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선배와 함께 연기 해보고 싶은 꿈 이뤘어요”
하정우는 양파 같은 배우다. 벗기면 벗길수록 계속해서 숨은 속살이 드러난다. 영화 ‘추격자’의 살인마, ‘비스티 보이즈’의 호스트, ‘멋진 하루’의 철없는 백수까지 올해 개봉한 매 작품마다 놀라울 정도로 색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칸의 여왕 전도연과의 만남으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멋진 하루’를 통해 만나보는 하정우의 매력.
영화 ‘멋진 하루’는 1년 전에 헤어진 남녀가 3백50만원이라는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하정우는 가진 것이 없어도 마냥 인생이 즐겁기만 한 철없는 백수 ‘병운’ 역을 맡았다. 인생은 즐기면서 반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하릴 없이 경마장을 들락날락하는 것이 병운의 취미. 어느 날 그는 1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 희수(전도연)와 마주친다.
“어~, 네가 여기 웬일이야?”
“돈 갚아!”
1년 전 꿔준 3백50만원을 당장 갚으라는 희수의 으름장. 그렇게 병운은 희수를 대동하고 아는 여자들을 만나러 다닌다. 3백50만원을 빌리기 위해서다. 극중 병운은 밝고, 자상한 데다가 잘생긴 낙천주의자다. 그 덕에 주변 여자들에게 인기도 높다. 이런 병운의 캐릭터에 대해 하정우는 “낙천적이고 여유를 즐기는 성격이 나와 무척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선배인 전도연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분석했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전도연과 감독, 많은 스태프들이 하정우를 ‘조병운’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행동은 현실과 연기를 넘나들었다.
충무로에 떠오르는 변신의 귀재
3년 전 SBS-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대통령의 딸 전도연을 경호하는 보디가드로 출연했던 하정우. 그가 3년 만에 전도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를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에 대해 전도연은 “3년 전에도 하정우씨는 이미 좋은 배우였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이 빠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그의 연기 열정을 치켜세웠다.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씨를 보고 언젠가 함께 연기를 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는데, 이렇게 일찍 만날 수 있게 돼서 무척 기뻐요. 전도연씨가 경력상 엄청난 선배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같이 연기할 때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먼저 친구처럼 편안하게 리드를 잘해줘서 즐겁게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정우의 연기를 향한 열정은 그가 쏟아내는 작품 리스트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영화 ‘멋진 하루’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는 올해에만 벌써 세 편이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추격자’에서는 특별한 원한 관계가 없음에도 살인을 즐기던 섬뜩한 살인마를, 4월에 화제를 모은 영화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폼생폼사’를 외치는 호스트 역을 맡으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갔던 그가 선택한 다음 작품이 바로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한 낙천주의자 백수 역할이다. 이쯤 되면 충무로에서의 변신의 귀재라는 타이틀이 제법 잘 어울린다.
“감정의 변화가 격한 캐릭터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하정우. 하지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발견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작품에 달려든다. 하정우의 가열 찬 엔진은 아직 쉴 때가 아닌 듯하다. 벌써 차기작도 정해졌다. 그가 선택한 영화는 ‘미녀는 괴로워’로 히트 감독의 반열에 오른 김용화 감독이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그리는 영화 ‘국가대표’다. 카멜레온 같은 배우 하정우가 앞으로 어떤 연기로 여심을 사로잡을지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인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