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듀오 해바라기는 자신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 통기타 반주로 부르는 이들의 목소리는 작다. 그러나 이들이 전파시키는사랑의 메시지는 그 어떤 연설보다 강하다. 오랫동안 언론 인터뷰를 피했던 이들이 비로소 자신의 음악과 세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바라기의 노래는 음악이 가진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준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거창한 연설이나 선진화된 과학 기술이 아닌,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노래였다.
사랑은 영원한 테마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은 ‘사랑으로’를 즐겨 불렀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랑으로’는 1988년 발표 이후 지금까지 국민가요로 불리고 있다. 음반은 지금까지 꾸준히 팔려 누적 판매량이 400만 장에 달한다. 리더이자 해바라기의 모든 음악을 작사·작곡한 이주호는 이 노래를 작곡했던 20년 전을 회상한다.
“어느 날 신문을 통해 가슴 아픈 소녀가장의 사연을 접했어요. 사람들에게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집에 걸려 있던 성구 ‘두드리면 열리리라’를 보고 단숨에 가사를 써 내려갔어요.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 그 가사는 그렇게 1분 30초 만에 완성됐어요.”
그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음악은 권력보다 강한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음악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이에요. 음악 문화가 주는 반향이 있죠. 음악으로 정신세계가 만들어지고, 내 삶이 변화하기도 해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래를 쓰고 싶었어요. 내 인생의 시작과 끝을 일찍 깨달아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가사와 멜로디 안에 들어가 있죠.”
이주호는 “사랑은 영원한 테마”라고 말한다. 변치 않고 30년간 사랑을 이야기해올 수 있는 힘은 유년 시절에서 비롯됐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자, 맹자의 이야기나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의 문학작품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친구들과 세계의 문호들이 쓴 작품에 대한 토론했고 그 안에 담긴 교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 자기 생각을 나누기도 했죠. 지금 학생들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게 자라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게 ‘인생의 길’이었어요. 그때부터 하루에 한 곡씩 쓰자고 결심했는데, 그게 습관이 되었죠.”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타고난 성정 자체도 긍정적인 편이었다. 날이 밝으면 ‘오늘도 나에게 하루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했다. 어린 시절 교회와 가톨릭 학교를 다닌 것도 그의 정신세계,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런 바탕 덕분인지 ‘사랑으로’의 가사는 마치 성경 구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좋아 교회를 다녔어요. 가톨릭 중학교에 가서는 미사도 드렸고요.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내 노래 속에는 성경 속 이야기들이나 내가 살면서 잘 지키지 못했던 것들이 들어 있죠. 희망적이고 좋은 것들이에요. 그런 것들을 노래를 통해 말한다면 같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때부터 은유는 습관이 됐어요. 가장 은유적인 뜻이 많이 들어간 곡은 ‘어서 말을 해’예요. 당시 언론이 통폐합됐는데, 그 현실이 무척 가슴 아팠어요. 그 당시 민주국가에 살면서도 억눌려 있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답답한 심경이 담겼죠. 가슴 아파할 수 있는 젊은 날의 초상이라고 할까요. 그 노래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많이 풀어냈는데 그 시대의 이야기들, 기억들은 많이 지워졌어요.”
‘사랑으로’로 시작된 봉사활동
해바라기는 ‘사랑으로’ 발표 이후 자선공연을 많이 다녔다.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회에도 섰다. 이들은 보이지 않게 도움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 편에 서서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 재단 홍보대사를 맡아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자선단체의 공연이나 행사, 홈페이지(www.sunflowermusic.co.kr)를 통해 기부 장려 활동도 벌이고 있으며, 공연이나 음반 수익의 일정 부분도 기부하고 있다.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자선단체도 커졌고 봉사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항상 보람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후배 하나가 ‘직접적인 활동은 어떠세요?’라고 제의해왔어요. 어린이 재단 홍보대사를 맡아달라면서요. 굶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고 싶었는데, 이제는 직접 참여하고 있죠.”
어린이 재단 홍보대사를 흔쾌히 수락한 것은 어린이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는 어린이가 바로 우리의 미래고, 그들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는 걸 알고 있다.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아직도 세상에는 사랑이 더 필요하구나’라고 느끼고 있다.
“마음은 있지만 자기 갈 길이 너무 바빠서 돌아보지 못하는 분들이 무척 많아요. 또 도우려는 마음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많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개념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공연을 통해서 몰랐던 것도 일깨우게 되고, 그런 깨달음이 모이고 모이면 언젠가 더 큰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왜 아직도 사랑이 필요한 곳이 이처럼 많을까. 그는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함께 활동하는 강성운은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봉사단체가 많이 없어지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한단다. 그만큼 세상이 점점 더 좋아져서 봉사단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봉사단체가 많다는 건 그만큼 어렵고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이런 일들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현재 많은 봉사단체가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순수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곳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기도 해요. 순수하게 기부하는 돈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나 싶죠.”
함께 부르는 노래의 매력
해바라기는 5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사랑이다. 「사랑Ⅰ」(앞으로 사랑 Ⅶ까지 나올 예정)이라는 제목으로 신곡 ‘사랑의 발걸음’, ‘멋져요, 멋져’와 네 곡의 히트곡을 함께 묶어냈다. 이 중 ‘멋져요, 멋져’는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격려를 담은 곡으로, ‘사랑으로’처럼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이다.
“요즘 남녀노소 다 같이 모여서 얼굴을 보고 미소 지으면서 부를 수 있는 곡이 몇 개나 되나요? 정말 없어요. 늘 그런 생각을 해왔는데, 어느 날 올림픽대로에서 운전하다가 이 노래의 멜로디를 흥얼거렸어요. 그리고 차에서 내리면서 노랫말을 생각했죠.”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모닥불 피우고 모여 앉아 통기타 반주에 노래 부르던 그 옛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내가 몰랐던 네 목소리를 듣고, 너와 내가 한 목소리로 한 노랫말을 한 영혼으로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너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게 되죠. 그런 것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의 장점이죠.”
“노래를 하면서 뭉클할 때가 있어요. 순간순간 벅차오르는 마음이 생기죠. 부르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니 듣고 같이 부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어떤 분들은 잠을 자다가 놀라서 깨기도 해요. 저희 노래는 잠을 잘 정도로 조용하고 편안하니까요.”
요즘같이 전자음에 큰 음향, 화려한 댄스의 가수들이 난무한 상황 속에서도 이들의 음악은 빛을 발한다. 통기타와 서정적인 노래가 주는 메시지는 세대를 초월해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대학 공연에 초대된 적이 있어요. 당시 굉장히 유명했던 아이돌 그룹들과 한 무대에 섰는데, 저희 순서는 맨 마지막이었어요. 역시나 아이돌 그룹이 나오니 소리 지르고 쓰러지고, 객석에서 난리가 났어요. 그러다가 우리가 통기타 들고 무대에 오르니까 다들 딴 짓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조금씩 듣기 시작하다가 마지막 곡 ‘사랑으로’에서는 다 같이 부르더라고요. 그리고 앙코르 요청을 받았어요.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도 두세 곡만 부르고 내려갔는데, 앙코르를 받는 팀은 우리뿐이었어요.” (정성운)
기계적인 음악과 달리 이들의 음악은 마음을 움직인다. 이들이 이제는 사라져가는 포크 음악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노래 자체, 생각 자체를 전달하는 가수예요. 화려한 가수들도 많지만 우리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어요. 슬프지만 이제는 거의 유일무이한 팀이 되었죠.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통기타 음악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어떻게 이어 나가는가 하는 거예요. 지금보다는 더 모던한 색깔이겠지만 노래하는 감성이 있는 사람들이 더 나와야 장르 면에서 비옥해지지 않을까요.”
이들은 지난 30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한 번도 인기에 연연하거나 방송에 나가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 이들의 노래는 특별히 방송을 타지 않아도 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간다. 이주호는 “이제 슬슬 ‘행복을 주는 사람’(1988년에 발표한 노래)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웃는다. 인기나 돈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영혼의 이야기다.
온갖 범죄나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태연하게 벌어지는 지금, 세상이 아직도 살 만한 건 공기청정기처럼 영혼을 정화시키는 이들의 노래가, 이들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