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0년, 배우 40년 ‘더 아름다운’ 윤정희

아내 30년, 배우 40년 ‘더 아름다운’ 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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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는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 자연스럽게 늘어가는 주름이, 호호호 웃는 소녀 같은 웃음소리, 유행을 좇지 않는 헤어스타일과 코트…. 모두 아름답다. 데뷔 40년을 맞는 이 여배우의 영화 같은 일상과 지난날을 더듬어본다.


아내 30년, 배우 40년 ‘더 아름다운’ 윤정희

아내 30년, 배우 40년 ‘더 아름다운’ 윤정희

#1
프랑스 파리 외곽. 낡은 5층짜리 아파트 창가에 아침 햇살이 비친다. 문 앞에는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있다. 남편은 빵을 사러 나선다. 남편은 아침마다 빵을 사러 나가는 걸 좋아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손에는 갓 구어낸 바삭한 바게트가 들려 있다. 아내는 음악을 튼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 혹은 장중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흘러나온다. 아내는 향 좋은 커피를 끓인다. 부부가 마주 앉은 식탁 위에는 간소한 아침거리가 차려진다. 따뜻한 이야기, 웃음소리가 음악 사이로 흐른다.

#2
남편은 아내의 머리를 곱게 빗긴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가위를 든다. 아내는 조근조근 원하는 모양을 이야기한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이미 취향을 알고 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위질을 시작한다. 아내는 연신 웃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남편이 다듬어준 아내의 머리는 언제나 비슷하다. 유행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우아하고 멋스럽다. 거울을 보는 아내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번진다.


#3
남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아내와의 만남은 콘서트홀 뒤편 출연자 대기실에서 있었다. 그 시간 남편은 공연장에서 막바지 연습 중이었다. 아내와 마주하고 있었지만, 마치 부부와 이야기하는 듯했다. 아내의 입에서 순간순간 흘러나오는 ‘내 남편’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닭살 커플의 애칭보다 달콤하게 들렸다. “어머, 내 남편이 나 인터뷰하는 거 보러 나왔네.” 뒤를 돌아보니 창문 너머 회색 터틀넥을 입은 남편이 서 있었다.

꼭 닮은 부부의 심플 라이프
윤정희(64)가 ‘내 남편’ 이야기를 하자, 미혼인 기자와 매니저는 “어머!”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고, 바쁜 일정으로 먼저 일어나려던 사진기자 역시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이야기 하나, 에피소드 하나, 단어 하나가 한 편의 그림이고, 영화였다. 기자의 호들갑에 윤정희는 “너무 행복하게 쓰지 말아요. 우리는 남에게 보여주는 거 참 싫어해요”라고 당부한다. 그리곤 다시 ‘호호’거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지난번 공항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파리 공항에서 여권을 검사하는데, 조사하는 사람이 우릴 보며 ‘두 분이 참 많이 닮았네요’ 하는 거예요. 우리는 전혀 안 닮았잖아요. 닮아가고 있나 봐. 바보 같은 게 닮았나? 호호호.”
아닌 게 아니라 이 부부는 서로 많이 닮았다. 감성, 가치관 등은 따로 떨어뜨려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중국에 갔었는데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무척 예쁜 거야. 탄성을 지를 정도였지. 우리 둘 다 그래요. 너무 좋아서 하늘만 쳐다보며 걸었어요.” 또 하나, 숫자 관념이다. “남편과 나는 숫자 관념이 없어요. 생일도 곧잘 잊어버려요. 폴란드에서 연주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딸한테 전화가 왔어요. ‘결혼기념일인데 잊어버렸지?’ 하고.”

진정한 심플 라이프를 실천하는 이들 부부에겐 잘 알려졌다시피, 자동차도 컴퓨터도 없다.
“저희한테는 자연스러워요. 우리 부부는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무척 비슷해요. 복잡한 거 싫어하고 남한테 보여주는 것, 우리가 필요 없는 건 안 하고 살다 보니 자동차가 필요 없더라구요. 남편은 함께 사용하는 휴대폰을 잘 갖고 다니지도 않아요. 전화, 팩스가 있으니까 인터넷의 필요성을 못 느끼죠. 나머지는 한국에 있는 동생이나 매니저가 도와줘요.”

남편 백건우의 포스터 앞에서

남편 백건우의 포스터 앞에서

이 부부의 심플 라이프 제1원칙, 유행을 따르지 말 것.
“남들 눈은 왜 봐요? 생각의 낭비예요. 콤플렉스 가질 필요 없어요. 우리는 유행을 싫어해요. 저는 20년 전 옷도 입거든요. 유행을 좇지 않으니까요. 유행을 따르다 보면 피곤해져요. 이 옷도 언제 샀더라? 괜찮죠? 멋있잖아요. 딸은 우리보다 더해요.”


영화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음악을 사랑하는 배우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휴식을 취할 때면 TV나 영화를 본다. 영화배우 윤정희는 요리할 때, 식사할 때, 책 읽을 때, 휴식을 취할 때… 언제든 음악을 듣는다.

“제가 음악 듣는 걸 보고 남편이 놀리느라고 ‘심각하게 들으면 그렇게 들을 수 없지’라고 말해요. 남편은 음악회에 가면 ‘이건 저렇게 하면 안 돼, 저건 저렇게 해야 돼’ 하고 말해요. 남편은 열심히 연습하다가 몸을 풀기 위해 영화를 봐요. 시시한 영화도 보죠. 저는 절대 시시한 영화는 보지 않아요. 영화를 볼 때 제가 ‘조명을 저렇게 쓰면 안 되는데’ 이렇게 말해요. 어떤 때는 이야기하다가 싸우기도 해요.”

그래도 아내는 남편의 가장 든든한 조언자다.
“연주 전 남편은 저를 천 명의 청중으로 생각하고 연주해요. 연습할 때나 리허설 할 때는 물론 연주 때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듣죠. 그런데 리뷰는 조심해서 해요. 이번 공연에서도 저는 맨 뒤에 앉아 있어요. 뒤에서 보면 연주든 청중이든 다 보이거든요.”

남편만큼이나 긴장하며 객석에 앉아 있던 윤정희. 그녀는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일주일 동안 완주하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남편 자랑하면 안 되지만, 베토벤 소나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쳐왔어요. 한국 오기 전 중국에서도 전곡을 연주했어요. 그쪽 매니저가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해요.”
백건우는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그녀는 이런 남편의 끈기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말고도 존경스러운 점이 있다고 한다.

“저는 남편더러 변호사라고 해요. 남을 절대 나쁘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항상 그 사람을 변호하는 편이죠. 욕심 없고 참 착해요. 나도 착하지만. 호호호.”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의 이혼 역시 급증하는 요즘, 30년간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는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우선 서로가 존경해야 해요. 서로의 취미나 그런 걸 잘 맞춰줘야 하고요. 고집은 적당히 부리고요.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건 좋지 않아요. 즐겁지 않고 하기 싫은데 일을 하면 불만이 쌓이죠. 또 불만이 있으면 즉시 이야기해서 풀어야 해요. ‘나는 이렇다 당신은 어때?’ 하고 대화로 풀어나가세요. 안 그러면 병이 생겨요.”


자존심 걸고 발 내딛은 영화계
배우 윤정희가 어느덧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영화 ‘청춘극장’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이후 3백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유학 가기 전 7년간 3백 편의 영화를 찍었고, 유학과 결혼 후에도 20여 편의 영화를 찍었다. 본명은 손미자. ‘윤정희’는 데뷔하며 붙여진 이름이다. 화려한 세계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조용히 살고자 하는 마음에 이름에 고요할 ‘정(靜)’을 썼다.

아내 30년, 배우 40년 ‘더 아름다운’ 윤정희

아내 30년, 배우 40년 ‘더 아름다운’ 윤정희

“영화배우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외교관이나 교수가 되고 싶었죠.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오디션을 받았어요. 처음 한강변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을 때 황정순 선생님을 붙잡고 ‘어머니’ 하고 우는 연기를 했어요. 그런데 절로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자신도 모르는 끼가 발산된 건가요?”라고 물으니 그녀는 “‘내가 왜 사람들 앞에서 이런 걸 해야지?’라는 생각에 서글퍼지더라”며 웃는다.

오디션에서 200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남자주인공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신성일이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 배우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섬세하고 당당한 면이 바로 그녀의 매력이기도 하다.

“첫 영화가 성공을 거둔 뒤 당시 유명한 감독님이 저를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 다음 영화의 조연을 주셨어요. 저는 ‘조연하려고 영화배우 시작한 거 아니에요. 주연하려고 모든 자존심을 걸고 나왔어요’라고 말했죠. 호호. 지금도 내 남편이 저에게 자존심을 빼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해요. 자존심이 필요 이상으로 강하다고 하죠. 그때는 더 그랬어요.”

이후 윤정희는 유학 가기 전 7년 동안 남정임, 문희와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어떤 여자 분이 남편과 제 남편 공연을 보러왔어요. 저를 찾아와서는 예전에 제 사진을 방에다 붙여놓을 정도로 팬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당시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를 걸고 친구들하고 많이 다투었다고 해요. 생각해보면 트로이카의 경쟁이 배우 생활에 활력소였던 것 같아요. 독주면 재미없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잖아요.”

7년간 3백 편의 영화를 찍었으니 일 년에 최소 40편의 영화를 찍은 셈.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편수다.
“사실 또렷이 기억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몇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 작품도 있어요. 게다가 분실된 필름도 많으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제가 좋아하는 ‘분례기’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네요. 그때는 거의 잠도 못 자면서 찍었어요. 하루에 영화 두세 편을 찍은 적도 있죠. 그 당시는 야외 촬영이 잡혀 있었는데 비가 오면 탄성을 질렀어요. ‘아, 잘 수 있겠구나!’ 하고요.”

윤정희는 기억에 남는 영화로 ‘`장군의 수염’‘`안개’‘`무녀도’를 꼽았다.
“내 영화는 잘 안 봐요. 우리 식구가 내 영화를 보는 것도 안 좋아하고요.” 왜 그런지 물으니 그녀는 “부끄럽다”고 한다. “직업이 배우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굉장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수줍어했어요. 지금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요. 사진 촬영도 사실 힘들어요.”


배우로는 아직도 현역, “좋은 시나리오 기다려요”
인기의 최절정이었던 1972년 윤정희는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 당시 팬들과 언론은 그녀의 유학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말도 안 되는 억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꿈이 컸고, 대중에게 노출된 삶에 힘들어했다.

“내 세계를 찾고 싶었어요. 영화배우로 살면서 맘 편하게 외출할 수도 없었죠. 언제나 학생들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었어요. 어떤 남자는 혈서를 써서 보내기도 했고요.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5년 정도만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7년이나 영화를 한 거예요. 뮌헨 올림픽 행사 때문에 유럽에 갔다가 프랑스 파리를 들르게 됐어요. 그때 내가 공부해야 할 곳은 여기다 싶었죠. 영화가 시작된 곳이 바로 파리잖아요.”

파리는 윤정희에게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한 곳이자 영화를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든 곳이다.
“파리에서 영화 공부를 하면서 영화의 매력에 빠졌어요. 파리 제3대학에서 오랫동안 공부했어요. 학비가 굉장히 싸서 오랫동안 공부할 수 있었죠. 좋은 작품이 있으면 휴학하고 귀국해 영화를 찍었어요. 결혼해서도 스무 편의 영화를 찍었죠. 마지막으로 영화를 한 게 좀 오래됐다뿐이지 저는 아직도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어요.” 1994년 촬영한 ‘`만무방’이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다. 벌써 13년이나 흘렀다고 하니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시간이 그렇게 가고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저는 10년쯤 됐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이 참 좋아서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도 됐죠.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영화배우예요. 지금도 드라마, 영화 등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고 있고, 검토 중이에요. 제가 출연하기로 한 작품이 있는데 시나리오 수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윤정희는 프랑스 디나르시에 ‘꽃의 대모’로 선정됐다. 이 행사에 그녀는 한복을 입고 등장해 시의 상징인 시화로 장미꽃을 선정했다. 30년째 프랑스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들 부부의 국적은 아직 한국이다. 유럽 연주 일정이 많으니 프랑스에서 살지만, 항상 한국인임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이미 외교관의 꿈은 이루어진 듯하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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