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

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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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자락의 목련은 성급하게 지고 있었다. 구름도 없는 하늘은 비현실적이었다. 넓은 마당을 돌아나가는 바람은 처마 밑에 달린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담벼락도 없는 송추 한옥집 마당에서 임현식은, 개와 놀고 있었다.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3월 한 달은 아주 녹아내렸지, 너무 바빠서
지난 4월 8일, 둘째 딸을 시집보냈다. 아버지는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마음을 돈독하게 먹고, 살짝 웃었다. 올 가을에는 막내딸도 시집을 보낼 생각이다. 땅은 놀리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 모처럼 촬영이 없는 오늘 같은 날은 쟁기질을 해야 한다.


정기자 집 주변이 너무 좋아요. 목련꽃, 벚꽃이 막 지고 있어요, 지금.
일주일 전에 좋았는데. 목련은 한 일주일, 십일 정도면 져버리더라고. 좀 있으면 라일락도 피고 아카시아도 피고. 그러고 나면 초목이 그냥 녹색으로 우거지고. 그럼 여름엔 아주 그냥 케케한 상태로 또 살고, 덥게. 가을에는 색깔이 좀 변하고…. 여긴 에어컨이 별로 소용없는데, 더울 때는 역시 덥긴 덥더라고. 그래도 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이 잘 통해.

장기자 둘째 따님 결혼식 날 울진 않으셨어요?
무너질까봐 돈독하게 마음먹었지. 29년이나 커가지고 드디어 시집을 가는가보다. 감회가 좀 있지만 떨치고 살짝 웃어야지. 그런 감회에 자신을 컨트롤 못한다면 그 연약한 모습은 웃음거리가 돼요. 두 번째(작년에 큰딸의 결혼식이 있었다)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 일년 만에 똑같은 사람들 또 오라고 하려니까 사람 모시기 미안하긴 했지만, 뭐 좋은 인연 만나서 가니까 좋지. 근데 청첩장을 보냈는데 안 온 놈들….

정기자 딱 적어 놓으셨어요?
아직 안 했는데, 딱 체크를 해가지고 걔네들 이젠 안 볼라고(웃음). 9일이 선거날이었잖아. 그래서 선후배들 출마하는 놈들한테 다 불려 가가지고. 이정길도 대구 가 있지, 이덕화 뭐, 우리 또 중견 후배들 송기훈이니 뭐니 해가지고 8일 날 아침에 전화만 죽어라 받고. 화환만 괜히 오십 몇 개가 와가지고 예식장 직원들만 인상 쓰게 만들었지.

장기자 이제 가족이 모이면 북적북적 하겠어요.
모이면 그렇죠. 내가 혼자 사는 홀아비고 하니까 지들이 나름대로 챙기려고 해. 기분도 맞추려고 애 좀 쓰고 그러지. 그런데 내가 바빠서, 사위들을 잘 거두기가 좀 힘들구만. 원래는 프로그램을 이렇게 맡고 싶지 않았는데, 혼자 살면서는 역시 프로그램을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그랬더니 엄청 바쁘네(웃음).

장기자 출연 제안이 오면 거절을 잘 못하시는 거예요? 좀 덜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드라마 하나 시작하면 보통 7, 8개월씩 걸려요.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또 욕심이 많아가지고 작품 하나를 더 하려고 해. 주인공들은 그렇게 못하지만 난 할 수 있거든. 분명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어쩔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일을 하자고 하면 ‘`나 이제 좀 쉬어야 해`’이런 말은 못하고. ‘`뭐 그냥 일 합시다`’이렇게 되기도 하고.

정기자 그래서 이번에 ‘이산’에서 ‘춘화계의 거성’으로 나서신 거죠.

이병훈 감독이, 캐스팅이 너무 인간적이에요. 난 ‘허준’이고 ‘대장금’이고 다 히트작만 했는데, 이번에는 비슷한 역할을 시킬 것 같아서 확실한 악역을 달라고 했지. 그런데 ‘이산’이 50회나 됐는데도 그 악역을 안 주는 거야. 허허. 그러니까 이제 됐소, 그러고 KBS 미니시리즈 하나 맡았는데 ‘이산’하고 같은 시간대로 간다는 거야. 이병훈 감독이 “‘이산’에서 그래도 임현식이 한 번 나왔다 가야지”그래서 “그럼 카메오로 3회만 하자”그랬지.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정기자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응. 연기하는 사람의 양심상 프로그램 시간대가 겹친다는 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매주 이틀씩 밤새지. 하루는 이천 세트장 가서 찍고 와야지. 야외 촬영이다 뭐다 있지. 미니시리즈 해야지. 딸 결혼시켜야지. 사람도 만나야 하는데, 얼마나 바빠요. 내 고향 광주 호남대학교 다매체 영상학부 겸임 교수도 하고 있지. 또 새로 데뷔하는 감독들은 꼭 나를 쓰고 싶어 해. 젊은 감독들이 나를 원한다는 것은 내심 고맙고 반가운 일이거든. 하지만 다 할 수는 없어서 난 한 회씩만 해요. 이러니 3월 달에 내가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겠는가 생각을 해봐. 내가 KBS 야외 촬영장에 가서 이게 MBC거냐, KBS거냐 물어보고 그랬다니까.

정기자 쉬셔야 하는데, 노셔야 하는데.
그렇지, 그러질 못했어. 나이 먹은 동료 연기자들, 젊은 애들은 나를 내심 부럽게 생각하겠지, 잘나간다고. 하지만 박원숙이나 고두심이는 좀 쉬어라 그래. 하지만 5월 중순부터 MBC 일일 연속극을 해야 하고. 10월 되면 SBS 사극을 제대로 한번 해야 돼. 내년 4월까지 모든 스케줄이 차 있지. 나는 나름대로 복 받아서 캐스팅이 잘되는 좋은 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야. 알다시피 60 넘은 우리 멤버 중에 나처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 거야. 누가 있을까, 이정길, 김용건, 백일섭. 이순재 선배님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고. 나이가 73인데 잘하고 계시니 좋은 모범이지. 선배들이 항상 건재해 주는 게, 그 계통이 발전하는 거지. 여기까지가 나의 현황이야(웃음). 이런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일하는 게 쉬는 거야. 집 분위기가 주인의 마음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나는 구석구석 살피고 집 가꾸는 걸 좋아해요. 나무 손질도 하고 가꿔야 집이 단정하고 좋아지고. 나무는 좀 팔기도 해야 하는데, 지금 나무 장사할 틈도 없네(웃음).

장기자 지금은 막내딸과 같이 사시는 거예요?
우리 막내딸은 건국대학교 중문과를 다녔어요. 여고에서 중국어 선생 해요. 걘 말이 없어 별로. 개들하고나 잘 놀고. 애인 만나고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늦게 돌아오고(웃음).

장기자 조만간 또 시집 간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응, 가을쯤. 남편감이 좀 괜찮아. 뭐 서울대라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서울대 정보통신과로 해서(웃음). 대학원도 그쪽으로 해가지고. 군복무를 대기업에서 하더만. 참내 군생활을 돈 벌면서 하는 게 기특하더라고. 얘도 우리 딸하고 비슷해. 꼭 소꿉친구처럼 놀더라고. 막내는 스물아홉 살인데, 한 서른한 살쯤 시집갔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올가을에 또 한 번 손님 모시자 그랬지. 이 마지막 결혼식에 안 오는 놈들은 나를 아주 모욕하는 걸로 알고 그렇게 청첩장을 보낼 테니까(웃음).

장기자 올 한 해 따님들을 다 보내시면 섭섭하지 않으시겠어요?
애들 학교 다닐 때야 어울려 살았지만, 벌써 서른이 다 된 장성한 상태에서 생활하다 보니까,각자 생활이 있으니 좀 뭉쳐지는 맛이 안 나. 3월 달 같은 경우는 우리 딸도 고생 많이 했지. 근데 (웨딩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개그맨) 박수홍이한테 맡기니 순조롭게 잘 풀리고 아주 좋았어. 난 중간 중간에 가서 “잘 골랐다, 좋다”한번 말해주고. 결제 해주고(웃음). 내가 새벽 두세 시에 들어오고 어떨 때는 집에 못 들어오니까 딸이 안타까워했어요. “아침 여섯 시에 모닝콜 해주라” 그러면 딸기도 갈아오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쟁반에 들고 와. 이것만 드시고 가라고. 그럼 성의 때문에 할 수 없이 먹고 가기도 하고 그랬지.

정기자 혼자 계시면 안 챙겨 드시죠?
대개 그렇게 되지. 현장에 가서 어디 설렁탕집 없나 둘러보기나 하고. 근데 자기 여편네가 다 있으면서도 그런 사람들 많아. 마누라 자는 동안에 나오는 놈들도 많고. 자, 여기까지가 사람이 살아가는 내용에 대해서, ‘연기자의 일주일’이야(웃음).


그건 애드리브가 아니야, 카덴차와 같은 거지
카덴차(cadenza)는 악곡이나 악장의 종료 직전에 삽입된다. 독주자는 기교를 살린 자유로운 연주로 곡을 마무리한다. 작곡가는 연주자를 위해 악보를 비워두기도 한다. 원곡의 주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유려한 카덴차는 임현식의 연기와 닮은 구석이 있다. 자, 다음 강의는 임현식의 연기론이다.

정기자 이미지가 굳어 있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런 생각이 있지. 비슷한 캐릭터의 연기를 하게 되면 후회도 있고.

정기자 연기를 할 때는 어떠세요? 기사 쓸 때도 한 번 썼던 문장 또 쓰면 질리거든요.
나는 대본대로 연기할 때, ‘이래서는 안 되는데’ 생각해요. 내가 뭔가 영감을,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만 연기 해버리면 찜찜해. 연기는 사람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어. 미국 영화에서도 흑인들의 현란한 애드리브는 말도 못하지. 미국 사람들은 엄청난 잔재미를 가지고 그걸 보잖아.

정기자
연구도 많이 하시죠?
연구를 해야지. 요즘은 템포가 엄청 빨라졌어요. 숨 쉴 여유도 없이 몰아치는 것이 미국 영화의 요즘 스타일이야. 요즘은 카메라도 어깨에 메고 찍지. 배우도 그냥 움직이기만 하는 게 아니야. 카메라, 조명, 마이크 기사들 고려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카메라의 움직임과 연기자의 움직임이 잘 맞아 떨어져야 돼.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장기자 선생님을 ‘애드리브의 달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비결을 좀 알려주세요.
내가 이도령 같은 역할만 했으면 지금 장사나 하고 있어야지. 그런 사람 누가 쓰겠어. 나는 ‘방자과’로 빨리 선회를 했지. 공부를 하고 연구도 했어요. 70년도, 부안에 있는 예악원에서 향가라든가, 심청전, 춘향가 같은 작품들의 가사를 베꼈어요. 우리나라 말이 가득 들어 있고. 얼마나 해학적으로 재미가 있는데. 그런 데서 잠재력을 많이 키웠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나는 그런 해학적인 분위기에서 유머를 느끼고, 순발력을 키워냈지. 그랬는데도 이병훈이나 김종학이 같은 나름대로 잘나가는 감독들이 OK 해주지 않는 건 또 썰렁해. 그러면 쉼 없이 금방 스타일을 바꿔 가면서 기어이 내 것을 관철하도록 만드는 거야.

정기자 배우 이희도씨가 꼽은 임현식 선생님 최고의 애드리브는, ‘허준’에서 침 놓는 장면이었어요.
“앗. 아이구 이거 뼈에 닿았구만. 미안허네. 다시 하겠네”하니까 침 맞던 사람이 그냥 도망가버렸지(웃음). 대본에 없는 걸 굳이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일단 감독 앞에서 리허설을 하는 거지. 재밌어 죽을라 그러면, 그럼 그대로 하는 거야. 최완규 작가는 내 연기에서 다음주 대본의 영감을 받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나오는 장면은 대본을 한없이 쓰고 싶고. 언제나 인상 쓰고 있던 얼굴이 아주 부드러워지고. 그런 말을 해줘서 내가 아주 고맙게 생각해(웃음). 감독, 작가, 나를 상대하는 연기자. 이런 사람들의 어울림이 잘 맞아 떨어지면 아주 성공적이지. 나는 대체로 열 개 중에 일곱 개 정도는 성공을 해요. 내 것을 주입시키는 쪽으로(웃음).

정기자 결국 다 맘대로 하셨다는 거네요. 스스로 하실 때도 좀 웃기시죠?
말도 못하지, 우스워서. 그럼 또 “`괜한 거 해가지고 늦게 끝나게 만들고 말이야. 웃게 만들고” 투덜대고 그러지.

정기자
치밀하게 계산된 애드리브를 할 때, 영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요?
역시 (‘한지붕 세가족’에서) 6년 8개월 동안 같이 부부로 일했던 박원숙씨. 박원숙씨는 내가 뭔가 준비를 해오지 않으면 싫어하는 정도라니까. “아이, 재밌는 거 좀 생각해봐”그래(웃음). 내가 그런 스타일로 40년 연기 생활 중에 30년 정도를 해왔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이 임현식 저 사람은 으레 그럴 줄 알고 대비를 하지. 설령 마음이 안 맞더라도 소화하려고 애를 써줘요.

장기자 달인이라는 칭호를 매스컴에서 달아준 게 얼마 안 됐잖아요?
달인은 뭔가에 숙달된, 예를 들어서 칼을 잘 만든다거나 잘 제작하는 사람이 달인이고. 우리는 음악적으로 얘기하면 연주자라고 할 수 있지. 아버지 역할에 캐스팅 됐다면 그 진부함을 벗어나야 하거든. 매일 하던 대로 장면이 처리되면 얼마나 무의미해. 배우는 매일 새로워야 하고 감각은 전달이 돼야지. 모든 협주곡에는 카덴차가 들어 있어요. 오선지 약 열 세 마디 정도가 비어 있어요. 주자로 하여금 작곡자가 “내가 작곡해 놓은 것을 네가 현란하게 변형된 연주를 해라`” 그런 의미거든. 지휘자, 연주자 다 스톱이야. 묘한 변주로 아주 테크니컬하게 연주를 한다고. 애드리브는, 말하자면 협주곡의 카덴차라고 할 수 있어요. 연주자가 카덴차를 준비하는 심정으로 우리는 연기 준비를 하니까.

정기자 애드리브라는 말은 좀 가볍게 들리죠.
애드리브의 정확한 뜻은 한 호흡이라고 봐야 돼. 어떻게 보면 입을 빌린다는 뜻 아니겠어? 입술에서 나오는 대로라는 뜻이지. 연극 무대라면, 등장인물이 나올 타이밍에 빨리 안 나오는 거야, 그때 무대 분위기가 떨어지지 않고 효과가 지속되도록 자연스럽게 끌어가기 위해서 뭔가 연결된 얘기인 양 살짝 하는 것. 한 20초 늦었다, 돌발 상황에서 공간을 분위기에 맞게 잘 때웠다. 그게 애드리브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그것을 현란하게 잘하는 것은 다 준비의 결과라고. 카덴차라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지.


연기한다고 다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애드리브는 ‘즉흥연기’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임현식은 치밀하다. 대본에 메모를 할 때는 남들이 못 알아보는 글씨로 쓴다.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다.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까” 그게 이유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레미제라블(장발장)’은 1천2백 페이지짜리 완역본으로 읽어도 감칠맛 나는 재미가 있었다.

장기자 눈에 들어오는 후배들은 좀 있으세요?
가끔 눈에 띄더라고. 근데 성에 안 차. 더 센스 있게 했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내 것이 성에 차느냐? 나는 생각했던 즉흥연기를 스태프나 연기자들한테 한번 살짝 흘려 봐요. 반응이 썰렁하면 안 해. 그리고 얼른 다른 것을 최대한 생각하려고 하지. 역시 제일 잘 떠오를 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웃음), 곧 촬영에 들어갈 때, 그때 뭔가 반짝 영감이 생긴단 말이야.

장기자 지상렬씨는 어떠세요?
난 지상렬이를 아주 현란한 주자로 봐요. 그러나 더 많이 해야지. 드라마 쪽에서는 이번에도 아주 헤맸어, 그런데 연기를 사극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거든. 걔는 ‘대장금’ 때 바로 들어와 가지고 나랑 농담도 잘하고 했는데, 막상 연기가 안 되는 거야(웃음). 카메라 워킹에 신경 쓰랴, 대사에 신경 쓰랴, 어깨에 힘이 막 들어가는 거야. 지 좋은 목소리 두고 막 쥐어짜고 그래서 “`사극은 그렇게 목소리 쥐어짜는 게 아니다” 그랬지. 이번에 좀 나아졌나 생각했는데, 카메라 앞에 서면 또 그 모양 되더라고. 하여튼 열심히 해요. 배우는 열심히 해야 해. 그래야 다음에 또 캐스팅이 될 수 있지. 어설프긴 해도 그래야 그게 또 고쳐질 게 아닌가. 하는 것도 그 모양인 데다가 열심히 하는 모습도 안 보이면 다음에 캐스팅이 안 되지. 기회는 거북이처럼 왔다가 토끼처럼 사라지거든.

장기자 요새 “임현식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고 얘기하는 후배 연기자들이 많던데, 기분이 어떠세요?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카덴차를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배우 임현식

그런 얘기 들으면 기분이 좋지. “후배들한테 내가 인정을 받고 있구나”하는 마음. 그런데 걔가 누군지 굳이 내가 찾아보고 싶지는 않아. 허허. 엇, 열두 시 넘었네. 이제 끝났지? 나는 연기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얘기 해보긴 처음이네. 집대성을 한 것 같은데(웃음).

장기자 대본에 애드리브에 대한 메모도 하세요?
메모를 하긴 하는데, 남이 못 알아보게 해요. 이게 들켜버리면 안 되니까(웃음). 나는 재미를 주면서 먹고 사는 프로 연기자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항상 신경 써야 돼. 그런 것이 돌발적인 것처럼 돼야 힘이 나지. 이미 노출된 상태에서 다시 하게 되면 재미가 없거든. 진짜 재미있는 농담도 한번 재미있게 들었을 때와 두 번 들었을 때는 90%의 반감이 있어.

정기자 치밀하시다. 카메라가 돌아가긴 하지만 연극무대처럼 하시는 거네요. 한 번 한 걸 다시 하는 일도 없고, 그때 그때 분위기에 맞춰서 가고.
그렇지, 하지만 그 작가한테 미움을 받으면 안 되잖아(웃음). “나는 심혈을 기울여서 밤새 담배 피우면서 썼는데 저놈의 연기자가 아무렇게나 해가지고 내 작품을 망쳐?`” 이렇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절대 그 작품에 손상이 가면 안 돼.

정기자 작가 분들이 임현식 선생님의 출연 분량이라면 카덴차를 남겨 놓을 수도.
작가의 자존심은 또 그게 아니지. “나는 임현식을 위해서 한 장면을 비워둔다?” 이런 말은 있을 수도 없지. 우선은 한 글자도 안 틀리게 하는 게 기본이야. ‘강적들’하고 있는 우리 채림이를 보면 완벽하게 대사를 잘해. 템포도 빠르고 성격 표현도 잘하고. 깜짝 놀랐어. 그런데 걔는 나의 애드리브에 대해서 기다리는 경향이 있더만. 허허허허. “야, 나는 넉 줄이면 넉 줄 안에 다 들어가니까 너는 그거 기다리지 마”그랬지. 어제 같은 경우도 마지막에 웃어 버려가지고 결국은 통과가 안 됐는데. 배우는 그런 것에 능숙해야지. 많이 받아 들여야 해, 배우는.

정기자 ‘장발장’말씀을 많이 하셨죠? ‘레미제라블’의 고제트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으시다고요.
난 ‘장발장’을 어렸을 때 문고로 읽고 참 재미있었어. 자비에르 형사니, 고제트 아버지. 끝까지 고제트를 빌미로 장발장을 쫓아다니면서 뭔가 뜯어내면서 온갖 비겁한 짓은 다 하잖아. 근데 그런 비열한 역할을 잘해내면 나는 시청자 여러분한테 엄청난 귀여움을 받아요. 나를 밉게 보는 사람이 없어. 작가들이 “저 사람은 내가 암만 악역을 써줘도 결국은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고 그래. 장발장의 심정 그 자체는 편안하게 가는 캐릭터예요. 자비에르 경관이며 주변의 인물들이 그 사람을 만들어 주는 거지. ‘레미제라블’만 해도 내가 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야. 자신이 있어. 1인 10역 하겠더라고. 장발장부터 시작해서 말이지.


세상에 외롭고 적적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소름끼치는 악역을 연기해도 귀여움을 받는다. 아내와 갑작스럽게 사별하고, 딸들이 하나둘씩 시집을 갈 때 사람들은 이 귀여운 배우가 적적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임현식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임현식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영화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이름은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다.

장기자 세 딸을 다 시집 보낸다고 하니까 적적하진 않으실까 많이들 걱정하시겠어요.
물론 적적하겠죠.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하고 문 열어주는 애도 없고. 그런 생각하면 끔찍허지. 하지만 그걸 “아, 난 적적해” 그러면서 소주를 마신다든가 하는 그런 생활은 안 해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갑자기 우리 마누라가 죽었을 때도 우리 큰딸 시집 갔을 때도, 나 같은 낙천주의한테 그런 적적할 일이 많았는데, 나는 이성으로 다스렸어. 집에서 혼자 술 먹지 않았어요. 적적하다고 나 혼자 술병을 딱 잡는다면 그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고. 밖에서 어울려서 마시고, 작품을 해서 연기 생활을 풍족하게 했지. 주식 같은 거 몇 푼 사서 두들겨보고. 영감이 떨어져선 안 되니까 계속 활용하고 발달할 수 있도록 신경 쓰면서 살아요. 내 연기가 그런 것으로 지장을 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지. 잘 극복해왔다고 생각해.

장기자 지금 누가 찾아왔어요, 누구라면 진짜 반갑고 행복하시겠어요.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는 나하고 정답게 한잔 할 수 있는, 내가 그리운 사람. “오늘 나 널럴해서 왔어”하면 당장 손잡고 나가서 한잔 하면서 얘기 하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역시… 내가 유인촌씨를 언제 보고 안 봤나? 장관 돼가지고. 그럼 유인촌이는 포기하고(웃음). 역시 연기 잘하고 잘 지내는 놈들이지. 감독들도 마찬가지고. 좋은 사람들 있으면 얼마든지 좋지.

정기자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해주세요.
나는 이제부터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해. 영감을 좇아가면서 연기 생활을 해야죠. 우리 이순재 선배님처럼 하는 것을 포인트로 맞춰 놨고, 더 하고 싶지 뭐. ‘`노인과 바다’했던 좋은 배우, 이름 잊어버렸다, 좋은 사람 있는데. 나이 칠십 몇에 노인과 바다로 아카데미 탄 사람 있어… 이따가 전화해서 물어봐(웃음). 그렇게 연기 생활 차분히 하고 싶고.

세상에 외롭고 적적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인간의 가장 기본은 외로움이지. 그것을 기본으로 사람도 발전하고 자기 스스로를 지켜 나가는 것이 도움이 돼요. 자기 인생을 잘 활용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면서 잘사시고, 또 내가 텔레비전 나오는 거 좀 보시고. 저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떻게 변해가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봐주시고. 참 좋은 청년 시절. 30대 말까지는 청년이라고 하고 싶고, 40대는 그야말로 활약의 시기고, 50대는 수확을 할 수 있는 시기죠.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 식으로 그런 10년을 살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지. 하지만 이렇게 얘기해도 2, 3일 지나면 그냥 자기 살던 대로 산다고(웃음). 내가 30~40대에 그렇게 살았던 게 아까워 지금 생각해보면.

에필로그

거실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검을 붓글씨로 시 한 구절이 적혀 있다. 한옥집을 완성하던 날,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기둥에 임현식이 직접 썼다. 글씨는 꾸밈이 없고 소탈하다. 점점 단순해지는 피카소의 후기 데생같은 천진한 구석이 있다.

장기자 이 집은 누가 지으신 건가요?
내가 이걸 1999년에 지었으니까 벌써 9년 됐네. 남원에 아주 유수한 한옥집 짓는 어른이 있었어. 딱 칠십이셨는데. 그 당시 자기는 은퇴한 몸이라고 그러더라고. 근데 또 ‘순돌이 아빠’가 지어달라는데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고 그래서 아주 고맙게 빨리 집을 지었어.

정기자 위에 글귀는, 직접 쓰신 거예요? 글씨도?
지붕을 올리면서 뭔가 한마디 쓰라고 그래서 내가 두보 시 중에 이것저것 따서 저렇게 썼지. 개화숙주출월내공(開花宿酒出月來公). 꽃 피고 술이 익고 달이 뜨니 친구가 오네. 허허허허. 먹고 놀자고 이제 그냥.

정기자 한량의 시죠, 저건.
그렇지 한량의 시지. 내가 9년 전만 하더라도 저런 심정으로 살았어. 이제 좀 귀찮아요. 주인으로서 이것도 내오고 저것도 내오고. 은근히 귀찮지, 한두 번도 아니고(웃음). 인제 누가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고. 내가 귀찮아지지. 내가 움직여야 하니까.

정기자 글씨는 되게 임현식 선생님 같아요.
글씨가 좀,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붓이 안 좋아서 그랬어. 허허허허. 음`…


전파는 스쳐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40년째 사랑받는 중견배우의 일상은 자유롭다. 산책 나온 가족은 개 ‘장금이’를 풀어놓고 마당을 거니는 임현식을 보고 다시 바쁘게 차로 돌아갔다. “사인 좀 해주세요” 수첩과 펜을 들고 수줍게 말했다. “엇흠… 이 꼬마 이름이 뭐죠?”이런 손님들이 종종 찾아온다. 알고 오는 경우도, 모르고 들르는 때도 있다. 신이 난 개들은 어디선가 주워온 뼈를 물고 뛰어다녔다. 임현식씨는 장금이 입에서 뼈다귀를 빼앗아 멀리 던졌다. 오늘은 반드시 쟁기질을 해야 하는데.

기획 / 장회정·정우성 기자 글 / 정우성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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