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봉사는 베푸는 것이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더 많이 가졌기에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 속에서 함께하려고 하는 것. 이태란의 네팔 여행도 그렇게 시작됐다. 거창한 목적이나 의지 대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공유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봉사활동, 꾸준히 제대로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싶어
“너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돌아왔어요. 참 행복한 여행이었죠. 누구나 평소에 봉사를 실천하면서 살고 싶어 하지만,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저 역시 가까운 식구들과 함께여서 할 수 있었어요.”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가 선뜻 동행을 결심하게 된 데는 ‘`마운틴 클럽’ 회원들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원정 대장 이문세가 공연 때문에 잠시 마이크를 놓아야 했을 때 이태란이 일주일 동안 대타 DJ로 나선 적이 있다. 그때의 인연으로 이문세가 속한 산악회에 발을 들여놓은 이태란. 산을 오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산악회원들이 보고 싶어서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계획된 ‘설레발 마운틴 클럽’의 네팔 봉사활동은 꼭 함께하고 싶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학교 출석 문제. 올해 한양대학교 예술학부에 늦깎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그에게 장기간의 해외 원정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정말이지 수업은 빠지고 싶지 않았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기에 각 과목 교수님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허락을 받았어요. 흔쾌히 허락해주신 것은 물론 격려까지 들었어요. 다행히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 수업이 과제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어서 학사 일정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어요.”
이태란은 오래전부터 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중에게 노출된 연예인 신분이라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시원시원하고 선한 이미지 덕에 여러 단체에서 홍보대사 제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성의를 다해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전부 거절해왔다. 뒤늦게 시작한 학업과 연기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 공연히 일만 벌여놓고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신중했던 탓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한 게 아무것도 없다’며 겸손해하던 이태란은 네팔 현지에서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다소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원정대와 동행한 방송국 카메라가 줄곧 일하는 모습을 촬영하자 피해 다닐 정도였다고.
훌륭한 아이들이 자라날 희망의 학교를 세우다
네팔에서 이태란은 설레발 원정대 대원들과 함께 학교 마무리 공사에 힘을 쏟았다. ‘궂은일을 잘한다’는 그녀는 ‘학교 앞 화단은 내 낫질로 탄생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널렁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는 탤런트 박상원과 인연이 있는 무료 급식 단체에서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봉사했다고 말하기엔 아직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곳 사람들과 눈빛을 맞추면서 참 행복했어요. ‘이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구나, 나를 좋아해주고 있구나’ 하는 게 전해지더라구요.”
말도 잘 통하지 않지만 진심은 맞잡은 손의 온기를 타고 흘렀나 보다. 따뜻한 마음 앞에서는 다른 언어도, 낯선 문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대화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본적인 말 정도는 배워 갔죠.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생각보다 영어를 잘했어요. 그곳에 봉사 활동 와 있는 외국 여자분이 영어를 가르쳐줬다고 해요. 간단한 단어도 알아듣고 저에게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고 막 묻던걸요.”
이태란이 만난 네팔 사람들은 티 없이 맑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오래되어 흙바닥뿐인 건물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옷이 넉넉지 않아 24시간 교복을 입고 생활하는 탓에 해진 옷을 입은 아이들이 많았다. 여자아이들 중에는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건강과 위생이 크게 염려스러웠단다.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 밝고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마을 어귀에서 내려 꽤 먼 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그 먼 길을 왔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환영을 받으니 더 기뻤어요. 아이들이 먼저 웃으며 거리낌 없이 제 손을 잡아줬는데, 정말 마음 같아서는 한 명 데려다가 키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꾹 참았죠(웃음).”
사랑을 나누겠노라 마음먹고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이 무색해질 만큼 더 큰 사랑을 전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이태란을 감동시켰다. 곁을 떠나지 않는 말간 눈망울의 아이들을 보면서 희망 학교 짓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아이들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학교를 짓는 일이라 마냥 뿌듯했다.
네팔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 그는 떠나기 전보다 더 많은 것이 눈에 보이더라고 했다.
“사람이 굉장히 간사해요. 네팔에서 작은 것들의 소중함,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돌아오니 또 완벽하게 여기에 적응해버렸네요.”
하지만 그렇게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다. 일상의 아름다움과 함께하는 고마운 사람들을 발견한 것도 가슴 벅찬 일. 마음은 한결 든든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봉사 활동 예찬’을 늘어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요. 학교도 3년 넘게 더 다녀야 하고, 연기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일도 많구요.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기부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꾸준히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될 때, 봉사 활동을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을 키워가면서 말이에요.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내일을 꿈꾸는 그녀. 이태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제공 / 설레발 원정대, 이상은(라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