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서울대 재입학한 밤무대 가수 현자의 꿈

23년 만에 서울대 재입학한 밤무대 가수 현자의 꿈

“밤무대 가수가 된 것도, 다시 공부를 하게 된 것도 모두 소중한 기회”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23년 차 밤무대 가수가 서울대생이 됐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공부도 노래도 우등생이고 싶다는 가수 현자. 먼 길을 돌아 다시 배움의 자리에 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3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학교, 인생만큼 치열했던 3년의 시간
23년 만에 서울대 재입학한 밤무대 가수 현자의 꿈

23년 만에 서울대 재입학한 밤무대 가수 현자의 꿈

연이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중순, 서울대 교정은 오랜만에 내린 비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기자를 서둘러 학교 카페테리아로 안내한 현자씨(43, 본명 양미정)의 손에는 편지 한 통이 들려 있었다.

“충주에 계시는 어느 교수님께서 학과 사무실로 편지를 보내셨어요. 어렵게 시작한 공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대학원까지 가라고 하시네요.”

현자씨는 요즘 더없이 행복하다. 얼마 전 KBS2-TV ‘인간극장’에 현자씨의 사연이 소개되며 전국 각지에서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담은 편지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자씨는 23년 만에 서울대에 재입학한 늦깎이 대학생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녀의 직업이 밤무대 가수라는 것. 1984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지난 2006년 다시 학교를 찾았다. 복권 당첨 같은 재입학 소식을 들은 후 정신없이 달려온 지 벌써 3년이다.

“처음 학교를 찾아갔을 때는 재입학이 될 거라고 상상을 못했어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갔던 거죠. 학교 쪽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래요. 신청하고 3일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정말이지 기다리는 3일이 3년 같더라고요.”

복학 개념으로 2학년에 재입학해 어느덧 아동가정학과 졸업반이지만 공부와 일을 병행한 3년 동안의 시간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꼬박 수업을 듣고 밤무대 일까지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매일 쓰러지듯 잠이 드는 일상이 고달플 만도 한데 그녀에게서 피곤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요즘에도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업소에서 노래를 불러요. 학교 다니기 전에는 새벽까지 일하고 들어와 오후 늦게까지 자곤 했는데 그런 생활과는 180도 달라진 거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부지런해진 거예요.”

그토록 꿈에 그리던 학교로 돌아왔지만 재입학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했다. 한 과목당 예닐곱 개가 넘는 과제물과 시험을 치르며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23년 전 학교를 그만둬야 할 정도로 힘들었던 삶의 순간만큼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무척이나 즐겁고 한순간 한순간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캠퍼스에서는 늘 혼자였어요.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가 어색하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이 꺼려 할까봐 조심스러웠죠. 그런데 나이 들어 혼자 공부하려니 너무 어렵더라고요.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고 보니 학교 시스템도 제가 입학했을 때랑 완전히 달라졌고요. 당장 수업 자료를 컴퓨터로 다운 받아야 하는데 20년 동안 노래만 부른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1년 정도 혼자 끙끙 앓다가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죠. 지금은 많이들 도와줘요. 교수님과도 동년배니까 자주 찾아가서 밥도 먹고 조언도 구하고요. 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주위에 도움을 받을 줄도 알게 되더라고요. 안 그랬으면 이 어려운 공부를 저 혼자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특별한 케이스로 학교에 돌아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 대우를 받는다거나 다른 학생들보다 수월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식뻘 되는 어린 학생들과 경쟁하기 위해 집 안 곳곳에 필기한 내용을 붙여두고 설거지할 때나 청소할 때 틈틈이 외우는 건 기본, 운전할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3시간이 넘는 수업시간 내내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든 내용을 받아 적었다. 하루 네 군데 나가던 업소도 두 군데로 줄여가며 공부한 끝에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가운데가 현자씨. 학창 시절부터 현자씨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사진 왼쪽) 84년 서울대학교 신입생 시절.(사진 오늘쪽)

가운데가 현자씨. 학창 시절부터 현자씨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사진 왼쪽) 84년 서울대학교 신입생 시절.(사진 오늘쪽)

“얼굴 찌푸려봤자 나만 힘들어요.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많은 분들이 대학원에 진학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격려해주시는데 저도 욕심이 생겨요. 이 힘든 공부를 또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여기까지 왔는데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일단 무사히 이번 학기를 마치고 생각해보려고 해요.”


스무 살 꽃다운 대학생에서 밤무대 가수 되기까지
현자씨의 고향은 전라도 광주다. 세살 때 부산으로 내려온 뒤 부산에서 ‘3층 기와집’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련은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며 시작됐다. 온 가족이 1백만원도 안 되는 돈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공부 잘하고 활동적이었던 현자씨는 갑작스레 닥친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에 자존심 뒤로 숨어버렸다.

“중학교 때 전교 3등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도 항상 반에서 5등 안에는 들었죠. 고3 때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7만6천원이라는 돈을 주시는 거예요. 영문도 모르고 받았는데 알고 보니 오빠에게서 우리 집안 사정을 들은 선생님이 ‘미정이네가 어려우니까 용돈을 모아주자’고 해서 모인 돈이더라고요. 오빠가 너무 미웠어요. 그때부터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매점도 안 갔어요. 어려서부터 자존심이 센 편이었는데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상처를 입은 거죠. 대학 입학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학교 측의 권유로 서울대에 원서를 넣었어요. 입학 통보를 받고도 갈 엄두를 못 냈죠.”

다행히 선생님이 등록금의 3분의 1을 내주시고 큰오빠가 나머지를 모아서 서울대학교 가정학과에 들어갔지만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공부는 사치라고 느껴졌다. 그녀는 대학 입학 첫해를 ‘지옥이었다’고 표현했다.

“다른 아이들은 한참 미팅하고 놀러 다닐 때 저는 끼니 걱정을 했어요.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토스트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식사를 해결했어요. 항상 오늘은 어떻게 끼니를 때울까, 애들한테 책은 어떻게 빌릴까 걱정이었죠. 결국 지금은 공부할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가족 몰래 휴학계를 냈어요.”

휴학 후 분식점에서 시급 8백원을 받고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명동의 분식점을 떠올리며 현자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 당시 제 유일한 낙이 창고에 들어가서 감자 깎는 거였어요. 제 초라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있으면 마음이 편했어요. 그리고 점심시간이면 비빔냉면을 양껏 말아서 돼지처럼 먹는 거예요. 그때는 왜 그렇게 먹는 것에 집착했는지….”

꽃다운 나이에 일류 대학에 입학하고도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상처는 그렇게 그녀의 가슴에 커다란 헛헛함으로 남았다.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래가 단 한 줌도 손에 잡히지 않는 절망으로 바뀐 뒤, 그녀에게 찾아온 한 줄기 희망이 바로 ‘노래’였다.

“군대에서 제대한 작은오빠가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그러지 말고 밤업소에 나가서 노래를 불러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거든요. 교무실에도 불려가서 노래 부르고 학교 행사 있을 때마다 노래는 맡아 놓고 할 정도였어요. 작은오빠의 말을 듣고 업소에 찾아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15분 동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니 만원을 주더라고요. 그때는 만원이 큰 돈이었거든요. 일찍 나가서 대기실 청소도 해놓고 선배들 구두도 닦아가며 싹싹하게 일했더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한창 바쁠 때에는 하루에 열세 군데에서 일한 적도 있어요. 노래도 하고 돈도 벌고, 이제 내 삶을 찾았구나 했죠.”
23년 만에 서울대 재입학한 밤무대 가수 현자의 꿈

23년 만에 서울대 재입학한 밤무대 가수 현자의 꿈

열세 군데나 되는 업소에서 노래를 했다고, 꼭 채운 13만원을 받은 것도 아니다. 떼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돈은 모였다. 공부가 사치라고 생각했던 시절, 당시 그녀에게 절실했던 건 돈을 벌어서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자신도 굶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학생에서 밤무대 가수로 한순간에 인생이 바뀐 것에 대해 원망은 없었을까?

“스스로 ‘삼류 인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나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돈을 버는 프로라고 생각하지만, ‘밤무대 가수’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죠. 무대에서 노래 부르다 손님들이 던진 술병에 맞기도 하고, 몸이 부서질 듯 아플 때에도 웃으며 노래를 불러야 했지만 떳떳하게 내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저를 잡아주는 버팀목이 됐어요. 흥청망청 분별없이 사는 주위 환경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자부심 덕분이었어요.”


공부는 다시 찾은 기회, 노래는 나의 평생 직업
노래는 그녀에게 행운이었다. 경제적 안정을 가져다 준 보물이기도 했다. 진심으로 노래 부르는 일을 좋아했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하지만 노래도, 돈도 못 다한 공부에 대한 미련까지 채워줄 수는 없었다. 꿈을 꿔도 항상 공부하는 꿈만 꿀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런 그녀에게 2005년에 냈던 음반이 예상치 못한 계기를 만들어줬다.

“음반을 내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어요. 업소에서만 활동했던 저에게 흔치 않은 기회였죠. 그런데 DJ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하겠는 거예요. 함께 나온 다른 가수들은 다들 말도 잘하는데 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내가 20년 동안 노래만 부르느라 정말 단순하게 살았구나, 바보가 됐구나. 지금 이렇게 방송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더라고요.”

노래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현자씨는 다른 가수들이 부르지 않는 노래나 팝송을 잘 불렀다. ‘어떻게 해야 노래를 더 잘할까’, ‘화장은 어떻게 해야 더 예쁠까’, ‘내일 의상은 무얼 입을까.’ 오직 무대에 관련된 문제만 머리에 담고 살다 보니 그야말로 ‘멍청이’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도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게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에조차 낄 수 없다는 충격에 마음을 다잡은 게 그때였다. 그녀는 다음날 바로 학교를 찾아갔다.

“다시 서울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수능을 치르고서라도 학교에 갈 심산이었어요. 다행히 학교에서 받아줘서 꿈에도 그리던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초반에는 너무 의욕만 앞섰어요. 첫 수업을 듣는데 강의 자료를 컴퓨터로 다운 받는 거예요.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학생들에게는 차마 창피해서 못 물어보고, 조교한테 도움을 청했어요. 그땐 제가 컴맹에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못 보낼 정도로 ‘기계치’였거든요. 23년이라는 간극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주위에서 ‘밤무대 가수가 공부는 해서 뭐 하나’라는 따가운 시선도 날아들었다. 동료들 중 ‘가수만 하는 것도 힘든데 무슨 얼어 죽을 공부냐’며 말리는 이도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한시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강행군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자신을 받아준 학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기록한 첫 성적이 3.44. 1984년도 1학년 당시 학점이 2.72였으니 이만하면 합격점이지 싶다.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고 나니 예전 자신처럼 어렵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는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가 점심 먹을 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가슴이 아파서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주고 얼른 강의실을 나왔어요. 그 애가 미안해할까 봐요. 다음날 20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줬는데 그때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나중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더라고요. 정말 고맙다고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대는 바뀌었지만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참 많아요.”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녀는 하나씩 꿈을 이루고 있다. 내년 2월 학사 졸업을 하면 그동안 미뤄왔던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도 낳아 알콩달콩 살고 싶다. 오는 9월 24일에는 학교에서 장학 기금 마련 콘서트도 연다. 한번도 개인 가수의 콘서트가 열린 적이 없는 서울대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에 선뜻 손을 들어줬다. 3만원과 5만원으로 가격이 책정된 티켓은 뜻이 있는 사람에게만 팔기로 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와서 즐기면 된다.

“제 23년 가수 생활의 결실이기도 해요. 콘서트 수익금 전액이 장학금으로 쓰일 거예요.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돈이 없는 사람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티켓을 사서 오실 분들은 좋은 일 하신다는 생각으로 보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스스로 운명을 두 번 거슬렀다고 말한다. 스무 살 공부할 시기에 밤무대 가수가 된 것이 첫 번째, 3년 전 밤무대 가수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이 두 번째다. 23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왔지만 다시 서울대생이 됐다고 노래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모자람을 채우고 더욱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가수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기 때문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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