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만 하고 23년 살아온 우리 부부,
완쾌되면 아내를 위해 결혼식 올리고 싶어요”
부드럽고 달콤한 멜로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노래 ‘꿈에’,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의 가수 조덕배가 지난 4월 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재활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조덕배와 그의 아내 최혜경씨를 만났다.
경미한 뇌졸중, 기적 같은 일이다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건 지난 4월 23일. 자택인 경기도 용인 수지에서 부인 최혜경씨(42)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미사리로 가는 길에 갑작스럽게 오른쪽 팔과 얼굴에 마비 증세를 보인 것.
“갑자기 입이 비뚤어지면서 말이 헛나오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오른손이 갑자기 굳어져서 얼른 인근에 있는 병원으로 갔죠. 조금만 늦게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가 갑자기 쓰러진 원인은 왼쪽 뇌혈관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오른쪽이 전부 마비됐고, 말도 어눌하게 나왔다. 의료진은 그의 상태를 보고, “뇌출혈이 이렇게 약하게 오는 경우는 없다”며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에베레스트만 한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항상 기도하는 게 저와 제 자식이 살아 있을 때 그 정도의 충격은 없도록 해달라는 거였거든요. 병원에 이렇게 오래 있어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조금 쉬었다 가라는 뜻인 것 같아요.”
부인 최혜경씨 역시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 그녀는 “처음 3, 4일간은 쇼크 상태여서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남편이 두 달 동안 눈을 계속 깜박거리는 전조증상이 있었는데, 단순한 안구건조증인 줄 알고 지나친 게 너무 후회가 된다”며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남편은 눈이 올 때도 지팡이를 들고 뛰어다녔어요. 그러니까 건강한 줄 알고, 병원 가는 걸 미뤘죠. 안과만 가봤어도 혈압 때문이라고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해줬을 텐데…. 혈관이 터지고 나니까 눈을 깜박거리지 않더라고요. 너무 무지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요.”
“제 이름을 걸고 하는 뮤지컬 공연이라 마음이 많이 앞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 건강관리를 아예 하지 않았어요. 나이가 50인데, 건강관리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던 거죠.”
병원비 없어 퇴원? 통원치료 받으려 했다!
조덕배는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았다. 혈압을 잡아주는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언론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입원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 저는 돈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병원비 정도는 있는데, 기사가 조금 와전된 것 같아요. 집에서 병원까지 너무 먼데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해야 할 시기는 지났으니 재활치료만 잘 받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와이프가 들어놓은 보험도 적용이 안 된다고 하기에, 집 근처 재활전문병원으로 옮기거나 통원치료를 받으려고 했죠.”
아내 최혜경씨는 “남편이 쓰러졌다는 기사가 나고, 병실에 손님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니까 1인실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1인실 입원비가 꽤 비쌌어요. 그 전에 보험을 들어놓기는 했는데, 뇌출혈은 적용이 안 되더라구요”라며 허탈할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지체장애 2급(조덕배도 어릴적 열병으로 인한 소아마비로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은 보험 가입이 안 돼요. 겨우 한 군데 가입을 했어요. 일반인들이 보험약관을 일일이 읽어보지는 않잖아요. 한 달에 10만원씩 내니까 웬만한 큰 병에는 모두 적용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이 닥쳤는데, 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동안 보험을 왜 들었을까 싶은 마음에 막막했죠.”
최씨는 남편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장애인이 일반인들과 똑같은 사람인데,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서러웠던 것이다.
“사실 남편처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생활수준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보험혜택까지 받지 못하면 생활이 더 힘들지 않겠어요? 장애인은 사회적인 약자일 수도 있고, 오히려 편의를 제공해줘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었어요.”
조덕배의 퇴원 소식에 때마침 경기도 수지의 뇌졸중전문 러스크재활병원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고, 5월 6일 입원해서 재활치료를 받게 됐다. 조덕배와 부인은 “병원에서 먼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제의를 해줘서, 정말 감사할 뿐”이라고 인사를 전했다.
빨리 일어나 아내, 딸과 함께 여행 가고 싶어
“우선 처음보다 말하는 게 많이 편해졌어요. 기타리스트 함춘호씨도 입이 돌아갔다가 회복됐거든요. 그걸 옆에서 본 적 있으니까 저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이렇게 크게 아프고 나니까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다. 특히 그동안 건강관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우선, 쓰러지고 난 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도 뚝 끊었다.
“그동안 건강관리를 하지 않은 죄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건강의 중요성은 절대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건강관리를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완쾌가 되면 CCM 앨범과 뮤지컬 준비를 계속할 계획이다. 1990년대 서태지의 출연으로 가요계가 일대 변화를 일으켰을 때는 문화적인 콘텐츠의 변화에 발을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대중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몸담아볼 계획이다. 또 한 가지, 완쾌되면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딸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 가까이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이번 기회에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것.
부인 최혜경씨 역시 “남편이 재기에 성공하면 그동안 있었던 스캔들과 재활 등에 대해 책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며 “앞으로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최씨는 19세에 조덕배와 부부 연을 맺고 올해로 23년째 같이 살고 있다. 처음 10년 동안은 연애하는 기분으로 지내왔는데, 덜컥 딸이 생기면서 혼인신고만 하고 아직 결혼식도 못 올린 채 살고 있다. 부인의 바람은 남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결혼식을 올리는 것. 그녀는 “결혼식을 하면 꼭 초대하겠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닥친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향해 따뜻하게 웃을 만큼 마음이 행복한 이 부부. 지금의 어려움도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