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의 동생으로 더 유명한 배우 김동현. 그가 연극‘광수 생각’에서 생애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주인공 ‘광수’ 역할에 푹 빠져 살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는 김동현. 그가 말하는 진짜 배우로서의 삶과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
배우 김동현(34)이 연극 ‘광수 생각’을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서울 대학로 상상아트홀 무대에서 공연되는 연극 ‘광수 생각’에 출연하고 있는 김동현. 그는 이제야 조금‘연기’가 무엇인지, ‘배우’를 왜 하는 것인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저는 이번 연극을 하면서 ‘연기’란 가슴에 있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소극장 공연에서는 배우의 진실성이 없으면, 감동을 줄 수가 없더라고요. 연기가 그런 것인 줄 처음 알았어요.”
연극 ‘광수 생각’은 동명 원작 만화를 각색한 것으로, 가족과 부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가 이 연극을 선택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연출자 김민교와 탄탄한 시나리오, 그리고 좋은 배우들 때문이었다.
“워낙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내용이 정말 감동적인 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연출자 김민교씨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분이거든요, 평소에 김민교씨가 연출하는 공연이면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함께하는 배우들도 실력이 있어서 제가 이 연극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오히려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태어나서 처음 서보는 소극장 무대. 처음 극장에 들어섰을 때는 공연장이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잠시뿐. 막상 연습이 시작되고, 공연을 올리니 갑자기 공연장이 너무 커 보이더란다.
“사람들이 공연장에 꽉 들어찼는데, 공연장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는 거예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컸으면 자신이 없어서 못했을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공연장이 익숙해져서 집보다 더 편안하다니까요(웃음).”
처음 소극장 무대에 서본 그가 적응하기 힘든 부분은 또 있었다. 바로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에서 관객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들이 공연을 보러 왔을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번은 누나, 어머니, 독일에서 온 이모, 지인들이 연극을 보러 왔다.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쑥스럽던지, 왠지 모르게 부담이 되고 연기에 자신이 없어지더란다. 하지만, 그런 부담은 얼마 안 돼서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관객에 대한 부담은 나 자신에게 마이너스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스치듯 지나가더라고요. 이제는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랑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면서 눈인사를 하는 등 그 상황을 즐기게 됐어요. 이제는 무대 위가 정말 편안하고 부담이 없어요. 지금은 소극장 공연의 매력에 완전 빠져버렸다니까요.”
“처음에는 주연이라는 부담감이 컸는데, 공연이 시작되고 보니 주연배우라는 인식이 없어졌어요. 이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극을 이끌어가거든요. 제가 주연이라고 남다를 것도 없고, 돋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런 생각 자체가 바보 같은 거예요. 소극장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서로 극을 이끌어가죠.”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누나 이야기
연극 ‘광수 생각’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린 따뜻한 내용이다. 평소 엄마와 형제들과 그 누구보다 각별한 김동현. 하지만 그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어렵고 엄한 존재다.
“엄마한테는 ‘사랑해’라는 말도 자주 하고, 정말 친하게 지내요. 또 형이나 누나들하고도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무척 친하거든요.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쑥스럽고 창피해서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그래도 이제는 이 연극이 끝나기 전에 아버지를 한번 모시고 싶어요. 그리고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해보고 싶고요.”
그에게 형제는 형, 큰누나, 작은누나, 동생까지 총 5명이다. 특히 톱 배우로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김혜수는 그에게 사랑하는 누나이자, 동시에 존경하는 연예계 대선배이기도 하다. 때문에 김혜수가 그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데뷔한 지도 꽤 되었건만 김동현에게 ‘김혜수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붙어다닌다. 배우라면 무엇보다 나만의 타이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부담으로 다가올 법도 한데.
“누나는 워낙 연기를 잘해서 큰 배우가 된 거고 나는 그렇지 못해서 이러고 있죠(웃음). 그렇지만 작은 그릇에 만족하고 있어요. 작은 그릇도 나름의 쓰임새가 있잖아요. 누나에게는 민폐만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에요.”
철모르던 시절 술 먹고 싸우기도 하고 파출소에 드나들기도 했다. 그런 말썽꾸러기에게 연기를 해보라고 권한 건 누나 김혜수였다.
“누나가 학교에 들어가서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워보라고 했어요. 진짜 창피한 이야기인데요, 삼수 해서 대학을 갔거든요. 대학 갈 때 필기도구를 처음 사봤어요. 대학 가면 열심히 하라고 누나가 교보문고에 가서 사줬어요.”
누나는 어릴 때부터 그의 롤 모델이기도 했다. 누나가 태권도를 배우는 것을 보고 그도 배우기 시작했다. 언제나 누나와 비슷한 일, 비슷한 목표를 세워왔다.
“누나는 저한테는 큰 힘이 되어주는 기둥이에요. 배우로서도 정말 존경합니다. 한집에서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지요. 다른 분들은 절대 모르는 김혜수를 볼 수 있잖아요(웃음).”
“배우는 늘 몸을 아껴야 한다고 말해요. 한번은 제가 운동하다가 다리와 팔이 부러진 적이 있어요. 누나한테 엄청 혼났죠. ‘몸을 함부로 놀리는 애가 무슨 배우냐. 때려치워!’라고 말이죠.”
그는 이번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누나도 공연을 한 번 보더니 동생이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알아보는 듯했다.
“‘무대에 있는 네 모습이 정말 멋지다. 이제 진짜 배우 같다’고 칭찬하더군요. 무엇보다 누나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어요. 다른 사람들의 백 마디 칭찬보다 누나의 한 마디 칭찬이 힘이 되더라구요.”
누나는 가족이자, 좋아하는 배우이자, 존경하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누나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 싶다. 그동안 누나 덕을 보기도 했다는 그는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수많은 연기자 지망생들을 보고 느꼈어요. 지금까지는 누나 덕분에 편한 길로 왔어요. 앞으로가 더 중요할 거예요. 누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생으로 살고 싶어요.”
요즘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노력을 좀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좋은 기회를 잡았으니 말이다. 왠지 모르게 잘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대학로에 멋진 공연장을 갖는 게 꿈
원래 공연을 좋아했다는 김동현. 수많은 연극 작품들을 보러 다녔던 대학로는 그에게 아련한 추억과도 같은 곳이다. 대학로는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어도 처량하기보다는 ‘시적인 발상’이 나오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숨 쉬며 살고 있는 ‘배우’라는 이름의 모든 사람들이 친구 같고, 가족같이 느껴진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이름이 바로 ‘배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김동현은 흥청망청 살아왔던 20대를 후회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왜 그렇게 살았을까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극장을 갖고 싶다’는 꿈이 점점 구체화돼가면서 허세 부리며 살던 과거의 소비 습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졌다. 요즘 김동현은 차를 버리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닌다. 불편할 것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걷는 운동도 하고 있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기니까, 비싼 밥이 아니어도, 좋은 차가 없어도 배가 부르다. 공연장 옆에는 마음대로 연습을 할 수 있는 연습실도 하나 만들고 싶다.
“공연장을 갖고 싶다는 꿈이 이제 확고해졌어요. 김민교라는 좋은 연출가가 제 꿈에 한 계단 다가설 수 있게 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고요. 저도 무대에서 좋은 작품 올리는 데 중요한 한몫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연극 보러 갈래?’라고 말하면서 제 공연장을 찾는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상상만 해도 설렙니다.”
과거 그는 ‘연기’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서 심한 우울증으로 1년 반 동안 연기를 그만둔 적이 있다. 정극 연기를 꿈꾸었던 그에게 매일 ‘코믹 연기’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딜레마에 빠져 있던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문희경과 김민교’ 두 사람이다. 문희경은 김혜수의 소개로 만난 뮤지컬 배우로 연기의 딜레마에 빠져 있던 김동현에게 연기에 대한 잡념을 없애준 사람이고, 김민교는 연극 ‘광수 생각’을 통해 확고한 ‘꿈’을 갖게 해준 사람이다. 김동현은 이 두 사람을 가리켜 “올해 내 인생 최고의 복”이라고 밝혔다.
이들 덕분에 김동현은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코믹 연기든, 버라이어티든, 개그 프로그램이든 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시 한번 끼를 펼치고 싶다.
“탤런트,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것 같아요. 영화, TV, 공연 등 어떠한 무대가 주어져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진정한 배우고, 탤런트겠죠. 답이 너무 간단했는데,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무의미하게 세월을 낭비했던 20대를 보내고, 미래를 계획하고 ‘공연장’을 갖겠다는 멋진 꿈을 꾸고 있는 30대 중반의 김동현. 이제 ‘김혜수의 동생’이라는 꼬리표 대신, 배우 ‘김동현’이라는 이름으로 힘찬 도약을 하고 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