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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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널 사랑하겠어’라고 노래하던 그 사람도, ‘부푼 세상’을 꿈꾸며 ‘골목길을 함께 뛰놀던’ 친구도 내 곁에 데려다놓을 수 없다. 하지만 노래는 각자의 기억 속에서 시간의 지도를 새로 그릴 수 있다. 잃었던 감정과 생각들을 끄집어내 지금 이 자리에 펼쳐 보일 수 있다. 동물원의 노래는 시간을 되살리고 싶을 때 누르는 가장 쉬운 버튼이다.


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가슴을 덥히는 20년의 감성
그룹 ‘동물원’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언젠가 내가 두고 온 꿈들이 자라고 있는 곳… 동물원’이라는 글귀가 있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부터 혜화동을 거닐며, 너무 쉽게 변해가는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때. 순수한 가슴을 데워주던 일곱 명의 대학생은 이제 세 명의 ‘아저씨’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았고 ‘벌써’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여전히 소박한 감성으로 우리가 ‘두고 온 꿈’들을 키워가고 있다.

“10년이 됐다, 20년이 됐다는 건 사실 우리는 잘 못 느껴요. 20년이 됐다고 해서 ‘정말 자랑스럽다, 기념하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유준열)

이들은 요즘 콘서트 준비에 한창이다. 지난 1988년 ‘거리에서’가 담긴 1집을 발표한 지 20년을 기념해 오는 5월 30일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에서 ‘동물원 스토리-널 사랑하겠어’라는 이름의 공연을 열기로 했다.

“우리가 20년 동안 험한 음악계에서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 정도는 전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기념 콘서트를 준비하게 됐어요. 그런 마음을 전하기에 ‘널 사랑하겠어’만큼 좋은 노래가 없을 것 같아 이 노래를 공연 제목으로 정했구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사랑하겠어’라는 동물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박기영)

지난해 크리스마스 공연 이후 6개월 만의 단독 공연이다. 평소에는 ‘내가 가수 맞나’ 할 정도로 덤덤하게 살지만 막상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금방 감을 잡는다고 한다.

“인기를 얻은 곡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노래들까지 엮어서 준비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동물원을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한 만큼 20년을 죽 훑어오면서 돌이켜보려고 해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고 김광석씨의 보컬 영상에 저희가 라이브 연주를 하면서 함께 노래를 하는 자리도 만들어보려고 하구요.” (유준열)

이제는 아픈 이름으로 남았지만 원년 멤버였던 고 김광석은 동물원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존재다. 또 무수한 히트곡을 만들었던 김창기 또한 지금은 잠시 동물원 출근을 쉬고 있지만 멤버들이 ‘제대로 대접해주고 싶은’ 소중한 팀원이다.

“친구들 입장에서는 동물원이란 그룹 자체가 비어 있는 자리가 아닌가 생각해요.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자리를 채우는 거죠. 사실 저도 4집 활동에는 빠졌었고 (박)기영이도 3집은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런 경우처럼 다른 사람들은 빠져 있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뿐이죠. 만약 광석이가 살아 있었다면 혼자서 활동도 했을 거고 다시 동물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공연도 했을 것 같아요. 다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 뿐이죠. (김)창기는 ‘`한번씩 같이 하자’고 하는 건 예우가 아닌 것 같아서, 하하. 10집 앨범을 같이 만들고 공연까지 연결해서 하려고 했는데 음반이 늦어지면서 좀 애매해졌네요.” (유준열)

동물원의 예전 모습. 왼쪽부터 배영길, 박기영, 유준열

동물원의 예전 모습. 왼쪽부터 배영길, 박기영, 유준열

동물원이라는 큰 울타리를 이야기하다 보니 주제는 자연스레 10집 앨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9집 「아홉 번째 발자국」을 낸 것이 지난 2003년이었으니 새 앨범에 대한 목마름이 깊을 만도 했다. 올해는 10집이 나온다던 소식마저 어느새 잠잠해져 팬들의 기다림도 이만저만이 아닐 터.
“느긋하게 생각해야겠어요, 10집 앨범은….”


척박한 음반 시장에서 어떻게 소통할지가 가장 큰 고민
여유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차분했다. ‘음반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조차 식상해진 지금의 음반 시장은 동물원의 앨범을 보듬을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동물원의 노래를 대중이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동물원이 말하고 싶은, 전하고 싶은 모습의 ‘동물원 앨범’이 설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저희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해요. 요즘은 디지털 싱글로 발표하는 게 대세라죠? 하지만 우리는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짜인 클래식한 형태의 앨범을 원했고, 앨범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형태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어려움이 생기네요.” (박기영)

현재 만연해 있는 척박한 제작 환경에서 동물원이 새 앨범을 내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간직해왔던 동물원의 순수를 버리고 좀 더 영악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고민하는 지점은 음악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음악을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게다가 ‘지금’의 방식으로 대중 앞에 나서봐야 이미 동물원의 해사한 모습을 사랑했고 기대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어떤 분들은 ‘자비라도 들여서 원하는 대로 앨범을 내라’고 해요. 그래요. 사실 저희가 갹출해서 앨범을 만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앨범을 만들고 안 만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앨범이라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이 앨범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구조냐는 거죠. 완결된 동물원의 앨범이라는 상품을 만들 것이냐, 나머지 트랙은 덤이고 한 곡만 살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박기영)

그런 점에서 보면 실력 있는 후배들이 동물원 노래를 즐겨 찾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딱히 누구라고 내세울 필요 없이 다들 잘 소화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

“후배들이 우리 노래를 부른 것을 들어보면 다 개성 있고 의미 있는 해석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작업이 더 많이 이뤄졌으면 해요. 팝의 경우에서도 소위 ‘스탠더드’라고 불리는 곡들은 많은 사람들이 다시 부르고, 원곡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재생산되잖아요. 이런 곡들이 더 축적되는 것은 바람직한 거 같아요.” (유준열)


삶에 매몰되지 않는 음악,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
사실 이날 동물원의 인터뷰 약속은 생각보다(?) 어렵게 잡혔다. 각자 생활을 책임지는 ‘생활인’으로 살고 있기에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악을 사랑하고 꾸준히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음악 자체를 하루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 대신 우리와 똑같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치의 노동을 하고 피로를 얻으며 살아간다. ‘음악=삶’이라는 법칙은 동물원이 출발할 때부터 성립되지 않았던 공식이다.

“저는 무언가에 제 삶이 매몰되는 게 싫었어요. 사실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만약 그 일에 제 생활 전체가 매몰된다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이 내 삶 자체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발동하더라구요.” (박기영)

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동물원의 결성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던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의 음악을 들어주다가 녹음한 테이프가 우연히 산울림의 멤버 김창완의 손에 들어가면서 정식 음반으로 제작된 것이다. 동물원에 모여 있는 다양한 성격의 동물들처럼 그렇게 각자 자신의 노래를 하겠다던 ‘동물원’ 7명은 ‘거리에서’ ‘변해가네’를 담은 앨범이 1백만 장 이상 팔리며 가수가 됐다.

“사실은 음악을 오래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대단한 곡을 내고, 음악 판을 흔들어보자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재미있게 즐기면서 오래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목표로 출발했죠. 사실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요즘에야 종종 직업이 있으면서 음악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저희가 시작할 때는 일과 음악을 병행하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각자 직장을 얻으면서 음악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도 했죠. 그런대로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었던 현실이 고마워요.” (배영길)

‘가수’가 직업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유준열은 현재 광학기기 무역업체의 직원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기영과 요즘은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배영길 또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왜 다들 그런 생각 한번씩 하잖아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걸로 인정받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그 일 자체가 짐이 되면서 싫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 저희도 그랬어요. 음악이 지긋지긋하고 재미가 없어지면 무슨 낙으로 사나, 질리지 않고 계속 꿈꿀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이게 저희 나름의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유준열)

덕분에 그들에게 여전히 음악은 즐거운, 좋아하는 대상이다. 생활의 피로를 나눠 짊어질 수 있는. 그래서 더더욱 처음의 순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아등바등 살기도 했지만 이제 우리도 불혹의 나이가 됐잖아요. 아직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했어도 사는 것에 대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것도 같아요(웃음).” (유준열)

그렇게 살아가면서 동물원의 음악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 밝은 별이 되어/어느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바람 부는 저녁에)’를 생각하던 그들도 ‘담배를 입에 물고/월급날에서 거꾸로 날짜 수를 세어본다(월급봉투)’를 읊조리고, ‘세월은 나의 꿈을 작게 하고/너를 위해 하나씩 또 덜어내고/그대로의 작은 것에 만족하며 행복이라 생각해(작아지는 꿈)’라며 뒤를 돌아보면서 살고 있다.


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수줍고 싶은 사람들이 부르는 일상의 단층! 데뷔 20주년 동물원

간결한 멜로디에 담아내는 위대한 일상
일상을 응시하는 동물원의 순수함은 듣는 이들의 손끝부터 체온을 덥힌다. 소박한 따스함은 쉽게 공감을 얻고 위안을 건넬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하지 못하다’는 비아냥을 낳기도 한다. 특히 동물원이 태어난 잔인한 1980년대의 끝자락에서는 더욱 비난받기 좋은 성향이기도 했다.

“당시 대학가 분위기를 들여다보면 소위 말하는 ‘의식’이 획일화되는 느낌도 있었어요. 의식이나 관점이 없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개인의 영역을 담는 곳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물원은 느슨한 감정들을 담는 걸로 족하지 않았을까요. 경계적인 생각들, 사적인 정서들.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는 ‘회색’이라는 비판 앞에서 열등감 같은 것도 느꼈던 것 같아요. 고민을 많이 했었고.” (유준열)

하지만 결론은 ‘동물원의 처음 이미지를 가져가자’는 것이었다. 그냥 그런 팀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같은 맥락에서 ‘너무 착해서 흐릿하다’는 평가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하지 않아 그런 거겠죠. 표현하는 데 능숙하지 않은 성격 탓이기도 하고. 우리 음악이 세련되지는 않지만 대신 따뜻하잖아요.” (배영길)

사람들은 그들이 평범한 이야기, 평범한 멜로디, 평범한 정서를 노래한다고 하지만 동물원에게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일상의 위대함을 누구보다 크게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일상만큼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죠. 일상이 다 비슷비슷할 거 같죠? 하지만 개인을 들여다보면 각자에게는 대단한 일들이고, 드라마틱해요. 결코 가볍게 생각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박기영)

그래서일까. 일상의 위대함에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은 동물원에 변함없는 애정을 보낸다. 한때 동물원처럼 학교 앞 허름한 주점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따라 하고,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던 팬들은 지금도 여전히 동물원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저희를 계속 찾아주시는 게 신기하고 고마워요. 사실 저희 별 매력 없잖아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오래 사랑받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늘 뭔가 이유를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생각해보니 어느 하나도 마음에 와 닿는 이유가 없네요. 오히려 이것저것 이유를 붙일수록 마음이 점점 비는 것 같아서 헛헛해요. 우리는 그저 노래를 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눌 뿐이에요.” (박기영)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가수는 많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는 그룹도 꽤 있다. 실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뮤지션도 넘쳐난다. 물론 동물원도 이 모든 항목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들은 수줍음을 가졌다. 동물원의 노래를 듣고, 동물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줍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진심이 찰랑거리는 마음. 수줍음이 고인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살아가면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동물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수줍을 것만 같은 세 남자.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그날의 노래는/우리 귀에 아직 아련(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하기만 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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