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에서 좀체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노현희가 복귀했다.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에 패널로 출연하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층 성숙해졌다고 할까. 연기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으니 여유가 생겼다는 노현희의 요즘.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노현희(36)의 목소리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가 뮤지컬 배우로 오랫동안 활약해왔음을 기억한다면 놀라울 일도 아니다. 게다가 그는 결혼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라디오 DJ를 하고 있지 않은가. 현재 PBC의 ‘노현희의 한낮의 가요선물’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라디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라디오는 TV 드라마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어요. 절친한 친구와 밤새 이야기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보내주는 다양한 사연을 보며 느끼는 게 참 많아요. 브라운관에 제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 방송 복귀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분들도 있었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 행복한 일이 많아요.”
아이 갖고 싶은 마음 절실해
노현희를 만난 곳은 여의도의 한 사무실이었다. 아역 연기자를 양성하는 SD(Sweet Dream) 엔터테인먼트다. 그의 친동생이 대표다.
“동생은 제가 방송 시작할 때부터 매니저 일을 해왔어요. 제가 1991년 데뷔했으니 동생이 매니저 일을 한 지도 15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차곡차곡 쌓은 노하우로 아역 연기자를 양성하는 회사를 차렸어요. 오픈한 지 한 달 조금 더 됐는데,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방문객들이 많아요.”
노현희는 이날, 오디션을 보러 온 아이들의 감독관으로 자리했다. 동생이 이곳을 오픈한 뒤 두어 번밖에 못 왔다는 그는 시간이 될 때마다 자주 올 거라고 했다. 동생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힘닿는 대로 열심히 도울 참이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이곳에 오면 아이들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곤 해요. 여기에 오는 아이들은 모두 다 제 조카 같고 그래요(웃음).”
지난 2002년 5월, 신동진 아나운서와 웨딩마치를 울린 노현희는 아직 아이가 없다. 그는 시어머니와 함께 아침 방송에 출연해 “손자를 바라는 어머니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2세 계획에 관해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주변에서 자녀 계획을 하도 많이 물어서 이제는 내성이 생겼어요.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은 절실한데 쉽지가 않네요. 제가 다른 재주는 다 있는데, 그 재주만 없는 것 같아요. ‘하늘이 때가 되면 주시겠지’ 하고 생각해요. 설령 안 주신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잘하라는 뜻’으로 생각할래요. 요즘은 강아지 두 마리를 자식 삼아 키우고 있어요(웃음).”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노현희는 그간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등 장르를 넘다들며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2006년에는 KBS-2TV 드라마 ‘위대한 유산’과 MBC-TV 베스트극장 ‘동네 한 바퀴’에 출연했다. 지난해 방송된 MBC-TV ‘메리대구 공방전’에서는 메리(이하나)와 함께 밤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여자로 출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혹자들은 그에게 드라마 출연이 너무 뜸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됐어요. 드라마를 해야겠다는 욕심도 크게 없고요. 그저 평생 연기자로 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배우는 연기라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배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직업인 것 같아요.”
노현희는 최근 부부 고민 상담사로 변신을 꾀했다. 얼마 전 시작한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에서 부부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패널로 출연하게 된 것이다.
“사실 ‘부부 이야기’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많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그분들의 고통을 약간이나마 덜어주고 싶고, 그분들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패널로 등장하는 표인봉은 남편 입장을, 노현희는 아내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노현희는 “같은 주부로서 그 고충을 알기 때문에 주부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령 아내가 잘못을 했을지언정 남편이 조금만 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간혹 눈물을 보이는 출연자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에 출연하는 부부들은 정말 위태로워 보여요. 금방 헤어질 것 같죠. 하지만 방송에 출연해서 서로의 속내를 밝힌 뒤 다시 잘 지내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저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 인생 공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남편과의 관계에서 제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반성도 많이 하고요.”
연극 통해서 연기 수업 받아
노현희는 지난해 유독 연극 무대에 많이 섰다. ‘달님은 이쁘기도 하셔라’에 이어 지금은 ‘사랑의 방정식’에 출연하고 있다. 연극 ‘사랑의 방정식’은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묶어 만든 옴니버스 연극. 극중 결혼에 실패한 여인으로 등장하는 그가 20년 만에 첫사랑을 만난다는 이야기다.
“도전 1000곡에 출연한 뒤로 춤추고 노래하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져서 자제하면서 지냈어요. 일부러 연극 무대만 고집했죠. 돈은 얼마 못 벌지만 연극을 통해 연기 수업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관객이 즐거워하면 필요 이상으로 오버했어요. 무대에 나가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옆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만 있어요. 그만큼 여유가 생긴 거죠. 관객 반응도 지켜볼 줄 알게 됐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 적이 없다는 그. 공연이 끝나면 후회막급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 무대에 계속 서는 것이다.
“연극은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한편으론 무서운 곳이기도 해요. 관객은 거짓말을 안 하니까 배우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진단하게 되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배우가 관객과 하나가 돼서 편안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대학원 공부로 세상 보는 시야 넓어져
인천전문대학 연기예술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노현희는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다. 2005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한류 최고지도자 과정을 마쳤고, 2007년에는 고려대 경영대학원 AMP(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간 것은 의외다.
“함께 중앙대 예술대학원을 다닌 이영하, 유지인 선배님의 권유로 다니게 됐어요. 대부분 사업하는 분들이어서 이질감을 많이 느꼈어요. ‘못 어울리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기우였어요. 모두 조카처럼, 딸처럼 예뻐해주셨거든요. 제일 나이 어린 제가 반장으로 뽑혀 그분들에게 ‘반장님, 반장님’ 소리도 들었다니까요(웃음).”
그는 대학원에서 배운 경영에 관한 이론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수업 내용을 빼곡히 적었다가 이모에게 알려주는 것. 그의 이모는 얼마 전, 일본서 살다 한국에 돌아와 퓨전 일식집을 오픈했다. 동생 역시 최근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렸기 때문에 그의 조언은 꽤 쓸모가 있다.
“그간 연기하는 것밖에 몰랐고, 아는 사람도 동료 연기자뿐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원을 다니면서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인생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모두 배움의 덕이에요.”
노현희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예전보다 부드럽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또 ‘스타’가 되기보다는 ‘평생 연기자’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연극 무대에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소박해 보이는 ‘평생 연기자’라는 꿈은 사실 모든 배우가 바라는 종착역이 아닐까.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명헌(Pien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