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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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20대 노인일 수도,
80대 청년일 수도 있습니다. 50대, 충분히 젊은 나이입니다”


53세,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 나이에 연극배우에 도전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개그맨 고(故) 김형곤의 친형이자, 삼성전자 국내 영업사업부 인사담당 상무로 재직했던 김형준씨다. 25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앞두고 있는 그의 의미 있는 도전, 대한민국 50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들었다.


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25년 회사생활 접고 연극무대로
막이 내린 극장, 불 꺼진 무대에 선 김형준씨(53)의 표정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가 연극 ‘수요일의 연인들’의 남자주인공 ‘존’이 되어 섰던 자리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25년 동안 회사생활을 한 그가 연극무대에 설 것이라고는 본인도 상상하지 못했다.

“올해 초 퇴직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무렵에 대학 친구인 허정 라이프씨어터 대표가 연극에 출연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어요. 그 전에도 농담으로 ‘언젠가 너를 꼭 무대에 세우겠다’고 말하던 친구예요. 평소 같으면 그냥 웃으며 넘겼을 텐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되겠다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연극 ‘수요일의 연인들’은 재벌 유부남과 젊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처녀의 애정관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맨 처음 자신이 맡을 역할이 젊은 애인과 바람피는 ‘존’ 역할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퇴직을 하긴 했지만 대기업 인사담당자로 오랫동안 근무해온 터라 혹시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그 역을 진 핵크만(할리우드의 성격파 배우)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그 사람이 했던 역을 한다고 생각하니 영광이었죠.”

아버지가 연극에 출연한다는 말에 가장 열성적으로 지지를 보내준 건 두 대학생 아들이다.
“연극무대에 서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데, 여배우와의 키스신이 대수냐며 꼭 하라고 말하더라고요. 내심 걱정하던 아내도 자기가 반대를 해서 못하게 되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다며 허락해줬죠. 가족들이 반대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가족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가족들의 지지로 무대에 서게 됐지만 인생의 또 다른 무대에 적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대는커녕 학창 시절 연극반 주변에도 가본 적이 없는 그에게 연극배우로의 변신은 ‘무모한 도전’과도 같았다.

연극 ‘수요일의 연인들’의 한 장면.

연극 ‘수요일의 연인들’의 한 장면.

“제가 강의 경험도 있기 때문에 대중 앞에 서는 게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강의와 연극은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강의에서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면 연극은 디테일한 감정 묘사와 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발성부터 호흡, 발음, 성량 등 모든 게 전문 배우와 차이가 많이 났죠. 대사를 다 외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컸고요. 우리 나이 때는 휴대폰 번호 열 자리 외우는 것도 어려워요. 나중에 친구들도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웠냐며 신기해하더라고요.”

지난 1월 11일 첫 공연을 앞두고, 최선을 다한 한 달 동안의 연습 기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평소보다 몇 배나 큰 목소리로 발성 연습을 하다가 목이 잠겨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공연 전날은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로 기억한다.

“실수를 해도 아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첫날 아는 사람들을 다 불렀어요. 생각해보니 큰일났더라고요(웃음). 공연 전날 혼자 소주 세 병을 먹고 허 대표한테 전화해 타박도 했어요. 첫 공연 날,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의 심정은 정말, 딱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무대 위에서 가장 많이 생각난 사람, 김형곤
첫 대사는 어떻게 했고, 마지막 대사는 무엇이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 터져 나온 박수 소리와 꽃다발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관객들의 모습이었다. 긴장을 해서 템포가 좀 빨랐던 것 빼고 큰 실수 없이 잘 끝냈다는 평가를 듣고서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가족들, 친구들, 직원들이 사진 찍고, 꽃다발 주고…, 축하를 정말 많이 해줬어요. 장동건이 안 부럽더라고요(웃음). 힘든 과정을 거친 만큼 성취감이 몰려왔죠. 제가 만약 아무 스트레스 없이 연극을 했다면 성취감도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생각도 더 확고히 가지게 됐고요.”

공연을 본 사람들 중 전 직장 동료들의 반응이 가장 폭발적이었다. 일할 때는 엄격하기만 했던 그의 변신은 그를 아는 회사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제가 모셨던 상사께서 ‘아니, 자네 여태까지 어떻게 참고 회사생활 했어?’ 하시더라고요. 배우 자질이 보인다며 이 길로 쭉 가라는 말도 듣고요. 기대보다 잘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그동안 연극을 해오신 분들에 비하면 저는 까마득한 신참이죠. 대학로라는 공간이 일반인에게는 낭만과 문화와 젊음의 공간이지만 매일 저녁 무대에 오르는 600여 명의 배우에겐 기회의 땅이자, 진실된 삶의 현장이자,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이기도 해요. 많은 젊은이가 이곳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구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번에 함께 공연한 여배우는 대학 3학년인 둘째 아들과 동갑이다. 한참이나 어린 동료 배우들과 대본 연습하며 지적도 당하고 혼나기도 했지만, 동료애를 나누며 호흡을 맞췄던 시간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인생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한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회사 동료들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25년 동안 일만 하던 친구가 대학로 무대에 주인공으로 섰으니 많이들 신기했겠죠. ‘김형준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나’라는 말도 하더라고요. 다들 나이 때문에 기회가 생겨도 자신 없어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쉰세 살인 저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못할 것 있나요?”

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무대에 서며 가장 많이 생각난 사람은 역시 동생 김형곤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이 될 때면 무대에서 좌중을 압도했던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관객과 신나게 호흡할 때에는 동생이 무대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를 공감했다.

“아마 형곤이가 지금 활동을 하고 있더라면 저는 무대에 서지 못했을 겁니다. 잘하지 못하면 동생에게 누가 될 수도 있고 유명인 동생 덕 본다는 소리도 들었을 거예요. 형곤이가 활동하며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엄두를 못 냈을 것 같아요.”


두려움만 극복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와 유난히 엄격했던 집안 분위기 탓에 네 형제 중 연예인은 둘째 김형곤 하나로 ‘만족’하자는 가족 간의 합의가 오래전에 이루어져 거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장남인 김형준씨는 회사원으로, 둘째 김형곤은 연예인으로, 셋째는 변호사로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며 한 번도 ‘옆 동네’를 기웃거려본 적도 없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무대에 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 자리에서 성공한 형곤이도 분명 남다른 노력과 고통이 있었을 거라는 걸 다시 이해하게 됐고요. 개그맨 김형곤의 형이라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때는 ‘김형곤 형’이라는 호칭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김형곤에게 가려 김형준은 없어지는 것 같아 자신만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도 많이 했다.

“저를 소개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이 ‘김형곤 형입니다’라는 거예요. 저를 처음 보시는 분들은 저한테 날씬하다고 하세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저, 안 날씬합니다. 김형곤보다 날씬하다는 거죠. 그럼 김형준은 없어져요. 물론 개그맨으로 성공한 동생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김형곤 형 김형준’이 아닌 ‘김형준 동생 김형곤’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 자존심과 경쟁심이 저의 회사생활을 지탱해준 원동력이기도 했어요.”

3년 전 뜻밖에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동생이 생전에 보여줬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달랜다.

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대기업 임원 생활 접고 연극무대 도전 ‘김형준의 인생 2막’

“한번은 형돈이가 제게 ‘세상에는 두 종류의 단추 장수가 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비관적인 단추 장수는 단추 하나 팔아봤자 5원에서 10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긍정적인 단추 장수는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 명이니 한 사람이 열 벌의 옷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들어가는 단추만 해도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삶을 살 수도,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거죠. 동생은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고요.”

안 하고 미련을 갖기보다는 해보고 후회를 하는 성격은 형제의 닮은 점이다. 우리나라에 프로농구 리그가 처음 생겼을 때 농구단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고, 지금은 보편화된 그룹인력개발 원격교육이나 고객만족서비스(CS)를 도입하기도 했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그의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이번 연극 도전도 현실화되지 못했을 거다.

“제 또래들을 만나면 열에 아홉은 꿈이 없어요.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나마 이미 밀려나서 아무 꿈도, 미래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죠. 만났을 때 눈이 초롱초롱한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요. 저도 처음엔 두려웠어요. ‘내가 대사를 외울 수 있을까?’, ‘대사를 잘 외웠더라도 그걸로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등등 두려움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고요.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생각에 후회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도전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다음 도전을 위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그는 청년과 노인의 차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목표가 있는지와 없는지의 차이라고 말한다. 목표가 있다면 청년이고, 목표가 없다면 노인이다. 때문에 20대 노인이 있을 수도 있고, 80대 청년이 있을 수도 있다. 죽을 때까지 청년이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회사생활은 등산과 같아요. 올라가는 길은 힘들지만 목표가 분명하죠. 지금까지는 힘들어도 목표만을 향해 올라갔으면 되는 거였어요. 50대에 퇴직을 하고 나니 사막을 건너는 기분이에요.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막막하더라고요. 아마 저와 같이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도전이라는 걸 해보니 우리 나이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경험자로서 두려움만 극복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도전하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최근 ‘윈윈파트너스’라는 인력 파견 회사를 꾸리고 또 한 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다시 연극무대에 서보고 싶단다.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 영원한 청년 김형준이 아름답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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