집까지였어요. 제 팬들도 꾸준히 내 음반을 들어주고 따라오기는 했지만 아마 뭔가에 목말랐던 것 같아요.”


노래할 때는 로맨티스트지만 평소에는 표현 못해요
새 앨범에서 그가 직접 가사를 붙인 ‘엔젤’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아내와 아이, 그리고 그의 팬들에게 바치는 곡이다.


햇살 내린 창가에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코끝을 스칠 때면 두 눈 감아 널 생각하네 / 니가 세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함께 사랑할 수 있어 난 너무 감사해 / 때로는 울고 아파할 때면 어깨에 기대어 세상 제일 소중하게 서로를 지키며 우리 사랑 얘기 만들고 싶어 / 너와 나의 사랑은 변할 수 없는 것 / 너를 사랑해


이토록 아름다운 노랫말을 쓸 수 있는 남자는 아내한테 애정 표현도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그는 의외로 무뚝뚝한 남편이다.

“표현을 잘 못해요. 마음은 사무치도록 간절한데, 막상 말로 하려면 잘 안 되더라고요. 여자들은 매번 표현을 해야 한다면서요? 그런 걸 잘 못하니 아내가 불만이 많을 거예요. 그래도 저를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에요. 참! 애정 표현이 자연스러워질 때가 있긴 해요. 외국에 나갔을 때요. 외국에 나가 떨어져 있으면 매일 전화하면서 ‘떨어져 있으니까 보고 싶다’고 말하죠. 그래서 와이프가 내가 좀 무뚝뚝하다 싶으면 ‘외국에 좀 나갔다가 와’라고 하거든요(웃음).”

분가한 집에 부모님 방을 따로 만들어놓을 정도로 그의 효심은 소문이 났건만, 그의 무뚝뚝함은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다.

“무뚝뚝한 건 부모님께도 마찬가지예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가슴에 사무친대도 막상 집에 오시면 그저 ‘왔어요’ 할 뿐이죠. 아버지 때문인 것 같아요. 무뚝뚝하셔서 표현을 잘 안 하는 분이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는 저를 이해하시는데 아무래도 어머니는 여자니까 서운하실 거예요.”

그러나 무뚝뚝한 그에게도 예정 표현에 예외는 있다. 바로 다섯 살, 일곱 살 난 두 아들에게다. 옆에 있던 매니저도 “아이들 사랑은 유난하다”고 옆에서 거들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하얀 얼굴로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얼마나 예쁜데요. 집에 있을 때는 아이들하고 잘 노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귀찮아할 정도라니까요. 특별한 놀이를 하는 건 아니고, 아이들을 잡고 돌려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 없어요. 큰 애는 요즘 무거워서 잘 안 돌려지더라고요.”

아이들 얘기를 하면서 사랑스러운 표정이 입가에 퍼진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물으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뭘 해도 그냥 웃겨요. 100점을 맞든, 빵점을 맞든 다 웃기더라고요. 아이들 낳은 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아이 이야기에 덩달아 기자도 “나도 조카가 있는데 너무 예쁘다”고 하니, 자식 사랑은 그것에 비할 수 없다고 손을 내젓는다. 그와 첫 만남이었는데도,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처럼 친근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기 때문일까,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그간 매체에서 접한 소탈한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일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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