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미선을 만난다”고 했더니 “사람 참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두 명이 아니다. 박미선은 그렇게 산다. 끊임없이 자신을 소진하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며 웃는다. 빈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얻는 게 많아 항상 행복하다는 이 예쁜 여자의 겨울.
한 달 전, 박미선은 꽃가게 사장이 됐다.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미서니플라워(www.misunny.co.kr)라는 인터넷 쇼핑몰이다. 연예인이 운영하는 쇼핑몰이 차고 넘치는 시대, ‘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잘나가는 연예인의 욕심’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마흔둘인 그는, ‘불안’을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꾸 다른 것을 하게 만들어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고 현실이 점점 어려워지니까. 다른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그동안은 준비하지 않고 시도했기 때문에 실패했죠. 이번에는 준비를 많이 했어요.
장기자 이번에는 박미선씨가 주도하시는 건가요?
제 이름을 걸고. 법인 주식회사를 차렸어요. 제가 CEO예요.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이 무척 기뻐요. 사실 꽃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꽃 씹어 먹고 사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받았을 때는 행복하거든요. 보내는 사람도 좋은 마음으로 보내잖아요. ‘잘되길’, ‘번창하길’, ‘쾌유하시길’.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에 근조를 보내고. 좋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내기 때문에,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장기자 오픈한 지는 얼마나 됐죠?
한 달 됐어요. 준비는 3, 4 개월 정도 했죠. 의류 쇼핑몰을 할까 했는데, 20대의 감각을 못 따라가겠더라고요(웃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집에 있는 화분이 눈에 들어왔죠. 그래서 꽃 사업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비전이 괜찮아요. 아직 뛰어든 연예인이 별로 없고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더라고요. 지금까지는 괜찮아요(웃음).
정기자 표정이 밝으세요.
기준치를 낮춰서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너무 기대했으면 실망도 컸을 거야. “야, 하나 나갔어? 두 개 나갔어?” 그러다가 “오늘은 여섯 개나 나갔어!” 하는 기쁨이 있어요. 지금은 아는 분들 위주로 주문해주시지만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도와주겠다”고 하세요.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죠.
장기자 본인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처음 내보셨어요?
내 이름으로 처음 해봤어요. 이봉원씨 이름으로만 하다가. 내가 대표이사 CEO 해서 딱 나오니까 신기한 거야. 의료보험도 내 이름이 가족에서 빠져서, 직장 의료보험이라고 하나요? 거기 들어간 거야. 가출한 기분이 들더라고. 처음이에요. 독립한 기분.
정기자 가출한 기분, 독립한 기분. 괜찮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 독립한 기분 참 좋고, 제 밑에 남편이 있어요(웃음). 제가 대표이사고 이봉원씨가 이사로 있어요. 직함뿐이지만. “성공하겠다”고 했더니. “그래 해봐, 해봐” 그래요.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줘요.
장기자 가장 많이 주문하신 분은 누구세요? 아는 분들 중에?
가수 김혜연씨가 가장 많이 샀어요. 의리가 있어요(웃음). 또 선배 김미숙씨도 많이 하셨고요. 지난번에 반효정 선생님 생신에 “네가 알아서 좀 보내라”고 하셔서 정말 신경 써서 난을 보내드렸는데, 그 어떤 선물보다 좋았다고 칭찬해주셔서 기분 좋았어요. 아, 하루는 애 아빠가 누구한테 꽃을 보냈더라고요. 주문자에 이봉원이라고 뜬 거야. 그래서 “누구한테 꽃을?” 하고 내가 확인 들어갔잖아. 그런데 ‘근조’ 보냈더라고요(웃음).
방송을 시작한 지 20년, 박미선은 꾸준히 사랑받았다. 출산 이후 두 달을 빼놓고는 쉰 적도, 쉴 틈도 없이 달려왔다. 메인 MC였던 그는 ‘패널’이 됐고, 설날 특집방송은 그를 ‘심사위원’으로 초대한다. 연예인은 ‘소모품’이고, 인기는 ‘거품’이라는 것은 꽉 찬 경험이 선물한 슬픈 지혜다.
정기자 방송인으로서 커리어를 잘 쌓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불안하세요?
큰아이가 열세 살이에요. 대학교에 가고, 돈이 많이 들어갈 때가 이제 7, 8년 남았어. 그러면 내가 지금 마흔한 살이니까 마흔 아홉. 곧 쉰이에요. ‘그때 지금처럼 일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 애 아빠는 60이 넘죠.
올해로 방송이 딱 20년이에요. 20주년 기념으로 뭔가 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서 대신 꽃집을 열었다고 해두자고(웃음). 20년 동안 딱 두 달 쉬었어요. 첫아이 낳고 한 달, 둘째 아이 낳고 한 달. 애 낳기 일주일 전까지 일을 했으니까. 데뷔하자마자 스타가 돼서, 공백기도 없었어요. 꽉꽉 밟아서 20년을 일했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허무해요. 방송이 굉장히 허망한 거야. 인기는 거품 같은 거고, 연예인은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용 가치 없어지면 가차 없이 잘리죠. 내가 이날까지 온 것도 운이 좋았던 거고, 연예인이 그래요, 퇴직금이 있어 뭐가 있어. 누가 보장을 해주겠어요. 계획을 세워놓고 살지 않으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 잘나가는 배우는 60, 70까지 연기하며 살 수 있지만, 저는 그것도 아니고. 참 슬프지만 현실이 그래요.
정기자 지금 박미선씨의 위치는 어디쯤일까요? 워낙 다양하게 하시잖아요. 라디오도, 진행도.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져요. 틈새를 노릴 수밖에 없죠. 나는 진행에 대한 욕심을 버렸어요. ‘`MC 하던 사람이 쪽팔리게 어떻게 패널로 앉아 있어’, 이런 마음 비웠어요. 제가 조형기씨랑 같은 사무실이에요. “그래, 그럼 내가 여자 조형기가 돼볼게”라는 얘기를 농담 삼아 했는데, 메인 MC만 보다가 패널로 앉아 있으려니까 처음에는 되게 이상했어요. 후배들이랑 앉아서 하는데,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진행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창피하기도 하고 속도 상했어요. 아, 이제는 명절 특집방송에 MC 가 아니라 심사위원 자리가 들어와(웃음). 그래 그럼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죠.
하지만 드라마를 하니까 아주머니들이 더 좋아하세요. 후배들이랑 젊은 프로그램도 나가니까 학생들도 알아봐주고. 무엇이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몫을 다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이제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늘었어요. 이렇게 나의 40대, 50대는 지나가겠죠. 내가 환갑이 되고 칠순이 됐을 때, 기력이 있다면 이순재 선배님이나 김영옥 선생님처럼, 정혜선 선생님처럼. 전원주 선생님은 지금 일흔 살을 바라보시는데, 직접 운전하고 다니시잖아요. 나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면, 진짜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서 하고 싶어요. 자식들한테도 “니네 대학까지만 공부시키고 그 이후에 엄마는 엄마 인생 살 거야” 그랬어요. 지금 초등학생인데. 미리 세뇌시키는 거야(웃음).
14년 된 부부는 뭘 해도 무덤덤하다. 이혼은 ‘게을러서’ 못한다. “모든 일이, 나를 소진하는 일”이라는 말은 허무하다. 그러나 박미선은 “공허함은 허무주의자의 말”이라고 잘라 말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다. “아직은 바닥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빈틈없는 긍정의 끝을 의심하는 것은 기우일까.
장기자 자식 교육에 가장 강조하는 건 뭐예요?
거짓말은 절대 용납하지 못해요. 굉장히 혼내요. 그리고 요즘은 사교육, 공부에 대한 부담이 너무 많잖아. 안 시킬 수는 없고, 아예 딱 접고 대안학교를 보낼 용기는 없으니까 남들 하는 비슷한 것은 해야겠고. 그럼 애들이 의문을 제기해요. “엄마, 왜 영어를 해야 돼? 한국 사람인데 우리말 잘하면 되잖아. 나는 개그맨이 되고 싶은데 왜 수학을 잘해야 해?” 그럼 전 설명을 해요. “너희들이 어차피 한국에서 살 거면 교육에 발 맞춰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안 하면 안 된다” 그래요. 더 어릴 때는 “공부하지 마, 안 할 거면 똥 퍼” 그랬어요. 그럼 그냥 공부하겠대(웃음).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납득을 시켜요. 윽박지른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이들은 딱 하나예요. “난 개그맨이 되고 싶은데 왜?” 그거죠. 우리 애가 하루는 “엄마, 난 개그맨 할 거야. 피아노 하기 싫어” 그래요. 그럼 전 “네가 나중에 피아노를 이용한 개그를 할 수도 있어. 영어? 잘하면, 영철이 삼촌 봐. 영어 잘 해서 저렇게 책도 내고, 방송도 하면 좋잖니.” 그럼 또 해요. 대화를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정기자 아이들이 개그맨 하고 싶다고 하면 기분이 어떠세요?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소중하다는 걸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드물잖아요.
잘 되기가 힘들고, 열에 아홉은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해요. 먹고살기가 힘들어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걱정이 돼요. 아마 연예인 2세 둔 부모님들 많이 걱정 되실 거예요. 송일국처럼 잘되면 모를까. 그런데 하겠다고 하면 어쩌겠어요. 하지만 자기 힘으로 해야지. 부모가 도와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장기자 박미선씨가 맡은 역할이 참 많아요. 교회에서는 집사님도 맡고 계시죠?
아내, 엄마, 며느리, 딸, 시누, 누나, 언니… 선배, 후배. 그리고 직장에서는 사장님이고. 내가 다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에요. 방송인, 연기자, 진행자, 패널. 다 나를 써야만 하는 역할이야. 그런데 아직은 쓸 게 있나 봐요. 찾는 데가 있는 걸 보면.
정기자 소진되는 느낌은 안 드세요?
아직은 내 바닥을 모르겠어요.
정기자 그런 느낌, 괜찮으세요?
좋아요. 힘들 때도 있지만 ‘난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장기자 한 가지만 아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 굉장히 힘들어하잖아요.
해야 하는 일이면 해요. 안 할 수가 없잖아. 내가 엄마 노릇이 힘들다고 엄마를 포기할 수 있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내가 싫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꽃 사업을 시작했어요. 시작은 내 남동생이야. 남동생이 하던 사업이 망했어. 내일모레 마흔 살인데, 그래서 “기다려봐라. 누나가 창업을 해보겠다. 같이하자.” 시발점은 그거예요. 그리고 직원도 생겼어요. 내가 그만두면 직원들은 당장 굶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말씀 잘하셨어요. 나를 진짜 소모하는 일들이에요. 모든 일들이.
정기자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박미선씨는.
아니에요. 받기도 많이 받아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항상 뭔가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랑을 많이 받아요. 하다못해 밥집에서 반찬이라도 더 받지. 그리고 엄마로서 자식들에게 희생한다지만, 가족이 있기 때문에 힘이 나는 거예요. 남편 때문에 고생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의 기둥이 있어야 하는 거야. 하다못해 못질이라도 시키려면 하나라도 있어야 된다니까(웃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삶은 없어요. 그리고 신앙이 있으니까, 힘이 돼요. 남편하고 많이 힘들 때도, 큰 도움이 됐어요. 부부는 그런 것 같아요. 진짜 죽이고 싶은데도, 또 상처가 아물면 살아져요. 극복을 못하면 끝장인건데. 그러기엔 너무 많은 관계들이 얽혀 있어요. 그리고 갈라서기에 우리 둘이 너무 게을러(웃음). 서초동 법원까지 차 막혀서 못 가. 그리고 재산 나누려면 또 계산해야 하잖아. 우린 게을러서 그걸 못해요.
정기자 참 괜찮은 부부인 것 같아요.
아니, 굉장히 무덤덤해요. 아침 방송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중국 여행을 갔어요. 카메라가 따라왔는데 갔다 와서 PD가 “언니, 투샷이 없다” 그래요. 부부가 한 컷에 잡힌 그림이 없는 거예요. 부부가 14년 살았으면 그런 거지 뭐. 안 그런 부부가 이상한 거야. 열이면 여덟이 그래. 그렇잖아요. 아직 결혼 안 하셨죠?
장기자 전 결혼한 지 6년 됐어요.
아직은 괜찮아요. 10년 넘으니까 확 달라지더라고. 정말 가족이야. 살아져요. 난 부모님 모시고 산 것은 너무 잘한 것 같아. 큰 소리 내면서 싸우지도 않았고. 거기까지는 안 갔어요. 부부는 똑같은 거리만큼 멀어져 있더라고요. 저 사람도, 내가 싫어하는 거리만큼 딱 떨어져 있더라고.
장기자 대중의 입장에서 박미선씨가 남편에게 서운한 것은 뭐,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이봉원씨는 아내의 어떤점이 서운했을까요?
“박미선이 아깝다”는 사람들의 말부터 시작했고, 잘난 마누라를 둔 본인의 스트레스도 있죠. 이봉원씨는 자존심이 강한 남자예요. 그리고 제가 꽤 가르치는 말투인가 봐요. 자기가 하는 일을 격려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애기 아빠는 로맨틱한 남자예요. 순수하고 감성적인 사람. 저는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람이에요. 거기서 부딪히니까, “아, 내가 이런 여자를 사랑했었나.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겠죠. 신혼 때는 몰랐지. 둘 다 너무 사랑하고 좋으니까 구름 위에 있었는데, 내려와 보니까 그게 아닌 거야. 살아야 하니까요.
정기자 박미선씨를 만난다고 했을 때,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대고 싶은 느낌이랄까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대요(웃음). 그래서 내가 무너지면 안 돼요.
정기자 지금은 ‘빈틈이 없다’는 느낌이에요.
전 잘 울지 않아요. 그런데 혼자 많이 울어요. 이게 한 번 터지면 무서워요. 방송에서 안타까운 사연 보면 눈물이 나요. 그런데 내 일로는 잘 안 울어요. 한번은 심장이 너무 답답하고 숨을 못 쉬겠는 거야. 그래서 가정의학과를 갔어. 심장 사진 찍고 의사 선생님이, 부부관계는 어떠냐고 물어보시는데 난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건강은 괜찮대. 스트레스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거예요. 그럴 때 신앙이 많은 도움이 돼요. 그리고 좋은 친구들, 후배들. 제가 워낙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기도 해요.
정기자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있죠. 조영남 선생님처럼요.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사람도 있어요. 되게 갈등하면서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는 사람. 박미선씨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스스로 만든 규율이 많은 사람.
장기자 그럴 수도 있죠.
남자들은 좀 틈이 있어야 그걸 보고 들어갈 생각을 하는 거지, 박미선씨는 틈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내가 지금 댐을 쌓고 있는데, 이 댐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그랬죠(웃음).
방송인 박미선의 믿음과 가족을 위한 기도
애초에 박미선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지난 10월, ‘`KBS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 때문이다. 아나운서고 진행자고 ‘춘향이’보다 ‘`향단이’에 가까운 언어가 판치는 공중파에서, 그의 존재는 소중했다. 넘치지 않는 위트와 편안함은, 그가 그저 솔직한 여자라는 증거다.
정기자 요즘 예능은 호통 치거나 겸손하거나, 박명수와 유재석이잖아요. 중간에 신동엽씨가 있는데. 박미선씨의 진행도 넘치는 게 없어요. 넘치는 게 없는데도 웃겨요.
우리는 가늘고 길게 가자는 모토가 있어요(웃음). 방송은 너무 튀어도 안 돼요. 튀다가 사라진 사람 너무 많아요. 너무 색깔이 없어도 안 돼.
장기자 원래 인성이 그러세요?
연기자는 드라마 대사를 가지고 캐릭터를 창조하지만 진행자는 그 사람의 성격, 색깔이 그대로 묻어나요. 속일 수가 없어요. 대중은 금방 알아요. (박)명수는 그 성격이 그대로 나오는 거고, (유)재석이는 재석이 대로, 김용만씨의 편안한 성격도 방송에 그대로 묻어나요. (신)동엽이는 머리가 굉장히 좋고 강호동은 소리 질러 가면서 천하장사 시절에 힘쓰듯이 방송에 힘쓰는 거죠.
정기자 그럼 박미선씨는요?
저는 그냥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MC가 되자 했어요. 예를 들어 ‘`KBS 바른 언어상`’받은 ‘`러브인아시아`’의 경우에는, 프로그램 자체가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아요. 그 사연들을 잘 보듬고, 공감해주고, 눈 맞추고. 저는 일반인이 나오는 프로그램 진행을 참 많이 했어요. 일반인은 방송 나오면 긴장하잖아요.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생각나게끔 유도하고, 그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장기자 박미선씨의 진행은 믿음직스러워요. 누구와도 잘 이끌어 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흥국씨와도 라디오 하셨잖아요.
그래서 우스개로 “난 김흥국씨랑 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누구와도 할 수 있다”는 말도 했죠.
정기자 지상렬씨가 남았잖아요.
아, 지상렬도 있구나.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난 그런 남자들이 좋아. 너무 반듯한 남자보다 막 튕기고 말 막하고 그런 게 좋아요. (지)상렬이랑도 나중에 할 수 있으면 뭐, 지금이야 ‘노사연씨 거’니까, 엄두를 못 내지만(웃음). 해보고 싶어요.
위로가 서투른 사람은 울고 있는 친구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안달이다. 이럴 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아픔은 누구도 대신 겪어줄 수 없다. 박미선은 ‘그냥 옆에 있는다’. 지난 20년 동안 대중의 곁을 꾸준히 지켜온 것처럼.
장기자 주변에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을 때 박미선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냥 옆에 있어요. 너무 슬플 때는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옆에만 있어줘도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지켜보는 거 외에는 없어요. 슬픔은 본인이 극복을 해야지. 주변 사람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요.
정기자 가장 자주 하는 기도는? 간절하게.
역시 아이들을 위한 기도? 시대가 어렵고 험하니까. 험한 것들을 비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해요.
장기자 이봉원씨는요(웃음)?
그건 항상 기본이고요. 아이들 친구들과 미래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도 하고 있어요.
정기자 본인에 대한 기도는요?
저는 건강과 일에 대한 기도를. 그리고 여생을 헌신하면서 살게 해달라고.
정기자 아까도 헌신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요? 어떤 면에서?
정기자 방송도 그렇고, 나중에도 봉사를 하고 싶다 하시고. 물론 얻는 것도 있지만. 정말 본인만을 위한 건 뭐가 있을까요?
그런 삶이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해요. 옛날에는 왜 이렇게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었는데, 그게 내 삶이라면, 피할 수도 없는 거라면, 부딪쳐서 깨 나가야 하는 거고.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는 여생도 내 삶이기 때문에 공허하지 않아요. 해야 할 것도 많고 그렇게 하는 것도 제 삶이에요. 나는 공허하지는 않아. 허무? 난 굉장히 현실적이고 계획적이에요. 공허나 허무는 감성적이고, 허무주의자들의 생각이죠. 전 그렇지는 않아요. 못 견딜 때는 여행을 가요.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거. 난 너무 감사해요. 내가 전업 주부라면 갈 수 있겠어요? 그런 것도 기쁨이죠.
장기자 어디를?
어디든 좋아요. 지난번에는 송은이, 김영철, 정성화랑 일본 가서 1박 2일 놀았어요. 첫 비행기로 가서 기차 타고 온천 하고, 맛있는 거 먹고, 자전거 타고, 쇼핑하고. 가격도 얼마 안 했어요. 제주도보다 싸게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날 비행기 타고 왔어요. 돈 아깝게 그렇게 가냐고 하시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어디 가서 우리가 공원 가서 자전거 타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다니고 그러겠어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미선 언니의 당부
이 여자를 구원하는 최고의 사치는 1박 2일의 여행으로 충분했다. 다시 돌아온 일상, 그는 다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감초라도 관계없고, 후배들 자리는 빼앗고 싶지 않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정기자 정통 코미디나 개그에 대한 미련은 없으세요?
요즘은 코드가 달라져서, 이제 후배들하고 같이 코미디를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시대의 흐름이 그러니까 내 식대로 코미디를 하는 것은 무리고, 굳이 내가 ‘개콘’이나 ‘웃찾사’에 나와서 후배들을 젖히고 하겠다?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그나마 그거 하나 있는 프로그램, 후배들 자리까지 뺏어가며, 그건 아닌 것 같아.
장기자 2008년 계획은?
일단, 시작한 꽃 배달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드라마, 영화 한 편씩 꼭 할 거예요. 아직 들어온 건 없어요(웃음).
정기자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역할이든. 아마 감초겠죠. 운동도 할 거예요. 오래 살아야죠. 건강도 챙기고. 애기 아빠는 연극을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대본도 보고 있고.
장기자 아내로서, 이봉원씨는 뭘 하실 때가 가장 잘 어울리나요?
연기요. 코미디는 내가 봐도, “이제는 저 사람도 구식이구나” 할 때가 있어요. 연기는 잘해요. 눈 연기도 좋고. 아까워요. 임하룡 선배님처럼 욕심 버리고 하면 좋은 연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희은씨랑 김자옥씨는 이봉원씨가 저보다 낫다고 해요. 올해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볼까 해요.
장기자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올해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해로 삼아서 나를 좀 아꼈으면 좋겠어요. 좋은 음식 많이 먹고, 다이어트로 몸 혹사시키지 말고. 마음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풀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그럼 내가 살찌는 거잖아요. 남편,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나를 챙길 시간이 없는 우리 주부들이 올해는 나를 위해서 예쁜 옷도 한번 선물해보고,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를 사랑하는,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여성이 되길. 어렵지 않아요. 난 멋져, 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돼요. 마음먹기에 달렸죠. 시간 너무 빨라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이 지나가요. 금방 서른, 마흔, 쉰 살이 돼요. 시간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계획을 세우셨으면 좋겠어요.
정기자 60세 생일에는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요?
글쎄요. 부모님이 그때까지 계시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면 아흔이 넘으시겠네요. 가족과 함께 있겠죠. 혹은 어디 외국에서 남편과 함께? 크루즈 여행 하고 그렇게 살아야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자식들은 지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웃음).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는 말은 박미선의 겸손이다. 미디어는 스타를 편애하지만, 대중은 안다. ‘진짜’ 스타는 항상 친구처럼, 언니처럼 누군가의 옆자리를 지켜온 박미선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예순이 된 날, 그는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크루즈’는 사치스럽지만, 40년이나 헌신적인 친구로 지내면서도 불평 한마디 않은 그에게는 호사롭지 않다. 그 추운 날씨에 원피스만 입고 야외 테라스에서 촬영하면서도, 박미선은 불평 한마디 없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정우성 기자 ■글 / 정우성 기자 ■ 사진 / 민영주 ■장소 협찬 / 홍대 마니앤디토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