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남편, 부지런한 아내, 우리 너무 닮았죠?”
이진우, 이응경 부부가 팔당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 꽃을 심고, 아내는 정원이 내다보이는 주방에서 남편을 위한 요리를 만든다. 결혼한 지 3년이 된 이들은 여전히 신혼이다.
딸이 주방으로 들어온다. 벽장에서 견과류와 과자를 꺼낸다. “친구 왔나 보구나.” 엄마가 말한다. “엄마 나 피자 먹고 싶어.” 딸이 조른다. 한적한 전원주택까지 피자를 배달해주는 가게는 없다. “내가 나가면서 사다줄게. 조금만 기다려.” 아빠의 음성이 따뜻하다.
기자는 잠시 이들 가족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아침 일찍부터 늦은 오후까지 이들과 함께했다. 교회를 갔고, 밥을 먹었고, 양가 부모님도 만났고, 차를 타고 경기도 남양주시 팔당으로 이동해 별장 같은 전원주택에서 늦은 주말 오후의 한가로움을 누렸다. 이 집의 주말 특별 요리인 떡볶이도 맛보았다. 처음 만나 긴 시간을 보냈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진우, 이응경 부부는 친절했으며, 소박했다.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AM 10:30 교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
일요일 아침마다 이진우·이응경 부부는 교회에 간다. 집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브니엘 선교교회다. 큰 교회를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접어들어 겨우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전 교인이 50명쯤 되지만, 이날 예배를 드리러온 사람들은 30명쯤 되는 듯했다.
지각한 모양이다. 서둘러 예배당에 들어간 이들 부부는 급히 악보를 손에 들었다. 그리곤 연습이 한창인 중창단 대열에 섰다. 이응경은 소프라노, 이진우는 바리톤일까. 각자의 파트에 충실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박한 화음은 작은 예배당을 꽉 채웠다.
“연예인라는 걸 의식하지 않아요. 직업이 연예인일 뿐이지, 사생활에서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특히 교회에서는 모두가 평등하잖아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는 나만 잘 살면 되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변했죠.”
“저는 술을 정말 좋아했고, 즐겨 마셨죠.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니까요. 선배나 후배, 친구들을 만나면 식사를 하면서도 물처럼, 간식처럼 마셨죠.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 정말 딱 끊게 된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더 놀래요.”
특히 담배는 끊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인체에 해로운지 알게 되었단다.
“담배를 피울 때는 몰랐어요.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들을 배려해야겠더라고요. 본인이 피우지 않는 상황에서 맡는 담배 연기는 얼마나 괴로울까요. 막상 담배를 끊어보니까 너무 좋아요. 담배는 술보다 건강에 해로운 것 같아요. 모든 병의 근원이죠. 끊고 나니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 알았을까요.”
신앙은 무엇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연예계 생활에 큰 위안을 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촬영하고, 밤샘 하고…. 늘 같지만 마음속에 평안이라는 것이 생겼죠.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고요. 예전에는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살았는데, 이제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이응경)
이진우가 따뜻한 남자, 배려 깊은 남자로 변한 것도 이때부터다.
“예전에는 ‘남자답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본질이죠. 남자는 주어진 책임과 여자를 포용할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요. 예전에는 나를 더 내세웠고 자아도 강한 편이었어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게 그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깨달아요.”
예배를 마치자 이진우는 내게 두 사람을 소개시켜주었다.
“우리 어머니와 장모님이세요.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이리 와서 인사해. 우리 딸이에요.”
이들에게 교회는 예배의 공간이자 가족 모임의 공간이었다.
PM 02:00 팔당 가는 길 자상한 남편, 부지런한 아내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응경은 늘 면목시장에 들른다. 집 주변에는 시장이 없다. “주말 오후에는 늘 장을 봐요. 장 볼 시간이 이때밖에 없거든요.” 이응경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시장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주말 오후 시장은 한산했다. 그동안 이진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일상은 집, 촬영장,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예요. 그래서인지 아내와 의견 충돌이 많지 않아요. 설령 있다고 하더라고 해결이 바로 되고요. 서로 이해하고 조금씩 내 것을 양보하면 싸움이 일어날 수가 없어요.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고 원망하는 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죠.”
이진우는 따뜻한 목소리와 평온한 미소를 가졌다. 세상의 미움과 다툼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달은 듯한 모습이다.
“돈이 정말 중요한 것 같지만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갑자기 병이라도 걸리면 돈은 아무 소용이 없죠. 봉사하고 희생하고 나누는 정신이 많지 않다는 게 안타까워요. 받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주는 것이 더 기쁜데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마찬가지죠.”
“특별히 제가 하는 일이 많은 건 아니에요. 저보다 아내가 많이 수고하죠. 제가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아내를 사랑하고, 또 아내는 무척 바쁘니까요. 사실 전에는 남자는 집안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남자가 못할 일이 어딨어?’, ‘남자 일, 여자 일이 따로 있나?’라고 생각해요.”
그는 영리한 남편이다. 작은 일들이 아내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제가 하는 일이란 아내에게 따뜻한 커피를 타 준다거나, 다 마신 커피잔을 씻는다거나, 쓰레기를 치운다거나, 정원에 가지를 친다거나 하는 정도죠. 아내는 부지런한 사람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자기 할 일은 다하죠. 늦게까지 촬영하고 나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아마 장모님을 닮아서 그런 것 같아요.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잖아요.”
이진우의 아내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고 있을 때, 이응경이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왔다.
“남편이 많이 도와줘요. 힘들게 촬영을 하다 보면 밥을 먹지 못할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 남편이 볶음밥을 만들어줘요. 그리고 제가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따끈한 커피를 끓여놓죠. 어떻게 제가 오는 시간을 딱 맞추는지, 정말 신기해요. 남편이 해주는 작은 것 하나하나가 새로워요. 조그만 것들이 모여서 큰 기쁨을 주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집에 도착했다. 아니 처음에는 집인 줄 몰랐다. 별장 같기도 하고, 펜션 같기도 한 아름다운 전원주택.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PM 03:00 정원 자연에서 배운 진리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대문가에 묶어놓은 개는 유명한 사냥개라고 했다. 금방이라도 으르렁거리면서 달려와 물 것 같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주인을 보고 살랑살랑 꼬리만 칠 뿐 낯선 이방인들을 경계하는 기색이 없다. 새로 이 집에 왔다는 강아지는 밀크라는 이름만큼이나 귀여웠다.
전망은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었다. 집 앞에는 팔당강이 유유히 흐르고, 집 뒤에는 산이 펼쳐져 있다. 경춘선의 소음마저 배경음악으로 들리는 듯했다. 마당은 비밀의 정원처럼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정원의 발 딛는 곳에는 어디나 풀이나 꽃이 피어 있었다. 그나마 꽃들은 지난 비 때문에 많이 진 거라고 한다. 마당의 끝자락에는 나무 데크가 깔려 있었다. 나무 데크는 이 집에 펜션 같은 분위기를 내는 데 큰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자연스럽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도 있었다. 맞은편에는 기계로 폈다 접을 수 있는 거대한 파라솔도 있었다. 넓은 마당에는 테이블이 두 개나 자리하고 있다. 손님들이 적지 않게 방문하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집에서 예배를 봤어요. 교회 사람들이 다 우리 집으로 오셨죠. 다음주에는 탤런트 동기들이 올 예정이에요. 오연수, 김찬우 등….”
아름다운 집은 사람을 부른다.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면 정말 펜션에 놀라온 기분이 들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딸이 매일 우리는 펜션에 놀러가는 것 같다고 좋아해요.”
아파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다.
“저렇게 가는 파 보셨어요? 매일매일 길이를 재어봐요. 그럴 때는 작은 행복을 느껴요. 이사 오니 행복할 거리가 무척 많아요. 자연은 거짓이 없거든요. ‘심은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정말 맞아요. 자연에 배울 것이 너무 많아요. 콩을 심으면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오죠. 짓밟히고, 마르는데도 견뎌내요.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인내와 연단을 겪어야 새로 태어나거든요.” (이응경)
넓은 주방 창으로 정원이 내다보인다. 이응경은 요리를 하면서 꽃, 나무, 자연을 만끽한다. 그는 자주 남편에게 꽃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바위틈에 꽃을 심으면 어떨까? 나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그는 기꺼이 꽃을 심는다. 그래서 정원 구석구석에는 상상하지 못한 공간에도 꽃이 피어 있다.
정원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이응경이 메밀차와 간식거리를 내왔다. 메밀차는 구수하고, 사탕은 달콤했다. 이진우는 옥상에 올라가야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며 기자를 재촉했다.
PM 06:00 주방 떡볶이 타임
옥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집 안을 거쳐야 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무 작품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는 쉬는 날에는 틈틈이 작업실에서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고 한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차양이 인상적이었다.
옥상에 오르니, 그냥 갔으면 후회할 뻔한 장관이 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전망에는 강과 산이 넓게 펼쳐 있었다. 그 너머 산은 그림같이 아름다워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공기도 좋아 산 정상에 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이진우가 추천해준 앵글로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시간은 벌써 6시를 넘기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취재도 마무리됐고, 좋은 사진도 얻어서 흡족했다. 그러나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취재진을, 이응경이 주방으로 잡아끌었다.
“떡볶이 드시고 가세요. 별로 맛은 없지만.”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를 두고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이진우는 “아내는 떡볶이를 아주 잘해요”라는 말로 우리를 붙잡았다. 그의 말대로 떡볶이는 정말 맛있었다. 쫀득한 쌀떡과 깔끔한 부산 어묵 등 고급 재료들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맛과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국물, 그리고 이응경만이 낼 수 있는 특별한 맛이 떡볶이에 자꾸 손이 가게 만들었다.
“드라마 반응이 어떤가요?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새로 시작한 SBS-TV ‘애자 언니 민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응경은 재미있는 캐릭터 ‘애자’로 출연 중이다. “`캐릭터가 굉장히 코믹한 것 같다”고 대답하니, 이진우가 말을 보탰다.
“이 사람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 깜짝 놀라요.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드라마에서는 말도 무지 빠르게 하고요. 나와 다른 성향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은데 능청스럽게 너무 잘하는 거예요. 보는 제가 놀란다니까요.”
“바로 전에 출연했던 ‘뉴하트’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역할이죠. 드라마 자체가 밝은 분위기라 까불고 통통 튀는 연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저와는 달라서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맞춰가는 부분도 있어요.”(이응경)
이응경은 KBS-TV 아침드라마 ‘아름다운 시절’에도 출연 중이고, 이진우는 ‘대왕세종’과 ‘산 넘어 남촌에는’에 출연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 부부다 보니 서로 도움을 주는 부분도 많을 듯하다. 그러나 오히려 일에 관해서는 서로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작품이 들어왔을 때 상의는 하죠. 그런데 상대방이 연기하는 건 잘 안 보려 해요. 그 사람의 영역이니까요. 좀 다른 사람 같기도 하죠. 가끔 예전 드라마가 방영되잖아요. 예전 드라마를 보면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런 연기를 했을까 놀라기도 해요. 배울 점도 많아서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꼭 조언할 일이 있다면? 이응경은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돌려 말하는 편이다.
“남편이 입고 나가는 옷이 마음에 안 들잖아요. 그럼 그 옷을 숨기는 거죠(웃음). 입지 말라고 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거든요.”
이들 부부는 웃는 모습이 닮았다. 순한 말투나 따뜻한 마음, 겸손한 태도까지도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때가 되면 꽃을 피워내는 정원과도 닮아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한가로운 주말 오후였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