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설 딛고 새 음반 발표한 이선희 재혼 후 달라진 인생 고백

은퇴설 딛고 새 음반 발표한 이선희 재혼 후 달라진 인생 고백

“끔찍하고 괴로운 시절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이
제게 준 것을 소중히 가슴에 담고 살아갑니다”


지난 2년간 한국을 떠나 미국에 머물렀던 이선희가 귀국해 새 앨범 「사랑아」를 발표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쓸쓸함을 표현한 이 노래는 이선희의 그간의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백화점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이선희는 노래와 삶, 사랑,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냈다.


은퇴설 딛고 새 음반 발표한 이선희 재혼 후 달라진 인생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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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선희가 새로운 앨범 「사랑아」를 발매했다. 열네 번째 정규 앨범이다. 그동안 한국 역사에 남을 만한 무수한 히트곡을 발표해왔지만, 이번 앨범은 더 특별하다. 13집 「인연」의 인기를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난 후, 그곳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직접 작사·작곡해 담았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 중 내 안에 무엇이 쌓여 있는가, 이제 풀어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무엇을 풀어놓아야 할까?’ 그러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이때까지 무엇을 좋아하면서 살았나 생각해봤더니 ‘사랑’이었어요. 저는 늘 사랑에 목말라한 것 같아요. 그건 단순히 연인, 남편, 아이와의 사랑이 아니라 무엇을 보면 설레는 마음이에요.”


딸의 추천으로 타이틀곡 된 ‘사랑아’
‘사랑아’ 속에는 이제 40대 중반을 지나는 이선희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랑아 가지 마라 곁에 있자, 이별은 더는 내게 있지 마라 / 사랑도 이별도 되돌아보면, 내 인생의 벗이었네’

이 곡은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가사와 가슴속을 파고드는 애잔한 멜로디로 발표 이후 큰 사랑을 얻고 있다. 음반은 출시되자마자 판매 순위 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음반 시장이 안 좋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어떻게 내가 10위 안에 들 수 있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가 ‘꽃보다 남자’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 드라마를 가끔 보는데 나이가 들수록 어린 남자아이들이 귀엽잖아요. 통통 튀는 맛에 즐겁게 보고 있는데, 그 드라마 OST가 1위였어요. 그 앨범과 제가 10위 안에 같이 들어가 있으니까 덩달아 웃음이 나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이선희는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많이 느낀다.
“놀란 건, 제가 데뷔했을 때 처음 프로듀서 생활을 시작했던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이 지금은 방송국 국장급 이상이 되어 있더라고요. 국장실에 놀러 가면 제가 ‘네가 국장이냐? 똑같은 시간이 지났는데 나는 그대로인데, 너만 진급했냐’ 하죠(웃음).”

귀국해 앨범을 낸다고 했을 때 반대 의견도 많았다. 그녀의 전성기 시절과는 달리 음반시장 사정이 너무 안 좋아 실패할 거라는 우려에서였다.

“예전 노래도 좋지만 가수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의 느낌이 담긴 곡을 계속해서 발표하는 것도 하나의 임무라고 생각하거든요. 되든, 안 되든 내 생각을 담은 앨범을 내고 싶었어요. 욕심 없이 냈는데 반응이 좋으니 기분 좋네요.”

음반을 준비하면서 그는 매니저와 고민했다. 어떤 곡으로 팬들과 만날 것인가? 그의 매니저는 “요즘은 40년, 50년 노래하는 가수를 찾아보기 힘든데, 언니가 그때가 되어 노래한다면 무대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를 수 있을까?”라고 조언했다.

“당연히 못하죠. 힘이 달려서 할 수 있을까요? 그때는 멋들어지게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노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랑아’를 만들었어요.”

은퇴설 딛고 새 음반 발표한 이선희 재혼 후 달라진 인생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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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가 생각했던 타이틀곡은 ‘사랑아’가 아닌 ‘아름다운 강산’과 같이 강한 다른 노래였다. ‘사랑아’를 타이틀곡으로 정하는 데에는 딸의 의견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딸이 미국에서 앨범을 듣고는 ‘엄마는 조용하고 나직한 노래를 불러. 그게 맞는 것 같아. 엄마가 어쩌다 춤을 추면 민망해서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더라.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옷차림이 있는데 엄마한텐 그게 맞는 것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가끔 딸이 딸 같지 않고 선생님 같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알았어, 네 말 들을게’ 했죠. 우리 모녀는 거꾸로 산 지가 오래되어서 딸 잔소리에 익숙해요.”


연예인 아닌 자연인으로 살았던, 지난 유학생활
이선희는 3년 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가수를 은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당시 ‘인연’이 인기를 얻어 제2의 전성기라는 이야기가 있을 때라 팬들의 안타까움은 컸다. 가끔 교민들을 통해 “이선희가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이 전해졌을 뿐이다.

“미국에서 2년 반 있는 동안 일부러 소식을 전하지 않았어요. 이쪽(한국)과 연락을 하고 한국 방송을 보다 보면, 제가 학생이라는 신분을 잊고 노래하고 싶을까봐 아예 담을 쌓고 지냈어요. 그런데 한국에 있는 후배가 ‘벨소리 다운로드 순위 차트에 언니 노래가 있어요’라는 문자 메세지를 전해왔어요. 저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죠. 그런데 제 노래 ‘인연’이 ‘왕의 남자’의 배경음악으로 화제가 되어서 참 많은 사랑을 받았더라고요.”

미국 생활은 더없이 평범했다. 연예인으로서는 물론 여자 이선희로서도 편한 생활이었다.
“미국에는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대부분 생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죠. 미국 미용실이 왜 비싼가 했더니,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외모에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지내다가, 6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와 파마도 하고 마사지도 하고 손톱도 관리했어요.”

미국 생활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딸아이의 학업 때문. 이선희는 이 시기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영어 공부를 했다.
“제가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어요.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20대였죠. 그러니 얼마나 따라가기 힘들었겠어요. 가끔 (노트 필기) 안 보여주면 ‘언니가 맛있는 거 안 사줄꺼야’ 협박 하면서 함께 시험 공부를 했어요.”
학생들도 이선희를 연예인으로 의식하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이선희는 너무나 평범한 40대 여성이었다.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은 저더러 ‘연예인 같지 않다. 언니를 연예인 명단에 포함시키면 망신살’이라고 했어요. 그러다 가끔 한국 갔다 오면 달라지잖아요. 그제야 ‘좀 볼 만하네요’ 하고요. 그 정도로 미국에서는 티셔츠·청바지 차림에 모자 눌러쓰고 평범하게 살았어요.”

이젠 ‘아 옛날이여’ 부르며 떠올릴 사연 많아
이선희는 요즘 파란색 치마에 아줌마 파마를 하고 무대에 섰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이선희가 무대를 위해 태어나서 처음 한 파마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촌스러운 패션이지만 그보다 빛난 열정이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저런 패션이 다 있어?’ 할 것 같아요. 당시에는 아줌마 파마밖에 없었어요. 파마하기 전 저는 굉장히 멋있을 거라고 상상했죠. 그 모습이 얼마나 쇼킹했던지, TV를 보고 고등학교 때 화학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당시 패션리더였던 선생님은 제게 ‘폭포 파마라는 것이 있는데, 하필 그런 아줌마 파마를 해서 내 제자라는 것을 창피스럽게 만드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의 충격이 너무 심했던지 이선희는 그 이후로 파마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유행이 지나고 예쁜 파마도 많았지만, 파마를 하면 다 그렇게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선희도 파마를 한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를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롤 스트레이트.

“나이가 드니까 생머리를 간직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잠을 험하게 잔 것도 아닌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부스스하죠. 그래서 파마를 해요. 드라이를 하기 위해서도 편하고, 손질하는 것도 귀찮아서요. 특히 한국인은 자연적인 생머리를 갖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은퇴설 딛고 새 음반 발표한 이선희 재혼 후 달라진 인생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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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시절, 가장 인상 깊었던 팬으로는 제주도 소녀를 꼽는다. 이선희가 좋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팬이었는데, 그 소녀는 ‘어디선가 내 노래를 들으며 위안받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구나’하고 느끼게 해준 팬이었다.

“처음에 데뷔했을 때는 팬의 연령층이 중·고등학생이거든요. 제주도에서 무작정 상경한 팬을 보고,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사람도 좋아할 수 있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저는 소녀 시절 사람보다는 음악에 미쳐 있었거든요. 이성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창 이성에 관심 있었던 아이들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았어요. ‘레드 제플린의 기타, 죽이지 않냐?’라는 말만 하는 저는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였죠.”

이선희는 가수 생활 25년을 되돌아보면서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많았다는 걸 인정한다. 그 세월 동안 그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연예인은 참 유혹이 많아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혹의 손길이 많은 생활이에요. 그래도 지킬 수 있었던 건 그때 팬들 때문이었죠. 예전에 제가 ‘아 옛날이여’를 부르면 사람들이 ‘네 나이가 몇인데 이런 노래를 부르니?’라는 말을 했는데, 지금은 회상할 거 많아요. 어쩌다 꾐에 빠져 정치도 했었고, 친구 꾐에 빠져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다가 굉장히 많이 혼나기도 했고요.”

지난날의 시련은 지금 이선희의 가슴에 훈장처럼 남아 있다.
“별별 경험을 다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것들이 싫지는 않아요. 그것을 겪는 시간 동안은 끔찍하고 괴로웠지만, 그 괴로움과 힘겨움이 나에게 뭔가를 주더라고요. 저는 시간이 제게 준 것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담고 살아가요. 그래서 ‘아 옛날이여’를 부르면 감정이 달라요.”


이젠 감사하며 나누고 싶어
이선희는 4월 1일부터 5일까지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공연을 갖는다. 공연의 테마는 ‘초대’로 잡고, 좋은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남편과 아이도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겠지만, 팬들의 사랑에 언제나 감사해요. 돈을 투자해서, 시간을 내서 그 자리에 온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항상 공연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배포 큰 여자가 되어 팬들을 위한 편안한 자리, 멋있는 자리를 만들어 초대하고 싶었죠.”

파란색 치마를 입고 파마머리를 여학생은 벌써 데뷔 25주년, 45세가 되었다. 편안하게 지난날과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이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사람이 마음먹는 대로 변한다는 말이 맞아요. 어떤 사람이든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니까 행동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저는 늘 다른 사람의 배려와 도움을 받으며 살았는데 이제는 제가 챙겨주려고 해요. 제가 먼저 ‘괜찮니?’ 하고 묻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배포 큰 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감사할 일뿐이다.
“40대 중반에 들어서서 외적인 것에 신경을 안 쓴다면 거짓말이겠죠. 대신 50세에 가까워지니 무엇이 내게 중요한지 생각하게 돼요. 마음의 평화, 하고 싶은 일, 아이를 키우는 일, 세상을 바라보는 일,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는 일…. 예전에는 자랑하거나 우월한 것을 위해 살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감사와 나누는 일에 앞장서려고 해요.”

다시 무대에 선 이선희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인생을,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노래에는 삶에 대한 감사함이 이전보다 깊게 묻어나왔다. 앞으로 이선희의 삶이 지금과 같은 행복으로 가득하길 바라본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원, 후크엔터테인먼트 촬영 협조 / 신세계백화점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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