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하희라가 남편으로부터 절대 듣지 않을 것 같은 말이 있다. 바로 “밥 줘!”라는 말이다. 대한민국 남편들이 집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지만 연예계 잉꼬부부로 소문난 최수종·하희라 부부에게만큼은 통용되지 않을 것 같다. 하희라가 바람난 남편을 둔 아내를 연기한다. 드라마 제목은 ‘밥 줘!’다.
남편의 외도, 경험 없지만 더 잘 그려낼 수 있어
“아침, 저녁으로 남편에게 밥 달라는 소리를 듣고 쓸쓸해하는 평범한 주부지만 나름 자아도 강하고 고집도 있어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가족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으로 이겨내는 강한 여자이기도 하죠.”
2005년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서 연기했던 순애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외도에 상처를 받는 캐릭터지만 대처하는 방식은 그때와 다르다. 순애가 앞뒤 안 보고 덜컥 이혼을 해버렸다면 영란은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남편을 믿으려고 노력한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남편에게 50%의 불신이 있으면서도 100% 믿으려고 노력하는 캐릭터예요. 순애 같았으면 벌써 가출했을 텐데 영란은 다른 사람들 말에 귀 닫고 끝까지 남편을 믿으려고 해요. 자기감정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인내하고, 그래서 더 상처가 크죠.”
다정다감한 남편 최수종과 사는 그녀가 “밥 달라”는 말만 하는 남편을 얼마나 공감할까.
“27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실제 제 모습과 가까운 역할을 연기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꼭 경험을 했다고 해서 연기가 더 잘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경험이 도움이 됐던 건 아이를 낳은 후예요. 엄마가 되고 나서 연기의 폭이 넓어졌다는 걸 느꼈죠.”
몇 번의 유산 경험이 있었지만 정작 아이를 유산하는 연기를 할 때는 감정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이미 감정을 다 정리하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더 가슴 찢어지는 연기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아픈 기억을 담담하게 전한다. 이번 역할도 상상과 간접 경험으로 더 실감나고 리얼하게 소화해낼 예정이다.
“최수종씨는 극중의 남편과 너무 달라요. 다정다감하기 때문에 실제 경험으로 연기하는 건 힘들 것 같고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죠.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아서 어느 한편으로는 그 허전함과 쓸쓸함, 허무함을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잘했군, 잘했어’ 남편을 힘내게 하는 말
“작년에는 뮤지컬 ‘굿바이 걸’을 하느라 한 해가 무척 빨리 지나갔어요. 그 작품 끝나자마자 영어학원 다니느라 바빴고요. 아이들이랑 두 달 동안 미국에 있는 언니 집에도 다녀왔어요. 돌아오자마자 드라마 섭외를 받고 준비한 거예요.”
뭐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10년 전부터 드라마 끝나고 쉬는 기간에는 학원을 다녔다. 영어회화는 아이들과 여행을 다닐 때 기본적으로 필요할 것 같아 시작했다. 이런저런 목적이 있었지만 사실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긴다.
“개인 교습도 받았는데 집에서 하다 보니 제 스케줄 때문에 자주 빠지게 되더라고요. 학원을 다니면 진도에 맞춰서 그날그날 예습, 복습을 해야 하니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죠. ‘있을 때 잘해’ 끝나고는 지수원씨와 같이 다녔어요. 그렇게 주변 연기자들과 함께 배우는데 다들 좋아하세요.”
남들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으로서 여러 사람 앞에 노출되는 것을 꺼릴 법도 한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배움을 이어나가는 건 ‘배우는 건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이들이 공부하듯이 자신도 옆에서 평생 함께 공부하고 싶다니 역시 똑 소리 나는 엄마다. 야무진 육아만큼 돈독한 부부관계로 16년의 세월을 쌓았다.
“물론 살다 보면 다투기도 하죠. 연애와는 다르게 결혼은 남편 식구와 저희 식구를 다 같이 사랑하고 배려해야 하잖아요.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갈등도 생기는 것 같아요.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 ‘깊은 상처는 만들지 말자’는 게 저희 부부의 신조예요.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작은 상처는 그때그때 대화로 풀다 보니 16년 동안 결혼생활하며 큰 다툼 없이 지낼 수 있었어요.”
또 하나 내조의 비결이라면 남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최수종에게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잘했군 잘했어’다. ‘당신이 자랑스러워요’나 ‘존경합니다’라는 표현은 직접 하기가 쑥스러워 문자나 편지로 전한다. 물론 남편은 직접 한다.
“남편을 뜻하는 ‘허스밴드(Husband)’가 원래는 ‘하우스밴드(House Band)’에서 온 말이래요. 집을 감싸는 밴드라는 뜻이죠. 최수종씨에게 ‘당신은 우리 집을 지키는 큰 반창고야’라고 문자를 보내요. 칭찬은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남편에겐 보약이에요.”
극중에선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상처받는 역할이지만 집에서는 남편에게 밥 달라는 소리를 자주 듣지 못한다. 요리 좋아하는 그녀는 그게 불만이다. 특히나 요즘 연극 ‘대한민국 안중근’에서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다이어트 중인 남편 때문에 안타까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저는 새벽 5시에 나와도 꼭 아침밥을 챙겨 먹거든요. 최수종씨가 아침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같이 먹기도 하고 그래요. 혼자 먹어도 되는데 미안해하더라고요. 서로에게 솔직하고 믿음이 있다면 아무리 오랜 기간을 살아도 서로를 위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랑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건 저도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랑에 정과 믿음과 신뢰가 합쳐져 가족을 감싼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받는 아내 하희라가 남편에게 상처받는 건 평생 연기로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드라마가 더욱 기대된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