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게 째진 눈 때문에, 웃어도 얄미워 보였다. 손에 꼽히는 히트 작곡가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주가를 올렸다. 연예계 구설수엔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려 별명은 ‘주설수’가 됐다. 지난해 ‘학력위조 파문’은 결정타였다. 다시금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 예쁜 아내마저 없었다면 이 남자,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은 잠잠하지만, ‘학력위조 파문’이 휩쓸고 간 흉터는 깊었다. ‘비가 오면 일단 피하고 보자’고 생각했던 건 미성숙의 방증이었다. 방송에서 볼 수 없는 동안은 또 다른 성숙의 기간이기도 했지만, 대중은 아직 그를 잊지 않았다. 주영훈(39)은 ‘물 흐르는 대로’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남자가 됐다.
장기자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에 나오신 것 봤어요. 오랜만에 어떠셨어요? 그동안 예능 판도도 많이 바뀌었는데요.
작가가 섭외할 때, ‘일주일만 컴퓨터 끄고, 눈 딱 감고 하시죠’ 그랬어요. 주말에 결혼식이 있어서 일본에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미니 홈피를 보니까 악플들이 많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이젠 말을 더 조심하게 돼요. 너무 가벼워 보여도 안 되고, 깔깔대고 웃어도 안 되고, 표정이나 언행이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오락 프로그램에서 경건하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박하게 할 수도 없고. 그게 힘들었어요.
장기자 대중을 향한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으셨어요?
원래 저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어느 정도 예상도 했고요(웃음). 예전 같으면 속상하고 상처도 받았을 거예요. 요즘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태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익혔다고 할까. 한 단계 성숙한 것 같아요. 예전엔 홈페이지에 누군가 안티성 글을 남기면 지워버리곤 했는데 지금은 지우지 않아요. 어떤 분에겐 ‘죄송하다, 열심히 하겠다’는 쪽지도 보냈어요. 예전에는 비가 오면 일단 피하려고 했어요. 요즘은 그냥 다 맞으려고요.
장기자 당시 학력위조 파문의 파장이 워낙 커서, 주영훈씨의 경우는 ‘묻어가는’ 느낌도 있었던 게 사실이죠.
그건 저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조금은 수월하게 넘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제 별명이 원래 ‘주설수’예요. 하도 구설수가 많아서, 박수홍씨 미니 홈피 가면 제 일촌명이 ‘구설수의 황제’고요(웃음). 연예인 중 제가 유독 시련이 많은 편이에요. 병역 비리 조사만 서너 번 받았어요. 제가 살이 갑자기 빠졌을 때, 필로폰으로 살 뺐다는 소문도 돌았고요. 연예인 도박 사건이 났을 때 이경규씨는 “네 이름 없으니까 큰 사건 같지 않더라”고 놀리기도 하시고(웃음). ‘왜 하필 나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한 번이라도 혐의가 있었다면, 양성이 나왔다면, 구속됐겠지만 그것도 아니었잖아요.
정기자 병역 문제도 좀 시끄러웠죠.
제가 군대를 안 가서 안티가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것도 유독 저만 시끄러웠던 이유가, 심장내과에서 부르는 병 이름이 WPW증후군(심실조기흥분증후군)이에요. 정상인과 다르게 심장에 혈관 하나가 더 있는 거죠. 심한 운동을 하거나 긴장하면 그 작은 혈관으로 피가 새요. 그러면 나머지 심장이 말라서 심장 박동수가 빨라져요. 그냥 빨리 뛰는 정도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빨라요.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때 체육시간에는 항상 열외였어요. 체력장도 기본 점수고. 병역 조사가 2년 주기인데. 2년마다 기사가 나요. 사유 문구가 바뀌지도 않아요. ‘조기흥분증후군’이라는 다소 희한한(?) 이름으로 빠졌다는. 기사 읽는 20대 초반, 10대 후반의 남성들은 또 발끈하시고. 네티즌들은 “‘조루’로 군대를 뺐다, 왜 성(性)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을 군대 안 보내느냐”고 하세요. 병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았죠. 징병 검사도 다 합쳐 네 번을 받았어요. ‘이럴 바엔 아예 입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기자 학력위조 파문 직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가족이 다 미국에 살고 있어서 저도 갈까 했는데 도피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가지 않았어요. 그 무렵에 아내가 신애라씨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 성경 공부를 했거든요. 아내 촬영 있는 날이면 제가 대신 그 모임에 나갔어요. 신애라씨가 국제아동구호기구 컴패션 홍보대사잖아요. 차인표씨 권유로 컴패션 밴드에 들어가서 홍보도 하고, 공연도 했죠. 그 스케줄만 해도 방송 활동처럼 빡빡할 정도로 바빴어요.
정기자 그날 양양 바닷가에 계셨다는 제보가 있었어요(웃음).
네, 양양 바닷가에 갔었어요. 너무 부끄럽고, 사람을 마주치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고 창피해서 조용히 가 있었죠. 근처에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가 있었어요. 그날 비온 직후라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후배들하고 ‘저거나 타자’해서 올라갔는데, 제가 탔더니 놀이기구 DJ가 ‘여러분 주영훈씨가 탔어요’하면서 양양 시내가 떠나가도록 사람을 모으고 급기야 ‘사진 찍으실 분 빨리 오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창피해서 세워달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빈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이나 타고 있고 ‘쟤 진짜 생각 없다’고 하실 게 뻔하니까.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염려도 되고. 그때가 오전 10시였어요. 내리자마자 도망갔어요(웃음).
긍정적인 아내, 이윤미의 기도
어느 날 우연히 펼쳐본 아내의 수첩에는 맨 ‘남편을 위한~’으로 시작하는 글만 있었다. 소심하고 모질지 못한 남편이 힘들어 할 때 아내는 오히려 담담했다. 2년 전 결혼한 열두 살 연하의 어린 아내는 오히려 누나처럼 담대할 때가 있다. 원래 주영훈의 말에는, 한 문장 걸러 ‘고맙다’ ‘아름답다’ ‘예쁘다’는 단어가 있었다.
제 별명이 ‘예스맨’이에요. 지금도 거절을 못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눈치가 빨라서 ‘독심술가’라는 별명도 있어요. 그게 얼마나 피곤한지 몰라요. 눈치 없는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본인은 편하잖아요(웃음).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도 「NO라고 말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 「거절하는 법」 그런 거예요.
장기자 부부간에 세대 차이는 없느냐는 질문 많이 받으시죠?(네) 그것보다 우리가 궁금한 건, 윤미씨보다 손아랫동서가 나이가 많으시죠?
아, 제 동생이요. 그렇죠. 하물며 제 동생은 연상이랑 결혼했어요. 제수씨가 저보다 한 살 어리니까. 윤미랑은 열한 살 차이가 나죠.
장기자 동서지간은 어떤가요?
결혼 전에 제수씨가 아내한테 ‘윤미야’라고 불렀는데, 그게 입에 밴 거예요. 아버지가 ‘윤미씨’가 낫지 않겠느냐고 정리를 해주셨어요. 두 사람은 되게 잘 지내요. 지금 인터넷 쇼핑몰(코코넛아일랜드)도 둘이 같이 하거든요. 와이프가 긍정적이에요. 제가 다시 방송 한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제 싸이에 그런 글을 올리셨어요. “아무렇지 않게 방송에 나와서 눈물 흘리며 ‘제 와이프가 더 힘들어 했어요’ 이런 말로 동정심 유발하겠지? 너는 다 보여”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내는 힘들어 한 적 없어요. 외려 제가 소심한 사람이라 아내가 용기를 많이 줬죠. ‘나도 이 사람처럼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주변 분들은 윤미가 더 누나 같다고 해요. 어른스럽고.
장기자 아내에게 인간적으로 감동했던 순간은?
아내 덕분에 제 신앙이 더 깊어졌어요. 보통 다른 사람이 어떤 기도를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는데, 아내가 항상 ‘남편을 위한 기도’만 한대요. 대부분이 저를 위한 기도라는 걸 알았어요. 어느 날은 수첩을 봤더니 ‘남편이 잘되게 하는 기도 방법’이 적혀 있고, 주로 읽는 책도 ‘남편을 위한’이 들어가는 책을 많이 읽어요(웃음). 항상 자기 기도보다는 ‘우리 오빠 기도’를 먼저 한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감사하죠.
장기자 이윤미씨는 주영훈씨가 쉬면서 함께 활동을 쉬게 된 건가요?
다시 해야 하는데 사무실 매니저 문제도 있고 해서 여러 가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럴 일도 없고요(웃음).
장기자 결혼하면서 ‘주영훈 와이프 이윤미’가 되니까.
제가 또 하나 감사한 게 그거예요. 연애할 때부터, 본인은 ‘탤런트 안 해도 좋다, 한 남자의 아내가 더 좋다’고 했어요. 아, ‘배우자 기도’라는 게 있어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기도인데, 저는 여덟 가지를 기도했는데 아내가 그걸 다 갖고 있어요(웃음). 첫 번째가 ‘잘 웃는 여자’였어요. 윤미는 심하게 잘 웃어요. 그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리고 나보다 주변 사람을 더 잘 챙기는 사람, 남자들끼리 모임에서 잠시 아내를 두고 급하게 다른 곳에 다녀와도 그 사람들과 유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키까지 정확하게 맞았어요.
정기자 하하, 기도문에 키도 있었어요?
이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있다면 날 좋아할까 그랬죠. 또 하나는 ‘야망이 크지 않은 여자’였어요. 야망이 큰 사람은 가정이나 남편보단 일이 먼저니까. 이윤미씨 본인은 일이 주어지면 열심히 하지만 크게 고집 부리진 않아요. 쇼핑몰도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뭔가 열중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런 모습이 아름다워요. 동대문에도 직접 다니고 재봉틀 놓고 리폼도 하고. 디자인 공부도 해서 본인이 직접 옷도 만들어요. 그런 게 참 예뻐요.
장기자 이윤미씨가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있을 줄 알았어요.
사실 사극을 하고 싶어 해요. 한복 화보도 찍어봤는데, 잘 어울리고. 그런데 드라마 관계자 분들이 사극은 안 어울린다고 하신대요. 코 옆에 점 때문에요(웃음). 그 점을 빼라고들 하세요. 섹시하고 예쁘다는 사람도 많지만, 연기자 입장에서는 점 때문에 다양한 캐릭터를 못하니까 빼려고 알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점이 그냥 점이 아니라 좀 도드라진 점이라서, 수술을 해야 해요. 그럼 흉터가 생긴대요. 흉터가 생길 바에는 하지 말자고 했어요. 요즘은 코 수술 하고 싶은가 봐요. 콧등을 살짝 깎고 코끝은 올리고 싶대요(웃음). 저는 말리고. 사람이 뭔가 하나 모자라야 사람답지, 옆에서 보면 일자 코는 부자연스럽잖아요. 누가 ‘네 와이프 수술한 데 없어?’ 그러면 ‘없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게 자랑스럽기도 해요. 지금 코가 좋아요.
50대의 이성, 10대의 감성이래요
돼지고기는 못 먹어도 ‘삼겹살 먹자’면 따라간다. 김치를 구워서 밥과 반찬만 먹는다. 남 생각하느라 스트레스는 혼자 다 받고, 꾹꾹 참으면서도 거절은 못한다. 사업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건 최근에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종종 ‘작곡가 주영훈’의 재능을 잊어버리지만, 작업실 안에서 음악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정기자 사업은 어떻게 하세요? 경영을 하려면 아무래도 모진 면이 있어야죠?
요즘에 알았어요, 제 천성이 사업과 맞지 않는다는 걸요. 혼자 작업하고 음악에 몰두하는 게 좋아요. 사업하는 제 친구가 ‘사업가는 줄 돈 늦게 주고, 받을 돈 빨리 받아야 한다’고 그래요. 근데 저는 줄 돈은 그날 주고, 고지서도 하루 밀리는 꼴을 못 봐요. 받을 돈은 못 받고, 빵점이죠.
이상한 게, 저는 저랑 맞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다 저랑 맞는다고 생각해요. 어떤 형들은 자기랑 성격이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영훈이라고 하는데, 저는 안 맞으니까 너무 피곤한 거예요. 혼자 꾹꾹 삼키는 편이니까 그 스트레스가 저한테만 생기는 거죠.
정기자 식사 메뉴 정할 때도 다른 사람 취향부터 생각하는 편이군요.
저는 닭고기, 돼지고기를 못 먹어요. 근데 그렇게 말하면 ‘무슨 남자가 못 먹는 것도 많으냐’ 그렇게 볼까 봐 사람들이 삼겹살 먹으러 가자고 하면 못 먹어도 그냥 따라가요.
정기자 “전 쇠고기만 먹어요” 좀 그렇잖아요. 괜히 있어 보이고(웃음).
삼겹살 먹으러 가서 밥하고 반찬만 먹어요. 김치 구워 먹고(웃음). 저는 부탁도 선배들한테는 하겠는데 후배들한테는 못하겠어요. 결혼식 축가도 가수들하고 음반 작업 그렇게 많이 했는데 아무한테도 부탁을 안 했어요. 윤희정 선생님이 축가를 해주셨는데, 예전에 ‘니가 결혼하면 내가 꼭 노래 불러줄게’라고 약속을 하셨거든요(웃음).
정기자 아내와 종교가 없으면 참 힘든 인생을 살고 계신 거네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사셨어요? 밖에서 보는 이미지는 손에 꼽히는 히트 작곡가시고, 방송도 잘하시고 사업도 하시니까 냉철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그런 이미지가 깨질 기회가 없었네요.
엊그제 OBS(경인방송)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어요. “`유독 주영훈만 고생하는 것 같다`”고. 예능하는 사람은 배우와 달라요. 배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은 후에도 물론,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배역에 몰입하면 돼요. 하지만 예능인은 본인 얘기 하면서 웃기고, 웃어야 하니까. 엉엉 우는 모습이나 그런 건 안 보여야 할 거 같아요. 즐거움을 줘야 하니까.
정기자 내면에서 부대끼는 건 없으세요? 작곡가와 예능인 사이에서.
최화정씨는 ‘주영훈은 50대의 이성과 10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요. 이성은 발달했는데, 감성은 아홉 살에 머물러 있다고. 제가 AB형인데 내 안의 A형은 50대, B형은 아홉 살 소녀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술을 자주 안 먹지만, 평상시에는 50대 이성이 지배하다가 취하면 아홉 살 여자애가 깨어나요. 소녀 감성인 거죠. 잘 웃고 잘 울고. 게다가 조울증은 아예 만성이라고 생각해요. TV에서 누가 울면, 무조건 10초 안에 눈물이 나요. 누가 우는 것만 보면 그래요. 엘리베이터도 사람이 많으면 들어가질 못해요. 제가 가수 활동 하면서, 가수는 정말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절감했던 적이 있어요. ‘이소라의 프로포즈’ 나가서 심장이 터져 죽을 뻔했거든요.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는 무대에서 핀 조명 받고 노래하는데, 떨려서 기절할 뻔했어요. 우황청심환 세 개를 먹고 갔는데도요. 얼굴이 익숙한 동원 방청객이나 아는 스태프를 앞에 두고 하는 프로그램은 할 수 있지만 콘서트, 연극은 죽어도 못해요.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으면 말도 안 나와요.
장기자 아무래도 작업실이 가장 편안한 곳이겠어요.
그렇죠. 음악은 혼자 하는 작업이잖아요. 연기는 같이 하는 작업이지만 작곡은 혼자 하면 돼요. 사실 지금은 제 DNA 안에 자신감이 제로예요. 예능 프로는 자신감이 90%잖아요. 예능에서 자신감이 없으면 입을 꿰맨 거나 다름없어요. 요즘은 자신감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도 많이 해요.
대중적인 멜로디, 그게 그냥 좋아요.
다른 사람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픈 이 작곡가는, 노래 만들 때도 그런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흥이 날까’ ‘기분이 좋아질까’. 엄정화의 ‘포이즌’ ‘페스티벌’ 같은 노래방 애창곡은 사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혼자 앉아 우울할 때 만든 노래다.
정기자 하나의 트렌드만 각광받는 건 이상한 쏠림 현상이죠.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특이해요. ‘`미디움 템포가 된다’하니까 열 곡 중에 아홉 곡이 같은 스타일이에요. 댄스음악은 몇몇 아이돌을 제외하면 종적을 감췄죠. 제가 그 흐름을 쫓아가는 건 좀 창피하더라고요. ‘후배들이 하는 건데 먹고살려고 하는 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그런 슬럼프가 있었어요.
장기자 음악 할 때도 역시 다른 사람 생각을 하시는군요.
제 단점이 그거예요. 묵찌빠 할 때, 상대방이 ‘난 묵을 낼 거야’라고 얘기하면 ‘내가 빠를 내면 그럴 줄 알고 쟤는 찌를 내겠지?’ 혼자 막 그러다가 지는 타입이죠. 생각이 많아서 지는 타입. 머리도 복잡하고 편두통은 지병이에요.
정기자 생각이 너무 많고, 편두통은 지병이고, 조울증은 천형이고.
지금 제 질병의 약은 아내인 것 같아요(웃음).
장기자 살다 보면 정당하게 항의를 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나는 하기 싫지만 누가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
그건 해요.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건 못 봐요. 일방통행 어기고 오는 차를 보면 세워서 가르쳐주고, 차가 막히는데 비상등 켜놓고 휴대폰 통화하는 사람을 보면 이성을 잃어요(웃음). 지금까지 나 때문에 싸운 적은 없어요. 나랑 상관없지만 불의를 저지른 사람을 보면 그건 못 참겠어요. 어린 사람이 나이든 사람한테 덤빈다, 그런 거 있죠?
정기자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서, ‘주영훈씨는 영악한 작곡가’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잘되시니까. 하고 싶은 음악과 지금까지 해온 음악 사이에 괴리는 없나요?
저는 뉴에이지 음악을 좋아해서 집에 가면 피아노 연주곡만 들어요. 가사 있는 노래도 싫어요. 노래가 반주를 건드리는 게 거슬려요. 조지 윈스턴, 유키 구라모토 음악 자주 들어요. 결혼 전에 통유리 밖으로 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에 8년 동안 혼자 살았어요. 그땐 우울증이 더 심했죠.
정기자 우울증이 심할 때는 강을 보면 안 되죠.
심했어요. 항상 뉴에이지 DVD 틀어놓고 계속 피아노만 치고 혼자 술 먹고 그랬죠.
정기자 90년대라면, 주영훈표 히트곡이 제일 많을 때 아니었나요?
그렇죠. 그랬죠(웃음).
정기자 집에서는 뉴에이지 음악을 듣고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혼자 피아노를 치면서, 만든 음악들은 ‘포이즌’, ‘배반의 장미’ 그랬던 거죠? 그럼 방송과 마찬가지로, 안에서 부대끼는 게 있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은 욕구도 있을 텐데.
엄정화씨는 제가 만든 음악 다 싫어했어요(웃음). 뭔가 다른 걸 원했죠.
그렇죠. 엄정화씨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정재형씨예요. 동갑내기 세 명이, 2년 전에 더블 CD로 된 ‘셀프 콘트롤’이라는 앨범 작업을 함께했어요. 하나는 ‘셀프’ 본인이 하고 싶은 곡을 싣고, 또 하나는 회사에 의해 ‘컨트롤’ 된 음악을 담았죠. 그래서 그 앨범의 타이틀이 제 곡이었고(웃음), 셀프에는 정재형씨. 그게 딱 엄정화씨 얘기인 거죠.
정기자 엄정화씨 8집은 대중적인 반향은 없었지만 평단에서는 환영하는 앨범이었잖아요. 평단의 환영이 있어도 실패는 실패인 건가요? 일말의 위안이 안 되나요?
위안은 안 되고요(웃음). 저도 정화를 통해서 일렉트로니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저는 옷은 트렌디하게 입되, 사람은 한국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스테이크를 이렇게 먹으니까 이렇게 드세요’가 아니라. 저는 ‘거기 김치나 피클이라도 있으면 먹기 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런 차이예요. 저는 유행가를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사실은 음악인도 아니고요. 음악 시장이 이렇게 죽게 된 것 중 하나의 원인은 노래방에 가서 부를 노래가 없어져서 그래요. 저는 노래 만들 때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대중이 부르면 어떨까? 분위기 띄울 수 있을까?’ 발라드의 경우는 ‘야, 이 가사 내 얘기 같지 않니’ 대중의 그런 반응을 머리 속으로 그리면서 작업해요. 대중이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지 않은가.
장기자 조금 더 한국적이고 대중적인 것을 하고 싶은 거죠?
저보고 대중적인 멜로디 잘 쓴다고 하지만, 저는 그것밖에 못해요. 그냥 그게 좋아요.
정기자 이윤미씨는 노래방에서 주영훈씨 노래를 부르면서 컸던 세대죠. 아내가 된 후에 주영훈씨 음악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우리 사랑 이대로’ 굉장히 좋아해요. 지금도 어디 가면 자꾸 부르자고 그러는데(웃음).
장, 정기자 하하하하.
제 아내는 저보다 변죽이 더 좋아요. 사람들이 박수 치면 저는 거기서부터 심장이 막 뛰는데, 제 아낸 그런 걸 즐기는 편이에요.
대체 왜, ‘안티’가 많은 걸까
무던히도 생각했다. ‘곱게 자란 막내아들’ 이미지는 사실과 달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선해 보이는 ‘김용만, 유재석의 눈매’가 부럽기도 했다. 유난히 힘들었던 ‘사건’들이 많았던 주영훈이라서, ‘앞으로는 좋은 일로만 만나 뵙고 싶다’는 진부한 말도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내년엔 2세 계획도 있다는데.
정기자 다시 한번 묻고 싶네요, 거절도 못하고, 불의를 못 참고 사람 좋은 주영훈씨가 대체 왜 안티가 많은 걸까요?
인상도 안티가 많은 이유 중의 하나예요. 눈이 째져서(웃음). 그래서 저는 눈 처진 사람이 부러워요.
장기자 이경규씨가 김용만씨 부러워하듯이 말이죠.
그렇죠. 김용만, 유재석 다 눈이 선하게 처졌잖아요(웃음).
정기자 주는 거 없이 미운 상일까요?
그래서 ‘같은 말을 해도 얄미워 보이나 보다’ 그랬죠. 제가 목사님 아들이고 경기고등학교 나오고 이 동네(강남)에서 자랐다고 하니까, 굉장히 큰 재벌 목사님 아들인 줄 알아요(웃음). 저 미국에서 27만원 들고 한국에 와서 자수성가했거든요. 저는 ‘딴따라’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자꾸 신학대학 보내려고 하셔서 한국으로 도망 온 거예요. 악기 사고, 비행기 표 사고 수중에 남은 돈이 3백불이었어요. 그런데 공항 세관에 악기가 걸린 거예요. 전 재산이 27만원인데 세금을 78만원 내라기에 한 시간을 울면서 빌었어요. ‘제가 미국에서 음악을 하러 왔는데 돈이 27만원밖에 없다. 성공하면 이 은혜 잊지 않겠다’고 사정했더니, 안 돼 보였던지 봐주시더군요. 그때부터 2년 동안 아는 선배 집을 전전하면서 데모 테이프 들고 기획사 찾아다니고, 맨땅에 헤딩한 거죠. 사람들은 제가 오냐오냐 자라고, 과잉보호 받고, 원하는 건 엄마가 다 해주고, 그런 사람인 줄 알아요(웃음).
정기자 곱게 자란 막내아들 이미지인 거죠.
3남 3녀, 6남매 중 다섯째예요. 동생도 있고(웃음). 형제들 모두 자수성가했어요. 아버지가 전쟁고아 출신이셔서 당신이 성장하신 대로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셨어요. 결혼할 때 부모님 도움 받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다들 학비도 스스로 벌어서 해결했으니까요. 사실, 부모님이 작년에 한국에 계셨는데, 그 일로 상처를 많이 받으셨어요. 그래서 다시 미국으로 가셨죠.
장기자 다시 방송에 나오는 주영훈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둔 건 아니에요. ‘불후의 명곡’은 작곡가 특집을 한다고, 음악적인 얘기니까 하기로 한 건데, 제가 나간다고 그렇게 관심이 있을 줄 몰랐어요. 요즘 ‘함께 일해보자’는 연락이 오기도 하는데 그냥 순리대로, 물 흐르는 대로 맡겼어요.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얻은 게 참 많아요. 강했던 자존심도 다 버렸어요. 지금은 신인가수 작업 하고 있고, 회사는 제가 경영을 잘 못하니까 전문 경영자를 찾고 있어요.
장기자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뵙는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해주세요.
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볼 때 ‘쟤들처럼 살아라’고 할 수 있는 모범답안 같은 사람. 귀를 안 뚫은 것도, 어른들이 보기에 반듯한 젊은이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어요. 앞으로는 사람들이 ‘너희를 보면 결혼하고 싶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부부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요즘은 2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데, 내년쯤엔 아이도 낳고 모범적으로 살고 싶어요. 만약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은 일로만 만났으면 좋겠어요.
■기획 / 장회정 기자, 정우성 기자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찬 / 포레스타(Foresta, 02-544-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