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대형 교통사고, 기적처럼 일어나 봉사활동하며 살아요”
조춘은 여전했다. 필자가 보고 자란 1980년대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에서 쌍라이트 형제로 출연해 웃음을 선사하던 그때 그 아저씨였다. 파르란 빛이 나는 머리도 그렇고 건장한 체격도 여전했다. 변한 것은 나이라는 숫자뿐이었다. 추억 속의 사람들을 오랜만에 찾아보는 기사의 컨셉트는 완전 참패인 것이다. 그에게만 빗겨간 세월 때문에 말이다.
연기 인생 50년 이야기
“지금이야 말하지만 당시에는 정치 깡패라는 것이 있었어요. 그야말로 야인시대, 무풍지대에서 살았었지. 학교에서 유도를 했어요. 그러다 고2 때 당시 ‘번개’라 불리던 사람과 만났고 그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나는 그 양반 때문에 깡패 생활을 시작했지요(웃음).”
160cm 중반밖에 안 되는 키로 큰 덩치들이 포함된 무리와 3대 1로 싸우던 ‘번개’의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조춘은 학교 가방을 든 채 쫓아가서 싸움 구경을 하곤 했다.
“그 양반이 둘러싼 세 명의 턱을 획 돌아서면서 발로 차례로 차니 다 나자빠지더라고요. 그 모습에 ‘좋다! 나도 오늘부터 깡패다!’ 했죠(웃음).”
그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종로 사단 김두한 밑에 들어가 행동대원을 했다. 그는 북한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기계체조를 했다. 유도, 태권도, 미식축구, 역도 등 운동선수로 몸을 다진 그는 그 바닥(?)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모양이다. 그러나 주먹생활은 얼마 가지 못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시행한 국토 개발, 즉 깡패 소탕 작전에 휘말려 그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또 하나의 기회였다.
“스물다섯 살까지 주먹을 쓰다가 삼청교육대에 잡혀갈까봐 그만뒀어요. 이후에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죠. 물론 과거는 철저하게 숨겼죠(웃음).”
조춘의 연예계 입성은 집안의 영향이 크다. 그의 누나 다섯 명이 모두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던 여성국극단 출신이었다. 그 중 한 명이 현재도 남원 여성국극 최후의 명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금앵씨다.
“금앵 누님 덕분에 정도의 길을 걸을 수 있었죠. 누님들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어요. 뭐 다른 거 있나요? 선배들에게 인사 열심히 하고 깍듯하게 모시는 거죠.”
그러나 그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끓는 피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가 촬영 현장에서 뜨거운 난로를 맨손으로 집어던진 일도 있었다. 우리의 친근한 쌍라이트 아저씨, 알고 보니 엄청 무서운 사람이었다!
조춘은 막 도착한 박근형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그는 진행 팀의 요청대로 10시까지 나온 것뿐이었다. 결국 비중이 적은 액션 배우들에게만 부지런을 떨게 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더라구요. 앞뒤 상황을 모르고 박근형씨에게 따진 것도 미안하고 말이죠. 순간 옆에 있던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를 집어던졌어요. 그 이후에 방송국에서 ‘조춘은 사람이 아니다’하는 소문이 났죠(웃음).”
그가 맡는 역할은 늘 악역이었다.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적도 많다. 다른 주인공처럼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그 역시 선하고 멋진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칭찬도, 갈채도 받고 싶었다.
“나도 선한 역할 좀 하자고 감독에게 얘기했죠. 그랬더니 감독이 ‘아니, 그럼 조춘씨 역할은 누가 합니까’라고 하더군요. 그때 느꼈죠. 작품에서는 주인공만큼 중요한 것이 악역이고 조연이라는 것을.”
주인공도 옆에서 받쳐주는 조연이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혼자 스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그는 코믹, 액션 등 모든 역할이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다. 무술 지도나 액션신은 그가 도맡아 진행했다.
“옛날에는 무술 감독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죠. 다치마와리(연극이나 영화에서 싸우는 연기 혹은 장면) 콘티는 내가 직접 짜서 연기 지도를 했어요.”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MBC-TV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뽀뽀뽀’를 20년간 해왔다. 현재 20대 후반이나 30대는 그를 반갑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왕영은, 길은정 등은 모두 그와 함께했던 ‘뽀뽀뽀’의 뽀미 언니였다. 그가 늙지 않는 비결도 바로 어린이와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제가 체격이 크고 무섭게 나왔잖아요. 그런 녀석이 체구가 작은 말괄량이 삐삐한테 매일 맞아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거예요. 최고 인기였죠.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니 늙지 않더라구요.”
잇따른 대형 사고 그리고 큰 수술
조춘은 실제 나이에 비할 바 없이 건강하고 밝게만 보인다. 그러나 사실 대형 교통사고만 네 번이나 당했다. 가장 큰 사고는 ‘쌍라이트 형제’로 인기를 얻을 무렵, 산길에서 덤프트럭과 충돌한 사건이다.
중앙선을 넘어 오는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하고 말았다.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제가 타던 차 중에 폐차된 차 여럿 되죠. 지금도 제 차 범퍼를 보면 접촉 사고 흔적이 수도 없이 많아요.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아는 척하다가 들이박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일부러 차창에 까만 코팅 필름을 붙이고 다닐 정도예요. 사고는 줄었지만 대신 교통경찰들에게 불법으로 걸리더라구요.”
이후로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건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작년 4월에는 연극 무대에서 떨어지는 안전사고를 당했다. 부상 정도가 심각해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연극 ‘만선’을 연습하던 중에 무대에서 떨어져 머리가 깨졌어요. 사고 후에 그저 왼쪽 팔이 불편하다 싶어 병원을 찾았는데 부러진 뼈가 신경을 누르고 있었던 거예요. 방치했다간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두 번째 경추부터 일곱 번째 마디까지 전부 들어내 치료하는 중추신경 확장 공사를 했다. 지금도 그의 몸에는 12개의 나사가 박혀 있다. 그의 뒷목 언저리를 보면 수술 흉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병원에서 3개월 동안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고 했는데 보름 만에 나왔어요. 병원 의사들도 저의 빠른 회복에 깜짝 놀라더군요. 아무리 사고가 나도 다시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이 하늘의 뜻인 것 같아 교회를 더 열심히 다니고 있죠.”
그래도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얼굴을 안 다쳤다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의 눈 옆에는 사고로 찢어진 상처가 있지만 오히려 눈웃음이 생겼다며 허허 웃는다. 참 긍정적이다. 그는 현재 방송을 쉬며 교회 장로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봉사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상을 비춰주는 쌍라이트로
그가 연기를 시작한 지 반세기가 됐다. 봉사활동은 이미 43년째 해오고 있다. 장애인협회나 각종 봉사단체에서 조춘의 선행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봉사 관련 행사라면 빠짐없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선행은 언론에도 별로 다뤄지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다.
“1995년에 이미 연예인 봉사상을 탔어요. 그때 언론에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받았죠. 언론에 알리면 상을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모든 일이 상을 타기 위해서 한 게 아니니까.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것이 봉사인 것 같아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말이죠.”
그는 특히 독거노인을 돕기에 애정을 쏟고 있다. 동대문 상인들에게서 얻은 옷을 무의탁 노인에게 나눠주는 일을 한다. 매주 일요일이면 노인들을 위한 식사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두리누리’라는 장애인관련단체의 홍보대사이며, ‘조사모’라는 봉사단체의 1대 회장을 맡고 있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기름이 유출된 태안반도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치매를 앓고 있는 조부모를 부양하는 전남 광주에 사는 소년 가장도 돕고 있다.
“도울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하물며 각 경찰서 진압반 청년들도 얼마나 고생이겠어요. 데모가 많았던 1980년대에는 그 친구들을 위해서 위문공연도 많이 했죠. 그리고 각 경찰서마다 연예인 경찰 발대식을 위촉했어요. 연예인들이 일정을 잡아서 명예 교통경찰을 하며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말이죠.”
인터뷰 중에도 그를 찾는 봉사단체의 전화가 쉼 없이 울렸다. 불우이웃을 위한 위문공연이라면 두 말 하지 않고 달려가는 조춘이다. 이날도 장애인협회에서 행사 사회를 맡아달라는 전화를 했다.
“제게는 봉사활동이 곧 재산입니다. 도와줄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일이나 가정에 소홀하다고 아내가 싫어하지만 싫어하나 마나 할 수 없죠. 이미 반평생을 해온 제 일인데요. 죽을 때까지 봉사하다가 갈 거예요.”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근육을 자랑한다. 팔뚝은 두 손으로 감싸도 모자랄 정도로 굵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시간씩 트레이닝을 한다. 그는 요즘 작은 이벤트를 위해 몸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2009년 여름쯤 깜짝쇼를 할 예정이니 기대하세요. 지난번에 디자이너 앙드레 김을 만났어요. 추성훈이 앙드레 김 패션쇼에 나왔잖아요. 패션쇼에 20, 30대만 나오라는 법이 있나요? 마지막에 70대 노인네가 재킷을 입고 깜짝 등장하면 센세이션 하지 않겠어요? 제가 제안했더니 앙드레 김도 좋은 생각이라고 박수를 치던걸요.”
그는 여전히 아이디어 뱅크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무궁무진하게 떠오른단다. 길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 기록하고 집에 도착하면 정리한다. 건강한 신체뿐만 아니라 건강한 총기가 조춘을 더 젊어 보이게 하는 비결일 것이다.
20여 년 전, 조춘은 우스꽝스러운 액션 연기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쌍라이트 아저씨였다. 우리는 그동안 그를 잠시 잊고 지냈다. 오랜만에 만나 보니 그는 여전히 쌍라이트였다.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불우이웃들의 고마운 ‘쌍라이트’ 말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안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