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허허!’ 하는 웃음소리와 보조개가 인상적이었던 ‘못생긴 무수리’ 김현영을 사람들이 기억할까? 그녀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건 두 달 전 일이다. 처음에 고사했다. 그리고 또 한 달 후,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조심스레 “제가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담한 체구에 조막만 한 얼굴. 봄에 딱 어울리는 살구색 블라우스를 입은 김현영(41)이 걸어온다. 상큼한 보조개가 인상적이다. 개그우먼 중에서도 ‘못생긴’이란 수식어를 항상 달고 다녔던 그녀다. 만나자마자 먼저 외모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살이 붙어서 다이어트 중이에요. ‘못생긴 게’ 캐릭터라 하지만 저도 나름 관리를 해요. 마사지도 받고…. 실물이 더 낫다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나라에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못생겼다고 구박받을 외모는 아니다. 이미지가 고정되는 바람에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을 것 같다.
“그래도 ‘못생긴 무수리’라는 컨셉트 덕분에 돈도 벌었잖아요. 괜찮아요. 진짜로 예뻤다면 개그우먼으로 빛을 봤겠어요? 그리고 저에 대한 외모 기대치가 워낙 낮아져서 실제로 보고는 ‘못생기지 않았다. 예쁘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많아요. 장서희씨 닮았다는 말도 들었는데요(웃음).”
그녀는 1990년 스물세 살 때 KBS 코미디언 공채 6기로 데뷔했다. 그리고 2년 만에 KBS 코미디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그녀의 캐릭터가 공전의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컨셉트는 우연하고 작은 에피소드에서 탄생됐다.
“당시 서영춘 선생님의 딸, 서현선씨라고 미모가 뛰어난 개그우먼이 있었어요. 그분하고 저하고 같이 있었는데 심형래 선배께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기에 제가 먼저 ‘네~’ 하고 일어섰더니 ‘누가 너보고 그랬니? 꼭 못생긴 애들이 먼저 대답해요’라며 면박을 주셨어요. 그 상황이 너무 재밌어서 캐릭터를 만든 게 ‘못생긴 무수리’예요.”
그녀는 사실, 아역 탤런트 출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MBC-TV ‘안국동 아씨’라는 드라마(혜경궁 홍씨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김영란, 유인촌 등이 출연했다)에서 똑순이 김민희, 강수연과 함께 출연했다.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원래 희망했던 탤런트 공채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도전한 코미디언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코미디는 콩트 위주였기 때문에 연기력을 많이 봤어요. 그것 때문에 응시했죠. 그런데 합격을 한 거예요. 알고 봤더니 심사위원 중에 KBS 부장님이 계셨는데 제가 대학교 때 했던 연극을 인상 깊게 보셨대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저능아 김영기 역을 맡았거든요. 굉장히 과장되고 코믹 연기가 필요한 역할이었죠.”
연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시기다. 남자 어린애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연습하다가 피를 두 번이나 토했다(그런 이유로 지금의 걸걸하고 큰 목소리가 됐다고). 심사위원은 김현영을 알아보고 “따로 시험을 볼 게 없다”는 극찬과 함께 바로 합격시켰다. 그녀에게 무명 시절은 없었다. 데뷔하고 3주 만에 유명해졌고 CF도 줄줄이 찍었다.
“무명이라면 오히려 지금이 무명인데요(웃음).”
그렇게 인기를 모으던 그녀는 2005년 결혼과 함께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세상에서 온전히 혼자가 된 거예요. 그 상실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원래 결혼 생각은 없었는데 혼자라는 게 싫어서 결혼을 서두르게 됐죠.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어 타협을 한 게 잘못이었어요. 제가 태국 홍보대사거든요. 태국에서 결혼해보고 싶은 철없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녀는 인터뷰 다음날, 2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이혼 서류를 제출한다고 했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 뭐 하냐며 말을 아꼈다. 그녀는 결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별거에 들어갔단다.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전남편이 이혼을 승낙했다고.
“저를 대하는 태도가 결혼식 전후로 너무 달랐어요. 실제 결혼 생활은 일주일밖에 안 돼요. 그러니 이미 오래됐고 감정적으로 정리가 된 상태예요. 이제 이혼한다고 해도 별로 특별한 감정은 모르겠어요. 단지 사람들을 만나면 ‘부산에서 결혼 생활 잘하고 있지?’라는 안부 인사에 뭐라고 대답할지 좀 난감할 따름이에요.”
김현영의 어머니 기일도 며칠 남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 보니까 남산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라고요. 이렇게 꽃피는 계절이면 엄마가 그리워요.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생각도 해요. 죽으면 보고 싶은 엄마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밝은 척, 씩씩한 척했지만 남몰래 혼자 울고 마음고생했을 것은 뻔하다. 그녀는 강아지 10마리와 함께 살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요즘은 이혼 마일리지도 ‘빛나는’ 인생 경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김현영, 툭툭 털고 일어나자고 격려해본다.
세계 50개국 돌아다닌 역마살의 주인공
“저는 여행을 무지 좋아해요. 연예인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재산을 모으지 못한 이유도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일 거예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고정 프로그램을 못 맡았으니까요. 케이블 여행 채널을 통해 여행 관련 방송만 했던 시기도 있어요. 지금까지 총 50여 개국을 다녔어요.”
그녀는 한때 해외여행 프로그램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다. 물론 경험 부족으로 실패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여행을 실컷 했으니까.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자신 있는 분야를 비즈니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제작했어요. 4천만원을 투자해서 총 13편을 찍었죠. 그런데 4백만원밖에 건지지 못했어요. 전문 카메라맨이 아닌데다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나는 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도 장사하다 망한 거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여행은 공부니까, 비싼 공부했다 치는 거죠.”
그녀가 다닌 50개국 중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는 어딘지 물었다. 멕시코의 ‘칸쿤’을 꼽는다. 그곳은 미국인들이 신혼여행지로 가장 선호하는 아름다운 해변 도시다.
가히 여행 전문가라 해도 손색이 없는 김현영은 내년쯤 여행 서적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연예인들이 어설프게 책을 내면 비난받아요. 열심히 꼼꼼하게 준비해야죠. 여행 다니다 보면 정말 책 한 권이 나올 만큼 얘깃거리가 많아요. 영어가 달려서 경찰차를 택시인 줄 알고 타기도 했고 47일 동안 캐나다를 횡단, 종단하기도 했어요.”
그녀는 이제 제 돈 주고 가는 여행은 하지 않는다. 워낙 여행을 많이 다녀서 항공사나 여행사에 쌓인 인맥을 이용해 후원을 받기 때문이다. 그녀는 해박한 여행 지식 덕분에 후배 연예인들에게 곧잘 여행지 섭외를 해주기도 한다. 그녀, 떠나는 게 그렇게 좋을까?
“역마살이라고밖에 달리 설명이 안 되겠죠. 그냥 무작정 떠나고 싶어요. 같은 유럽이라 해도 20대의 내가 보는 것과 30대의 내가 보는 것이 분명 다를 거예요. 그냥 세계를 보고 싶었어요. 인천공항 근처만 가도 가슴이 떨리는걸요?”
사정상 해외에 못 나갈 때는 흡사 외국에 온 것처럼 호텔에서 자는 것도 즐긴다. 호텔 이야기를 하니 동료 연예인 김지선이 생각난다며 절친한 친구 김지선의 결혼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지인께 호텔 협찬을 받아서 스위트룸에 묵었어요. 혼자는 심심하니까 김지선씨를 불렀죠. 근데 옷과 화장품을 잔뜩 들고 온 거예요. ‘나, 오늘 소개팅 나간다. 분명 맘에 안 들 거야. 잠깐 만나고 나이트클럽 가서 놀자’라고 약속하고는 저도 소개팅 장소에 함께 나갔어요. 그런데 김지선씨가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결국 호텔 방까지 셋이 올라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새벽 2, 3시가 지나도 남자가 집에 안 가는 거예요. 저는 먼저 방에 들어가서 잤죠.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그 남자가 현재 김지선씨의 남편이에요(웃음).”
두 사람은 태몽도 대신 꿔줬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어느 날, 꿈에 지선이가 사과를 한아름 안고 있는 거예요. 다음날 당장 전화해서 ‘너, 임신했지?’라고 물어봤죠. 그렇다더군요.”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미스코리아 유하영도 그녀의 소개로 결혼까지 골인한 케이스다. 그 밖에도 탤런트 김민희, 변우민, 홍여진과도 친하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조언자가 돼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일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그녀는 4월 중순부터 리빙 관련 케이블 채널에서 ‘워킹맘’에 대한 코너를 맡아 현장 리포트와 진행을 맡고 있다. 활동적인 김현영에게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
“옛날부터 연출과 기획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여행 프로그램 제작도 해본 거구요. 1992년 LA에서 흑인 폭동 사건이 났을 때 가수들이 미국 공연을 갔어요. 저도 동행했는데 노래만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수들에게 연기를 시키며 ‘봉숭아학당’ 연출을 즉석에서 맡기도 했거든요.”
김현영은 앞으로 개그우먼보다는 생명력이 긴 연기로 방향을 잡으려 한다.
김현영은 우리 눈에서 잠시 멀어져 있던 최근 2, 3년간 앞으로 나아갈 다양한 분야에 대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해왔다. 그 중 이색적인 경험은 중국 드라마에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한류 열풍이 불었잖아요. 그 덕분인지 중국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재밌는 경험이었죠. 연변이랑 제주도를 오가며 촬영했어요. 물론 중국어는 더빙으로 처리했고요.”
그녀는 결심했다. 마치 내일은 없을 것처럼 오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새로운 사랑이 나타난다면 다시 시작해볼 거다. 시행착오가 있었던 만큼 후회 없는 진정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 ‘어제’를 이야기하며 내내 어둡던 표정이 ‘내일’을 이야기하면서 비로소 웃음을 찾는다.
“제가 요즘 한 가지 걱정이 있어요. 집에 강아지가 10마리 있거든요. 모두 흰색 페키니즈예요. 제가 일을 시작하면서 집에 하루 종일 갇혀 있을 강아지들을 생각하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 지면을 통해서 분양 광고 좀 낼 수 있을까요? 다 귀엽고 착한 아이들이랍니다. 혼자 사는 분은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양가 부모님이 계셔서 잘 보살펴주실 분, 연락주세요(웃음).”
■ 글/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