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어 연극서도 의기투합한 김지훈과 박철민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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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여름, 전 국민을 울렸던 영화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37) 감독과 배우 박철민(41)이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연극이다. ‘연극열전 2’의 두 번째 작품 ‘늘근도둑 이야기’로 돌아온 두 남자와의 기분 좋은 만남.


영화 ‘화려한 휴가’는 2007년 대한민국 영화의 ‘구원투수’였다.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던 때 관객 7백50만 명을 극장 으로 끌어 모았다. 감독과 배우를 만난 이상 ‘화려한 휴가’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영화 이어 연극서도 의기투합한 김지훈과 박철민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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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에게 영화 ‘화려한 휴가’는 의미가 클 것 같아요.
김지훈 감독(이하 ‘김’) : ‘화려한 휴가’를 통해 대중이 민주화 운동의 진정성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광주의 역사와 아픔을 광주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이 알게 됐으니까요. 그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또 절친한 박철민씨가 조금 더 유명해져서 좋습니다. 박철민씨는 본인의 연기가 조금 더 는 것 같다고 자부하더라고요(웃음).

박철민(이하 ‘박’) : 하하하. 영화가 흥행하면서 이전에 비해 많은 인기를 얻었어요. 배우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된 계기가 됐죠. ‘화려한 휴가’는 역사적으로 묻혀 있던 광주를 살아 숨쉬게 했어요.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학생과 젊은이들, 광주를 알고는 있지만 가슴 저 한구석에 쌓아두고 지냈던 30~40대들에게 광주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거죠.


감독님은 두 번째 작품으로 ‘대박’을 터트리셨어요.
김 : ‘화려한 휴가’는 제 영화 인생 초반의 큰 선물이에요. 노력에 비해 너무 많은 걸 얻었죠. 솔직히 말하면 영화 인생 초반에 이렇게 기록에 남을 만한 흥행을 거둔 것에 대해 부담이 커요. 박철민씨가 ‘산에 오르는 건 쉽지만 정상에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땀을 흘려가며 등산한 게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른 느낌이 들어요. 무임승차한 기분 같다고 할까요. 앞으로 더 노력할 겁니다. 연극 연출에 도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박 : 김지훈 감독과 알고 지낸 지 7~8년이 돼가는데 감독과 배우로, 둘이서 함께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어요.


두 분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하던데요?
김 : 2001년에 처음 만났어요. 저는 영화 ‘목포는 항구다’를 구상하기 위해 목포에 머물고 있었고, 박철민씨는 목포에서 연극 ‘밥’ 공연 중이었죠. 우연히 본 연극이 정말 재밌었어요. 공연 뒤 가진 술자리에서 제가 취해서 ‘내가 키워줄게’라고 호기를 부렸지 뭐예요. 박철민씨는 막 데뷔하려는 감독이 ‘키워준다’고 하니까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대요. 하하.


목포에서의 첫 만남 이후 김지훈 감독은 ‘박철민’이란 무명 배우를 주시했다. 박철민이 출연하는 연극은 빼놓지 않고 봤다.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한 박철민의 매력을 김지훈 감독이 찾아낸 것이다. 김지훈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 먼저 배우 박철민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영화의 감독과 배우, 연극의 연출자와 배우로 이어졌다.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가 전하는 행복


지금 대학로에선 4년 만에 시즌 2를 선보이는 ‘연극열전’이 한창이다. ‘연극열전2’의 첫 번째 작품인 ‘서툰 사람들’을 잇는 두 번째 작품은 ‘늘근도둑 이야기’다. 연극계 최고의 흥행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늘근도둑 이야기’는 도둑의 어눌한 변명과 그 속에 담긴 부패한 권력자를 향한 뼈 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관객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작품이다.

‘늘근도둑 이야기’는 김지훈 감독의 연극 연출 데뷔작. 영화 ‘화려한 휴가’ 다음 작품으로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2003년 ‘늘근도둑 이야기’에 출연했던 박철민은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지난번과 같은 ‘덜 늙은 도둑’ 역이다.


감독님의 차기작이 영화가 아닌 연극이라서 뜻밖이에요.
김 : ‘연극열전2’의 프로그래머인 배우 조재현씨 권유를 받아들였어요. 재현이 형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것도 족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평소 재현이 형이 많이 도와줘요. 재현이 형은 저에게 ‘산타클로스’ 같은 사람이거든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직전인 2003년에 ‘늘근도둑 이야기’를 봤어요. 당시 영화 투자 자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상당히 우울했는데, ‘늘근도둑 이야기’를 보고 행복했어요. ‘화려한 휴가’를 통해 관객들을 울렸으니 이제는 웃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육아 때문에 우울해하는 집사람을 웃게 해주고도 싶었어요.


영화 이어 연극서도 의기투합한 김지훈과 박철민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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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에 얽힌 비화는 없나요?
김 : 박철민씨에게 ‘하자’고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여줬어요. 드라마 ‘뉴하트’ 촬영으로 짬 내기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기꺼이 시간을 쪼개준 거죠. 사실 박철민씨가 드라마에서 조연이기도 하고요. 하하하.

박 :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한다고 했어요. 김지훈 감독이 ‘목표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 영화는 두 편 야무지게 해냈는데, 연극은 처음이잖아요. ‘비 오는 날 물가에 내놓은 것’ 같아서. 실수하면 뒤치다꺼리하고, 흘리는 거 있으면 줍고, 사고 치면 가서 합의해주고… 내가 이렇게 희생을 한다니까요. 하하하.

김 : 박철민씨가 A급이 아니어서 좋아요.

박 : 저도 그래요. 예전에 모 TV 프로그램에서 ‘항상 붙어 다니는 감독과 배우’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장진 감독과 정재영’이 대표적이었고, ‘김지훈 감독과 박철민’도 있었어요. 다들 A급인데 우리만 B급인 거예요(웃음). 우리 둘은 완벽하지는 않거든요. 간혹 서로 지적하면서 질펀하게 만나는 그런 사이예요.


이번 작품이 워낙 명성이 높은데 부담스럽진 않나요?
김 : ‘늘근도둑 이야기’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연출자는 주방장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상위 1%만 즐길 수 있는 곰발바닥이나 푸아그라(거위간)보다는 ‘간자장’을 만들고 싶어요.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편안한 느낌의 작품 말이에요. 우리는 그걸 흔히 ‘이류’라고 일컫죠. 그런 면에서 큰 부담은 없어요.

박 : 사실 모든 일에 의미를 두면 부담이 커지게 마련이잖아요. 어차피 연극 무대는 놀이예요. 마음 맞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좋아해서 존경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 하고 생각할 뿐이죠. 배우가 놀면 관객도 즐겁지 않겠어요? 1시간 반 동안 ‘놀아보자’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요.


연출자와 배우 간의 호흡은 문제없나요?
박 : 호흡은 아주 잘 맞죠. 우리는 B급이니까. 하하하.

김 : 같은 B급이라서 쏠림 현상이 없어요. 왜 사회문제를 봐도 모든 문제는 양극화에서 비롯되잖아요. 우리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으니 문제 될 게 없죠. 이번 연극에 출연하는 박철민씨와 다른 배우들 모두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급은 아니에요. 하지만 연극계 주연들이죠. 관객들은 이번 연극을 통해 배우의 참맛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박철민씨는 2003년에도 ‘덜 늙은 도둑’ 역을 했죠?
박 : 맞아요. 제가 멍청하고 기억력이 나쁜데도, 연습하다 보니 5년 전 현장 느낌이 오더라고요. 애드리브도 생각나고요. 사실 2003년에도 이 연극을 했기 때문에 연습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을 끌고 가줘야 하는데, 시간에 쫓겨서 그러질 못해요. 괜한 조바심에 집과 드라마 촬영장에서 대본 보고 그런다니까요(웃음).

김 :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참 많은 걸 배웠어요. 영화가 ‘스크린’이 있고 꾸밈이 많은 반면, 연극은 ‘날것’이잖아요. 원초의 소리와 몸짓을 체험할 수 있는 연극이야말로 최초의 순수 예술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연출자의 역할이고요. ‘늘근도둑 이야기’는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예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연극이라고나 할까. 이 연극을 통해서 주부, 샐러리맨, 수험생 등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버팀목, 아내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박 : 참 거침없이 잘 살아온 것 같아요.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번민한 적은 있지만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어쩌면 ‘자기만족’일 수도 있겠죠.

김 : 전 그동안 행복하려고 살았어요. 결혼한 것도, 영화를 한 것도 다 행복하기 위해서였죠. 아내가 나에게 행복을 줬으면, 영화가 나에게 행복을 줬으면 하고 바랐어요. 그런 과정에서 나의 이기심으로 인해 아내, 가족, 가까운 지인들이 상처를 받기도 했죠. 돌이켜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제 스스로가 행복 전달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이어 연극서도 의기투합한 김지훈과 박철민의 우정

영화 이어 연극서도 의기투합한 김지훈과 박철민의 우정

특별히 힘들었던 적은 없나요?
박 : 사람들은 흔히 ‘연극판은 배고프다’는 말을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늘 배가 불렀죠.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늘 많이 먹어뒀거든요. 무대에 있는 게 늘 즐거웠지만 첫딸을 얻었을 때는 달랐어요. 그즈음 형님이 돌아가셔서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당시는 연극이 싫다기보다는 그냥 돈을 벌고 싶었어요. 2년 동안 과일 장사를 했는데 그것도 신통치 않았어요. 아내가 과외를 해서 저를 지탱해줬죠.

김 : 형수님 덕이죠. 모두.

박 : 그건 김지훈 감독도 마찬가지일 텐데요(웃음). 연극을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연기가 안 돼서 속상했던 적은 많죠. 연극이 끝나면 보통 배우들하고 뒤풀이를 하잖아요. 연기가 맘에 안 든 날은 뒤풀이 자리에도 가지 않고 곧장 집에 가곤 했어요. 연기 잘된 날은 관객들이 우르르 빠져나올 때 그 근처 가서 으스대기도 하고요.

김 : 아내가 ‘화려한 휴가’ 촬영을 시작하기 한 달 전에 출산을 했어요. 그런데 촬영 기간 동안 집에 두 번밖에 못 갔어요. 아기를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고, 제가 집에 다녀오면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 봐 일부러 가지 않은 거예요. 그 사이 아내는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우울증에 걸렸더라고요. 아내에게 행복을 주려고 결혼했는데, 뭐 하는 건가 싶었죠.


두 분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뭔가요?
박 : 지금처럼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좋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작업하는 거예요. 연극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할 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적은 적이 있는데, 그때 ‘흐트러진 배우’라고 썼던 게 생각나네요. 정형화된 배우가 아니라 순간순간 그 캐릭터와 하나가 되어 깊이 있게 표현해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큰 웃음과 눈물을 줄 수 있는 배우 말이에요.

김 : 40대 후반이 되면 지방에 살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상업적인 논리로 만들어지는 영화 말고, 순수한 개인 작품 같은 거요. 상업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거든요. 예전에는 영화 작업을 할 때 행복을 느꼈어요. 지금은 아내와 딸을 보면서 소중함을 느끼고, 행복하다는 걸 깨달아요. 딸이 ‘우리 아빠가 아주 열심히 영화를 했다’고 말한다면 그걸로 족해요.


MBC-TV 드라마 ‘뉴하트’에서 의사로 출연 중인 박철민은 2008년 새해, 드라마와 연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고 한다. 김지훈 감독은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영화 차기작은 머지않아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예정. 뜸을 잘 들여서 맛있는 영화로 관객을 찾아가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A급이 되는 순간 부담스러워진다며 서로를 ‘B급 배우’ ‘B급 감독’이라 일컫는 김지훈 감독과 배우 박철민. 그들은 B급이어야 대중을 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소리친다. 안 만나면 보고 싶고 만나면 마냥 좋다는 두 사람. 두 사람의 우정과 의리는 대한민국 영화·연극계에 큰 선물일 것이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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