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길 나란히 가는 현미·이영곤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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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수 데뷔 50주년 무대가 아들의 첫 데뷔 무대예요”


연예인 2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요즘, 또 한 명의 연예인 2세가 등장했다. 가수 현미의 아들 이영곤이다. 45세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하는 만큼 어려움이 컸을 터. 오랜 인고의 세월을 지나온 그는 어머니의 데뷔 50주년 무대를 통해 가수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최근흥행에 성공한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 이 영화는 40대 평범한 남자들이 밴드 활동을 통해 새 삶을 찾아 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날의 꿈을 잊은 채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 평범한 그들이 다시 꿈을 찾아 신명나게 살아가는 모습은 중년의 남성들뿐 아니라 남녀노소에게 행복에 관한 감동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가수의 길 나란히 가는 현미·이영곤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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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미(70)의 첫째 아들 이영곤(45)이 가수로 데뷔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이 영화를 떠올렸다. 이제껏 부동산 관련업을 하던 그가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가수에 도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재미를 위한 장치로 사용됐던 가족과의 갈등이 그에게도 반드시 넘어서야 할 관문이었을 듯하다.

아버지 반대로 가슴에 묻었던 꿈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들 모자를 만났다. 동글동글하고 선한 인상이 붕어빵처럼 꼭 닮아 있다.
“주변에서 다들 그래요. 진작 가수로 키우지, 왜 말렸느냐고.”

대견한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현미가 후회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그녀는 아들이 가수가 된다는 말에 “내가 은퇴를 하겠다”며 강경히 반대했다. 너무 늦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고인이 된 남편(작곡가 이봉조, 꽃밭에서, 물안개 작곡)이 생전에 반대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얘 아버지가 아들이 가수 되는 걸 원하지 않았어요. 돌아가신 후에도 하늘나라에서 보고 싫어할까 봐 찬성하지 않았죠. 그러다 둘째 아들 친구인 작곡가 하광훈이 찾아와 영곤이가 목소리가 특이하고 재능이 있다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한번 하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몇십 년 만에 허락했어요.”

이영곤도 자신이 가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아마 도전해볼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절대 안 되는 영역이었으니까요. 아버지의 악기 방은 절대 못 들어가는 곳이었고, 피아노는 물론 한참 유행했던 통기타도 집에서는 절대 치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는데도, 대학 진학 후 대학가요제 등에 출전하면 앞으로 얼굴을 안 본다고 미리 말씀하셨을 정도였죠.”

그렇다면 고 이봉조는 왜 그렇게 아들의 연예계 진출을 막았을까? 당시에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수의 길 나란히 가는 현미·이영곤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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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보다 주위의 사업하는 친구들이 더 멋있어 보이셨던 것 같아요. 일단 당신과 같은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것도 힘들잖아요. 실패했을 경우 남자로서 치명적일 수 있고요.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지금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태도가 달라지셨을 것 같네요.”

어머니, 아버지 모두 음악을 했으니, 아들이 끼를 물려받은 것은 당연하다.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것들이 그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그가 가수에 대한 구체적인 소망이 커지기 시작한 건 라디오 DJ를 맡으면서부터였다.

“가수의 꿈은 20년 넘도록 간직하고 있었어요.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왔지만 미치도록 일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쩌다 녹음실에 가면 안방처럼 편안했고 무언가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다 미국에서 한인 라디오 방송국 DJ를 맡게 됐는데, 그건 정말 미쳐서 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덮어서 될 일이 아니구나, 더 늦으면 눈 감을 때까지 미련이 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아내는 그의 결심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라디오 부스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진행하는 모습을 본 뒤였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딸들도 곧 아빠의 결정을 존중했고, 이제는 의상을 코치할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하죠. 결심하고 나서도 여러 가지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저를 더 채찍질하게 됐어요. 요즘은 연예인 2세가 유행이잖아요. 물론 부모님의 명성에 먹칠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어요. 그래도 누구의 아들로 불리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는 편이에요. ‘현미 아들 이영곤의 노래’와 ‘이영곤의 노래’가 뭐가 다르겠어요. 그냥 내 음악을 사람들이 듣고 좋아하면 그만이죠. 평생 현미의 아들로 불려도 좋아요.”

중년층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이 트로트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그는 성인가요로 승부를 보고 싶다. 그의 첫 앨범에는 ‘정녕 그대를’ ‘동백아가씨’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을 새롭게 편곡해 수록할 예정이다.

그는 이미 지난 6월 열린 이봉조 음악회에서 아버지의 곡인 ‘떡국’을 정훈희-현미 코러스에 맞춰 부르며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현미는 이때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성공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목소리 색깔이 특이해요. 굵으면서 박력도 있고요. 이런 목소리가 없거든요. 가수가 되면 잘하겠다고 생각했죠. 당시 6천 명이 모인 큰 무대였는데, 떨지도 않고 잘하더라고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마이크와 익숙해진 것 같아요.”


어머니의 가수 50주년 기념 무대는 아들의 데뷔 무대
가수의 길 나란히 가는 현미·이영곤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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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곤의 정식 데뷔는 특별한 무대를 통해 이루어질 예정이다. 현미는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과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53장의 음반을 발매해온 현미. 이처럼 오랜 기간 꾸준히 음반을 발매한 가수는 한국에서 전무후무하다. 11월 2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현미 50주년 기념 음악회가 마련되고, 이 시기에 맞춰 그녀의 첫 베스트 음반도 발매된다.

“데뷔한 지 50년이 됐다는 사실이 전혀 실감나지 않아요. 엊그제 같죠. 70세가 되니 이제야 노래의 맛을 알 것 같아요. 노래에는 연륜이 참 중요해요. 의사도 환자를 많이 본 사람이 잘 보는 것처럼 노래도 경험이 큰 재산이죠.”
작곡가와 가수로 파트너를 이뤄 전성기를 맞았던 이봉조와 현미. 이번 음반은 대부분 이봉조의 음악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특히 그의 유작인 ‘당신이 남긴 모든 것’은 미발표곡으로 이들 부부의 각별한 사랑이 잘 드러나 있다.

“오늘 처음 이 곡을 불렀는데 노래 부르면서 많이 울었어요. 항상 감사하게 되는 건 우리가 없어져도 노래는 남아 있잖아요. 노래를 부르며 그때를 생각하죠. 그분은 항상 내 머릿속에 있어요. 그러니 노래를 부를 때 몰입할 수밖에 없죠.”

이봉조의 곡은 이영곤에게도 각별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써놓은 곡을 제가 갖고 있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를 위해 쓰신 곡이죠. 그중 한 곡이 어머니의 베스트 앨범에 수록될 거예요. 몇 곡이 더 있긴 한데, 앞으로 하나씩 어머니 음반에 녹음될 거고, 저도 하나 부르고 싶어요.”

고 이봉조의 아들 사랑은 유난했다. 그에게 이영곤은 자식 이상의 의미였다고.
“많이 기다리다 얻은 아들이었기에 사랑이 각별했어요. 목욕탕, 녹화장, 수영장 등 당신이 가는 데는 안 데려간 곳이 없을 정도로 꼭 손잡고 다녔죠. 덕분에 영곤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새벽에도 60kg을 채워야 한다며 자는 아이를 깨워서 먹이곤 했어요. 아들을 위해 직접 수산시장에 가서 좋은 재료로 장을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고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손에서 아들을 놓지 않았죠.”

이봉조는 아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다정한 아버지로 살아 있다. 이 때문에 일부러 아버지의 노래를 듣지 않는다는 그. 어쩌다 방송에서 아버지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사무치게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그런 그의 얼굴은 더욱더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아들을 바라보는 현미의 눈이 애잔해졌다.

가수의 길 나란히 가는 현미·이영곤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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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아버지와 같은 과예요. 성격부터 하는 행동까지 똑같지 않은 것이 없어요. 닮아도 너무 닮았어요. 함께 있으면 얘 아버지와 있는 것 같아요. 말을 많이 안 한다는 건 빼고요. 얘 아버지는 집에 오면 조근조근 말을 잘했는데….”


철저한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현미
이영곤은 앞으로 ‘영’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된다. 간단하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이름으로 현미가 직접 붙여준 것이다. 이 이름에는 ‘젊다’는 뜻도 들어 있다. 비록 중년의 나이지만 젊은 감성으로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실제 그는 45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가수가 되기 전부터 청바지도 입고 젊게 하고 다녔어요. 그동안 주변 친구들을 보면 많은 걸 포기하더라고요. 아무리 중년이라도 아내가 사주는 옷만 입지 말고 쇼핑도 좀 하고, 머리도 색다르게 잘랐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제가 쫄바지를 입으면 ‘미친놈’ 하면서도 ‘어디서 파느냐?’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옷도 멋들어지게 입고, 노래도 멋들어지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멋에 있어서는 현미를 따를 수 없을 듯하다. 그녀는 반세기 동안 가수로 활동하면서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 이영곤은 어머니의 프로 정신에 언제나 감탄한다.

“제게 어머니는 두 분으로 나뉘어요. 가수 현미와 평범한 어머니. 가수 현미는 철저한 프로예요. 남들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게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시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식사 조절을 한다든가, 규칙적으로 주무신다거나. 평범해 보이지만 꾸준히 지킬 수 없는 것들을 완벽하게 지켜나가세요. 그런데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시는 순간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하죠. 밥을 하고 빨래를 걷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운 어머니예요.”
현미는 생활 속에서 지켜가고 있는 자기 관리 비법을 귀띔해주었다.

“가수는 잠을 꼭 8시간 이상 자야 해요. 그래야 피부도 좋아지고 목소리에도 좋죠. 저는 술이나 담배를 절대 안 해요. 소식하고 물 많이 먹고 과일 많이 먹고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죠. 운동도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야단스럽게 안 해요. 집에서 규칙적으로 맨손 체조를 했죠. 이렇게 살면서 즐겁게 일하니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녹음할 때 곁에서 지켜보며 이것저것 챙기는 사람은 바로 이영곤의 아내이자 현미의 첫째 며느리였다. 다정하게 며느리의 이름을 부르는 시어머니, 매니저처럼 세심하게 어머니를 챙기는 며느리. 아무리 보아도 고부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며느리들이 무척 예뻐요. 첫째 며느리는 누가 봐도 최고의 며느리죠. 아이도 잘 낳았고, 살림도 잘해요. 똑 소리 나죠. 둘째 며느리 (원)준희는 가수 하다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사는 것이 신통해요. 가수도 그만두고 남자 하나 보고 와서 잘사는 것도 고맙고요. 저는 며느리들을 딸로 생각해요. 같이 맛있는 밥 먹으러 다니고 목욕탕에도 같이 다니죠. 그러면 다 예쁘게 보이더라고요. 괜히 며느리 흉이나 보고 다니는 일은 안 하죠. 자기 딸이면 그렇게 하겠어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만으로도 다정해 보이는 이들 모자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더욱 보기 좋았다. 특히 생전의 이봉조의 곡을 나란히 부를 때 모자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의 마음까지 짠하게 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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