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

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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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는 경기도 용인 집에서 여의도까지 매일 직접 운전을 하고 생방송에 출연한다. 정확히 약속시간에 도착한 그녀는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텃밭에 뿌려놓은 소똥을 치워야 한다”며 걱정을 한다. 그녀와 함께한 2시간의 촘촘한 밀도감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현명하고 영민한 무대 위의 주인공 김미화.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는 MBC-FM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시그널송이다. (편집자 주)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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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현실을 긍정의 에너지로 삼아
김진세 박사의 명함을 받아든 김미화는 고 작은 종잇장을 꼼꼼히 살피더니 메조테라피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눈높이의 시사 프로그램’의 한 대목 같다. “자, 기자는 앉아서 구경만 하시고요!” 그녀의 ‘배려’가 어쩐지 선전포고로 들린다.


김미화 병원이 구로? 여기서 가깝구나. 메조테라피는 어떤 거예요, 선생님?

김진세 보통 약을 먹거나 혈관 주사를 통해 몸에 약을 넣잖아요. 메조테라피는 피부에 놓는 주사예요. 비만치료로 인식되어 있는데, 시작은 통증치료고요.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팀에는 메조테라피를 하는 팀 닥터가 있어요. … 참, 저희 인터뷰의 방향을 말씀드려야죠(웃음)? 뭔가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만한 긍정의 힘을 찾아내는 거예요.

정보석씨는 ‘부성의 힘’, 오영실씨는 ‘자존심’, 한성주씨는 ‘진한 사랑’이었어요.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이끌어낼 거니까 편하게 말씀하시면 돼요.

김진세 최근에 긍정의 힘을 주제로 강연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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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강의해달라는 곳이 많아서요. 제가 전문 강사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실제로 저를 일으키는 힘이 긍정적인 에너지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자꾸 그걸 만들려고 마인드 컨트롤하는 편이죠.

김진세 그런 힘은 타고난 건가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김미화 잘은 모르겠지만, 심각한 문제는 깊이 생각한 뒤에 결론을 얻으면 곧장 털어버려요. 성격 자체는 소심해요. 누가 나에 대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한다는 걸 알면 속으로 깊이 열흘이고 스무 날이고 계속 생각해요. 제 성격이 좋은 건, 그러다가 결론은 좋게 내리는 거예요. ‘나한테 잘못이 있다.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 화해해야 한다.’ 그러곤 정말 미운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죠. 그게 제 생활이 됐어요. 제가 일 욕심이 많아서 이 일 저 일 막 만들거든요. 그러다 보면 실패하는 것도 있어요. 그럼 굉장히 아프죠. 하지만 그걸 경험해봤으니 오케이,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오케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진세 사실 그런 힘은 타고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사람 성격이라는 게 대개는 6세 이전에 완성이 되고, 또 이후 경험하는 것에 따라서 조금 변하거든요. 지금 말씀을 들으니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내가 속상해하고 한탄해봤자 나만 손해니까, 나를 바꿔나가자’는 거잖아요. 예전에도 그러셨어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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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를 놀리면 ‘내가 아버지 없는 표시를 내서 그러는가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격 개조를 한 거죠. 아이들 앞에서 많이 웃고 많이 까불고 가수 흉내를 내서 주목을 받고…. 그랬더니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저를 굉장히 명랑하게 봤어요. 별명은 ‘까불이’였고요.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는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슬픔이 있었지만, 드러내지를 않은 거죠.

김진세 워낙 성격이 밝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미화 원래 성격이 밝지는 않아요. 무리지어 다니거나 앉아서 수다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혼자 책 읽고, 노래 부르고, 극장도 혼자 다니고요. 그런 것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죠.

김진세 지금도 시간 나면 혼자 다니세요?

김미화 네. 지금도 혼자 다녀요. 병인가요, 선생님(웃음)?

김진세 저도 혼자 놀기의 달인이에요(웃음). 까불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는 정말 힘든 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긍정적인 힘의 원천이 긍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힘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삼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김미화씨 뿐만 아니라 대중 앞에서 서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거든요. 김미화씨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네요.

김미화 이상하게, 어렸을 때 기억이 별로 없어요. 스스로 안 좋은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게 강한 거 같아요. 그걸 어떻게 느끼냐면요, 평소에는 대본을 엄청 잘 외워요. 밤새 외우면 다음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본 그대로 하거든요. 그런데 녹화하기 싫을 때는 5분짜리, 3분짜리도 절대 안 외워져요. 그런 걸 보면서 내 심리 깊숙한 곳에는 정말 싫은 기억을 지워버리는 힘이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죠(웃음).

김진세 그것도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죠. 사람들이 힘이 들면 ‘방어’를 쓰거든요. 김미화씨 역시 그걸 쓰실 수도 있겠죠. 힘든 일이 있을 때, 즐겁고 밝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어요.

김미화 아주 아기 때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아요.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생각이 나고.

김진세 왜 기억을 여쭤보느냐 하면, 기억이라는 게 왜곡될 수도 있거든요. 있는 그대로 남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얘기에 의해 기억되는 경우도 있고요. 착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사람이 사는 데 있어 성격이나 방향성이 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인터뷰 앞두고 찾아보니까, 되게 일을 많이 하시네요? 김미화씨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했던 첫 번째 메모가 ‘워커홀릭’이었어요.

김미화 요즘은 그리 많이 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워커홀릭이 맞아요. 일만이 저에게 위안을 줬어요. 일을 하고 있을 때는 모든 힘든 것들이 없어지는 거예요. 코미디 연기나 방송할 때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거기에만 몰입을 하니까요. 예전에는 일이 취미이자 인생의 전부였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나이 들면서 깨달았어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남편은 “당신이 지금은 워커홀릭이 아닌데, 왜 자꾸 사람들이 워커홀릭이라고 하느냐”고 해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예쁜 남편
김진세 재혼하신 지 2년이 됐잖아요. 당시에 나온 기사가 정말 많더군요. 이제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사람의 매력이라는 게 2년을 간다잖아요. 어떠세요?

김미화 좋아요!

김진세 (웃음)아직도요?

김미화 아직도, 가 아니라 끝까지 갈 거 같은 느낌이에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굉장히 만족해요. 아이들이 아빠를 두고 “엄마한테 고맙다. 월척을 낚아다줘서”라고 해요(웃음). 애들 표현이 죽이죠? “너희들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훨씬 매력 있게 느껴진다”고 했어요.

김진세 집 안의 모습을 좀 그려주세요. 주말은 어떻게 보내세요?

김미화 글쎄, 평안한 모습이에요. 저희가 전원주택을 택했을 때 주변에서는 좀 더 나이 들어서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거든요. 겪어보니까, 더 나중에는 힘에 부쳐서 못하겠더라고요. 잔디 손봐야죠, 나무 옮겨 심고 가지치기 해야죠, 개는 좀 손이 많이 가요? 게다가 봄이 되니까 집 주변에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별일 아닌데도 집 한 바퀴 돌고 나면 “아이구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와요. 전 40대 중반, 남편은 50대인데, 지금이 우리 부부가 가장 만끽하면서 살 수 있는 때가 아닌가 싶어요. 아, 주말이 궁금하다고 하셨죠? 술 마시고 싶을 때는 둘이서 선글라스에 밀짚모자 눌러 쓰고는 사발이라는 농기구를 타고 동네 주막에 가요. 동동주와 빈대떡 시켜놓고 한 잔 하고는 바람을 맞으면서 논둑길을 돌아오는 그 기분은 정말 ‘와따’예요.

김진세 평온한 풍경 속에 두 분이 오가는 모습이 보이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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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이 나이에 정열적이면 큰일 나는 거죠(웃음). 둘이 그냥 눈빛만 봐도 통해요. 중년 남자들이 무뚝뚝하기 쉬운데, 남편은 굉장히 표현을 잘해요.

김진세 사발이 위에서는 두 분이 어떤 노래를 부르시나요?

김미화 우리끼리 ‘짜증가’라고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원래는 ‘태평가’인데,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라고 부르는 노래 있잖아요? 그걸 부르는 거예요(웃음). 전, 남편을 지지해주고 싶어요. 응원해주고 싶고. 예쁘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잖아요? 그렇게 예뻐요, 진짜.

김진세 하긴 예쁜 데 이유가 없긴 하죠.

김미화 네, 이유 없이 예뻐요. 남편이 예전에 음악을 하고 싶어 했어요. 실제로 밴드와 함께 색소폰도 잘 불고요. 남편도 아픔이 많은 사람인데 그렇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동시에 저를 보는 거예요. ‘그래 나도 무대에 서거나, 내가 좋은 일을 할 때 슬픔을 많이 잊을 수 있었지’ 하면서. 그런 마음에 남편의 취미활동을 밀어주는 거죠. 제가 좀 유명한 사람이니까 남편 밴드에 객원 싱어로 참여하면 그 이름이 더 빛나지 않을까 해서 노래도 하고 그런 거죠.

김진세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나누시죠?

김미화 네.

김진세 다른 분들과도 대화를 많이 즐기시는 편이고요?

김미화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듣는 걸 되게 좋아해요. 보통 개그맨들이 밖에 나오면 말이 없어요. 특이하죠? 이중인격 같기도 하고(웃음).

김진세 충분히 이해해요. 저는 밖에 나오면 말이 많아져요(웃음).

김미화 아, 상담할 때는 듣기만 하시니까 그렇구나.

김진세 용인 집에는 두 분만 계시면, 자녀분들은요?

김미화 아이들은 서울에서 공부하죠. 큰아이들은 대학생이에요. 한 아이는 미국에, 한 아이는 기숙사에 있어요.

김진세 아이들까지 합쳐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김미화 가족 전체가 합치기에는 아이들이 이미 큰데다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아이들하고 아웅다웅 한 집에 살면 분명 부딪히는 게 있을 거라고요. 서로 좋은 모습만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저희 나름의 배려예요. 지금은 아이들끼리 자주 만나고 함께 잠도 자면서 교류를 가져요. 재혼 부부가 힘든 이유가 양쪽 집이 합쳐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융화를 못한다는 점인데, 저희 집은 그 점에 있어서는 불만이 없어요.

김진세 엄마로서의 역할이 필요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도 많이 배려를 하시겠죠?

김미화 그럼요. 제 딸들한테는 아버지가 좋은 역할, 우리 남편 애들한테는 제가 좋은 역할을 맡았죠. 그건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거죠. 남편이 안 챙기면 제가 아이들을 챙기고요. 서로 섭섭하지 않도록 잘하고 있어요. 저는 속으로 꽁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부탁할 거 있으면 “오늘 애들한테 전화 좀 하시지?” “오늘쯤 어머니한테 전화할 때 된 거 아니야?” 이러면서 찔러주고(웃음). 그게 편한 거죠. 이번에도 결혼 2주년 기념 선물로 커다란 아톰 인형을 받고 싶었어요. 제가 아톰 인형을 좋아하거든요. 앙다문 입이나 꼭 쥔 주먹이 굉장히 야무져 보여서 그걸 보면 용기가 나거든요. 그래서 남편한테 “나 아톰 인형 받고 싶다, 결혼기념일에 좀 사다오” 계속 얘기를 한 거죠. 근데 막상 가게에 갔더니 무려 20만원인 거예요. 과연 이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남편한테 받고 싶은 욕망이 커서 사달라고 했죠. 물론 제 카드로 긁었지만(웃음). 그렇게 받는 거죠.

김진세 그럼 김미화씨는 어떤 걸 선물하셨어요?

김미화 저는 안 하죠.

김진세 원래 안 하세요?

김미화 에이, 남자들이 뭐 그런 걸 챙겨요? 여자들이나 새침해서 “이거 받고 싶다, 저거 받고 싶다”고 하는 거죠. 아톰 인형을 받아서는 TV 위에 올려놓았는데, 볼 때마다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요. 제가 남편한테 그랬어요, “당신은 행복한 줄 아시오. 내가 다이아몬드를 사달라고 했으면 어떡할 뻔했수?”라고. 지금껏 받은 선물 중 아톰 인형이 가장 비싼 거였어요. 저희는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꼭 기념할 만한 뭔가를 사오거나 가져와서 “그때 이런 추억이 있었지” 하며 얘기하는 걸 참 좋아해요.

김진세 중년 부부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공식 같은 게 있는데, 그런 걸 벗어난 두 분의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평생 예뻐하며 사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은 잘 맞으세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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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저나 남편이나 각자 아이들을 기를 때부터 아이들에게 인생은 다 각자의 몫이라는 걸 빨리 깨우쳐줬어요. 물론 아이들이 예쁘지만 그들의 인생을 부모가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저 조언 한마디 하는 걸로 족해요. 제가 옆에서 아이들 공부 지도해줄 수 있는 엄마도 아니었고요. 예전에는 일에 빠져서 살았잖아요? 어쨌든 전 아이들에게는 간섭 많은 엄마가 아니에요. “공부 못해도 좋다. 너희들 인생을 알아서 해라. 대신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를 봐라, 공부 거꾸로 하잖니? 수학? 엄마는 학교에서 빵점 맞은 적도 있었어. 너 20점 맞았으면 잘한 거야.” 이렇게 추켜세웠더니 이젠 애들이 10점 맞고 와도 자랑할 정도예요(웃음).

김진세 중요한 점을 잘 알고 계시네요.

김미화 전에는 힘든 일이 있을 때 표현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중·고교생 되고부터는 이메일을 자주 보내요. 예전에 제가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아이들 의견을 물었을 때 어른을 능가하는 수준의 해답을 주더라고요. ‘아, 애들 다 키운 거구나’ 싶으면서도 어떨 때는 섭섭하죠. 하지만 할 수 없잖아요. 그게 인생이고. 전 남편을 지지하듯 아이들을 지지해요.

김진세 부부 갈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해줘라. 친하게 지내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부부 사이에는 목적 없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김미화씨 부부는 그런 감정의 교류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척 좋아 보이네요. 굉장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실 거예요. 김미화씨가 몸소 보여주고 있듯이, 요즘은 여성의 역할이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잖아요. 저 같은 나이 든 수컷은 여자들이 불쌍해 보일 때가 있어요. 옛날엔 그렇지 않았는데요.

김미화 여자들이 불쌍하다고요? 우린 남자들이 불쌍한데요?

김진세 네, 거꾸로 그럴 수도 있지요. 김미화씨는 지금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잘 하고 계시지만 한 가지 역할만 꼽는다면, 역시나 코미디언을 꼽으시겠죠?

김미화 그럼요. ‘내가 어떻게 코미디를 잘 이끌어갈 것인가’가 저에게는 늘 숙제인 거 같아요.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코미디에 정답이 없어요. 서세원씨와 ‘코미디 세상만사’를 했을 때나, ‘개그콘서트’를 기획했을 때도 새로운 코미디를 만들어보자는 거였어요. 그런 시도가 몇 차례 있었는데, 그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코미디 쪽에 경험이 많은 덕분이었죠. 햇수로 27년 정도 됐으니 관객이 좋아하는 코미디를 보는 안목이 생긴 거죠. 지금 하고 있는 시사 프로그램의 청취율이 되게 좋아요. 그 시간대 1위인데, 그게 마냥 좋지만도 않은 건 제가 앵커도 아닌데 자꾸 딱딱한 이미지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김진세 중간중간 코미디도 하시잖아요.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모두 잘 어울려요.

김미화 저는 더 망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 전 괜찮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코미디 프로그램 PD들이 “선배님 그런 거 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라고 해요(웃음). 아예 시사 쪽으로 전향했을 거라고 짐작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무대에 설 때가 제일 좋죠.


강인한 나의 어머니, 정말 괜찮은 여자
김진세 아톰 인형을 갖고 싶어서 얻어내신 것처럼(웃음),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가요?

김미화 저는 인생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오히려 계획 없이 사는 편이에요. 오늘 하루 열심히 살고, 내일 좋은 일이 또 생기면 좋은 거고. 나쁜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얘기하다 보니 그게 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더라고요. 예전에 ‘아침마당’ 패널로 출연하시던 김병후 박사님과 대기실에서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분이 “남편이나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면 자신이 괴로우니까 거기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부인 입장에서는 남편을 아끼는 마음에서 소소하게 잔소리를 할 수 있지만, 그게 서로를 힘들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부터 전 그런 집착을 버렸어요. 그 사람 인생은 그 사람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대로 소중한 거라고 생각했죠. 그 에너지를 오히려 저를 계발해야 하는 데 쏟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게 옳았던 거 같아요.

김진세 자기계발이라는 건, 자신에 대한 투자를 말씀하시는 거죠?

김미화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코미디언으로서의 자부심도 굉장히 커요.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안 써줘서 못하지만(웃음).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코미디계를 이끌고 빛낼 거다’라는 믿음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제 꿈이 코미디언이었으니까. 지금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더 좋은 코미디를 만들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같은 의도에서 지난주부터 언론정보대학원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머리가 좋아서 박사를 하겠다는게 아니라 항상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거죠.

김진세 머리가 좋으신 거 같은데요?

김미화 아니에요, 진짜로. 그냥 시의성 같은 걸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김진세 김미화씨 자료를 체크하면서 남긴 두 번째 메모가 ‘똑똑하다’였거든요.

김미화 진짜로요(웃음)?

김진세 사람들이 지능을 타고났다고 하는데, 저는 그걸 안 믿어요. 어느 한 분야에 포커스를 맞추고 노력하면 그쪽으로 발전하거든요. 어차피 아이큐라는 것도 인간이 측정하는 거니까요.

김미화 제가 잔머리가 좀 있는가 보죠(웃음).

김진세 나중에 묘비에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써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코미디에 대한 열정을 읽었어요. 대단하다 싶기도 했고요. 왜 그렇게 코미디가 하고 싶으셨어요?

김미화 어려서부터 아버지 없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까불었다고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계발된 거예요. 친구들이 졸리다고 하면 선생님 흉내 내고, 그럼 아이들이 “꺄~” 하고 쓰러지고. 그래 이 맛이로구나. 어려서부터 대중의 이목을 끄는 게 어떤 건지 그 맛을 본 거 같아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애기 때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다 따라 하곤 했대요. 엔터테이너적인 기질이 있었나 봐요. 그런 것들을 굉장히 잘 발전시킨 거죠.

김진세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미화씨가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었잖아요.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어려운 어린 시절 체득한 것들이 인생의 큰 줄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김미화 그렇죠. 결정적인 사건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 학교에 잘 가지 않았어요. 어떤 친구가 저를 “아빠 없는 애”라고 놀렸는데, 제가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보고 배웠는지 그 애 따귀를 때린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놀렸는지는 따지지 않고, 단지 그 애를 때렸다는 이유만으로 저만 벌을 세운 거예요. 그 이후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몇 달을 안 나가다가 선생님이 엄마한테 얘기하는 바람에 들켰어요. 이후 엄마가 치부책 같은 걸 만들어서 학교 갈 때마다 선생님 사인을 받아오는데 몇 번 하다보니 사인이 너무 쉬운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인하고 몇 달을 또 안 나갔죠. 학교는 안 가고 매일 길음시장에 죽치고 있었어요. 약간의 ‘꼬장’을 부렸던 거예요(웃음). 그 애가 나를 놀리는 것도 싫었지만, 왜 선생님이 나한테만 벌을 줬을까 하는 섭섭함이 컸죠.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그 선생님이 너무 미워서 이름조차 기억 못해요. 엄마한테는 자초지종을 말하지는 않았는데, 보다 못해 5학년 초에 우이초등학교로 전학을 시키시더라고요. 전학 가서 선생님을 잘 만났어요. 당시 미혼이셨는데 저를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그리고 ‘전학을 왔으니, 여기 아이들에게는 내가 아버지 없는 애라는 표가 안 나겠지’ 하는 마음에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웃겨준 거죠(웃음). 선생님은 아셨겠죠, 제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을 테니까. 예전에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그 선생님을 찾으면서 보니까 제 생활기록부에 ‘영양결핍’ 이런 것도 쓰여 있더라고요.

김진세 그 선생님 성함은 기억하시는군요?

김미화 노병하 선생님이세요.

김진세 아, 좋은 거만 기억하시니까!

김미화 그렇죠! 선생님께서 들려주셔서 알게 된 얘긴데요, 하루는 제가 선생님을 찾아가서 맹랑하게도 “김밥 못 싸서 소풍 못 가요”라고 했대요. 그래서 선생님이 김밥을 싸주셔서 소풍을 갔대요. 보통 아이들은 그런 용기가 없잖아요? 집이 가난해서 김밥을 못 싸면 소풍을 안 가면 안 갔지, 그 얘기를 하는 게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말이에요. 전 가난한 것보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애들에게 알려지는 게 자존심이 상했었나 봐요.

김진세 지금껏 살아오면서 성격이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김미화 엄마죠, 엄마. 강인한 분이셨어요. 스물여덟에 혼자 되신 뒤에 정말 가난했거든요. 그래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죠. 전 젊은 시절의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을 곁에서 죽 지켜봤거든요. 제가 어려서부터 심성은 착했어요. 지금도 엄마는 “너는 엄마 속을 하나도 안 썩이고 컸다”고 하는데, 제가 생각해도 그래요. 엄마의 감언이설에 속은 거 같기도 하고(웃음). 엄마의 지혜죠. 딸을 이용해서 좀 편안하게 살아보겠다는(웃음).

김진세 첫째 딸들이 워낙 엄마한테 각별하잖아요.

김미화 네, 그렇죠.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엄마를 보면서 ‘도와야지. 괴롭히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전 강인한 여성 하면, 항상 엄마를 떠올렸어요. 중·고등학교 때 글짓기대회만 있으면 ‘우리 엄마는 대단한 엄마’라고 써서 우리 엄마가 장한 어머니상을 두 번이나 탔어요. 해장국집 등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엄청 고생하셨어요. 사춘기 때는 그런 게 창피할 텐데 전 전혀 창피하지 않았어요.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엄마 장사하는 곳에 가서, “우리 엄마 이렇게 고생하니까 장한 어머니상 주셔야 됩니다”라고 했으니까.

김진세 어머니의 눈물을 본 적이 있으세요?

김미화 우리 어머니는 술을 잘 드세요. 그러곤 속상하면 두 딸을 붙잡고 우셨어요. 정말 엉엉 울어요. 그게 안된 거예요. 엄마라면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이런 면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도 엄마한테 못마땅한 건, 이젠 손녀들을 데리고 울거든요. 그럼 난 그게 싫어서 뭐라고 하는데, 그러면 또 기분 나빠 하시죠. 엄마의 그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용은 하지만, 그런 모습은 안 보고 싶죠.

김진세 김미화씨는 절대 울지 않는다면서요?

김미화 절대 안 울어요. 울더라도 혼자 밖에서 울고 들어가요. 그래서 아이들은 저를 강한 엄마라고 생각할 거예요. 아이들 가슴 아프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김진세 어머니로부터는 강인함을 물려받으신 거 같아요.

김미화 진짜 그래요. 우리 엄마가 아주 익살스럽고, 괜찮은 여자예요. 여장부죠. 난 우리 엄마를 좋아하면서도, 미워해요. 딸들이라면 다 그런 감정을 알 거예요. 미울 때는 밉다고 적나라하게 표현을 하는 딸이기도 하고요.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김진세 요즘 많이 힘든 때잖아요. 주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미화 제가 늘 하는 얘기 중 하나인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나에 대한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는 살림만 할 뿐인데, 어디서 가치를 찾으라는 것이냐’고 하실 수 있지만, 어떤 것이든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그게 꽃이 되는 거예요.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최고로 커피를 잘 탄다,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자꾸 계발하고 노력하면 될 수 있어요.

김진세 그럼 자부심이 생기고요?

김미화 네. 또 세상이 각박하고 메마르니까 소녀적 감성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될 수 있으면 저희처럼 시골에 와서 사시면 좋겠는데…. 우리 동네 보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아이들은 충분히 살기 좋아요. 스쿨버스 있죠, 운동장 넓죠, 대안학교처럼 자연과 더불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좋거든요. 왜 다들 그렇게 좁은 곳에 비집고 들어가서 피 터지게 힘든 싸움을 하는 건지, 그건 좀 의문이에요. 저도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다면 데리고 내려와서 살았을 거예요.

김진세 저도 바닷가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거든요. 언제든 마음의 준비는 됐다고 생각하는데 준비 기간이 자꾸 길어지네요.

김미화 그렇죠? 그건 부모가 결단을 내려야 하거든요. 시골 내려가면 집값이 싸니까, 사실 돈은 안 붙죠(웃음). 그래서 어렵긴 한데. 또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거예요. 해드릴 말씀이 없어서 중언부언하는데요(웃음). 강조하고 싶은 건, 자기 스스로 즐기면서 살라는 거예요. 남편 없이도, 애들 없이도 난 행복할 수 있잖아요. 애들한테 너무 얽매이면 안 돼요. 아까 얘기했듯이 주변을 탁탁 털어버릴 수 있어야 해요.

김진세 말씀 나누다 보니 긍정의 힘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셔서 도리어 어려워지는데요. 저는 한 가지를 콕 집어내서 써야 하거든요(웃음). 일단, 인생이 진지하고 솔직하세요. 또 알 수 없는 자신감이랄까? 좋은 기운이 흘러요. 엄마에 대한 것도, 어려서 그리 밝지 않은 기억도 좋은 에너지로 잘 소화해내신 것 같아요.

김미화 그랬던 거 같아요. 저는 한 번도 나쁜 친구를 사귄 적이 없어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우연히 뵀는데 “너 학교 다닐 때 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다녔던 기억밖에 안 난다”라고 하셨어요. 정말 ‘보스’마냥 큰 아이들을 이끌고 다녔거든요. 제가 여학교만 6년을 다녔는데, 드라마 ‘꽃보다 남자’처럼 아침에 등교하면 제 책상 위에 장미꽃이나 편지가 놓여 있곤 했어요. 나를 좋아했던 애들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칠 때가 있는데, 걔네들은 지금도 저를 보면 얼굴이 빨개져요. 떨리는 그런 마음이 있나 봐요. 제가 그런 기질이 있어서 사실 나쁜 쪽으로 빠지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어요.

김진세 제가 근처에서 고등학교를 다녀서 알아요. 길음시장 그 쪽으로 얼마나 험했는데….

김미화 칼날 씹어서 뱉는 애들도 많고 그랬어요(웃음). 물론 옛날에요(웃음). 저는 대지극장 너머로 나가본 적이 없어요.

김진세 혹시 그랬던 기억을 지우신 거 아니에요(웃음)?

김미화 그랬을지도 모르죠(웃음). 진짜로 나쁜 길로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김진세 그게 어머니의 힘이죠?

김미화 네, 엄마의 힘들었던 삶이 저를 잡아준 거죠. 인생이 참 웃긴 게, 지금도 제가 관련되어 있는 사회 복지 단체가 80군데가 넘어요. 다 홍보대사예요. 안 하게 해달라고 해도 돈도 안 받고 열심히 일을 도우니까 ‘세상에 이런 연예인이 어디 있어’ 하며 자꾸 불러요(웃음).

김진세 제가 알기로 2년 전에 80군데였으니, 지금은 더 늘었겠네요?

김미화 네, 마구 늘고 있어요(웃음). 그런 것들이, 또 저를 나쁜 길로 빠지지 못하게 잡아주는 거예요. 사실은 코 꿰서 다니는 건데(웃음). 그게 이상한 거예요. 나쁜 짓을 하거나 나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운명적인 힘이 나를 이끄는구나, 하는.

김진세 제가 인터뷰할 때마다 꼭 별명을 여쭤봐요. ‘까불이’ 말고 또 없었어요? 까불이는 저도 까불이었는데요, 뭘(웃음).

김미화 예전에는 까불이였고요. 개그맨 되면서 처음 저를 알리기 위해서 ‘입 큰 개구리’라는 별명을 지었어요. 그때는 사람들에게 김미화라는 이름을 빨리 알려야 했으니까요. 늘 저를 홍보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죠. 또 ‘순악질 여사’도 있었잖아요.

김진세 직접 뵈니까 ‘순악질 여사’의 요건을 모두 갖고 있으세요. 악질이고 독하다는 게 아니라, 집념이 보여요. ‘까불이’는 실은 어린 개그맨에게는 최고의 찬사죠!

김미화 그럼요.


김진세의 에필로그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김미화, 그녀는 아톰처럼 강하다
조그만 체구지만 손아귀 힘이 셌다. 고개를 들어 마주치는 눈이 매섭게 느껴졌다. ‘순악질 여사’의 시커먼 ‘일자(一字) 눈썹’이 없는데도 강인해 보였다. 그녀는 첫 만남에서 눈을 마주치는 습관 혹은 의도가 있는 듯했다. 기자와, 관계자들과 악수를 할 때도 그랬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인식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의도적이진 않지만, 그녀가 주는 메시지가 있었다. 무엇일까?


그녀는 너무나 긍정적이었다. 마치 ‘긍정의 힘’에 나올 모든 주제를 다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이 어쩜 이리 긍정적일 수 있을까?

혹시나 하고 우려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사물의 밝은 쪽을 보려하는 낙천주의자다. 싫은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굽힐 줄도 안다. 나쁘고 부정적인 기억은 망각되는 ‘선택적 기억상실증(?)’도 긍정적으로 작용을 한다. 요즘 개그 프로그램의 교과서격인 ‘개그콘서트’를 기획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도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도, 그녀의 긍정을 이끄는 또 다른 힘이다. 인터뷰 내내, 있는 그대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솔직함도 큰 무기다. 게다가 자기계발에도 게을리 하지 않으니, 그녀에게는 정말 긍정의 힘이 많다.


이 많은 긍정의 힘을 아우르며, 그녀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강인함’이다. 태생적으로 긍정적이기 힘든 고난을 생각해본다면, 강인함만이 그녀를 지금처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강해야 변할 수 있다. 강해야 남들의 시선을 뿌리치고 홀로 우뚝 설 수 있다.

이혼의 아픔을 떨치고 훌륭하게 만끽하고 있는 행복한 결혼생활, 세간의 우려와 편견을 깨고 개그맨에서 최고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훌륭한 자리매김, 재즈 가수와 대학원 박사과정 등등… 이 모든 것이 강인함이 없었다면 시작하기 힘든 일들이다.

그 많은 변화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까불이’ 탄생의 대목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따돌림은 누구라도 이겨내기 힘든 아픔이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뒤바꿀 수 없는 운명적인 비극을, 오히려 어두웠던 성격을 밝은 성격으로 바꿀 수 있었던 계기로 삼았으니 말이다. 위대한 한 희극인의 탄생은 강인함의 결과이다.

그녀의 강인함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키워진 것이다. 물론 타고나기를 강하게 태어난 구석도 있으리라.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친구들을 거느리고 다녔다는 추억으로 미루어, 그녀에게는 강한 남성적인 모습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무쇠를 두드려 강철을 만들 듯이, 불행한 과거는 그녀를 더욱 강하고 탄탄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어머니는 강인함의 원천이었다. 스스로 말하듯이, 그녀의 성장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다. 자식들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던 강인한 모성, 그리고 가끔은 술의 힘을 빌려 상처 난 속을 달래는 가녀린 모습을 엿봄으로써, 그녀는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그녀도 울지 않는다, 남들 앞에서는.

그녀는 아톰처럼 강하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아톰 인형과 같이 말이다. 우리들 시대에 만화영화 ‘우주소년 아톰’을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강철로 만들어져 웬만해서는 부수어지지 않는 아톰은 강하다. 친아버지가 서커스단에 팔아넘긴 아톰에게도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더욱 강해진 그는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고난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다. 괜히 그녀가 아톰에 마음이 가고, 힘껏 악수를 하며, 강한 인상으로 눈을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녀가 아톰처럼 살기를 바란다. 푸른 하늘 저 멀리, 랄랄라, 힘차게 날으는, 우주소년 아톰, 용감히 싸워라!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긍정의 힘을 보태는 선물
김미화에게 선물하는 한 권의 책, 「스타트 신드롬」


솔직히 고백하자면, 4월 초 제가 쓴 신간이 출간됩니다. 「스타트 신드롬」(예담)이라고 요즘같이 힘든 때에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처방전이 담긴 책입니다. 이 책을 김미화씨에게 드렸으면 했습니다. 우선, 변화무쌍하게 살아온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제가 쓴 책이라고 자랑도 하고 싶었고요. 그렇지만, “제 책을 선물로 드릴게요”라고 하기에 좀 쑥스럽잖아요! 게다가 장 기자가 “샘, 자기 홍보는 안 됩니다! 「레이디경향」, 그런 잡지 아니에요”라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포기했지요(정말 농담이었다고 하지만, 나름 상처…).

그래서 인터뷰를 마치고, 이 책 저 책 물어보았지만, 워낙 독서광인 김미화씨가 이미 다 본 책이지 뭐예요. 그래서 슬쩍 지나치듯 한마디 했습니다. “제 책이 있기는 한데, 아직 출간 전이라…”라고 했더니, 대뜸 “선생님! 나 그 책으로 주세요!”라고 하시는데…, 급방긋.

‘책 선택의 압박’을 풀어주시고, 더불어 제 책 자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김미화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즐겁게 읽으시고 언제나처럼 멋진 스타트하시길 바랍니다.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김미화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김미화씨에게 선물한 「스타트 신드롬」을 보내드립니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김미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까불이

김진세 박사는…
베스트셀러 「심리학 초콜릿」을 통해 여성 심리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파리6대학의과대학에서 메조테라피 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며, 고려제일신경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KBS-1TV ‘여성공감’ 패널로 한껏 입심을 발휘하고 있으나, 그의 전공은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스타트 신드롬」, 「마흔의 심리학」(공저)을 쓰고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를 번역했다.


기획&정리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63시티 ‘터치 더 스카이’(02-789-5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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