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된 KBS-2TV ‘인간극장’을 통해 발달장애 아들과의 삶을 공개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이상우. 아들을 통해 ‘감사’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더 이상의 절망은 없다. 그는 요즘 아들이 봉사 활동을 하며 살 수 있는 복지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아들 향한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 이야기.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자신감 얻은 승훈이
주말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이상우의 몫이다. 평일, 자신이 없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느라 힘들었을 아내를 위한 배려다.
“주말 동안만이라도 아내가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다고 아내를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고,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거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곤 해요. 그 시간만이라도 아내가 편하게 잠 좀 자라고요.”
이상우는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승훈(14)이와 32개월 된 도훈(3)이다.
요즘 들어 “도훈이가 생떼를 너무 부려요. ‘안 들어줄 거야’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떼를 부릴 때는 ‘안 돼! 그렇게 해도 아무 소용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한 뒤 아이가 제 풀에 지쳐 포기할 때까지 내버려둬야 해요. 화를 내거나 때리면 역효과를 내거든요. 두서너 번 그렇게 단호하게 얘기하면 다음부턴 떼를 안 써요. 예전에 EBS-TV ‘대발견 아이Q’를 진행했었는데, 그 덕에 ‘육아 박사’ 다됐어요(웃음).”
지난 9월, 이상우는 KBS-2TV ‘인간극장’을 통해 승훈이와의 삶을 공개했다. 이상우가 2007년을 잊을 수 없는 해로 꼽는 가장 큰 이유다.
“방송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참 많이 망설였어요. 발달장애 아들이 있다는 걸 숨기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벌릴 일도 아니잖아요. ‘방송이 나간 뒤 승훈이와 아내가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나’란 생각에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더라고요. 또, 저처럼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에게 혹시 누가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경이 많이 쓰였죠.”
방송이 나간 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연을 접한 시청자들의 응원과 격려가 물밀 듯이 쏟아진 것이다.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이 됐다.
“지금은 ‘인간극장’에 출연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승훈이는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는 사람들 덕에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아내 역시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해요.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이전보다 당당해진 것도 값진 수확이에요. 예전에는 ‘쉬쉬’ 하고 숨기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승훈이가 수영을 그만했으면하는 바람
아내 생각하면 말리지 못해
방송에서 환하게 웃던 승훈이는 잘 지내고 있다. 언어치료 중심의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수영도 열심이다.
“발달장애아는 발달 속도가 보통 아이들보다 많이 느린 아이들을 말해요. 신발 신는 걸 익히는 데만 2개월이 걸리고, 윗도리를 입는 데 6개월, 대소변을 가리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하죠. 발달장애아들끼리도 워낙 차이가 커서 치료법을 찾는 것도, 치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에요. 승훈이는 언어가 늦어서 전반적으로 모든 발달이 늦어진 경우예요. 태어난 지 30개월이 지나도록 말을 못하던 승훈이가 드디어 말이 트여 ‘아빠’라고 했을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죠.”
승훈이는 전국 대회 상위권에 드는 수영 유망주다. 집중력을 높이는 재활훈련의 하나로 선택한 게 수영이었다. 지난 8월에는 비장애인과 겨룬 전국 대회에서 예선 2위, 본선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예선과 본선을 하루에 다 하는 바람에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못 낸 것 같아요. 너무 아쉬웠죠. 승훈이는 ‘2등’ ‘4등’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지만요.”
수영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최근 방영되고 있는 승훈이의 CF가 생각났다. 승훈이는 ‘세상을 바꾸는 스포츠’라는 모토의 스포츠토토 공익 캠페인을 촬영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줄 알았던 아들이 수영을 통해 자신을 되찾아간다는 내용의 CF다.
사실 이상우는 승훈이가 수영 하는 게 달갑지 않다. 승훈이와 아내가 수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생각에서다. 승훈이는 현재 아침, 저녁으로 두 시간씩 하루 총 4시간을 수영장에서 보내고 있다. 하루 2시간, 운동하는 수준으로만 수영을 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어떤 분들은 ‘승훈이가 수영에 소질이 있어서 좋겠다’고 해요. 제 생각에는 승훈이가 수영에 소질이 있다기보다 아내가 집요하게 시켜서 잘하게 된 것 같아요. 솔직히 고백하건데, 그 부분에서 아내와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어요. 영화 ‘말아톤’에서 보면 초원이에게 무리해서 마라톤을 시키는 초원이 엄마를 두고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잖아요. 그때 초원이 엄마가 이런 말을 해요. ‘그거라도 없으면 나는 버틸 수 없다’고. 아내도 그런 거예요. 수영장에서만큼은 승훈이가 최고니까요. 아내의 마음을 생각하면 더 이상 말리지도 못하겠어요.”
보통의 아이들과 조금 다른 것일 뿐! 장애아를 보는 시선 바뀌어야
“승훈이를 중심으로 가족이 똘똘 뭉치게 됐어요. 그걸 생각하면 감사하죠. 승훈이를 통해 ‘감사’의 의미를 깨달은 거예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감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아이를 버리거나 부부가 이혼하게 되죠.”
이상우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장애인을 둔 부모들에게 “너무 안됐어요” “고생 많으시죠”라고 말하는 건 그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다. 그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그저 평범하게 대해달라고 당부했다.
“장애아는 말 그대로 장애가 있는 아이일 뿐이에요. 보통 아이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다고 해서 그들을 ‘비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장애아들도 엄연히 ‘정상’임을 기억해주세요. 소아마비로 태어난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불행할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그 아이는 단지 불편할 뿐이거든요.”
이상우는 인터뷰 중간 중간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번 표현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나 편하게만 살아온 아내가 승훈이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걸 보면 그저 애틋하기만 하다.
“결혼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부부 사이가 신혼 때처럼 마냥 좋지는 않잖아요. 2~3년이 지나면서 그렇더라고요. 그러다가 승훈이가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승훈이를 끌어안고 노력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죠. 승훈이는 막내인 저와 무남독녀 외동딸인 아내를 성숙하게 만들었어요. 제가 승훈이를 ‘스승 같은 아들’이라고 하는 이유죠.”
두 아들이 잠든 뒤 아내와 함께 맥주를 마시는 게 부부의 유일한 데이트 시간이다. 전에는 승훈이를 잠시 맡기고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하곤 했지만 도훈이가 태어난 뒤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승훈이가 봉사활동 하면서 살 수 있는 복지센터 만들 예정
이상우는 그동안 의류사업을 비롯해 놀이 교육사업, IT 벤처기업 투자,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다양한 사업을 했다. 아들을 뒷바라지하려면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가수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공연문화사업과 복지센터 설립에 관한 일만 하고 있다.
“발달장애아를 위한 복지센터를 설립할 거예요. 발달장애아들의 교육과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죠.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언젠가는 꼭 복지센터를 설립하리라 다짐했어요. 저처럼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거든요. 지금까지 번 돈과 앞으로 벌 모든 돈을 이 센터에 쏟을 거예요. 그곳에서 승훈이가 어린아이들을 보살펴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평생 그렇게 살면 더 바랄 게 없죠.”
이상우는 승훈이의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복지센터 설립을 마음먹었다. “승훈이의 미래가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으면 눈 감고 죽을 수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이 마음을 울렸다.
“2008년에 잘 지어서 늦어도 2009년에는 복지센터를 오픈할 거예요. 그 준비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게 있어요. 회원제 문화 서비스인 ‘컬처 엠(Culture M) 콘서트’예요.”
컬처 엠 콘서트는 국내외 정상급 아티스트의 공연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2008년 2월부터 시작될 이 공연은 콘서트와 뮤지컬, 연극 등 10여 개 공연 중에서 2개 혹은 4개를 선택해 관람할 수 있다. 2개의 공연은 12만8천원, 4개의 공연은 18만7천원에 관람할 수 있으며, 동반 1인은 무료다. 공연은 2월 SG워너비의 콘서트를 시작으로 3월 빅마마, 8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10월 뮤지컬 ‘시카고’, 11월 윤도현 밴드, 12월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 등이 기획됐다. 공연 수익금은 모두 발달장애아를 위한 복지센터 건립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상우’ 하면 사업가가 아닌 가수 이상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TV에 나와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을 부르던 그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가수로서 다시 무대에 서는 일은 언제쯤이냐”고 묻자 “복지센터를 건립하고 난 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음반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상우에겐 승훈이와 복지센터 건립이 최우선이다. 아니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아들 승훈이를 향한 이상우의 사랑은 위대함 그 자체다.
컬처 M 콘서트 문의 1588-5848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