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은 김현정에게 어두운 터널과 같았다. 3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적도 있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모자라 가수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성대 결절까지 생겼다. 큰 어려움 없이 가수 생활을 했던, 그에게 닥친 첫 위기였다.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돌아온 그는 이제 지난날을 돌아보며 웃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제 일터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불만도 많았거든요. 사실 방송이라는 것이 드라마 ‘온에어’에서 그려진 모습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거든요. 아직 체력은 괜찮은데, 앞으로 목이 어떻게 버텨낼지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그래도 어려움을 겪은 후에 술도 끊고, 건강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
김현정이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는다. 지난 3년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불면증 걸려
3년 전 밝고 명랑하고 씩씩했던 김현정에게 예상치 못한 고비가 닥쳤다. 7집 「굳세어라 현정아」를 발매하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주위 사람들이 지칠 정도였죠. 한 곡 부르고 내려오면 사람들이 달려들어 제 몸을 주물러애 했어요. 그때 영상을 보면 몸은 말랐는데 얼굴은 부어 있어요. 앨범을 내놓고도 제대로 활동을 못했죠. 원래 몸이 약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그저 감기인가 보다 했어요.”
가벼운 증상인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후두에 염증이 있다’, ‘성대가 부었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병원 네다섯 곳을 돌았다. 병명은 성대결절. 가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나날이 예민해져 갔어요. 불면증도 생겼죠. 불면증이 생기니 체력이 떨어졌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48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어떤 때는 3일간 한숨도 못 잤어요. 몸의 밸런스가 완전히 깨진 거죠. 어떤 날은 약도 듣지 않더라고요. 그럴 때는 ‘마음이 많이 공허하구나’라고 생각했죠.”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그가 스트레스, 심적 부담 때문에 어두운 터널에 갇혔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직업에서 오는 스트레스….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이 많거든요. 그동안 앨범을 내면서 수도 없이 사람들한테 치이기도 하고, 또 제가 치기도 하면서 마음이 많이 나약해졌더라고요. 에너지가 있으려면 내면이 안정돼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김현정이 드라마 ‘온에어’를 언급한 건 그 때문이다. 그는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발표하는 앨범마다 좋은 반응을 얻는, 성공한 가수였지만 연예계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를 붙든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가수 그만둬라”라는 말이 그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당시 어머니께서 ‘가수하기 힘들면 하지 마라. 가족이나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거면 그만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곰곰이 생각했어요. ‘이렇게 힘든 시간을 겪어봐야 더 좋은 날이 올 텐데,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 다행이다. 더 늦게 오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정이 바닥을 치니 그제야 희망이 생겼다.
“동료들이 저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이겨내는 것을 보면서 ‘나도 이겨내야지’라고 마음먹었죠. 그때부터 웃기 위해 만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원래 만화를 좋아하기도 했구요. TV를 끄고 만화와 좋아하는 영화만 봤어요. 그게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 속에는 꿈과 희망이 있고, 힘든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유쾌한 주인공들, 정치, 격언까지 모두 담겨 있어요.”
만화를 보면서 다시 밝고 유쾌한 성격을 되찾았다. 그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만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단, “밝고 건강한,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 한해서다.
위기의 순간에 시작한 운동, 다이어트
바닥난 체력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1시간도 힘이 들었지만 점차 운동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해 나중에는 4시간도 거뜬했다.
“처음에 운동을 어설프게 했더니 식욕이 돋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오히려 몸이 불겠다 싶었어요. 목표가 있었죠. 안젤리나 졸리! 그런데 그 정도가 되려면 6년이 더 걸린대요. 다시 황신혜씨나 김희애씨 등 좀처럼 늙지 않는 연예인들을 모니터했더니 해답은 헬스였어요. 본격적으로 헬스에 올인했죠. 당장 결과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살이 쫙 빠지더라고요.”
운동과 더불어 식이요법도 시작했다. 염분은 일체 먹지 않고, 대신 고기 위주로 식단을 구성했다.
“제가 굉장히 짜게 먹는 편이에요. 독하게 마음먹고 짠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어요. 대신 일주일에 5일 이상 고기를 먹었어요. 닭고기, 쇠고기, 삼겹살… 덕분에 집에 고기 냄새가 밸 정도였죠. 예전에 이정재씨가 몸을 만들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닭고기만 먹었다고 하더군요. 닭죽, 닭 가슴살… 그때는 ‘어떻게 그것만 먹지 못 먹겠다’ 싶었는데, 제가 그렇게 먹고 있더라고요. 치킨 집에 가도 껍질 떼어내고 닭 가슴살만 먹어요.”
당분이 있는 오렌지 등의 과일이나 과일주스는 오후 6시 이후에는 절대 먹지 않았고, 밤에는 무조건 토마토만 먹었다. 수시로 물을 마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이어트의 실패 요인은 바로 요요 현상이다. 다이어트 기간에는 독하게 살을 빼지만 몇 번의 과식으로 이전보다 더 살이 찔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식탐이 좀 있거든요. 제 몸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원 없이 먹었어요. 다이어트 중이라도 일주일에 하루는 먹던 대로 먹어야 요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위가 작아졌는지 예전처럼 먹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도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살이 붙으려고 해요. 몸이 기억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죠.”
막다른 곳에서 선택했던 운동이 김현정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이제 운동은 다이어트나 체력 유지와 같은 특별한 목적이 아닌 평생 함께해야 할 생활임을 깨달았다.
“연예인을 떠나서 여자로 살려면 평생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건을 활용하는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몸의 라인이 조금씩 살아나더라고요. 요즘 같이 스케줄에 쫓겨 바쁠 때에도 방송 끝나고 안무실에 가서 연습하고, 바로 헬스장으로 가 1시간 반 정도 가볍게 운동해요. 여자들에게 가장 좋은 운동은 스트레칭이라네요.”
현재 김현정의 몸은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하다. 살이 빠지니 얼굴도 작아졌고, 어려 보이기까지 한다.
“예전에 비해 4kg 정도 빠졌어요. 그래도 더 날씬해 보이는 이유는 근육은 늘고 지방이 빠졌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나이보다 점점 어려지고 예뻐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에너제틱한 삶을 살 거예요.”
욕심쟁이 김현정의 모든 것이 담긴 「In and Out」
공백이 길었던 터라 음반에는 더욱더 공을 들였다. 한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음반이다. 이번 음반은 히트 제조기로 불리는 실력 있는 작곡가들이 대거 참여해 15개의 트랙을 꽉 채웠다.
“다시 한번 제 색깔을 찾아보는 계기로 삼고 싶어요. 가요계가 불황이라 요즘에는 디지털 싱글 음반을 많이 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정규 앨범을 내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도 있어서 반은 발라드, 반은 록 요소가 있는 노래로 담았죠. 그래서 제목이 「In and Out」이에요.”
복고풍 멜로디에 록 편곡을 시도한 ‘살짝 쿵’은 밝고 경쾌한 멜로디로 발매하자마자 즉각 반응이 오고 있다.
“전자음도 나름 매력이 있긴 하지만,‘살짝 쿵’은 리얼 밴드로 살아 있는 느낌을 냈어요. 요즘 경기도 안 좋고 여러 가지로 분위기가 무겁잖아요. 그래서 경쾌함을 살렸는데,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전해성(윤도현의 ‘사랑했나봐’ 작곡자)이 작곡한 발라드 곡 ‘반겨주겠다’는 대중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 같은 느낌이다. 떠난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곡으로 제목만큼이나 멜로디와 가사가 아름답다. 히트곡 ‘멍’의 리믹스 버전이나 김현정이 직접 가사를 쓴 ‘보고 싶을 때 보는 사람’, ‘Come Back to Me’ 등도 주목할 만하다.
15트랙을 꽉 채운 매력적인 보이스 컬러와 뛰어난 가창력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아쉽게도 성대결절로 인해 예전처럼 폭발적인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기는 당분간 힘들 거라고 한다.
“성대는 안 쓰면 좋아지거든요. 요즘처럼 방송을 할 때는 힘들죠. 성대가 안 좋으면 바람 소리가 많이 나고, 고음이 안 올라가고 리듬 타기가 힘들어요. 노래뿐 아니라 말하는 것도 성대에 상처를 주거든요. 앨범이 나왔으니 방송은 무조건 진행하지만 라이브 무대에 서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아요. 요즘에도 계속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는데, 바쁠 때는 이마저 못할 때가 있어요.”
의리파는 이제 그만, 결혼은 꼭 서른다섯에 하고 싶어
그동안 ‘가수 김현정’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여 전사, 의리파 등 씩씩한 이미지였다. 그런 이미지는 이제 후배에게 물려주고 싶단다. 예뻐진 외모도 있겠지만, 주변의 기대 탓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힘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이젠 의리파 안 하려고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힘들고, 의리파라는 이름처럼 착한 콤플렉스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도덕성에 벗어나지 않게 사는 것이 좋겠죠.”
김현정은 사업가로도 바쁘다. 애견 사업 ‘에이미 러브스 펫’은 뉴욕에 이어 러시아, 일본에까지 진출했고, 올 하반기에는 이탈리아 여행기를 담은 책을 출간할 계획이며, 연기자로도 깜짝 도전해 새로운 모습도 선보일 예정이다. 노래 외에도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김현정. 결혼은 꼭 서른다섯에 하고 싶단다.
“출산을 생각한다면 서른다섯에는 결혼을 해야겠죠? 그전까지는 가수로서 원하는 것을 시원하게 풀려고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산에 풀어놓고 키우고 싶어요. 계곡에서 다이빙도 좀 하고 그렇게 건강하게 말이에요. 요즘 교육열이 너무 높은데, 아이가 너무 똑똑해지는 건 싫어요. 저와 대화가 안 될 거 아니에요?(웃음) 좋은 가수로 남는 것도 좋지만, 배우로서 꿈도 있어요. 앞날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혹시 결혼 상대자로 염두에 둔 사람이 있는지 물으니 “한 가지에 꽂히면 ‘올인’하는 스타일이라 지금 연애하면 안 된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뒤 돌아서는 기자의 손을 잡고 방송국으로 이끈다. “방송 보고 가요. 재미있잖아(웃음).”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힘, 누구와도 금세 친구가 되는 사교성은 여전한 그녀, 김현정이 돌아왔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힘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