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를 대장으로 한 설레발 원정대가 네팔의 한 마을로 원정을 다녀왔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만큼 먹먹한 행복을 맛보게 한 순수한 아이들과의 만남. 희망의 한 조각을 꿰맞추고 돌아온 이문세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혼자든, 누구와 함께든, 어떤 목적의 출발이든 말이다. ‘설레발 히말라야 원정대’의 첫 해외 봉사 활동도 그랬다. 학교를 짓기 위해 흙을 고르고, 아이들에게 밥을 퍼 주고, 안나푸르나를 오르면서 설레발 원정대 대원들은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의 행복과 고민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네팔에서 보낸 16박 17일이 지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온 설레발 원정대. 그들이 네팔에서 찾은 것은 ‘자신’에 대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행복합니다”를 되뇌는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뜻이 맞는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견한 것은 ‘나의 존재는 너를 통해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설레발 원정대가 이번 원정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함께’를 이야기하는 대원들의 눈빛이 빛난다.
그중에서도 대장으로 이번 원정을 이끌었던 이문세(49)의 감회는 특별한 듯했다. 해단식을 겸한 원정대 모임에서 만난 그는 들떠 보였다. 이 자리가 마치 ‘원정을 떠나기 전 준비를 위한 자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마도 네팔에서 얻어온 행복한 기운 때문일 게다.
“떠날 때는 그곳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참 많은 것을 얻어왔어요.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그들이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거든요.”
나누려고 떠난 곳에서 얻어온 더 큰 깨달음
‘설레발 히말라야 원정대’는 원래 평소 산을 좋아하는 문화·예술인 30여 명이 모인 ‘설레발 마운틴 클럽’이라는 모임에서 꾸려진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내딛는 가벼운 발걸음’이라는 이름의 설레발 산악회는 매주 월요일마다 산을 오르며 친목을 다져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네팔의 한 오지 마을에 제대로 된 학교를 지어주자는 계획을 세우고 뜻을 모아 ‘희망 학교 짓기’에 나서게 된 것. 산악회 회장 이문세를 비롯해 탤런트 박상원·이태란, 영화감독 한지승, 슈퍼모델 박세련, 다큐멘터리 PD 허정, 뮤지컬 배우 김창준·이수현, 여행 작가 김남희 등이 힘을 보태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남았던 안타까움이 사랑의 원정대를 꾸리는 프로젝트에 불을 붙였다.
“모임에서 ‘히말라야에 다 같이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가더라도 뭔가 평생 가슴에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죠. 작더라도 다 같이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이요. 모두 적극 찬성했어요.”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4~5시간 정도 떨어진 다딩 디스트릭트 널렁 빌리지(Daiding District, Nalang Village)의 허물어져가는 초등학교를 다시 짓기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책걸상, 교복, 학용품 등 교육에 꼭 필요한 준비물도 갖춰주기로 했다. 이문세의 진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지난해부터 하나하나 자체적으로 준비를 했어요. 저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후원도 받으러 다니고요. 아마 저 혼자, 우리끼리만 하려고 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덕분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어요.”
설레발 단원인 허정 PD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히말라야를 여섯 번이나 오가면서 학교 건축과 시공을 맡을 곳을 선정하는 일부터 현장감독, 진행을 도맡아서 적극적으로 일해줬다. 빡빡한 방송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연예인들도, 현업에 쫓기는 단원들도 모두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하나가 되었다.
“대원 중에 연예인들이 많아서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갑작스럽게 봉사 활동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5개월 전부터 일정을 잡아놓고 다들 맞춰보자고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진 회원들이 있는데, 많이 속상해하고 아쉬워해요. 정준호씨, 윤해영씨는 한국에 있어도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하더라구요. 마음은 네팔에 있었던 거죠.”
희망의 벽화가 그려진 학교, 맑은 아이들의 미래가 숨 쉬는 곳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저희를 마중 나온 거예요. 참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어요. 곁에서 내내 저희가 하는 작업을 지켜보시는데 그들의 삶에 밴 여유가 느껴졌어요.
무덥고 낯선 곳이었지만 이문세와 대원들은 마을 사람들 속에 금방 녹아들었다. 학교 건물 앞에 화단을 조성하고, 벽에 페인트칠을 해서 벽화를 그리는 것까지 모든 작업이 대원들의 몫이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기대에 찬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우리 대원들이 개성이 강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정말 한마음으로 움직였어요. 불편함도 감수하고, 게으름 부리지 않구요. 평소에 소극적이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나라도 더 하려고 하는 거예요. 참 뿌듯하고 고마웠어요.”
마을에 도착한 날에는 밤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아이들에게 나눠줄 옷과 학용품, 책가방 등을 정리했다. 새 교복과 물품을 전달한 뒤에는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함께 대원들 각자의 특기를 살려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문세는 헤어 디자이너 한기철씨와 함께 이발사로 나섰다. 능숙하게 세련된 솜씨를 뽐내는 프로 디자이너가 옆에 있는 탓에 이문세에게 머리를 맡기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후문. 하지만 그도 고등학생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직접 이발을 해줬던 실력을 발휘했다.
“모든 아이들이 다 특별했지만 특히 제가 머리를 깎아준 아이가 기억에 남아요. 한창 머리를 깎고 있는데 그만 기계의 배터리가 다된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너 집에 가야 되겠다’ 했더니 아이가 당황하더라구요. 어설프지만 가위로 열심히 머리를 다듬어줬더니 굉장히 흡족해했어요. 만약 제가 한국에서 누군가의 머리를 그렇게 손봐줬다면 고마워할 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는 머리를 어떻게 깎았는지는 상관없이 ‘이 사람이 정성껏 내 머리를 만져줬구나’ 하고 진심을 알아주고 마음을 열어주니, 너무 고마웠죠.”
“아이들이 너무 맑아서 헤어질 때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니까. 앞으로 시간과 여건이 되는 한 대원들과 계속 이 학교를 찾을 생각이에요. 우리가 만든 화단도 보고, 이 벽화 앞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도 보고요.”
이문세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번듯한 학교 건물을 세워준 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봉사는 일회성 ‘행사’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학교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말이다.
“학교만 지어주면 뭐 해요.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이번 설레발 원정대의 원정은 그야말로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시간 맞는 사람들과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은 와서 의자도 교체해주고, 교재도 계속 업데이트해줄 계획입니다.”
학교 앞마당에는 네팔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문세는 두 국기가 나부끼는 것을 보면서 감동과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태극기를 걸어놓고 온 만큼, 책임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끝나지 않은 원정, 나눔은 계속될 것
이제 ‘희망 학교’의 첫발을 내딛은 설레발 원정대는 넘고 싶은 고지가 많다. 이문세는 앞으로 따뜻한 계획들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길 꿈에 부풀어 있다.
“저는 항상 마음을 모으면 뜻이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설레발 마운틴 클럽의 희망 학교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5년 계획을 갖고 시작한 겁니다. 물론 여러 조건을 따져보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일을 진행시켜야겠지만 내년에는 파키스탄이나 북한에 학교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동안 박상원씨가 북한 관련 봉사 활동을 많이 했으니까 잘 도와줄 거라 믿어요.”
물질적인 도움 대신, 학교를 짓는 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교육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당장의 배를 채우는 데 그치겠지만 교육은 미래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면서 꿈을 키우고 그 꿈을 계속 이뤄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희는 아이들의 꿈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요. 우리나라가 됐든 해외가 됐든 ‘꿈꾸는’ 일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디든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특히 저는 공인이잖아요.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곳도 설득하고, 앞장서서 나눔의 기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은 누구든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요.”
이제 ‘함께’라는 목표를 향해 ‘설레는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디딘’ 이문세와 설레발 원정대. 핏줄을 타고 흐르는 그의 따뜻한 마음 덕에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꿈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을 것이다.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사진 제공 / 설레발원정대, 이상은(라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