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남을 때리며 웃음을 주는 연기는 제가 독보적이었죠”


요즘 개그맨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능 프로그램의 MC나 패널이 되는 것이다. 인기와 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콩트나 코미디는 시청자도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니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시대의 흐름이겠지만 그래도 아쉽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콩트를 만들던 그분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그렇게 떠오르는 얼굴 하나. 늘 누군가를 발로 차고 박치기로 제압하던 ‘길 떠나는 은장도’의 개그우먼 김성은이 생각났다. 여기저기 수소문했더니 떡하니 나오는 소리가, “성은이,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아니, 왜? 어렵게 얻은 그녀의 휴대전화 번호를 재빠르게 눌렀다.

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오직 반가운 마음뿐
“만나시죠! 저희, 꼭 만나시죠!” 조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우선 만나자고 보챘다. 김성은, 그녀는 잠시 당황하다가 특유의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인터뷰를 허락했다. 전화를 끊고는 ‘꼭 보자’는 문자메시지까지 넣어 다짐을 받았다. 정말 그녀가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김성은(40)의 이단 옆차기가 그리웠다. 요즘같이 우울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이 그리워진다. 왜 슬랩스틱 코미디 장르가 점점 사라지는 걸까. 요즘 같은 세상에 단순한 볼거리가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을 텐데 말이다.

김성은은 MBC 코미디 공채 출신으로 데뷔했다. 개그우먼 이경실, 정재윤이 동기다. 첫 작품은 1998년 코미디 프로그램 ‘청춘만만세’ 중 박미선, 최홍림과 함께 교복을 입고 나와 “선생님, 답답해요. 왜 몰라주는 거예요~”라는 유행어를 남긴 ‘청춘교실’ 코너다. 그리고 1993년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소복을 입은 과부 역으로 출연했다.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이단 옆차기를 날리던 ‘길 떠나는 은장도’. 지금 생각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늘 강한 여장부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특히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드는 액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인기와 더불어 상도 많이 따라왔다. 1993년 여자 코미디 부문 우수상, 1996년 MBC 여자 코미디 부문 우수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10여 년을 건너뛰고 2008년 그녀를 만났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10여 년. 그 시간을 찾기 위해 오늘 김성은을 만난다. 아직 결혼을 안 했다니 세속적인 궁금증이 증폭되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 장소에 나온 김성은은 외모만큼은 10여 년의 세월을 녹아 없애버렸다. 살짝 통통해진 모습이 원래 그녀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전화가 왔을 때 참 의아했어요. 뭘 취재하겠다는 건지, 난 한 게 없는데? 혼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중간에 나중에 하자고 할까도 생각했다니까요.”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김성은이 요즘 뭘 한다는 소식은 접하기 힘들다. 인명 검색만 해도 ‘김성은’이라는 연예인은 그녀를 포함해 4명이나 나왔다.
“동명이인 연예인들이 어느새 참 많아졌죠. 사실 저는 이름만 대면 모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진짜 제게 관심이 많았던 분이 아니라면 ‘과부 했던 애’ 하면 아~, 하고 생각나는 정도죠.”
그녀도 몸 사리지 않고 날아다니던 ‘은장도’ 시절이 그리운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회포 푸는 심정으로 10여 년 전 이야기를 좀 더 해봤다.


날고 뛰던 ‘은장도’ 시절
“그렇게 날고 뛰었는데 다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참 신기해요. 체질이었나 봐요(웃음).”
김성은은 2남 1녀 중 둘째다.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남자처럼 컸다. 태권도를 배웠다. 운동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학창 시절, 달리기로는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단다. 뛰다 보면 언제나 1등이었다.

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어머니가 딸 하나 있는데 운동선수 시키기 싫다고 ‘일부러 달리기에서 져야 한다’고 하셨죠. ‘일요 큰잔치’라는 프로그램 기억나세요? 연예인들이 나와서 운동 경기를 펼치는, 그때 경기를 하다 3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한 거예요. 워낙 그런 연기가 익숙하다 보니 낙법이 몸에 밴 거죠.”

‘길 떠나는 은장도’는 그녀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었을 콩트였다. 일명 ‘웃기게 때리는 연기’는 그녀가 독보적인 존재였다. ‘은장도’의 성공 이후에 비슷한 아류 코너들이 타 방송사에 생기곤 했으니까.

“저도 제가 그렇게 높이 뛰고 차는지 몰랐어요. 차는 것만 봐도 웃기다고 해주셨으니까요. 녹화를 하다 보면 다른 프로그램의 PD들이 와서 구경하다 웃겨서 쓰러지곤 했으니까요. 제가 말보다는 몸으로 웃기는 게 적성에 맞나 봐요(웃음).”

그렇다고 사고가 한 번도 없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청춘행진곡’에서 그녀는 조혜련, 서경석과 함께 ‘울 엄마’코너의 ‘이쁜이 엄마’로 출연했다. 그때 몸 연기를 하다 갈비뼈에 금이 간 적이 있다.

“리허설 때는 잘했는데 녹화 중 동네 주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어요. 사람들이 양쪽으로 다 피하더군요. 근데 그 뒤에 각진 의자가 있었던 거예요. 바로 부딪쳤죠. 제가 웬만하면 아픔을 못 느끼는데 그날은 숨쉬기가 곤란하더라구요. 병원에 갔더니 뼈에 금이 갔대요.”

김성은은 슬랩스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점점 사라지면서 설 자리를 놓고 고민하게 됐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의 기회가 생겼다.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다.


어린이 프로에 매진한 10년
“코미디를 하고 있을 때, 어린이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왔어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데 마녀 캐릭터라는 거예요. 마녀라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승낙했죠.”

그녀의 잃어버린 10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오전 7시 45분에 방영되는 KBS-TV ‘TV유치원 하나 둘 셋’의 ‘깔깔 마녀’로 활동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녀를 잃어버렸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소홀했던 것이다.
“지금은 좀 쉬고 있어요. 그렇지만 코미디를 하지 않은 1996년부터 최근까지 어린이 프로그램을 해왔어요. 한 번도 쉰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제가 쉬는 줄 알아요. 어린이 프로그램의 한계인 것 같아요.”

깔깔 마녀는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캐릭터다. 아이들이 그녀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8시가 넘기 때문에 학교를 지각하기 일쑤란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깔깔 마녀를 더 이른 시간에 보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주로 심술을 부리고 난 뒤 나중에 반성하고 사과하는 캐릭터로 아이들이 자신들과 동일시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힘든 부분도 있어요. 나이 마흔이 돼서 말이죠(웃음). 아이들이 ‘깔깔이 마녀야!’ 하고 놀리면 기분 나쁘잖아요. 그래서 화를 내면 아이들이 이번에는 ‘깔깔이 할멈!’ 이래요. 그래도 이제는 그런 모습이 다 예쁘고 귀엽네요.”

아이들이나 혹은 아이가 있는 엄마밖에 관심을 갖지 않는 어린이 프로그램이지만 자부심도 있다. 대본이 나오면 녹화 전까지 표정이나 동작들을 모두 분석한다. 카메라 리허설 없이 시작해도 NG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 당시에 ‘왜 인터뷰 요청이 안 들어오나’ 생각했거든요(웃음).”

아이들을 10년이나 봐온 그녀다. 아이가 귀여워서라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텐데 말이다. 김성은이 미혼이라는 것이 납득이 안 간다. 사실, 처음부터 묻고 싶던 질문을 이제야 던져본다.

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추억의 콩트 ‘길 떠나는 은장도’의 주역 개그우먼 김성은

아직 결혼 안 한 이유
“활동을 할 때는 바빠서 소개받기도 힘들었어요. 그리고 좀 여유가 생겨도 인연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더라구요. 제가 눈이 높은 줄 몰랐는데 알고 봤더니 높더라구요. 얼굴 웬만큼 되고, 경제적으로 살만 하고, 그리고 착한 사람. 사실 이렇게 완벽한 남자는 별로 없지요. 그걸 깨닫기까지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그녀는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독립을 하면 시집을 갈 수 있을 거라는 말에 1년 동안 따로 떨어져 살아봤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저는 18층에, 엄마는 5층에. 이렇게 따로 떨어져 살아봤어요. ‘밥 먹으러 내려와라’ 하면 밥 먹고 그대로 앉아서 엄마와 얘기도 하고 TV 보다가 결국 안 올라가는 거예요. 위에서 혼자 뭐 하겠어요. 베개, 옷, 살림살이도 조금씩 가지고 내려왔죠. 결국 1년 만에 다시 합쳤어요.”

결혼은 인연이다. 하늘이 맺어준다는 인연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는 법. 순리대로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다.

“사실 젊었을 땐 결혼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이제는 인연이 있으면 하고 싶기도 해요. 주변에서 혼자 살다가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사람을 봤는데 그 충격이 엄청 크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점점 두려워져요.”

현재 쉬고 있으니 우울해지는 기분도 든단다. 후배들이 전화해서 ‘노친네, 죽지 마라!’라는 한마디를 농담처럼 하고 끊는단다.

“제가 남편이나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일이라도 있어야 마음이 놓여요. 일이 딱 끊겼을 때 밀려오는 우울함이 있어요. 어릴 때는 ‘다른 거 다시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드니 영 불안해요.”

그녀는 연기를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로 2006년 대학교에 다시 들어갔단다. 부산에 있는 영산대 연기연출학과였다.

“교수를 할 나이에 무슨 학생이냐고 놀림도 많이 받았죠. 학교가 지방이라 수업이 있는 날엔 캐리어에 짐을 싸서 내려갔어요. 그럼 사람들에게 ‘교수님 오셨냐’고 인사를 받았죠. 그래도 젊은 친구들하고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계속 다녔다면 벌써 3학년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학업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초에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던 그녀는 뒤에서 오던 차에 일방적으로 들이받히고 말았다. 목 경추 부분을 다쳐 입원 치료가 불가피했다. 사고가 난 사정이 학교에 늦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학점과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오랜만에 들어간 학교인데 아까웠죠. 계속 할 생각이 있었지만 사고 직후에는 지방까지 내려갈 체력이 없었어요. 지금은 거의 완쾌가 된 상태예요.”

김성은은 연기에 대한 열정은 포기할 수가 없다. 잠시 쉬고 있던 어린이 프로그램도 개편을 맞아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연이 있다면 활동의 폭을 넓혀볼 생각이다.

“요즘은 캐릭터 시대라서 제가 갖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가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코미디도 하고 싶지만 저는 이미 콩트 스타일에 길들여진 사람이에요. 요즘 후배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스피드가 떨어지죠.”

10여 년 동안 해오던 어린이 프로그램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국에는 50, 60대가 돼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고정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대요.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책 읽어주듯이 말이죠. 우리나라 분위기로는 힘들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어요. 돈도, 명예도 좋지만 얼마나 즐기면서 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그녀는 어른이 봐도 좋은 내용이 있다며 어린이 프로그램을 사랑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프로그램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보니 새삼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눈앞에 드러나거나 부와 명예를 주는 것이 그 기준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김성은의 호쾌한 웃음이나 발차기는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이단 옆차기 한 방으로 요즘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그늘을 힘껏 걷어 차낼 수 있도록.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그레이트가든 GG(02-3142-3313)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