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의 영광보다 ‘내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커요”
MBC 김은혜 기자는 요즘 ‘행복’이 뭔지 새삼 깨닫고 있다. 그녀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두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은 2006년에 결혼한 남편 유형동(국제변호사)씨, 또 다른 한 명은 지난해 태어난 아들‘희준’이다. 기자로서의 영광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욱 소중하다고 말하는 김은혜 기자의 육아 일기를 공개한다.
“아이가 이렇게 예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김은혜 기자는 아이에게 “괜찮아. 우리 희준이 예쁘게 사진 찍어주시러 오신 분들이야. 빨리 옷 입고 예쁘게 사진 찍자~”라며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곧이어 아이가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서 바로 사진 촬영에 들어갔지만, 아이를 웃기려는 취재진의 제스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희준’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다시 자리를 바꿔 진행된 촬영. 이번에는 김은혜 기자가 아이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기자 앞에서는 울음을 터뜨렸던 아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방긋방긋’ 웃었다. ‘공’으로 본인의 머리를 때리면서 아이의 웃음을 끌어내는 그녀. ‘저 사람이 똑 부러지고 당찬 목소리로 뉴스를 전하던 김은혜 앵커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역시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그녀는 아이가 잠들고 난 뒤, 이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힘들 법도 한데, 얼굴에는 지친 기색보다 기쁘고 행복한 표정이 넘쳐난다.
‘아이 달래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는 기자의 칭찬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아이 볼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같이 있는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이라고 쑥스럽게 웃는다.
2006년 3월 국제변호사 유형동씨(38)와 결혼한 후, 지난해 3월에 아들을 낳은 김은혜 기자. 최초의 기자 출신 앵커우먼, 최초의 정당 출입 여기자 등의 수식어로 방송가에 ‘살아 있는 전설’ 이 되고 있는 그녀에게 ‘엄마와 아내’의 자리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했다.
그녀는 “사실 엄마가 될지 몰랐다”면서 “강아지를 받아도 감사할 나이에 ‘아이’를 주셨다”는 표현으로 아이를 얻은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었음을 밝혔다.
사실, 진통할 때만 해도 ‘아이’가 이렇게 예쁠 줄 몰랐다는 것. 김은혜 기자가 진통 때문에 힘들어 하니까 신랑이 ‘내가 3년 군대 갔다 온 걸, 하루에 한다고 생각하라’면서 위로해줬는데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더란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참고 처음 품에 안은 아이. 그때 그녀는 “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감동을 새삼 다시 느꼈다”고 밝혔다.
“아이의 성장, 매일 매일이 기적 같아요”
특히 그녀는 아이를 낳고 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기쁨을 느낀다. 엄마로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 슬픔과 괴로움’이 ‘엄마’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축복’이라는 것. 그래서 그녀는 요즘 너무나 행복하다.
“매일이 기적 같아요. 아이의 새로운 발전, 성장을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뉴스만 나날이 새롭게 바뀌는 줄 알았어요. 집 안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매일 새로운 보람일 줄은 몰랐어요.”
아이를 낳은 뒤 김은혜 기자는 정말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낀다. 과거 김은혜를 이끌고 지배했던 키워드가 ‘성공’, ‘도전’, ‘성취’ 등이었다면, 지금은 ‘행복’, ‘보람’, ‘기쁨’ 등의 감성적이고 기본적인 키워드로 채워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흔들리지 않는 ‘기본’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게 만든다고. 또 그녀의 ‘취재일기 한편에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는 점 또한 달라진 점이다.
“옛날에는 보람을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남편, 아기와 나눌 수 있고, 회사에서 아픔이 있으면 혼자의 아픔으로 간직했는데, 이제 아기를 보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캐치해내던 그녀였지만, ‘아이’ 앞에만 서면 그 어떤 능력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우는 이유는 한 2백 가지가 넘는 것 같아요. 배가 고플 수도 있고, 코가 막히거나, 어디가 아플 수도 있죠. 그래서 아이를 대하는 방법은 절대 익숙해질 수가 없어요. 어떤 때는 신랑과 함께 ‘지금 희준이가 뭘 원하는 걸까’, ‘도대체 왜 우는 걸까’를 고민하면서 머리를 감싸고 바라볼 때도 있어요. 정말 어려워요.”
“아기와 남편 때문에 웃음이 끊이질 않아요”
서른일곱에 귀하게 얻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희준이.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으로서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절대적인 ‘시간 부족’으로 아이 얼굴 볼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요즘에는 출근하기 전 하루 30분 얼굴 보는 게 전부.
하지만 가끔은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도, 의욕 과잉으로 말을 많이 해 아이를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아이에게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한 행동이 가끔은 반감을 사기도 하는 것.
‘워킹맘’으로서 또 한 가지 힘든 것은 바로 ‘아이가 아플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아기가 갑자기 열이 나서 아팠는데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아이가 아플 때는 제가 대신 아프거나, 대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의 모성애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아이가 아플 때 제가 뉴욕 출장 중이었는데, 집에 와보니 나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길이 굉장히 싸늘한 거예요. 자신이 아플 때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아이가 아는 거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사실 김은혜 기자는 “결혼 전부터 결혼한 여성의 성공이 ‘진짜 성공’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으로서 어머니, 아내, 며느리 역할까지 하면서 일궈낸 성공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진짜 성공론’을 위해 뛰고 있는 지금 ‘진짜 힘들구나’ 느끼죠(웃음).”
사실, 회사에서는 ‘기자’로서 프로 근성 때문에 오직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러다가 일을 마치고 나오면서 비로소 ‘아기는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 그럴 때면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범벅된다고.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일과 육아에 대한 고민은 지금 세대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는 답을 내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 하려면, 필히 두 사람의 희생이 뒷받침돼야 해요. 한 명은 ‘아기를 봐주는 분’, 또 한 명은 엄마를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아기’. 우리 사회 특성상 그런 희생이 없으면 여성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서글프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걸 딛고 일어서야만, 다음 후배들이 편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더 진취적으로 해야 힌다고 생각해요.”
“10시에 퇴근하고 나면, 아이 먹을 이유식을 새벽 2시까지 만들어놔요. 고기와 채소 등으로 2~3가지 이유식을 만들죠. 아이의 밥은 제가 직접 해 먹이고 싶어서요.”
그녀의 남편 역시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육아’를 도와주기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아이를 위해 ‘몸을 던진다’고 한다. 특히 그녀가 밤늦게까지 이유식을 만들고 있는 시간은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당번이 된다.
“남편은 아이와 공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을 치기도 해요. 특히 아이가 남편이 자기 머리를 공으로 때려서 아프다는 시늉을 하면 아주 좋아해요. 하하하.”
아이를 낳은 이후, 남편 역시 많은 변화를 보였다고 한다.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근엄하기까지 했던 남편이 아이 앞에만 서면 바로 무너져버린다는 것.
“아이 앞에서 남편은 정말 와르르 무너져요. 그 근엄한 변호사가 자기 머리를 공으로 때리면서 ‘아’ 하는 그 표정이 꼭 만화를 보는 것 같다니까요. ‘어떻게 저런 애교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그래서 우리 집은 ‘아기’ 때문에 한 번 웃고, ‘남편’ 때문에 또 한 번 웃어요.”
“다시 태어나도 기자 하고 싶어요”
오는 3월 5일은 ‘희준’이의 첫 생일이다. 김은혜 기자는 한 달 전부터 희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주기 위해 ‘안성기, 엄기영, 태진아, 박경림, 무한도전 식구들’에게 희준이를 위한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받으러 다녔다. 희준이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희준이의 돌잔치는 집안 사정 때문에 2월 17일에 할 예정이다.
지난해 김주하 앵커 아기의 돌잔치에서는 아기가 엄마를 닮아 ‘마이크’를 집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말을 건넸다. 이에 그녀는 “돌잔치 상에 마이크는 아예 가져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기자’를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우리는 축구공을 아이 앞에 놓으려고 해요(웃음). 왜냐하면 평소 아이가 공을 좋아해요. 그리고 엄마 아빠도 축구 광팬이거든요.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아요.”
‘아이보다 엄마 아빠가 축구를 좋아해서 아이에게 시키려는 것 같다’고 하자 “듣고 보니 맞다”면서 까르르 웃는다.
올해로 기자 경력 15년 차인 김은혜 기자. “다시 태어나도 기자를 하고 싶다”며 본인에게 기자는 천직이라고 말한다. 기자로서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기자로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게 강하자’라는 신념이 기자로서의 정의감을 세우는 저의 첫 번째 단계였다면, 이제는 좀 더 따뜻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인터뷰 형식의 프로그램일 수도 있죠. 어떤 모습으로 나서야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눈을 전파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객관적이고 사무적인 ‘앵커 혹은 기자 김은혜’의 모습을 상상하던 기자에게 아이 앞에서 바로 무너지는 ‘엄마 김은혜’의 모습은 정말 신선하고 놀라웠다. 한 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 내내, 얼굴에서 단 한 번도 미소가 떠나질 않았던 그녀는 함께 있는 사람까지 행복하고 유쾌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일’에서는 1분 1초까지 계산하는 꼼꼼함과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아이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던 그녀.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기 일을 가진 전문직 여성으로서 그 어떤 부분도 절대 소홀하지 않는 김은혜.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결혼 이후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진짜 성공한 여성상’을 몸소 실천하는 그 자신만만한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홍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