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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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이혼, 조카의 죽음, 전신 화상의 고통…
물 흐르듯 편하게 잊고 지내면 좋겠어요”

연기자 생활 27년 중 19년을 ‘전원일기’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삶을 깨달았다는 탤런트 김혜정.
5년 전 남편과 이혼 후, 그림을 그리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얻는다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컬렉션만 1백여 점, 그림 마니아
20여 년 가까이 MBC-TV ‘전원일기’에서 ‘복길이 엄마’로 출연한 탤런트 김혜정(47). 복길 엄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왠지 구수하고 푸근한 시골 아낙의 모습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홍대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정은 우아하고 상냥하며, 해맑은 소녀 같았다.

김혜정은 평상시에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강렬한 역할을 맡아도 아무렇지 않게 소화할 수 있다. ‘강렬한’이란 단어에 기자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더니, 그동안 강한 캐릭터를 꽤 많이 해왔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KBS2-TV ‘아줌마가 간다’에서는 주도적인 성격의 애교가 강한 역할을 했다. 담당 PD마저 “‘전원일기’에 나온 김혜정씨가 맞느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SBS-TV ‘서동요’에서는 매정한 왕비 역할, KBS2-TV ‘장희빈’에서는 암투를 벌이는 상궁 역할을 맡았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MBC-TV ‘사랑과 야망(1986)’에서도 미자를 괴롭히는 강한 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SBS-TV ‘식객’에서 깐깐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매니저로 출연 중이다.

이렇게 다양한 연기 변신 욕구가 많았던 그녀. 하지만 20년 가까이 ‘전원일기’의 복길이 엄마로 살았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릴 때는 ‘전원일기’가 연기 인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연기자가 한평생 특정한 캐릭터로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복길이 엄마라는 브랜드가 평생 따라다니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너무 오래 사랑했던 복길 엄마. ‘전원일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난 뒤에는 허전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일반인들이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가 퇴직하고 나면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식객’ 출연 이외에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그녀는 평소 화실을 다니며 그림 공부를 한다. 그림에 남다른 관심을 두기 시작한 지 벌써 25년째다. 지금까지 컬렉팅한 작품만 1백여 점이 넘는다.

김혜정은 작품을 구입할 때 꼭 작가를 만나 그의 가치관을 듣는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세계가 마음에 들어야만 그림을 구입한다. 최쌍중, 권준, 김일해, 윤장렬 등 그렇게 인연을 맺은 작가들이 이제 미술계 중견이 됐다.

“사람들이 알 만한 작품들은 컬렉팅하지 않아요. 작가가 유명하다거나 돈이 될 것 같아서 그림을 사는 게 아니거든요. 작가의 영혼이나 가치관, 그림 세계를 좋아하고 그 그림을 보면서 감흥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갤러리를 둘러보다 보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이 있어요. 그런 작품을 구입하는 편이죠.”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외국 여행을 다닐 때도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등 꼭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을 들르는 것도 습관이 됐다. 한국에서 반고흐전, 모네전 등 주목할 만한 전시가 열리면 빼놓지 않고 챙겨 본다.

“통장에 잔고가 많아야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행복은 마음으로 느끼는 거니까요. 옷이나 가방은 구입하고 난 뒤 시간이 흐르면 싫증이 나잖아요. 하지만 그림은 싫증이 나지 않아요.”

김혜정은 초등학교 시절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을 도맡아 받을 정도로 그림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녀는 이런 재능을 살려 최근에는 화실을 다니며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 남들에게 보여줄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평화를 느낀다.

최근 김혜정은 SBS-TV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해 2003년 결혼 15년 만에 이혼한 사실을 밝혔다. 현재 전 남편이었던 황청원 시인과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에 가슴에 상처가 됐던 ‘이혼’ 이야기가 다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아요. 내 자신의 상처가 아니라, 전 남편에게도 상처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냥 이렇게 물 흐르듯 조용히 세상의 일부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5년 전 이혼, 조카의 죽음, 전신 화상의 고통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행복하게만 살았을 것 같았던 김혜정. 이혼의 아픔에, 몇 년 전에는 조카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10년 동안 같이 살면서 딸처럼 생각했던 언니의 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외국 무역회사에 다니던 똑똑하고 예쁜 숙녀였다. 언니를 대신해서 김혜정이 화장을 집행하고, 유골을 땅에 묻었다.

“언니가 차마 자기 손으로 묻지 못하겠다고 해서 제가 대신 했어요. 집에 돌아와서 얼마나 통곡했는지 몰라요. 이가 위아래로 부딪혀서 딱딱 소리가 나더라고요. 집에 있으면 그 아이 생각이 나서 집에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매일 사람 많은 찜질방을 찾아서 얼굴에 수건을 덮고 울면서 잤어요. 아마 제가 자식이 있었다면, 조카에게 느끼는 감정과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허망하게 조카를 보내고 삶이란 게 참 무상하다는 생각을 했죠.”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2년 전 또 한 번 큰 시련이 김혜정을 찾아왔다. 요리를 하다가 신체 37%에 화상을 입은 것.
“상반신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화상을 입으면 살이 말린 떡처럼 굳어져요. 팔과 가슴 등에 5백원짜리 동전의 서너 겹 정도를 매일 면도날로 긁어냈어요. 움직이면 살이 베이니까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또 피부가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해파리를 피부에 뿌리면 바닥에 피고름이 뚝뚝 떨어졌어요. 너무 끔찍하고 처참했죠. 성형외과 치료라서 마취도 할 수 없었어요. 그 모든 걸 다 이겨냈어요.”

3도 화상을 입은 김혜정은 회복이 불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사도 깜짝 놀랄 정도의 기적적인 회복을 했다. 1년 정도의 통원치료를 더 거친 뒤, 다행히 원래의 피부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이런 대형 사고가 일어난 이유는 바로 요리 때문이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태어난 어머니 덕분에 늘 집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식구들이 모이면 항상 잔칫집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김혜정도 음식 만들기를 즐긴다. 전문가에게 빵 굽고, 쿠키 만드는 것도 배웠다.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카메라에 담아와, 집에서 재현해본다.
“제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요리하는 동안에 사람이 굉장히 단순해지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재료를 배합해서 맛있게 만들까 그 생각만 하니까요. 먹는 즐거움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몰라요.”


봉사활동은 남보다 나를 돕는 일
보통 스케줄이 없을 때에는 그림 그리는 것 이외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목욕시키는 자원봉사를 한다. 4시간 반 동안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 혈액 투석을 받는 환자를 지압해주기도 한다. 병원에 한번 다녀오면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밤새 끙끙 앓는다. 하지만 김혜정은 이런 일들이 봉사라기보다 ‘나 자신을 살리는 일’에 가깝다고 말한다.

“환자 몸을 지압해주고, 목욕을 시키다 보면 내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내가 건강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풍요롭고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을 만나고 오면, 다음날은 에너지로 충만하죠. 사람이 물질이나 개인적인 욕심, 성공에 치중하면 끊임없이 피폐해지거든요.”

더 젊었을 때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해외로 입양 가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했다. 아이들과 하루를 지내고 오면, 온몸이 욱신거렸다.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정신적인 피로도 컸다. 하지만 이제는 내공이 생겨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좀 더 편안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혹시 얼굴이 알려진 연기자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정반대라고 한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제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봉사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좋아하거든요. 제가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이 기뻐하니까 저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죠.”

이 밖에 모교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특히 결손가정의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꿈’에 대한 좋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잘못된 생각을 할까봐 부모 역할이라도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확신과 신념을 갖고 미래에 대해 도전하라는 내용의 강의는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5년 전 이혼, 그림과 봉사로 삶을 배우는 김혜정의 인생예찬

“제 에너지를 세상을 더 밝고 좋게 만드는 데 쓰고 싶어요. 나이가 드니까 점점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네요.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되고요.”


작은 카페에서 지인들과 공연하는 게 꿈
웃음이 많은 김혜정은 퍽 상냥한 말씨를 지녔다. 스팸 전화가 오더라도 공손하고 친절하게 응대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막 대하는 법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이런 성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배어 있는 김혜정. 매력적인 눈웃음에 평생 성질 한번 내지 않을 것 같은 ‘소녀다움’이 묻어나온다. 중년의 나이에 어떻게 그런 순수함을 가질 수 있을까.

“늘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게 되면, 인생이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상황은 변하지 않아요. 내 생각을 변화시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보기와는 달리 김혜정의 운동 실력이 제법이다. 시간이 날 때는 산악자전거, 빠르게 걷기, 하프 마라톤 등에 도전하기도 한다. 2시간짜리 하프 마라톤 코스는 벌써 두 번이나 완주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열심히 뛰다 보면, 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또 등산도 좋아해서 충녕산, 태백산, 북한산 등을 자주 탄다.
배우 김혜정의 꿈은 거창한 연기대상도, 대배우의 찬사도 아니다. 그저 크든 작든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배우로서 욕심을 낸다면 ‘저 배우를 보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정도? 한 가지 남은 김혜정의 꿈은 연기 인생 30주년이 되는 해에 아담한 무대가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올해가 연기 시작한 지 27년째니까 3년 뒤네요. 지인들을 모두 불러서 내 짤막한 일상과 그림이 있는 책을 선물하고, 내가 그린 그림을 전시했으면 좋겠어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은 요리를 먹고, 자유롭게 평화롭게.”

인터뷰가 진행되는 하얀색 카페를 보면서도 “이런 곳에서 공연을 해도 괜찮겠다”며 구석구석 열심히 보던 김혜정은 이내 정말 ‘꿈’일 뿐이라 실현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늘 긍정적인 김혜정의 마인드가 그녀의 오랜 꿈까지 이루어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스노브(02-325-5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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