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걸스’의 송은이는 ‘송선배’다. 데뷔 15년, 같은 아파트 사는 꼬마들도 송 선배라고 부른다. 최근 막을 내린 ‘진실게임’의 터줏대감은 유재석이었지만, 송은이가 있어서 더 빛날 수 있었다. MC 유재석도, 2천7백 명의 일반인 출연자들도.
15년 동안 예능인으로 살아왔지만, 그 흔한 인터뷰 한번 안 했다. ‘왜 나에 대해 궁금해할까?’ 신비주의 연예인으로 살았던 적도 없고, 배꼽 잡게 만드는 ‘대박’도 없었다. 교양과 예능을 넘나드는 동안 쌓였던 ‘웃음’에 대한 갈증은 MBC 에브리원 ‘무한걸스’에서 푼다. 신봉선이 제아무리 힘이 세도, ‘송 선배’의 육두문자 한마디면 정리가 된다.
장기자 : 인터뷰를 잘 안 하는 이유는 뭐죠? 본인에 대해 말하는 게 쑥스러우신가요?
것도 있고. 제가 독자라면 저에 대해 별로 안 궁금할 것 같아요(웃음). 전 그냥 친근한 사람이지 궁금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아, 지난번에 큰맘 먹고 잡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잡지가 나오기도 전에 폐간됐어요(웃음).
정기자 :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오늘 별로 기분이 안 좋고 심난했거든요. 그런데 ‘무한걸스’ 고민상담 편을 보다가 많이 웃었어요. 뭐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구 웃기신다는 느낌. 다른 사람을 웃긴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웃기는 거 하고 싶은데 그동안 안 시켜줬거든요(웃음). 그간 좀 차분한 프로그램을 많이 했죠. 개그맨인데도 이상하게 교양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늘 목말라 있었어요. ‘무한걸스’ 섭외가 왔을 때, 막연하지만 신나는 일들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 예상이 잘 맞았고. 시청자들도 이전까지는 봉선이하고 신영이의 큰 매력을 아마 모르셨을 거예요. 저는 꼭 같이 하고 싶었거든요. 그 친구들이라면 자신 있었어요.
장기자 : 캐스팅 과정에 힘을 좀 쓰셨나요(웃음)?
라인업을 할 때 신봉선, 김신영은 꼭 같이 하고 싶다고 제가 강력하게 얘기했어요. 개그맨한테는 ‘웃기다’는 칭찬이 최고거든요. 걔들은 정말 웃겨요. 무대에서만 웃긴 게 아니라 삶 자체가 웃긴 애들이거든요. 그런 막연한 믿음과 기대가 있었죠.
정기자 : 송은이씨는요?
저는 개그맨이지만 잘 못 웃기는 개그맨에 속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무한걸스’ 통해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죠, 너무 신나요. 녹화 갈 때마다 재미있고 제 맘대로 해도 좋을 것 같고. 물론 제작진에 대한 믿음도 있어요. 사실은 방송에 나가면 안 되는 내용도 많이 하거든요. 방송 중에 동생들이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제가 육두문자를 막 쓰거든요. 근데 그걸 그냥 방송에 내더라고, ‘삐리리’로(웃음). 그게 아무리 ‘삐리리’라도 제가 했다는 걸 시청자들은 뻔히 알잖아요. 본의 아니게 ‘욕쟁이 송 노파’가 됐어요. 안 그래도 나이 들었다고 애들이 구박하는데, 거기다 육두문자까지 쓴다고. 애들한테 대놓고 욕하거든요. 너무 말을 안 들어서(웃음).
정기자 : 어떤 욕을 하세요? “`이런 천인공노할 녀석들아`”
그렇게 고급스럽지 않아요(웃음). 뭐 그냥 평소에 우리가 화나면 하는 그런 말들이죠.
장기자 : 그렇게 하면 통제가 되나봐요?
애들이 카메라가 돌면 집중하고 녹화를 하는 게 아니라 지들 얘기를 계속해요. 저는 나름 진행을 하고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정리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성대가 많이 안 좋아서 힘든데 몸이 안 따라주니까 제가 ‘야, 이 개어쩌구’ 그러면 딱 정리가 되죠(웃음).
장기자 : 저도 어린 후배들 보면 “야, 진짜 딴 나라 애들이구나, 그래요” 지금은 그 갭이 좀 크잖아요.
크죠.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생각해요. 처음에는 서럽기도 했어요. 나이 들었다고 애들이 너무 무시하니까. 세대 차이 난다고 하고. 따지고 보면 차이도 안 나는데(웃음).
장기자 : 나이 차이가 얼마나?
여섯 살~일곱 살 차이 나죠. 봉선이, 황보, 보람이가 79년생이고. 일곱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그 난리들이에요.
정기자 : 나이 차를 떠나서 ‘얘는 강적이다. 보통이 아니다’ 싶은 후배는 누구예요?
정기자 : 저는 ‘무한걸스’ 보면서, 저건 여자 여섯이 모였을 때만 가능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힘의 역학 관계가 살갑고 예쁜 자매애잖아요. 조화롭게 보였는데 사실은 그게 완력과 기싸움, 욕설로 정리되는 관계였군요(웃음).
그렇죠. 우리는 “역학 관계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해보자” 미리 정한 게 하나도 없어요. 다 아시겠지만 ‘무한도전’의 여성판인이니까, “무한도전 팬들한테 어차피 욕먹을 텐데, 그렇다면 확실히 베끼자”는 거였죠(웃음). 케이블의 장점, 공중파의 미니 버전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단, ‘무한도전’이 쌓아온 내공은 따라가기 힘들다. 그러니까 무조건 재미있게. 그게 목표다 우리는. 보는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지 않는 재미를 주자” 그랬죠. 솔직함 이상의 무기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동안 예능에서는 검증이 안 된 정시아씨와 백보람씨가 생각보다 솔직하게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웃음을 줬어요. 그러면서 관계와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지금의 구도가 만들어진 거죠.
15년 차 예능인, 송은이의 절제
화려하게 반짝인 적은 없지만 송은이가 없으면 허전한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사람 좋은 동네 언니처럼 웃어도, 기싸움에서 지는 일은 없다. 도를 넘는 감정이입으로 눈물을 보이는 일도 없다. 그래도, 지난 4월에는 원 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정기자 : 그동안 십여 년 활동을 하면서 주연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무한걸스’에서는 진행자로 나서서 말씀을 많이 하셔야 하죠. 진행 스타일이 ‘무한도전’의 유재석씨와 많이 겹쳐요.
그렇죠. 제작진도 제가 재석이 역할을 해주길 원했고요. 재석이랑 본의 아니게 많은 프로그램을 하고 친구로 오래 지내다 보니까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말이 튀어나올 때가 많았어요. ‘진실게임’에서도 재석이가 MC고 저는 패널이니까 제가 조율해야 하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진행하니까, 참을 이유가 없죠(웃음).
장기자 : 참, 유재석씨 결혼식에 정말 한복 입고 가실 거예요?
하하, 아뇨. 한복을 입고 가진 못하겠지만 축가 부를 때는 입을까 생각 중이에요.
정기자 : 아까 기싸움을 말씀하셨죠? 송은이씨한테는 파이터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아, 저를 아시는구나. 후배들은 저를 무서워해요.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엄해 보이고 무섭대요. 전 그냥 후배들한테 관심이 없었을 뿐인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면 “언니가 얼마나 눈을 부라리는지 알아요?” 그래요. 저는 기억이 없는데 그렇게 봤더라고요.
정기자 : 신봉선씨는 좀 강해 보이죠, 외모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기운이 있잖아요.
봉선이가 눈물이 어찌나 많은지 말도 못해요. 되게 여려요. 저는 잘 안 울어요. 방송 막 시작했을 때부터 방송에서 MC가 자기 얘기를 하거나 남의 얘기를 전달하면서 울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얘기에 도취돼서 울거나 웃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눈물이 나는 순간에도 참았어요.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까 그게 몸에 익은 것 같아요.
정기자 : 마지막으로 우셨던 게 언제예요?
4월 말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원 없이 울었어요. 울면 피부가 좋아진다더니, 진짜인 것 같아요. 살도 많이 빠지고. 제가 ‘무한걸스’ 촬영차 괌에 갔다가 하루 만에 돌아왔는데, 사실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전날 아버지가 굉장히 위독하셨거든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제작진이 어렵게 추진해서 간다는 걸 잘 아니까 가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일단 가서 하루 종일 몰아서 촬영하고 밤 비행기로 돌아왔어요. 아빠가 저 온 거 다 보시고, 30분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촬영 가기 전에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올 때까지 꼭 기다려달라고요. 아빠는 약속을 지키셨죠. 그때 많이 울었어요.
“전 ‘깨작깨작’ 해왔다고 해요”
MBC-TV ‘느낌표’의 ‘하자하자’코너에서 폭주족 청소년들에게 헬멧을 씌워주거나, SBS-TV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진지한 상담자로 나설 때. 송은이는 어디서도 넘치지 않았다. 무리하게 웃기려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개그맨 송은이’보다는 ‘인간 송은이’가 도드라졌다. 그런 겸손, 혹은 자신감은 단단한 철학이 바탕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장기자 : 그동안 워낙 일반인이 주인공인 방송을 많이 하셨어요. 시청자들은 그래서 친근하게 여길 수도 있죠.
제가 워낙에 어렵고 복잡한 걸 싫어해요. 저는 얼굴 잘 보여주지 않는 스타들, 화장실 안 가실 것 같은 분들은 답답해서 어떻게 사나 궁금해요. 우리 아파트 애들은 저더러 ‘아줌마’ 그러다가 요즘은 ‘와, 송 선배다’ 그러거든요(웃음). 전 그게 편해요. ‘연예인의 신비’ 그런 게 전 힘들어요. 어깨가 아파와요.
정기자 : 웃기는 건 정말 어려운 거고, 보는 사람들한테는 정말 고마운 거죠. 하지만 그 고마움을 잘 모르기도 하고. 송은이씨는 15년을 교양과 개그 사이를 오가며 방송 하시면서 마냥 웃기지만은 않으셨잖아요(웃음). 폭발력은 없었죠.
저는 그걸 ‘깨작깨작 해왔다’고 해요(웃음).
정기자 : 어떤 철학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정기자 : 뉴턴이 주운 사과를 백설공주가 먹는 광고가 있었죠.
제가 대학 때 했던 것들이라니까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하다 보니 폭발력은 없지만 ‘깨작깨작’ 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송은이는 ‘폭발력은 없지만 자기 몫은 하는 애’가 된 거죠.
정기자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공익성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송은이씨가 무게가 있으니까 그런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하신 거 아닌가요?
처음에 ‘하자하자’를 하면서 인생과 방송 관념이 많이 바뀌었어요. 전 오토바이 타는 아이들이 정말 무서웠거든요(웃음). 하지만 인생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 ‘왜 우리를 공인이라고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처음 하게 됐어요. 사실 공인은 나라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잖아요. 우리는 유명인이지 공인은 아닌데, 그럼에도 책임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하는 프로그램의 성과가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밝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일조하고 있더라고요. 그건 제가 의도한 게 아니거든요. 저는 그냥 PD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웃음). “오토바이 잡아!” 그러면 잡고, “인터뷰 해!” 그러면 무서워도 하고. 그랬을 뿐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매력이 있는 거예요. 집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오고. 그런 작은 변화들에 신이 나더라고요.
정기자 : 전요, 그때 송은이씨를 보고 “아, 저 사람은 생각하고 하는 거다. 분명 철학이 있다” 생각했어요(웃음).
하하하하. 제가 바보처럼 얘기한 건, 다 편집됐어요. 그럴싸하게 잘 말한 것만 내보낸 거죠. 많은 개그맨들이 웃길 수는 있지만 또 많은 개그맨들이 공익성 프로그램은 못하거든요. 거기에 대한 프라이드도 나름 생겼던 것 같고. 일반인을 인터뷰하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저는 그런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대박, 중박, 소박 웃기는 것은 개그맨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공익성은 못하죠. 봉선이가 저보다 웃기지만, 걔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그런 건 아직 못하죠(웃음).
“틀은 스스로 깨고 나와야죠”
예능인은 항상 ‘을’이고, 방송국이 ‘갑’이다. 10년, 20년씩 꾸준히 일하는 선배들이 마냥 존경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벌써 15년째다.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진로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마흔 이후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젠 연애를 좀 했으면 좋겠다. 마음속엔 사랑이 이렇게나 많은데.
장기자 : 또래 남자 MC에 비해서, 여자라서 느끼는 한계가 있었을 텐데요.
개그맨으로서 데뷔 7, 8년까지는 그런 벽을 느끼고 좌절하기도 했어요. 여자 개그맨은 ‘왜 그만큼 인정받지 못할까’ 생각도 했죠. 지금은 포기했다기보다는, 제가 인정받는 제 분야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나이에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좋고 만족스러워요.
정기자 : 자신감인가요, 여유인가요?
가끔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거든요. 아, 젊을 때라고 하니까 갑자기 되게 슬퍼지네(웃음). 그냥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저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장기자 : 지금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개그야’ 무대에 서는 후배들을 보면 어떠세요?
부러워요. 저는 늘 무대에서 하는 콩트, 정통 코미디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그건 개그맨이라면 누구나 다 있어요.
정기자 : ‘유머1번지’ 같은 비공개 코미디요. 꽉 짜여진 콩트.
갈증이 있어요. 2003년인가 SBS에서 ‘코미디타운’이라고 유재석, 이휘재, 정준하, 김한석, 조혜련씨랑 같이 했었어요. 비공개 콩트였죠. 그때 유재석씨하고 저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역할을 했거든요. 시청률은 별로 안 나왔는데 되게 재밌었어요(웃음). 모처럼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오랜만에 하는 콩트라서 다들 열심히 했어요. 그게 육체적으로 힘든 스케줄이에요. 후배들을 보면 대견하고 안쓰럽죠. 저도 하고 싶기는 한데, 그때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장기자 :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치열한 세계를 뚫고 오셨잖아요. 후배들도 같은 길을 갈 텐데.
저는 운이 좋아서 다양하게 했어요. 시트콤도 하고 예능 MC도 하고. 후배들도 더 넓은 무대에서 했으면 좋겠어요. 자기 개발을 많이 해야죠. 운동도 그렇잖아요. 공도 바라보는 방향으로 차게 돼 있잖아요. 코너 짜는 게 품이 많이 들지만 결과가 그렇게 풍족하진 않거든요. 더 이름을 알리고, 사랑받으면서 돈도 벌어야 하잖아요. 후배들은 사실 두려움이 많아요. 정통 코미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작잖아요. 다양한 시장으로 나오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릇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두려워하지 말고.
고민은 있죠. 마흔이 넘으면 어떤 분야든 평생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에 언니 오빠들이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세요. 옛날에는요, 10년 20년 하는 선배들이 무척 대단해 보였어요. 그런데 제가 15년이 넘었더라고요. 마흔부터는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장 진로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요.
정기자 : 진로 외의 고민이 있다면요?
아, 연애를 좀 해야 하는데.
장기자 : ‘무한걸스’에 따르면, 10년 동안 키스 안 하셨다고.
그건 모함이고요(웃음). 그렇지 않습니다. 봉선이가 절 모함하는 거죠. 근데 오래되긴 오래됐어요. 연애 경험이 정말 손에 꼽히는 정도고. 그중에서도 찐하게 연애해본 경험이 없어서. 방송이나 삶에 대해 할 얘기는 많은데, 연애는 정말 젬병이에요. 내 안엔 사랑이 너무 많은데(웃음).
장기자 : 아, “이런 사람이면 좋다” 이상형의 남자는 어떤 사람이죠?
전 눈이 높아요. 제가 존경할 수 있는 분이 좋아요. 그것도 막연하잖아요(웃음).
장기자 : 연애 상대로? 아님 결혼 상대로요?
연애는요, 일단 하고 싶어요. 누가 됐든. 그냥 아무나 막. 확.
겉으로 보기에는 저처럼 무난한 사람이 없어요
지난 1월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 인터뷰’의 주인공 박미선은 송은이의 명민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미선, 양희은, 최강희씨는 이제 가족 같다. 남자친구도 좀 소개시켜주면 좋으련만.
장기자 : 주변에서 언니들이, (박)미선 언니가 다리를 놓아주시진 않아요?
그래야 되는데 그 언니가(웃음) “은이야, 더 즐겨” 이런다니까요. 언니, 나 즐기고 싶지 않아. 구속받고 싶어.
장기자 : 최강희씨, 양희은씨, 박미선씨. 친구 분들과의 유대가 부러워요.
그분들은 다 가족 같아요. 행복한 일이죠. 그중에 제가 제일 평범해요.
정기자 : 박미선씨도 그렇죠. 그때 기사 제목이 ‘가늘고 길게 가는 삶의 가치’였어요.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그분이 절대 가는 분이 아니란 말이죠.
언니도 굵었던 적이 있었죠. 저야말로 진짜 가늘죠. 아시죠? ‘깨작깨작’. 양희은씨는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이시고. 그런 분들하고 제가 ‘연관 검색어’가 됐잖아요. 영광이죠. 강희는 유일하게 휴대폰에 ‘012’로 시작되는 번호로 저장된 애에요. 양희은 선생님은요, 귀신같아요. 사람을 딱 보면 알아요.
정기자 : 송은이씨는요?
저도 유별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드러나기는 저처럼 무난한 사람이 없어요. 어느 자리에 가나 저는 별로 싫은 게 없거든요. 저는 제가 뿡뿡이부터 김구 선생님까지를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활에서는 유별나요. 단적으로, 제가 어떤 분을 (소개로) 만났는데, 능력, 집안 등등 굉장했어요. 그런데 양복 안에 조끼를 입고 오신 거예요. 그게 너무 싫은 거야. 표현은 안 했죠. 왜냐면 저는 겉으로 볼 때는 무난하니까(웃음). 그런 이중적인 면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오타쿠(마니아보다 더 심취해 집착하는 사람을 일컬음) 기질이 좀 있어요. 꽂히면 해야 해요. 책도 딱 집어서 열 페이지 읽었는데 당기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읽어야 돼요. 그런 식이에요.
정기자 : 재능이 많으신 거죠?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게 많은 거죠. 그래서 달려들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거죠. 욕심도 깊이도 없어요(웃음)
“제가 늘 새기고 다니는 말이 있어요”
욕심도, 깊이도 없다는 겸손한 말은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다. 거창한 파격보다 잔잔하게 가는 여운이 좋다. 가슴속에는, 아버지가 써주신 글귀를 품고 다닌다. ‘인일시지분(忍一時之忿)이면 면백일지우(免百日之憂)라’ 한 번의 분을 참으면 백 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이다.
장기자 : 개인기, 유행어, 안티도 없는 송은이씨 캐릭터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확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아요. ‘무한걸스’에서 은근히 새로운 걸 많이 했어요. 섹시 화보도 찍었죠. 그때 제가 가슴선이 배꼽까지 파인 옷을 입었어요. 물론 옷핀으로 다 여미고 촬영했지만, 제 나름의 파격적인 시도였어요. 그러고 보니 거기서도 ‘깨작깨작’ 하고 있네요(웃음).
장기자 : 뭔가 틀을 확 깨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상상은 해봐요. 파격적인 모습. “어떨까? 아마 미쳤다고 하겠지?” 자신이 없어요. 어정쩡해 보일 게 뻔하거든요. 전 제가 어떻게 할지가 보여요.
장기자 :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진행하신다면요?
그것도 역시 사람들하고 말하는 거 좋아하니까 하고 싶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안 시켜주겠죠. 제가 방송국 PD라면, “송은이같이 말도 잘하면서 토크쇼 MC로서 얼굴이 더 되는 사람”을 뽑을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고상하게 하는 거 말고요, 그냥 야외 다니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스타일로 하고는 싶어요. 그게 더 어울리죠? 이를테면 ‘산행 토크’랄지.
정기자 : 그럼 마무리할까요? ‘도발 인터뷰’의 마무리 질문은요,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이에요. 오랫동안 송은이씨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여동생이나 언니 같은 분들께요.
하하, 무슨 말을 하지? 잘해야 하는데(웃음). 오늘 공교롭게도 제가 ‘깨작깨작’이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요. 대단한 꿈을 꾸는 하루하루보다, “쟤를 보니까 사소한 변화나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느끼셨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제가 가슴에 늘 새기고 다니는 말이 있어요. 출처가 「명심보감」일 거예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한문으로 저한테 써주신 얘기거든요. 유일하게 외우고 있어요. 인일시지분(忍一時之忿)이면 면백일지우(免百日之憂)라. “한 번의 분을 참으면 백 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이에요. 마음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하다못해 운전을 하다가도, 그 순간 화를 내면 하루 종일 일진이 사납거든요. 저는 요새 이 얘기를 마음에 품고 살아요. 그게 잔잔한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정기자 : 봉선씨나 신영씨가 아무리 까불어도, 인일시지분이면….
그렇죠. 하지만 그 친구들은 육두문자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웃음).
■진행 / 장회정 기자 & 정우성 기자 ■ 글 / 정우성 기자 ■ 사진 / 이주석 ■ 장소 협찬 / 까사 베니니(02-723-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