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불의의 사고로 호주에서 유학 중이던 동생을 잃은 이동건이 아픔을 추스르고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빠른 복귀지만 그를 걱정해온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웃고 싶었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 MBC-TV ‘밤이면 밤마다’에서 바람둥이 고미술학자 김범상 역을 맡아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부모님을 웃게 해드리고 싶어서, 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제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선택한 작품이에요. 스스로도 웃을 수 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었고 보는 분들도 웃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살면서 가장 충격적인 일을 겪은 뒤 이동건은 주위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힘이 돼준 주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연기뿐이란 걸 깨달은 것도 슬픔이 남기고 간 선물이다. 자신보다 더 아파하실 부모님 생각에 장례식장에서도 애써 눈물을 참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슬픔을 계기로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본 뒤 이제 그는 배우 이동건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이라 좀 떨리네요. 한동안 영화를 하며 오랫동안 준비하고 개봉하는 여유 있는 작업을 하다가 스피디하고 순발력이 필요한 드라마 작업을 하니까 더 일하는 기분이 들어요. 배역에 몰입하게 되고요. 정말 사는 것 같고, 드라마 하길 잘한 것 같아요.”
고마운 사람들을 위한 작품, ‘밤이면 밤마다’
극중 이동건은 고미술품 감정과 복원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 김범상 역을 맡았다. 겉으로는 냉철한 애국지사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출세에 관심이 많은 이중인격자다. 허초희 역을 맡은 김선아와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키워갈 예정이다.
“누구나 성공에 대한 욕구가 있잖아요. 김범상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성공에 욕심이 많은 캐릭터예요. 성공하기 위해 조금은 비열한 일도 하지만, 그래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죠.”
한동안 자신도 김범상처럼 욕심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 정말 피곤하게 산다고 생각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오다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조바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이를 먹어가며 달라지는 것 같아요. 편해지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욕심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조금은 편안하게, 조금은 느슨하게 가는 것도 스스로에게 약이 된다는 건 나이가 가져다 준 여유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도전만큼은 예외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제까지 드라마에서 다룬 적 없는 문화재를 소재로 해 극중 전문가를 연기하려니 힘든 점이 많다. 배역상 문화재에 대해 박식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많은데 시청자들이 보기에 아쉽지 않을 만큼 소화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외 공부를 할 여유는 없고 대본만 끝까지 읽어도 큰 공부가 될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드라마 속에서 숨겨진 보물들을 찾으러 동분서주할 그에게 ‘보물 1호’를 물었다.
“물건에는 별로 집착하는 편이 아니어서 특별히 보물이라고 할 만한 건 없고요. 글쎄요. 친구들이요.”
‘밤이면 밤마다’는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을 때 자신을 잡아준 사람들을 위해 선택한 작품이다. 슬픔을 잊으려 시작한 일이 어느새 슬픔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큰 아픔을 이겨낸 만큼 배우로서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작품이 말해줄 것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인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