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콤플렉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그걸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연기를 해낼 수 있었을까요?”
주연이 아니더라도 드라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배우가 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 만만치 않은 연기 포스를 발하는 탤런트 김혜옥. 그녀의 신들린 듯한 연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깊은 눈매에서 만만치 않은 인생의 여정을 읽어냈다.
“촬영 때마다 보라색 아이새도로 싸늘한 시어머니 분장을 해준 메이크업 담당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저 '며느리 전성시대'를 연기하면서 ‘재수 없다’, ‘소름 끼친다’는 욕을 많이 먹었거든요. 너무 미워해서 서운했어요.”
부정적인 반응에 부응하듯, 그녀의 투정 어린 수상 소감은 이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
“실감나는 연기? 솔직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에요”
“그날 소감은 애교 있는 투정이었어요. 오히려 감사하죠.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잖아요.”
지난해 김혜옥은 KBS에서만 네 개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며느리 전성시대’, ‘미우나 고우나’, ‘꽃 찾으러 왔단다’, ‘경성스캔들.’ 표독스러운 시어머니, 철없는 어머니, 장의사 부인, 유한마담 사치코 등 맡았던 역할도 다양하다. 악역뿐 아니라 그녀는 역할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바보든, 사기꾼이든, 술집 마담이든, 시골 아낙이든지.
“역할은 가리지 않아요. 예전에 ‘수사반장’을 할 때는 범인으로도 자주 나왔는데, 재미있었어요. 이번에 영화에서도 마담 역할을 했거든요. 매우 도발적인 마담이었는데, 그런 역할도 흥미롭죠.”
그녀의 관심은 캐릭터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데에만 존재한다. 그래서인가. 예뻐 보이고자 하는 여자의 욕망 저 넘어 한 차원 높은 곳에 그녀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사실 그런 역할을 하다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제게도 분명 그런 모습이 숨어 있거든요. 내 안에 있는 그러한 본성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극대화하죠. ‘며느리…’의 시어머니처럼 표독스러운 면은 평상시에는 나타내지 못하잖아요. 그걸 원 없이 해보니까 얼마나 속 시원해요. 나름 쾌감도 느끼고요.”
그녀의 연기를 보면 ‘신들린 연기’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진실로 연기하기 때문일 거예요. 정말 연기하는 그 순간에는 온몸이 부르르 떨려요. 절대 ‘하는 척’하는 연기는 하지 않아요. 몰입하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어느 순간 현실의 나와 연기 속의 내가 조화를 이루게 되죠. 그냥 솔직하려고 노력해요. 내 속에는 항상 착한 나와 나쁜 나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거든요. 그 속에서 나쁜 나를 끌어냈죠.”
캐릭터와 내가 동일시되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후유증도 컸다.
“힘들더라고요. 모진 말을 하고 남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나면 내 속에 남는 감정이 슬퍼요. 녹화를 끝내고 집에 갈 때쯤이면 마음은 천근만근이 되죠. 집에 가면서 운 적도 있어요. 연기에 몰입하다가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짧지 않더라고요. 인간은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것을 이번 드라마를 통해 느꼈어요.”
고(故) 이은주가 ‘주홍글씨’ 이후 1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그녀는 크게 공감했다.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한다.
“연기를 하면서 깨닫는 것, 아주 많아요”
김혜옥은 올해 50대에 들어섰다. 연기 경력은 30년을 채워가고 있다. 연기를 배워가고, 연기를 통해 인생을 배워갔던 시간들이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10대의 그녀는 대표로 국어책도 못 읽을 정도로 내성적이었고, 수줍음이 많았다. 20대 때는 우울한 감성이 멋있게 보이기만 했다. 연기자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그녀가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건,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컷을 그리는 일을 했어요. 어느 날 문득 대학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나를 위해 투자하자고 생각했죠. 홍대 미대에 원서를 넣었는데, 떨어졌어요. 특별한 재능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는 아는 분의 추천을 받아 서울예대 연극과를 들어가게 됐죠. 그 나이 때는 누구든 연예인이 되고 싶잖아요.”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당시 출판사 사장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녀를 ‘미스킴’이라고 불렀던 그는 학교에 가라고 일찍 퇴근하도록 했단다. 어쨌거나 차선으로 선택한 ‘연극과’가 그녀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처음에 연극과에 입학했을 때 수줍음이 많아 ‘왕따’를 당했을 정도였어요. 연극과에는 난다 긴다 하는 재주꾼들이 다 모여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주인공으로 뽑힌 거예요. 사람들은 저와는 같은 팀을 안 하려고 했어요. 얼마나 서글펐겠어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죠. 그 사람 때문에 연기가 뭔지 알게 됐어요.”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숫기가 없었던 그녀가 무대에만 서면 다른 사람이 됐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내가 어떻게 무대에 서지?’ 하는 생각과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곤 했다. 그런데 무대에만 올라가면 배짱이 생겼다. 그 매력에 빠져 연극무대에서만 10년을 보냈다. 행복했지만 가난했고, 고생스러웠던 시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TV 드라마를 시작했다. 연극에서는 주로 주인공을 맡던 그녀가 드라마에서는 맡은 역할이라곤 ‘전원일기’에서 빨래만 해대는 시골 아낙이나 ‘수사반장’의 범인이었다.
“먹고살 것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어느 경험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요. 전원일기에서는 김혜자 선배님과 김수미 선배님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뵌 것만으로도 공부였어요. 꼭 직접 해야만 공부가 아니거든요.”
화병으로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던 시절
그녀를 연기자로 성장시킨 건 다름 아닌 콤플렉스였다. 가난이었고, 가슴 찢어질 듯한 슬픔이었고, 눈물이었다. 40대의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는 시름시름 앓았다.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녀보아도 어느 하나 그녀의 병명을 알지 못했다.
“시름시름 앓으며 일도 못하고 집에 누워서 지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라디오를 듣게 됐죠. 제가 불자라 불교방송을 듣는데 한의사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 말씀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매일 그 시간만 기다리면서 라디오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한의원에 갔더니 정말 병이 낫더군요. 병명은 화병이었어요.”
가슴 속 응어리진 한이 쌓이고 쌓여 화병이 생긴 것이었다. 당연히 양방에서는 진단이 나올 수 없는 병명이었다.
“그분 덕분에 한방을 알게 됐고, 기도와 명상, 나를 찾는 법 등을 배웠어요. 그리고 3년 만에 병이 나았죠. 이후 저는 불교방송국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 저 방송국에서 봉사를 하리라 생각했어요. 제 생명을 구해주었으니까요. 3년 전 슬픈 일이 생겨서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그때 불교방송에서 DJ 제의가 들어온 거예요. 슬픈 일은 아무리 경험해도 또 힘들더라고요. 그 제안에 ‘부처님이 또 나를 살리는구나’ 했어요.”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출연하면서 서울시 극단 단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DJ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뿌리나 다름없었던 극단 단원을 그만두고 라디오 방송을 맡았다. 그 길이 아니면 죽음밖에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건강해진 요즘에도 꾸준히 한방으로 건강을 다스리고 있다.
“요즘에도 한약 먹고 뜸도 뜨고 침도 맞아요. 매일 108배를 하죠. 절은 TV 다큐멘터리에서도 방영됐듯이 그 효능이 입증됐잖아요. 녹화 때문에 하루라도 절을 못하면 몸이 찝찝해요. 108배를 다 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죠. 마음이 복잡하더라도 108배가 끝날 즈음에는 머릿속 복잡한 생각이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고요.”
인연이란 참 묘했다.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준 당시 그 한의사는 현재 그녀가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초대’의 게스트로 만나고 있다. 지금도 그녀의 건강을 체크해주며, 정말 힘들 때는 침을 놔주기도 한다고.
고통 속에서 찾은 행복, “이제는 행복의 길을 알아요”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슬픔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슬픔, 가난, 남편과 남동생의 연이은 죽음이었다.
“온종일 울고 다닌 적도 있어요. 서 있어도 눈물이 나고, 걸어 다녀도 눈물이 나기도 했죠. ‘나는 왜 이렇게 사건이 많은 거야’, 하늘을 원망했어요.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팔자가 왜 이럴까.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서운한 것이 많았고 불만이 많았어요.”
이제 그녀는 지난 불행까지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다.
“만약 제가 행복하게만 살았다면 이만큼 연기할 수 없었을 거예요. 지금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라도 표현할 수 있고, 연기로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그리고 먼저 가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잘살아야 돼’라는 생각을 해요. 최선을 다해 연기하려고 하고요.”
이제는 먼저 떠난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이유, 또 그들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도 알 것 같다.
“지금은 너무 좋아요. 좋은 역할을 많이 맡게 된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저 혼자의 힘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먼저 간 사람들이 항상 내 옆에서 에너지로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떠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이 제게 남겨주고 간 것, 헛되게 쓰지 말고 행복을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하죠.”
바야흐로 요즘은 연기자 김혜옥의 전성기다. 사실 그녀를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의 설득이 필요했다. ‘며느리 전성시대’와 ‘미우나 고우나’를 찍을 때는 시간이 없어서, ‘며느리…’ 끝나고 나서는 그녀를 기다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위한 미팅이 줄지어 잡혀 있었다. 마감 하루 전 겨우 약속을 잡아 만난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 준비에 빈틈이 없었다. 몇 시간 전부터 미용실에서 머리와 화장을 했고, 인터뷰를 위한 의상도 여러 벌 준비했다. “한 번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다”는 그녀는 정말 프로페셔널했다.
“전성기요? 역할을 많이 맡게 된다고 전성기는 아닌 것 같아요. 행복이 무언지 알게 된다면 그게 전성기가 아닌가요? 이제는 행복이 어떤 건지 알고, 그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아요. 아직도 삶이 막연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건 알아요.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케케묵은 사연이 겹겹이 쌓여 있는 듯, 소용돌이치던 눈빛은 이야기를 마치자 이내 고요해졌다. 가야 할 길을 찾아서인가. 까만 눈동자는 그녀의 웃음처럼 맑디맑았다.
■ 글 / 두경아 기자 ■헤어& 메이크업 / 정유미(쟝 피엘 헤어, 02-3444-1704) ■장소협찬 / 커피지인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