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랑부부’의 지씨 아줌마 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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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랑부부’의 지씨 아줌마 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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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의 사기 후 슬럼프, 우울증…다 떨쳐내고 마당놀이 공연해요”


‘쇼! 비디오’의 ‘쓰리랑부부’에서 김미화·김한국과 호흡을 맞춘 지영옥. 그녀는 극의 마지막에 등장해 부부에게 “방 빼!”라고 소리치던 지씨 아줌마다. 어느 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씨 아줌마, 지영옥은 요즘 뭘 하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공개 수배했다.


[공개수배]‘쓰리랑부부’의 지씨 아줌마 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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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의 사기, 그리고 슬럼프
지영옥(47)은 1983년 제3회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동상을 수상하고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그녀는 인기 개그 코너인 ‘쓰리랑부부’에서 ‘지씨 아줌마’ 역할을 맡았다. 파자마 차림에 파마머리를 하고 “방 빼!”라고 소리치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방 빼!’는 곧 유행어가 되고 그녀도 큰 인기를 얻었다. KBS 코미디연예대상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영옥은 원래 방송국 입사 전에는 대전에 있는 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연극배우를 꿈꾸는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 개그맨들이 전무했으니까 개그가 뭐 하는 건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죠. 그냥 연기가 하고 싶었기에 MBC 대전지국의 추천을 받아서 개그 콘테스트에 응시했어요. 지금이야 ‘예능’이라고 해서 개그맨들이 춤추고 순간 재치로 말을 받아치는 스타일이지만 그 당시 개그는 온전히 연기였어요.”

코미디계도 요즘은 각자 소속사가 생기고 기업화되면서 개인 플레이가 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러나 당시는 위계질서도 엄격했고 체계적인 연기 지도도 따로 없었다. 그저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곁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지씨 아줌마 역할 할 때가 고작 스물여섯 살이었어요. 저는 7남매 중 막내로 자라서인지 선배들이 뭘 시켜도 잘 안 하는 뺀질이였죠. 방송국에서 지금 후배들을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옛날 기억도 나구요. 지난번에는 신봉선씨를 만났는데 ‘선배님, 너무 바빠 죽겠어요’하며 불만을 토로하더군요. 그 맘 잘 알지요. 그래도 일할 때가 행복하다는 걸 느껴야 하는데 당시는 아무리 말해줘도 잘 몰라요.”

그녀도 그랬다. 일주일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만 3개였다. 낮에는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밤에는 야간업소나 행사 진행을 맡아 지방 각지를 뛰어다녔다. 잠 한번 편히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다 차츰 일이 줄면서 어느 순간 자기 앞에 아무 일도 놓여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늦은 후였다.

[공개수배]‘쓰리랑부부’의 지씨 아줌마 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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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는 물과 같아요. 위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에요. 저를 보세요. 본인이 스스로 느껴야 해요. 내가 정말 코피를 흘리면서 일해도 그게 행복이란걸요.”

방송일이 끊기기 시작했던 10년 전부터 그녀는 차츰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다 몇 번의 사업에 실패하고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 회복하기 힘든 상처였죠. 지난 10년은 정말 악몽이었어요. 도무지 살 방도가 없더라구요. 특히 혼자가 되면서 우울증이 더 심해졌어요.”

잠을 자면서도 ‘이렇게 자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눈을 뜨곤 했다. 그저 세월이 빨리 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사실 제가 사기를 다섯 번이나 당했어요. 말이 다섯 번이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가 따로 없었죠. 그런 심리 상태가 있어요. 돈에 쫓기다 보니 오히려 나한테 사기를 친 사람을 더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이요. 그래서 믿고 또 돈을 주고 보증을 서고….”

본인의 돈은 물론 남의 돈까지 빌려 쓰고 말았다. 가족들 보기에도 창피하고 자괴감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빚 때문에 집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계시는 대전으로 내려갔어요. 일이 있을 때마다 서울로 출퇴근을 했죠. 그렇게 일을 당한 다음부터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가 없더라구요. 사람을 만나도 ‘저 사람, 날 또 속이겠지’ 하는 생각만 들구요.”

그녀의 낙천적이고 활발했던 성격은 점점 어둡고 내성적으로 변했다. 일이 없으면 일절 외출도 하지 않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참고 또 참다 보니 모든 스트레스는 몸의 병이 되어 고스란히 나타났다. 탈모 증세가 시작되고 체중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갔다. 이야기하던 중 그녀는 어깨를 툭툭 털며 말을 참는다. 아니 눈물을 참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요. 지금도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데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면 더 초라해지잖아요. 이제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할 테니까 두고 보세요. 그런 다음에 날 상대로 사기 친 나쁜 사람들 다 까발릴 거니까(웃음).”


지영옥의 칠전팔기 이야기
그녀는 돌싱이다. 이혼을 ‘마일리지’라고 희화하며 웃고 넘기는 요즘이다. 특히 연예인들에게는 그다지 흉이 되는 것도 아닌데 지영옥은 말을 아낀다.

“아휴, 좋은 사람을 만나야죠. 만나야 되는데 남자가 없네?(웃음) 요즘엔 한결같은 사람이 없어요.”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6개월 만에 실패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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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1세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요즘 들어 자꾸 아프다고 하시네요. 제가 그동안 속을 너무 많이 썩였나 봐요.”

지영옥은 심기일전해서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려고 3년 전에 앨범을 냈다. 그러나 그조차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앨범 제작비에 제 돈을 모두 투자했거든요. 타격이 컸죠. 활동을 잘 해보려고 매니저도 고용했는데 제가 마음이 여려서 할 말은 해야 하는데 못하겠더라구요. 어느 순간 보니 제가 매니저의 비위를 맞추고 있더라니까요.”

그러나 지영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간 좋지 않은 일만 겪었던 건 아니다. 3년 전 코미디언 선배인 김영하(65)를 만나 친하게 지내면서 활력을 얻었다. 김영하 역시, 방송활동이 줄면서 우울증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위로하다 보니 열여덟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주며 우울증을 극복했다.

“선배님이 원체 젊은 분이세요. 47세 이후로 나이를 세지 않았다고 해요. 겉으로는 깐깐해 보여도 사실 소탈한 성격이에요. 가족들이 모두 호주에 있기 때문에 혼자 계신 시간에는 절 불러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말동무도 해주세요.”

김영하는 마당놀이 ‘폭소 춘향전’에서 향단이 역을 맡아 전국을 다니며 공연하고 있었다. 극단 측에서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지영옥에게도 캐스팅을 제안했다.

“언니와 있으면 재밌고 도움을 많이 받아요. 이렇게 나를 잊지 않고 불러주는 것 자체로 얼마나 감사한가요. 또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공연할 수 있어서 회춘하는 기분도 들구요(웃음).”

그녀는 공연 연습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삶의 의욕을 되찾고 있다. 비록 극에서는 두 장면에 등장하는 작은 역할이고 큰 돈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연습 시간이 참 즐겁다.

“방송이 어렵다고 하지만 무대 공연하는 후배들을 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다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해요. 피자라도 한 판 사들고 오고 나름 잘해주려고 하죠.”

젊었을 때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고 인간관계도 칼같이 잘랐다. 그러나 이제 그게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모든 일에는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10년간 인생 공부를 통해 배웠다. 마당놀이 ‘폭소 춘향전’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변 사또를 유혹하는 늙은 기생 역이다. 3월 19일 용인 공연을 마치고 26일 서울 서대문구 문화체육회관에서 공연을 한다. 5월과 9월에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순회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다.


1. 김영하와는 열여덟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친구 사이가 됐다. 2. 3년 전에 만든 앨범 재킷에 실렸던 사진.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앨범을 내볼 생각이다.

1. 김영하와는 열여덟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친구 사이가 됐다. 2. 3년 전에 만든 앨범 재킷에 실렸던 사진.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앨범을 내볼 생각이다.

또 하나의 프로젝트, 봉사활동
지영옥은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방송활동을 활발히 하던 시절에도 시간을 쪼개어 ‘나눔의 집’ 등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제는 본인도 어려운 처지를 겪어봤으니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필요한지를 깨달았다.

점점 생활이 안정되면서 큰 봉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물이 부족한 나라인 캄보디아에 가서 수도관을 개설하고 펌프를 설치해주는 일을 하려고 한다.

“펌프 하나를 만드는 데 300달러랍니다. 그런데 그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448달러 정도라고 해요. 빈부의 차이가 있으니 대부분의 주민들은 더 가난하겠지요. 주민들 스스로가 펌프를 설치하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죠. 그렇다고 물 없이 생활하는 것도 불가능하잖아요. 캄보디아에서는 사람들 생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고 하더라구요.”
그가 알고 지내는 교수와 지인들이 먼저 운영단을 조직해 오는 4월에 캄보디아 원정을 갈 예정이다.

“먼저 전체적인 여건과 설치가 필요한 지역을 알아보려고 가요. 그런 다음 후원자를 구하기 위해 사진작가와 동료 연예인 몇 명을 섭외해 봉사활동을 떠날 거예요.”

이 같은 그녀의 뜻을 이해하고 미국 플로리다 한인회나 서울 도봉구 시의회 등 지역 단체에서도 기금 마련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좋은 일도 좀 하고 자기관리도 잘 해서 일어설 거예요. 노래에도 다시 도전할 거니까 기대해주세요.”
눈물로 시작한 이야기가 흐뭇한 웃음꽃을 피우며 끝을 맺었다. 그녀에게는 아픔도 있었지만 희망도 있다. 2009년에는 “방 빼!” 하고 호통 치던 ‘지씨 아줌마’의 힘찬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은 바람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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