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중년’ 김용건과 친구같은 아들 하정우

‘멋쟁이 중년’ 김용건과 친구같은 아들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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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 때문에 배우로서 손해 보기도…
‘전원일기’가 나를 바꾸어주었죠”


김용건은 검은 슈트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평범한 스타일이지만, 그만의 은근한 멋이 묻어났다. 요즘처럼 꽃미남과 옷 잘 입기로 유명한 모델들이 많은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베스트드레서로 꼽힌다. 남자는 터프한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4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언제나 패셔니스타였다.


‘멋쟁이 중년’ 김용건과 친구같은 아들 하정우

‘멋쟁이 중년’ 김용건과 친구같은 아들 하정우

김용건(62)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스타일리스트를 따로 두지 않았다. 인기 있는 연예인에게는 으레 있는 의상 협찬도 받지 않았다. 연기에 필요한 옷까지 늘 자신이 고르고 구입해서 입었다.

“예전에 ‘전원일기’를 할 때도 제가 시장 다니면서 직접 옷을 구입해서 입었어요. 지금도 의상은 늘 제가 챙겨요. 제 만족이죠. 제 스스로 즐기는 일이니까. 오늘도 하얀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를 제가 골라 매고 나왔어요. (스타일링은) 오랜 습관을 통해 저절로 이루어진 것 같아요.”

패션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데뷔 초기부터 유명했다. 그는 양복이 아주 귀하고 비싸던 그 옛날 남대문시장에 가서 구해 입곤 했다. 다른 동료들이 몰려다니며 술을 마실 때, 그는 옷을 사러 다녔다.

“그때는 취미가 옷을 사러 다니는 거였어요. 조금 덜 먹더라도 돈을 아껴서 옷을 샀죠. 물론 비싼 건 아니었어요.”
그는 배우 중에서도 멋쟁이였다. 양복에 트렌치코트를 갖춰 입었던 그를, 그 시절 사람들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멋진 스타일은 오히려 연기 생활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지난 세월이지만, 사람이 보여야지 옷이 보이면 안 되잖아요. 겉모습 때문에 배우로서 손해를 본 것 같아요. 사람이 너무 각이 져 보이니까요. 사람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제게는 범접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나 봐요. 깔끔 떤다고 오해받기도 했고요.”

내 삶의 바탕이 된 ‘전원일기’
세련된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했던 그가 ‘전원일기’에 출연하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실제로 감독이 회장 댁 큰아들로 그를 캐스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아무리 농사꾼이 아닌 반듯한 이미지의 군청 직원이었지만, 농촌이라는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멋쟁이 중년’ 김용건과 친구같은 아들 하정우

‘멋쟁이 중년’ 김용건과 친구같은 아들 하정우

“제가 ‘전원일기’에 회장 캐스팅됐을 때, 다들 부적격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전원일기’는 제게 특별해요. 방송됐던 22년 동안 저를 많이 진화시켰다고나 할까요? 오랫동안 방영됐고, 좋은 드라마 주역이자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행운이었어요. 드라마에서 제가 맡은 큰아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걸어다니는 교과서의 이미지였잖아요. 연기하면서 저를 많이 돌아보게 만들었고, 이미지를 많이 변화시킨 계기가 됐기에 늘 고마웠죠.”

‘전원일기’가 종영된 지 어언 7년이 지났건만 김용건의 마음에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간혹 농촌을 지날 때면, 진짜 농사꾼 같은 아버지 최불암이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만 같다.

“지금까지 제 기본적인 삶은 ‘전원일기’를 밑바탕에 두었던 것 같아요. 농촌에서의 이웃간 사랑도 깊게 남아 있고, 논두렁에 앉아 계셨던 최불암 선배의 모습도 늘 연상이 되죠. 지금도 최불암 선배가 아버지 같아요.”

형제로 출연했던 유인촌 장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가는 지금까지도 친형제처럼 서로 의지하고 있다.

“유 장관도 여전히 동생 같아요. 공직 생활을 하느라고 바쁜데도 가끔 ‘형, 연락도 못하고 자주 못 봐서 미안해’라고 전화가 와요. 그럼 저는 ‘아니야, 우리가 수십 년을 봐왔는데, 언젠가 너도 임기가 끝나면 다시 돌아올 거 아니냐. 그때 보면 되는 거지’라고 위로하죠. 첫 국무회의가 있던 날, 아침 6시 15분에 유 장관한테 전화가 왔어요. ‘형, 오늘 첫 국무회의야’라고요.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데뷔 42년 만에 처음 받은 연기상
지난해는 그에게 무척 특별한 해였다. 그는 KBS-2TV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로 데뷔 40년 만에 처음 연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KBS 연기대상에서 남자조연상과 장미희와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다. 그가 앞서 말했듯이, 그는 언제나 연기보다 멋진 스타일이 먼저 눈에 띄는 연기자였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법하다. 수상 직후 그는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다.

“연기 시작한 지 42년 됐습니다. ‘나도 클로즈업되는 날이 있겠지’라며 꿈을 키워왔어요. 그동안 베스트 드레서상은 받아봤지만 연기상을 받은 건 42년 만에 처음입니다. 좋은 기회를 준 드라마 제작진에게 감사드려요. 집에 두 아들의 트로피가 몇 개 있어요. 아들들에게 이제 면목이 서는 것 같네요. 아들아, 아버지 2관왕이다.”

‘엄마가 뿔났다’의 한 장면. 그는 ‘2008 KBS 연기대상’에서 극중 부부로 출연했던 장미희와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다.

‘엄마가 뿔났다’의 한 장면. 그는 ‘2008 KBS 연기대상’에서 극중 부부로 출연했던 장미희와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했다.

사실 그가 연기상을 처음 받았다는 데 놀랐다. 늘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고, 안정된 연기로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리던 베테랑 연기자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가 상을 여러 번 받은 걸로 알았나 봐요. 수상 소감 듣고 사람들이 ‘처음이야?’ 그러더라고요. 그동안 베스트 드레서상은 받아봤지만,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어요. ‘전원일기’ 할 때 특별상 한 번 받아봤고요. 개인적으로 감회가 새로웠죠.”

김용건은 KBS-2TV 새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 출연한다. 새 드라마에서도 ‘엄마가 뿔났다’에 이어 백일섭과 사돈 관계로 다시 만났다. 백일섭이 맡은 송광호는 공사장의 현장소장에서 건설회사 이사가 된 인물로, 힘 좋고 먹성 좋은 캐릭터로 나온다. 이에 비해 김용건이 맡은 오영달은 방송국 보도국장으로, 엘리트다운 면모가 강한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의 캐릭터는 ‘엄뿔’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배우로서 가끔 반대되는 역할도 욕심이 날 법하다.

“생각은 앞서도 본인이 갖고 있는 것이 있으니까, 흉내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있어요. 각자 풍기는 이미지가 있으니까요. 백일섭씨는 애드리브도 잘하시고, 연기에 있어서 폭발적인 면이 있죠. 작가가 굳이 써주지 않아도 만들어가는 것이 있어요. 예전에 ‘아싸~’라는 유행어가 얼마나 히트를 쳤나요. 평소에도 서로 다른 면이 있듯 연기에도 그런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백일섭
대조적인 이미지의 배우는 한 드라마에서 연기할 확률이 더 많다. 이 두 사람은 드라마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 절친한 선후배나 친구로 오랜 우정을 이어왔다. 그 시작은 막 데뷔했을 때부터였다.

“백 선배와는 평생의 인연이 있어요. 총각 때 자취를 같이했거든요. 서로 좋아서요. 같이 놀러 다니곤 했죠. 그때는 백 선배가 스타였어요. 그래도 어디가나 저를 챙겨주었죠. 지금까지 40여 년 세월 동안 챙겨주고 있죠. 함께 드라마를 찍으면 길게는 1년 동안 보니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야죠. ‘엄뿔’에 이어 이번 드라마에서도 7~8개월 동안 보게 될 테니까 보통 인연은 아니에요.”

그는 캐스팅이 되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누구누구 출연해요?”란다. 누군가가 출연하면 출연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하면 더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에는 요즘 드라마와는 달리 유난히 중견 연기자가 많이 등장해서 애착이 간다.

“중견 연기자가 많이 출연하니까 기분 좋죠. 나이를 먹어도 제 위에 선배가 있다는 게 좋아요. 자식 같은 연기자들도 있고, 손현주씨 같은 경우는 예의 바르기로 방송가에서 정평이 난 후배예요. 벌써부터 저희들끼리 총무 정하고 회비 걷어서 필요할 때 쓰고 있어요.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보다 분위기가 화목한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김용건은 ‘엄마가 뿔났다’로 연기 생활 42년 만에 첫 연기상을 받았다.

김용건은 ‘엄마가 뿔났다’로 연기 생활 42년 만에 첫 연기상을 받았다.

그는 후배들에게 “지갑은 자주 열게. 말수는 줄이더라도”라고 말하곤 한다. 그는 선배로서 위치를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선배라도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오랜 방송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다.

“미니시리즈를 하면 저 빼고 다 후배들일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제가 먼저 다가가야 해요. 밥 먹자, 뭐 하자 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안녕하셨어요, 식사하셨어요?’ 인사만 받는 거죠. 점점 거리감만 생겨요. 아무도 그걸 즐길 사람은 없어요.”

그는 ‘솔약국집 아들들’ 녹화 첫날에도 “다 따라 나와. 밥 먹자”며 먼저 행동했다. 화목해야 일하기가 즐겁고, 그러다 보면 오해가 생겨도 쉽게 풀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화가 단절되면 서로 오해가 생기기 쉬워요. 함께 연기할 때 ‘감정이 이렇지 않겠냐’고 조언할 때가 있는데, 후배라고 해도 인격이 있으니까 상처를 주면 안 돼요. 좋은 조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와 닿죠. 저도 그런 선배들이 있었어요. 야단쳤을 때는 야속했지만 세월이 흐르면 고맙게 생각되죠. 좋은 말씀해주신 선배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아들 하정우, 더 있다 장가보내고 싶어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는 이미 유명한 배우다. 영화 ‘추격자’, ‘멋진 하루’, ‘비스티 보이즈’를 통해 평론가와 관객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는 “이제 내가 하정우 아버지로 불린다”며 웃었다. 그는 평소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기로 유명하다. 함께 살지는 않지만 전화 통화를 자주하는데 1시간 통화는 기본이라고. 김용건을 만난 날은 바로 아들 하정우의 열애설 기사가 보도된 다음날이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들의 여자친구(구은애) 이야기로 흘러갔다.

김용건은 아들 하정우와 친구처럼 지낸다. 하정우는 열애설이 나기 두 달 전 김용건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키기도 했다.

김용건은 아들 하정우와 친구처럼 지낸다. 하정우는 열애설이 나기 두 달 전 김용건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키기도 했다.

“어느 날 아들이 ‘기사 날 거예요’ 그러더라고요. 기사 보고 놀랐죠. 아들 여자친구와는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두 달 정도 됐나, ‘밥이나 같이 먹죠’ 해서 만났는데 친구라고 소개하더라고요. 나이 차이가 여덟 살 난다고 해서 ‘어휴~’ 그랬어요. 아직은 깊게 생각 안 하고, 본인이 만나는 여자친구니까 어떻게 발전될지 모르겠지만 잘 만났으면 좋겠어요.”

아들의 여자친구를 본 소감을 물으니 “내 스타일하고는 다르다. 모델이어서 그런지 키가 조금 크더라”면서 웃었다. 김용건은 아들 둘을 두었다. 하정우가 첫째 아들이며, 둘째 아들 김영훈 역시 연예인이다. 그룹 ‘예스 브라운’에서 가수로 활동했고, 현재는 연기자를 준비하고 있다.

“영훈이 여자친구는 아직 못 봤어요. 그래서 다 같이 모여서 식사 한번 하자고 했어요. 결혼요? 아직 일할 때니까 결혼은 더 있다가 시키고 싶어요.”

김용건은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연기자로 유명하다. 마지막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15년 전이다. 그 이유는 “불필요한 말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는 평생 몸무게가 크게 늘어본 적이 없다. 배가 나와 옷이 맞지 않을까봐 평생 소식을 해왔다. 술을 마시더라도 안주는 거의 먹지 않는다. 그가 모두가 인정하는 배우로 설 수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자기관리 능력 때문이 아닐까. 말이나 음식, 모두 지나치면 해가 되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카메라 앵글 밖에 있을 때도 그는 늘 배우였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훈,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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