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 스타일리스트로 돌아온 김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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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때보다 돈은 못 벌지만마음은 더 큰 부자예요”


근황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1999년 ‘레모나 CF’로 데뷔한 이후 CF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활약 하던 그녀의 모습을 언제부터인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상큼한 미소가 그리움을 넘어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잘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예쁘게.


파티 스타일리스트로 돌아온 김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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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친구 그리고 파티
정말 오랜만이다. 지난 2003년 드라마가 그녀의 최근작이었으니 5년 만이다. 변함없이 예쁜 모습이었지만 5년 전 브라운관에서는 볼 수 없던 여유와 부드러움이 묻어났다. 시간이 그리고 간 무늬일까?

“쉬는 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강의도 하고 공부도 하구요.”
바쁘지 않을 만큼, 게을러지지 않을 만큼 살았다고는 하지만 부지런히 시간을 가꾸어왔음이 분명했다. ‘파티 스타일리스트 김채연’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그 증거다.

“2006년 겨울에 50일 동안 여행을 했어요. 밀라노에서 25일, 파리에서 25일 있었는데 우연히 파티에 대해 알게 됐죠.”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다. 운 좋게도 밀라노 여행 중 베르사체 책임 주방장에게 요리를 배우게 됐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탈리아 요리를 네 가지 배우고 와서 친구들에게 만들어줬는데 다들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 보았던 파티들을 그대로 재현해봤죠.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파티 스타일리스트 과정을 수료하고 ‘Party By S’라는 파티 스타일링 업체를 꾸린 것이 지난 9월이다. 이제는 이름 뒤에 ‘이사’라는 직함이 붙었다. 처음부터 크고 화려한 파티보다는 작지만 따뜻한 파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기에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마냥 행복한 요즘이다.

“사업이라고 하면 투자도 많이 하고 거창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들 보여주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드리는 그런 일이에요.”
현재 ‘Party By S’를 꾸려가는 네 명의 친구들 중 누구 하나 돈이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이가 없다. 그래서 행복하다.

“연예인이라는 것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한참 일하고 또 한참 쉬고. 공백이 길어지면 방황하게 되죠. 그럴 때 내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소비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 부을 곳이 생겨 무엇보다 좋아요. 연예 활동할 때 돈은 훨씬 많이 벌었지만 마음은 지금이 더 부자예요.”


일상, 작은 것의 특별함
‘파티 플래너’와 ‘파티 스타일리스트’는 다르다. 파티 플래너는 파티를 기획하는 사람, 일정을 짜는 사람들이고 파티 스타일리스트는 파티에 필요한 음식과 음악, 장식과 소품 등 파티 안의 모든 것을 만들고 스타일링 하는 사람이다. 흔히들 파티와 관련된 직업이라고 하면 화려함을 떠올리는데 그녀의 직업은 뚝딱거리고 만들고 그리고 굽는 직업이다. 영화나 TV에서 그려지는 화려한 파티 플래너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엄마가 너는 어렸을 때부터 겉만 화려하고 속은 고생스러운 일만 한다고 하세요. 연예인도 힘든 직업이잖아요. 이 일도 매일 밤새고 만들고, 막노동이에요. 화려함을 생각하고는 할 수 없죠. 그래도 재밌는 걸 보면 천직인가 봐요(웃음).”

파티 스타일리스트로 돌아온 김채연

파티 스타일리스트로 돌아온 김채연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물 한 잔을 내와도 그냥 내는 법이 없단다. 일류 주방장도 집에 가서는 부엌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지만 김채연에게 스타일링은 생활이다. 물 한 잔을 마셔도 꼭 레몬 한 조각을 곁들여야 하고 무슨 받침이 어울릴까 집 안의 접시란 접시는 다 꺼내서 어울림을 봐야 한다. 만두 하나를 쪄도 무언가 모양을 넣어야 할 것 같고 책상 위에 연필이 꽂혀 있는 모양새도 관심의 대상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일상의 순간들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너무나도 소중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대부분 다른 회사에 하청을 맡기는 업체들과는 다르게 일일이 핸드메이드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그녀의 작업 방식 역시 정성을 더할수록 커지는 행복 때문이다.

“맨 처음 작업을 한 것이 아이 돌 파티였는데 준비하는 과정을 보고 의뢰하신 분이 많이 불안해하시더라구요. 아주 작은 것까지 일일이 다 손으로 만드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파티가 부실해질까봐 걱정하셨던 거죠. 하지만 정성을 쏟은 만큼 완성도는 나오게 돼 있어요. 결국 정말 아기자기하면서도 완벽한 파티가 됐죠. 그분은 이제 저희 단골 고객이 되셨구요.”


사랑, 2년쯤 된 연인의 느낌이었으면…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방황도 해보았고 여행의 끝에서 시작을 찾기도 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그녀는 사람과 관계를 정의하는 데 충분히 성숙하다.

“연예 활동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너무 급급했고 따라가기 바빴죠. 일과 돈, 스케줄에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 먼저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 이 일을 시작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관계에 대해 고심하게 되더라구요. 일방적인 관계란 없어요. 누군가를 챙기고 누군가로부터 챙김을 받으며 발전해가는 관계, 그런 관계에서 느껴지는 유대감이 소중한 거겠죠.”

더구나 이제 한 사업체의 대표로서 더욱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기획부터 디자인, 디스플레이까지 총괄하며 작은 부분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특히나 금전적인 부분은 더욱 철저하다. 혹시나 빠뜨려서 나중에 직원들에게 피해가 가게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에서다. 혼자가 아닌 함께, 또 여럿이 일하며 느끼는 책임감은 그녀를 훨씬 더 자라게 만들었다. 사랑은 어떨까. 영화를 볼 때마다 이상형이 변하는 스타일이지만 그녀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사랑을 꿈꾼다.

“2년쯤 된 연인의 느낌이 좋아요. 서로 질릴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없고, 편하기도 하고, 하지만 너무 오래된 느낌이 아닌.”

사랑에는 설렘이 필요하지만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이 더 좋다.
“설렘이 사랑이라면 그 설렘이 없어지면 사랑도 없어지는 거잖아요. 말 한마디라도 새롭게,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바람처럼, 그런 느낌이었으면 해요.”

진지한 표정으로 사랑을 얘기하던 그녀는 영화 ‘이토록 뜨거운 순간’의 스무 살짜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스스로 ‘철들려면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금세 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다. 그녀를 TV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기회가 있으면 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박하면서도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참여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이 너무 좋아요. 요즘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소소한 행복’, ‘예쁜 날들’이에요.”
그녀는 충분히 행복해 보였고 삶을 즐기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열정으로 그녀가, 그녀의 일상이 빛난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장소 협찬 / 청담동 Kate's Kit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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