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호는 한때 최고의 인기 개그 작가였지만 정작 자신은 웃지 못했다. 최선이 아닌 1등의 노예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정으로 웃을 수 있다는 그가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만드는 비법을 전한다.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사업에 실패했던 그가 어렵게 얻은 진리다.
‘개그’란 상대방 입에 재갈을 물린다는 뜻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 1번지’ 등의 프로그램을 집필했고, ‘깊은 밤 전영호 쇼’ 등 방송 진행자로도 인기를 얻었던 전영호. 그는 현재 ‘전영호의 발전소(笑)’를 운영하고 있다. 여전히 유머와 함께다.
“요즘 개그는 소모품이에요. 어쩔 수 없죠. 예전에는 재미없어도 TV 앞까지 가서 직접 돌려야 했지만, 요즘은 리모컨이 있으니 재미없으면 즉각 돌려버리거든요. 귀찮아서라도 보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재미없으면 시청자를 10초도 못 잡아두죠. 인기라고 오래갈 수 있겠어요.”
그도 요즘 개그 프로그램을 볼까? 전문가에게 요즘 개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다.
“‘개그 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를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다른 코너와 달리 뜸 들이는 시간이 있잖아요. ‘밥 묵자’ 하고 뜸 들이는 시간 동안 그다음에는 뭐가 나올까 궁금해지고, 그렇게 한숨 죽이다 다시 나가는 게 너무 깜찍해요. 코미디 요소를 다 갖춘 것 같아요. 한 때 ‘개그야’에서 죄민수가 객스럽게 등장해 ‘아무 이유 없어’라고 말하던 코너도 재미있었어요. 시청자는 대책 없이 보는 거지. 귀엽잖아요.”
애드리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작가가 쓴 대본의 토씨 하나라도 틀리지 않게 연기했던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전에는 대본대로 하는 것이 법칙이었죠. 요즘은 애드리브를 많이 하더라고요. 재미있고 좋긴 한데, 잘못하면 개그의 흐름이 깨지기 쉽거든요. 자기가 더 튀겠다는 생각 때문에 못 참고 치고 들어가는 거거든요. 정극처럼 대본대로 가다 보면 골고루 분배가 되는데, 애드리브를 하다 보면 인기 있는 사람 한 명만 주목받는 현상이 생기죠.”
그는 적절한 개그의 역할에 대해 주목한다. 유머는 성공적인 화법이기도 하다.
어휘를 늘리면, 웃음이 온다
그는 대학이나 대학원 강단에 섰을 뿐 아니라, CEO나 주부 대상 강연의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특히 주부 대상 강연을 통해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꾸미는 비결을 전하고 있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 남편과의 대화에서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은 커가면서 말을 하지 않고, 남편도 이야기가 안 통한다고 상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주부들이 우울증에 많이 걸리죠. 밖으로 나가봐야 특별히 어울릴 데도 없고, 그러다 보면 자칫 탈선을 하기도 하고요. 그게 다 어휘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거든요. 어휘 공부를 하면 우울증에 걸릴 일이 없어요.”
그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은어나 인터넷 용어를 배우길 권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과 끝말 이어가기를 해보세요. 끝말 이어가기를 하다 보면 요즘 아이들이 쓰는 단어도 알게 되고 서로 때리면서 스킨십도 하게 되죠. 세 글자, 네 글자 단어로 한정하면 그 글자에 맞추기 위해 억지를 쓰거든요. 깔깔대고 웃게 되죠. 그러면서 아이들과 친해지고요.”
인터넷이나 TV를 보는 것도 어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까? 그는 주부들의 편식증이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TV를 보면 멜로드라마만 보고, 인터넷을 하면 인터넷 쇼핑만 하죠. 그러면 배울 게 더 없어요. 불가마는 어디가 좋다더라, 뭐는 어디가 싸다더라 그렇게만 흐르는 대화와 다를 게 없거든요.”
주부들의 넘치는 걱정거리들도 강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집에만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입학하는 대학이 있어요. 염려대학교 근심과라고, 여기에 입학하면 밤새도록 고민하면서 복습하고 예습하죠. 신문을 보다가 약 선전이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그 병에 걸린 것 같죠. 주변에서 암으로 죽은 사람이라도 있으면 자기도 그럴 것 같고, 그러다 보면 벌써 자기 장례식까지 다 끝내요. 우울증에 걸리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남의 남편이 바람나면, 어쩐지 내 남편도 그런 것 같고. 집에만 있으면 뭐든지 염려가 되죠.”
이러한 주부들의 염려 과잉증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아이들에게 승부를 걸게 되면서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책임자는 교육부 장관이 아니라 옆집 아줌마예요. 옆집에서 시키면 다 따라가죠. 어쩌다 자기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으면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를 반 죽여놔요.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고 하는 거죠. 절대 아이들 경쟁시키지 마세요. 그냥 최선을 다하게 하세요. 개미를 보세요. 열심히 일하지만 결코 경쟁하거나 싸움하지 않거든요.”
“요즘 아이들은 뜸 들이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요. 어릴 때 우리는 배가 고프면 ‘엄마가 밥 해줄게, 기다려라’고 말하죠. 그런데 요즘은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빨리 배달되는 음식을 시켜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할까봐 뜸 들일 시간을 주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참을성이 없죠. 다 엄마들 책임이에요.”
전영호는 엄마와 아이, 가정이 웃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아이들에 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정말 어렵지만, 막상 마음만 달리 먹으면 의외로 쉬운 방법일 수 있다.
“엄마들이 웃고 살려면 아이들을 내려놓고 경쟁 관계에서 빼내야 합니다. 그러면 집안에 웃음이 넘치고 평화와 평안이 올 거예요. 아이를 짐승 훈육하듯이 기르지 마세요.”
인기 개그 작가였지만 정작 자신은 웃지 못해
어린 시절부터 그는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낙서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나서게 된 직업이 개그 작가다. 당시 그는 개그 작가로 꽤 큰 인기를 누렸다. 인기 프로그램을 맡았고, 진행자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그 시절 많은 사람을 웃게 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웃지 못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들이 왜 웃는지 빨리 캐치해야 했어요. 그 공식을 빨리 뽑아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었죠. 아직도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크게 웃지 못하고 ‘귀엽다’ 정도로만 끝나요. 항상 긴장하고 있죠.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도 겉으로는 웃지만 머릿속으로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계산하고 있고요.”
하루하루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 개그 대본을 쓰던 그는 어느 날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항상 1등을 하기 위해 경쟁한 결과였다. 연예계를 떠나고 나자 건강도 좋아졌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친다.
“5년 전 교육 관련 사업을 했어요. 크게 했죠. 대기업을 이기려고 했어요. 경쟁을 하게 된 거죠.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내가 이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결국 투자한 돈을 다 날렸고, 신경성 당뇨병에 걸렸죠. 경쟁을 하게 되면 ‘`나는 왜 이렇지?’ 비교하고 화를 내거든요.”
다행히 마음을 바꾸니 건강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경쟁에서 빠져 나온 지금 그는 행복하다.
“마음의 방향을 바꾸면 축복이 엄청나게 와요. 진짜 웃음을 찾으려면 경쟁 체제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늘 또 24시간이 주어졌구나, 오늘은 또 어떻게 최선을 다하고 살 것인가’ 생각하면 엔도르핀이 솟아요.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한다면 결국 죽게 되어 있어요. 평안이 아닌 편안을 찾는 사람들도 위험해요. 편하게 먹고살 생각을 하면 당뇨로 시작해서 결국 사망에 이르거든요.”
그는 최근 개그계의 원로들과 함께 ‘한국유머클럽’을 설립했다. 건전하고 바람직한 웃음을 위해서다. 이 단체에서는 1년에 한 번 신성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웃음을 준 사람을 선정해서 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항상 유머와 함께했다. 유머는 그가 온갖 시련을 거칠 때 희망의 불빛을 비추는 등대가 되어주었다. 누가 유머를 가볍다고 했는가? 그가 전하는 유머는 어떤 거창한 명언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