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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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강산에는 무예가다. 현란한 합기도보다는 단정하고 심플하지만 날카로운 검도에 가깝다. 기타와 하모니카, 목소리만 있어도 무대는 꽉 찬다. 에두를 줄 모르는 직설화법의 감동은 경쾌하다. 이제야 말이지만, 지금의 강산에 옆에는 항상 이 사람이 있었다.


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공연 재밌게 보시고, 모두 쾌변하세요
지난 4월 13일 홍대 앞의 라이브홀 상상마당은 들떠 있었다. 엄마와 이모 손을 나란히 잡은 다섯 살배기 남자아이도, 50대 아저씨도, 젊은 커플도, 중년 부부도 있었다. 6년 만에 새 앨범 「물수건`」을 발표한 강산에(45)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다. 강산에는 4월 7일부터 20일까지 총 10회 공연을 했다. 무대에 올라 첫 곡 ‘아침의 사과’를 부른 강산에는 간단하게 앨범을 소개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 곡은 ‘아침의 사과’였습니다. 1번 트랙에 있는 노래죠. 앨범 마지막 곡은 ‘사막에서 똥’입니다. 그러니까 아침에 사과 하나 먹고, 저녁에 사막에서 똥 한 번 싸고. 그렇게 끝나는 앨범입니다. 여러분 공연 재밌게 보시고, 모두 쾌변하십시오.”

음악에도, 말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눌변이지만 꼭 필요한 말만 한다. 모두 쾌변하시라는 말은 가볍게 나풀거렸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진실하다. 2부가 시작할 땐 ‘커다란 노란 바나나가 먹고 싶어’ 노래하면서 밴드 멤버들이 등장해 관객에게 바나나를 돌린다. ‘이렇게 맛있는 바나나, 당신들과 나누고 싶다’는 거다. 이런 식이다. 다섯 살배기 꼬마부터 중년 부부까지를 아우르는 강산에의 에너지는 솔직하고 진실한 데서 온다.

새 앨범의 강산에는 한결 편안해졌다. 가사는 삐딱하지 않다. “무릎을 베고 눕게 하고서/시원하게도 귀도 파주는/엉덩이가 쫌 큰 여자 손은 약간 작은 내 여자 (중략) 배가 조금 고프다거나 잠이 올 때면 쉽게/짜증을 내는 내 귀여운 여자가 무서워”(2번 트랙, ‘내 여자’)

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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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에와 결혼한 여자, 다카하시 미에코씨(43) 얘기다. 강산에 앨범에는 ‘나비’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다. ‘낮잠’ ‘답’ ‘나의 기쁨’ ‘눈물 핑’을 작사 했다. 재킷 디자인도 미에코씨 작품이다. 아내의 참여가 처음은 아니다. 강산에의 대표곡이자 국민 애창곡 ‘넌 할 수 있어’의 작사가도 나비, 미에코씨다.

“빛이 그림자를 낳고/그림자가 시원하다를 낳고/시원하다가 낳은 기분 좋다가 꾸벅꾸벅을 낳고”(3번 트랙, ‘낮잠’)
빛, 그림자, 시원하다, 기분 좋다, 꾸벅꾸벅 같은 우리말이 의외의 장소에 배치됐다. 부사가 목적어 자리에 앉았고, 주어가 된 서술어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객관적이고 참신한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말도, 미에코씨 감각이다.

“가사는 예전부터 했지만 디자인은 지금까지 제 의견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 새 회사로 오고부터, 내 주장을 밀어주시는 입장이니까. 이렇게 하라고 해도 잘 안 할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웃음), 예술적인 것은 하게끔 내버려두고 그래서 직접 참여하기 시작한 거죠.”(강산에)

강산에가 스물넷일 때부터 함께했으니까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젊어 보이는 외모야 메이크업 때문이라고 심술궂게 넘긴다 치고, 두 사람의 토닥거리는 대화만은 아직 연애가 한창인 커플 같다. 같이 있는 곳은 어디나 낙원이다.
강산에가 평범한 모범생 같은 남자는 아니니까, ‘강산에 같은 남자랑 같이 사는 건 어떨까’ 궁금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에코씨는 대중이 강산에를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모른다기보단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떤 이미진지 잘 모르죠 뭐, 잘 몰라요. 그냥 보시는 대로일 걸요? 큰 차이가 없어요. 나도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니까요.”(미에코)


진짜 ‘땅’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게 미에코의 힘이죠
광화문 네거리를 걸어도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일 때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 사람인데도 여기가 서울인지, 런던인지, 북경인지 모른다. 현실감각도 없고, 주변 환경엔 도무지 몰입할 수가 없다. 머릿 속에서는 온갖 이상(理想)들이 날뛰고 충돌한다. 발은 땅을 딛고 서도, 관념은 부유한다. 몇 년 전의 강산에 얘기다. 미에코씨는 이상주의자 강산에를 ‘땅’으로 끌어내린다. 긍정적 의미의 현실감을 부여한다.

“저는, 그때는 그런 걸 즐겼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미에코가 엉뚱하고 재밌어 했으니까, 저는 계속 그렇게 갔죠(웃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지난 1987년이다. 미에코씨는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장구를 배웠다. 일본에서는 드럼을 좀 쳤다. 강산에는 백수였다.

“난 하나는 못하는 것 같아요. 관심이 여기저기 있어서. 사진 찍는 건 좋아하는데 어렵잖아요. 셔터 속도 그런 얘기는 듣기 싫어요. 우연히라도 잘 찍히면 돼요. 드럼도 맛만 봤어요. 장구도, 디자인도 맛만 봤어요. 맛보기 인생이 좋아요(웃음).”(미에코)

“처음 만난 건 내가 스물네 살, 이 친구가 스물두 살. 나는 그냥 순수 열혈 청년이었죠. 백수,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애들 있죠? ‘뭐 해야 하지?’ 고민하고. 지금의 풍토는 아르바이트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여건도 되고 그런데 그 당시에는 백수가 많았거든요. 학생 아니면 백수였죠.”(강산에)

첫 만남은 1대 품바로 유명한 배우 정규수씨의 생일파티였다. 그때의 강산에는 말이 없었고, 서로 관심도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독특한 뉘앙스가 있는 사람이라는 게 첫인상이었다. 그 이상은 아니었지만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미에코씨는 강산에한테는 없는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괄호 안에 있는 말들은 미에코씨의 추임새다)
“내가 알고 있던 여성상이 아니었어요. 전혀 여성스럽지 않고. 그때 내가 재밌었던 게, 청바지를 입었는데 그걸 걷어가지고, 핫바지처럼 달랑달랑하게(어, 기억 잘하네?) 너무 편안하게 (그 청바지가 찢어져 있었죠) 입은 모습이 신선했다고 해야 하나? 난 내성적이면서도 무거운 사람이었는데 이 친구가 헤헤거리고, 딸랑딸랑하는 모습을 보니까 그게 귀엽더라고요(웃음).”

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강산에는 백수였지만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생각했다. 어디 있든지 뭘 하든지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주변 상황은 눈에도, 귀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현실성은 좀 없었지만, (현실성은 좀 없는 게 아니라 굉장히 없었지) 그렇죠. (지금도 별로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이 땅으로 갔지.”

강산에 내면의 관념이나 사고들이 스스로를 자각하면서 깨져나가던 시기였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렵게 들리지만, 그냥 ‘사춘기’라고 하면 적당할지 모른다. (‘나는 사춘기’는 1994년 강산에 2집의 앨범 타이틀이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 다시 진짜 땅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게 이 친구의 힘이었죠.”(강산에)
“저만의 힘이 아니고, 저도 포함해서, 많아요. 도와준 사람도, 친구도 많고(웃음).”(미에코)
이 귀여운 부부의 진면목은 아직 쓰지 않았다. 지난 1999년, 강산에가 사막으로 떠났을 때가 진짜다. 강산에도, 미에코씨도 답을 찾았다.

산에를 가장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1999년, 강산에는 사막으로 가출을 감행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수록된 4집 앨범 ‘연어’가 발매된 후다. 강산에의 마음 속에는 풀리지 않는 답답한 문제들이 있었고, 그건 꼭 알아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것이었다.

“사회라는 게 보시다시피, 말 그대로 우리가 이상향을 살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꿈을 키우고, 이상에 대한 시를 쓰고 노래를 하는 거죠. 나는 그런 이상향이란 관념, 어떤 환경과 세계가 찾을 수 있는 것인 줄 알았어요. 쉽게 얘기하면 평화, 사랑, 자유 그런 것들. 그런 걸 찾잖아요. 그게 답이, 딱 방정식처럼 있는 건 줄 알았죠.”
가수 활동은 그냥 접었다. 혼자서 2년을 예정하고 떠났다. 아내에게는 ‘지금까지 나를 돌봐줬으니까 너도 자신한테 투자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돌아왔다.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생고생’을 했고, ‘답’을 찾아 돌아왔다. 자, 그럼, 그때 아내 미에코씨의 마음은?(괄호 안은 미에코씨의 말이다)

“짐 싸주더라고요(웃음). (궁금은 했는데, 걱정은 없었어요) 죄책감이나 미안함도 있었지만, 그때의 어지러움, 답답함을 알아봐야겠다는, 오직 그것 때문에 갔죠”.(왜 집을 나갔는지, 본인이 알아야 말이죠. 본인도 모를 텐데).
강산에는 진지했다. 환경을 바꾸고 심경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뭘 바라보고 뭘 찾고 있는 건지를 스스로 관찰하고 싶었다. 자연하고만 마주한 곳에서 혼자 있었다. 그날은 오후였을까, 더웠을까. 낮부터 바에 앉아서 생수를 마시고 있었을까.

“어느 시점에 딱. 에? 아! 내가 그 속에 있었는데. 내가 찾던 그 답이 알고 보니 현재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사물을 보는 관점도, 태도도 그렇고 자기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도 그렇고. 얼마든지 현재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인데. 그게 다른 곳에 있는 줄 알았던 거예요. 그때 떠오른 얼굴이 바로 미에코였죠.”

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행복을 노래하는 부부의 자유…강산에·다카하시 미에코

1년의 방황 끝에 찾은 답은 이미 일상에 있었다. 그리고 달처럼 떠오른 아내의 얼굴,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 자, 그럼 강산에의 이 모든 방황을 미에코씨는 알고 있었을까?

“모르죠. 그때 나는 내 일에 바빴으니까요. 그러니까 산에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하긴, 안 그러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나는 우리가 같은 세계에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따로더라고. 산에 세계 있고, 내 세계 있고. 따로. 같은 세계 아니라고 하니까, 쇼크가 있었지. 참 웃기지만 내가 산에를 첫 번째로 사랑하는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나는 나를 첫 번째로 사랑하더라고요. 그걸 알았어요.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면 다른 사람도 사랑 못하더라고요. 평소에는 그런 생각 별로 안 하잖아요. 느끼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그 시간이 좋았어요, 지금 보니까(웃음).”(미에코)

“내가 찾던 것들이,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에 있는 줄 알고. 그래서 저곳에 가봤더니만 그곳이 이곳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이 친구 얼굴이었어요. 내가 항상 있던 곳에 묵묵하게 있었으니까. 그때는 몇 년 동안 나를 누르고 있던 것들이 휘휘휘, 그렇게 사람이 가벼워지더라고요.”(강산에)

8집 ‘물수건’의 노래들이 일상적이고 가벼워진 이유다. 강산에를 누르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니, 그게 노래에 담기는 건 당연하다. 3분의 1은 아내 미에코의 정서다. 부부가 함께 만든 앨범이다.


둘만의 낙원에서 오후의 홍차
“밥 잘 먹고, 베란다에서 티타임. 배부르고 날씨 좋은 한가한 오후에 이렇게 차나 커피 마시면서 다과 놓고 최고죠. 재작년에 하와이 갔을 때도 좋았지. 거기는 매일 아침에 도시락 챙겨서 피크닉 가는 게 일이니까. 거기 있는 사람들 잘살더구만. 우리는 일부러 막 시간 투자해서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휴양지 가야 하는데 거기는 그냥 부웅 차 끌고. 애들은 놀게 하고, 부모들은 뭐 굽고, 아버지는 레게 틀어놓고 맥주 마시면서, 우리 보면서 ‘헤이’ 뭐 그러고.”(강산에)

“우리가 갔던 데가 휴양지가 아니야. 그냥 동네 해변(웃음). 보름 동안 매일 소풍 갔어요. 똑같아요. 우리가 베란다를 좋아하는 게. 거기가 베란다든 사막이든 해변이든 별 차이 없는 거죠.”(미에코)

‘여기가 낙원이구나’ 생각할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이렇게 길게 대답했다. 이 귀여운 예술가 부부는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도 해변에 앉아도 배부르고 날씨 좋으면 그만이라는 듯 행복하다. 지금도, 미에코씨는 ‘산에씨’의 눈을 보고 얘기한다. 기린 같다고.

“그때, 처음 만났을 때도 눈이 정말 맑았어요. 지금은 익숙해졌고. 그래도 눈 얘기는 많이 했던 것 같아. 기린 같다고 할까, 동물들 눈 비교하면서. 근데 나는 뭐, 좋은 의미에서 말해준다고 생각하지만 다들 동물들이 연약한 애들이잖아요. 멍하고 다니는 애들. 항상 경계해야 하고.”(미에코)

“이 친구요? 다람쥐과나 토끼 같아. 왔다 갔다 하는 애들이야 다(웃음).”(강산에)
토끼나 기린이나, 둘 다 예민한 채식동물이긴 마찬가지다. 강산에, 미에코 부부는 숲 속을 산책하면서, 배고플 때 뜯어 먹을 나무나 풀만 있으면 행복한 동물들처럼 평화롭게 산다. 그리고 오늘(4월 17일)도 강산에는 공연하러 간다. “집에 있으면 어차피 궁금할 텐데, 궁금해하느니 가서 보는 게 낫죠.” 물론 미에코씨도 같이 간다.



에필로그
‘색깔별로 한눈에 척 알아볼 수 있고/
이래도 좋고 또 저래도 괜찮은/
가나다라 차례로 잘 정리되어 있고/
나중에 생각해도 기분 좋은/
그런 여러 가지 답들이 내 안에 가득 차 넘치면/
너무 좋겠네 좋겠네’
(8집 ‘물수건’ 타이틀곡 ‘답’)



‘사막으로의 가출’ 이후 7집 ‘강영걸’의 강산에는 이미 자신을 찾은 후였다. 그리고 이번 앨범은 이 행복한 부부가 함께 노는 일상으로의 소박한 초대장이다. 강산에가 추구한 삶과 이상(理想)에 대한 질문들의 명확한 답이다. ‘답’의 작사가는 ‘나비’다. 강산에가 찾은 답을, 아내 미에코가 썼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민영주 장소 협찬 / 홍대 미세스마이(02-324-7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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