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내내 고생했지만 덕분에 ‘근육질 몸짱’으로 변신했어요”
한국 영화계의 실력파 배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하정우와 김윤석이 만났다. 둘은 곧 개봉할 영화 ‘추격자’에서 쫓기는 자와 쫓는 자로 등장한다. 두 주인공이 풀어놓는 ‘추격자’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는 희대의 살인마를 쫓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모두가 범인에게만 관심을 쏟을 때, 연쇄 살인의 마지막 희생을 막기 위해 질주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범인이 누구인가, 범인을 잡을 수 있는가’에 주목하는 기존 한국 영화와는 접근부터 다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실력파 배우 하정우(30)와 김윤석(40)이 맡았다. 충무로 최고의 기대주 하정우는 연쇄살인마로 등장한다. 영화 ‘타짜’의 ‘아귀’로 완벽한 연기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은 김윤석은 연쇄살인마 하정우를 쫓는 추격자로 분한다.
하정우가 맡은 지영민은 선한 눈빛과 순진한 웃음을 지녔으나 잔혹한 연쇄살인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살인마다.
“지영민은 연쇄살인범이에요. 출장 안마사 여자들을 살해하죠. ‘왜 살인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없어요. 어릴 시절 가정환경 때문에 겪은 상처, 여자를 향한 막연한 복수심 등 여러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하정우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영화를 시작하면서 캐릭터를 만들 때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감독님께 한국의 연쇄살인범에 대한 책 4권을 선물받았어요. 그 책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관련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미국 드라마까지 챙겨봤어요.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공통점이 드러나더라고요. 본능적으로 ‘그걸 따라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나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캐릭터를 만드는 데 많은 고민을 하던 하정우는 자신 안에 있는 의식의 흐름대로 연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위험한 발상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해야 지영민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현장에서 더 편하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하정우를 쫓는 김윤석은 전직 형사 엄중호 역을 맡았다. 비리에 연루돼 형사 옷을 벗은 뒤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남자다.
“어느 순간부터 출장 안마소 아가씨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춰요. 처음에는 아가씨들이 도망간 줄 알고 잡으러 다녔는데, 알고 보니 실종된 거더라고요. 실종된 아가씨들을 찾다 우연히 하정우를 만났고, 그가 살인범임을 알게 되죠. 마지막으로 실종된 아가씨를 찾아 하정우를 추격하는 남자랍니다.”
김윤석은 “태어나서 이렇게 액션이 많은 영화는 처음”이라며 “나태했던 육신을 특공대로 만들어준 감독님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5개월가량의 촬영 기간 동안 한 달 가까이 달렸다니, 그럴 만도 하겠단 생각이 든다. 하정우는 한술 더 떠 “아직도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촬영이 오후 6~7시 사이에 시작돼 아침 7시에 끝났던 것. 그는 “밤낮이 바뀌니까 생각이 없어졌다”며 웃는다.
영화 ‘추격자’의 시나리오를 받아든 하정우와 김윤석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는 하정우는 “감독님과 대화를 하면서 지영민이라는 연쇄살인범을 연기하는 데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 않고 출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김윤석에게도 시나리오가 매력적이기는 마찬가지.
“지문이 없고 대사가 짧은 것,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특정 장소가 아닌 서울의 거리, 주택가라는 점이 좋았어요. 시나리오가 ‘날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고요. 대사가 입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든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영화 속 인물이 뚜렷하게 형상화돼 머릿속에 각인돼 있지 않으면 그렇게 입에 착착 감길 수 없거든요.”
김윤석이 ‘추격자’의 시나리오를 특별하게 생각한 이유는 또 있다. 예전에 그가 읽었던 여성 경호원에 대한 인터뷰 기사 덕분이다. 그 여성 경호원은 ‘자신이 경호해야 하는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공격자를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경호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경호해야 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는데, 시나리오를 받고 그 생각이 났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 엄중호는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몸이 아픈 안마소 아가씨까지 일을 내보낼 정도로 악독하죠. 하지만 그는 1박 2일 동안 살인마와 대치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살인마를 체포하기보다는 희생자를 구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엄중호가 달라지게 된 거죠.”
하정우는 영화 속 자신이 맡은 지영민을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지영민이 가해자지만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가정환경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살인범은 불쌍하며,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사회가 그를 살인범으로 만든 것 같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살인마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내린 해석이다.
하정우와 김윤석, 두 배우의 연기 변신은 2월 14일 극장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출장 안마소 여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하정우와 이를 쫓는 추격자 김윤석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