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유채영을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브라운관 속 유채영은 거침없고 솔직하며 코믹한 여자지만,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일까? 직접 만나 들여다보니 유채영 안에는 전혀 다른 그녀가 숨어 있었다.
유채영(35)이 결혼을 한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놀랐고, 그 다음엔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그녀의 ‘투신개그’를 볼 때마다 박장대소하는 한편, 가슴이 조마조마한 것이 마치 친정엄마 같은 마음이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축하한다는 말로 첫인사를 전했다.
“요즘에는 좋은 일만 있네요. 방송에서도 많이 불러주시고 시청자들도 사랑해주시고. 제 캐릭터가 워낙 강하고 ‘오버’해서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걱정도 많이 했어요. 다행히 제 얼굴만 봐도 즐겁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열심히 한 만큼 돌아오는 게 있어서 좋네요.”
그녀는 자신만의 유쾌하고 명랑한 무기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창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솔직한 입담과 여자 연예인이라면 꺼릴 수밖에 없는 과잉 액션을 자처하며 예능계의 잇따른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현영이 소속된 봄날 엔터테인먼트와 3년 계약을 맺으며 활동에 가속도를 붙였다. 혼자 회사를 차려 고군분투했던 5년 전을 생각하면 요즘은 그야말로 감사함의 나날이다.
“2003년에 ‘쉐이크’를 타이틀로 한 앨범 「시크릿 다이어리」를 내고 직접 회사를 차려서 활동했어요. 혼자 많은 일을 하려고 보니 너무 벅차더라고요. 그때는 당장 눈앞에 놓인 것만 생각했기 때문에 실수도 많았고요. 금전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때가 제 연예계 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슬럼프는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천형과 같은 것이다. 유채영도 누구 못지않게 호된 슬럼프를 겪었다. 하루에도 열두 번 그만둘까, 고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 앓았다. 보기와는 달리 유채영은 무척 내성적이다.
“내가 가수를 그만두고 살 수 있을까, 그만둔다면 이제 뭘 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 끝에 ‘한 가지 장르만 고집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앞으로 나에게 오는 기회는 무엇이든 잡고보자며 이를 악물었어요.”
그렇게 마음 모질게 먹으니 세상에 못할 일이 없겠다 싶더란다. 연기도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들어오는 배역은 단역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차곡차곡 이미지를 만들어온 결과, 오늘 우리가 아는 유채영의 이미지가 완성됐다. 전에 없었던 ‘파격적인’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가끔은 망가지기 싫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술 한 잔 못하는 ‘집순이’ 유채영은 내성적인 여자
기자 역시 유채영의 데뷔가 1994년 그룹 ‘쿨’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보다 훨씬 전인 1989년, ‘푼수들’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푼수들요?” 되물으니 ‘20년 전의 소녀시대’였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했고, 중학교 때까지는 발레리나를 꿈꿨어요. 원래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가수가 된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죠. 그런데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여학생」이라는 하이틴 잡지 편집장을 만나면서 제 인생이 바뀌었죠. 저를 보시더니 대뜸 ‘너는 방송을 해야겠다’며 약도를 그려주셨어요. 그렇게 잡지와 인연을 맺고 1989년 3월호 표지모델로 데뷔했어요.
잡지가 발매되자마자 거짓말처럼 연예기획사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길로 계약을 하고 음반을 냈다. 비로소 유채영의 존재를 알린 ‘쿨’ 활동은 오래지 않아 접고, 1999년 솔로 음반을 발표했다. 이후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된 앨범도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활동을 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데뷔 20년 차 베테랑 연예인이지만 꾸준히 활동하지 못했으니, 언제나 신인과 다를 바 없는 마음가짐이 성공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쿨에서 탈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많이 받았어요. 물론 나오자마자 후회는 했죠(웃음). 그때는 제 노래를 하고 싶어서 나왔어요. 쿨은 워낙 가족 같은 사람들이에요. 가수 이전에 좋은 친구이자 오빠, 동생이었고요. 지금은 제가 음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 쿨이 잘 돼서 속상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마 둘 다 잘 안 됐으면 지금도 서로 보기 힘들었을 거예요.”
20년의 연예계 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이 길로 들어선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을 표지모델로 써준 그 편집장에게는 여전히 고마운 마음이다.
방송활동을 하고 싶어도 여건상 나서지 못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원없이 방송에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방송생활이 만만한 건 아니다. 일단 녹화가 시작되면 아낌없이 에너지를 쏟아 붓지만 얼마 전 ‘무한도전-테리비안의 해적’ 편에 출연했을 때에는 ‘버라이어티는 전쟁’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유채영을 향한 기대치는 이미 높아졌다. 이제는 개그맨을 웃겨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프로그램에서 20, 30개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그것도 몸을 던져 웃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래도 타고난 기질이 있으니까 저렇게 웃기는 거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방송 녹화 전 긴장해 있는 그녀에게 PD들은 ‘하던 대로 하라’는 사인을 보낸다. 사실 유채영은 지극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여자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에요. 항상 방송에서 오버하는 모습을 봤는데, 실제로 만나면 너무 조용하니까 ‘쟤가 나를 싫어하나’ 오해하는 분들도 있으세요. 친해지면 ‘방송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밝은 모습이 좀 나오죠. 남자든 여자든 정말 내 사람이다 싶으면 최대한 진지하고 신중하게 만나요. 한 사람을 사귀더라도 오래 두고 보는 스타일이고요. 저는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아껴요. 너무 자주하면 흔하고 가벼워질까봐.”
유채영은 얼마 전 황보와 함께 ‘술 잘 마실 것 같은 여자 연예인’에 뽑혔다. 정작 술은 한모금도 못하는데 말이다. 실제 유채영은 시끄러운 클럽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채영이라는 사람은, 사실 이런 사람이다.
“성격으로만 따지면, ‘방송 부적합’이죠. 방송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던져야 하는데, 제가 그러지 못하거든요. 특히나 요즘같이 예능계 분위기가 한껏 독해졌을 때에는 제가 욕을 하길 바라기도 해요. 제가 막춤 추고, 웃기고, 망가지고… 다른 건 다해도 누군가한테 막말하고 상처 주는 건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한 살 아래, 연상 같은 예비 신랑
유채영은 9월 28일 한 살 연하의 사업가와 결혼식을 올린다. ‘권상우·손태영’ 커플과 같은 날이다. 관심이 한쪽으로만 쏠려 아쉽지 않느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뛴다.
“손태영씨랑은 전에 드라마를 같이한 적이 있어서 친분이 있어요. 그때 둘이서,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서로 축하해주자고 했거든요. 이렇게 같은 날 하게 될 줄은 몰랐죠. 오승은씨도 같은 날 결혼하던데, 그날 결혼하는 분들은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예비 신랑과는 열아홉 살 때 만나 15년 넘게 친구로 지내오다, 2년 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사랑을 키웠다. 가장 힘들었을 때 용기를 불어넣어준 사람이다.
“활동 공백 기간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매일 연습실에서 음반 준비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것도 피하며 지냈는데, 그때 그 친구가 큰 힘이 됐죠. 한번은 몸살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아팠는데, 연락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때 그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더니 단숨에 달려왔어요. 병원에 데려다주고 죽도 사주고. 그때 ‘이런 사람이 남자친구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도 저한테 그런 마음이 있었더라고요.”
“제가 시집 못 갈 줄 아셨대요. 사실 저도 굉장히 회의적이었거든요(웃음). 어떻게 20년 동안 연예계 생활을 했는데 한 명도 대시한 사람이 없을 수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한동안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냥 ‘일과 결혼하자’고 했어요. 저를 독신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분이 바로 신랑 될 사람이에요(웃음).”
사실 유채영은 10년 전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온 거였다. 아버지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그녀 앞에 불쑥 나타난 아버지.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10년 전 제가 ‘이모션’ 앨범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 첫 방송 녹화 날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방송 활동을 하며 제가 가장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는 잊은 지 오래였어요. 자라면서 아버지를 본 적도 없고, 내가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아버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데 멀리서 저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냥 ‘아빠’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저랑 얼굴이 꼭 닮은 거예요. 그때 아버지가 간암 말기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딸을 꼭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오셨던 거였어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아버지는 “아빠 역할 못해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딸은 “그런 거 없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라”고 위로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채영아, 내가 못해준 만큼 너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내가 하늘에서 도와줄게”라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아버지가 정말 도와주셨나봐요. 신랑이 꼭 그런 사람이에요. 항상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소속사 없을 때에는 거의 제 매니저 역할을 도맡아 했어요. 나이는 저보다 한 살 어리지만 항상 오빠처럼, 아빠처럼 잘 챙겨줘요. 신랑이 7남매 중에 막내거든요. 형과 누나가 일본,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다 흩어져 살고 계세요. 처음 큰아주버님을 뵙고는 아버님인 줄 알았어요. 신랑이 형님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제가 많이 어리니까 다들 예뻐해주세요.”
신혼여행은 예비 신랑의 누나가 살고 있는 하와이로 다녀온 뒤 곧바로 10월부터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다. 결혼하고 나서도 망가지는 모습, 볼 수 있을까?
“결혼하고 나서요? 아무래도 달라지는 게 있긴 하겠죠(웃음). 갑자기 변하면 이상하잖아요. 연기든, 버라이어티든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유채영이라는 사람을 100% 알기 전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해서 외면하지 마시고 또 다른 모습도 기대해주세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 장소 제공 / 카페 별(02-548-7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