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 덕분에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 연기에 자신이 생겼죠”
몇 년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KBS-TV 주말드라마 ‘꼭지’에서 연하남 원빈과 멜로 연기를 펼치며 ‘줌마렐라(아줌마와 신데렐라의 신조 합성어)’의 서막을 연 탤런트 박지영. 2005년, 그녀는 남편의 사업을 위해 한국을 떠났고 현재까지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있다.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고국을 찾은 그녀를 만났다.
새삼스러울 것 없으나 그녀가 반가운 이유
“저는 해마다 복귀하는 여자예요(웃음).”
박지영의 남편은 전 SBS 예능국의 윤상섭 PD다. 그는 베트남에 한류 드라마 사업 관련 프로덕션을 세웠다. 박지영은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베트남 호치민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좋은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도 놓을 수 없었고 배우 박지영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큰 배우로 남고 싶은 게 희망입니다.”
도시적이고 화려한 외모는 누가 봐도 트렌디드라마나 CF에 어울릴 법하다. 그러나 브라운관에만 갇혀 있기엔 그녀가 품은 이상은 컸다. 이번 독립영화에 참여한 계기도 배우로서의 성장 혹은 욕심과 무관하지 않다.
“해외에 살고 있지만 저는 작품에 늘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에게 영화의 규모는 문제 되지 않아요. 작은 영화, 작은 비중이라도 작품이 좋다면 흔쾌히 승낙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죠. 평소 인디나 컬트영화를 좋아해서 ‘혹시 출연 섭외 안 들어오나?’ 했었어요.”
이번 작품은 ‘산책’과 ‘비밀과 거짓말’로 주목받은 최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바다 쪽으로, 한 뼘 더’라는 독립영화다. 이 작품에서 박지영은 희귀병인 기면증을 앓는 열여덟 살 딸을 둔 마흔의 싱글맘, 연희 역을 맡았다. 딸과 엄마, 여자들의 성장 스토리다.
“여자 감독, 여자 영화라는 것에 끌렸어요. 남성 위주의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여인의 향기도 느껴보고 싶었죠. 여자 감독이 특히 독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얼마나 독한지도 경험해보고 싶었구요.”
그녀는 “독하긴 무지 독하더라” 하며 웃는다. 이번 작업은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자신에게 새로운 것을 주문하는 감독과 다양한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단다.
“이번 작품을 통해 저도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그녀는 실제로 올해 열세 살, 열 살이 된 두 딸을 키우고 있다.
베트남과 한국 오가며 촬영
“베트남을 오가며 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거기다 비행기 삯이나 이동하는 수고는 어차피 모두 제 개인 사정일 뿐이구요. 배우가 촬영 스케줄을 맞춰가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래도 이번 영화는 작업시간도 길지 않았고 약속된 기간 내 촬영일정을 지켜주셔서 비교적 쉽게 마칠 수 있었어요.”
박지영은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자신을 찾아온 로맨스로 인한 일상의 흔들림을 두려워하고 절제하는 여인을 자연스레 표현했다.
최지영 감독은 시나리오를 보는 사람마다 ‘이 역할은 박지영’이라고 못박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박지영이라는 배우가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확실히 ‘엄마와 연인’이란 구도를 투 샷으로 잡았을 때 자연스러운 배우는 박지영 선배 말고 또 누가 있을까요?”
박지영은 이번 연기를 최대한 ‘일상’에 가깝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딸의 불치병 역시 고통과 슬픔보다는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간극장’이나 ‘병원24시’, ‘닥터스’ 이런 것들이에요.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은 매일매일 일어나는 고통에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틈이 없더라구요. 또 실제 상갓집도 슬프지만 며칠씩 계속 울고 있지는 않잖아요?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려 애썼어요.”
삶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영화는 영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이번 연기는 남다르지 않다.
“영화 내에서 고등학생 딸과 술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참 좋더라구요. 실제로도 아빠 빼고 여자끼리 함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모녀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딸이 자신의 신병을 비관해 엄마를 몰아붙이고, 엄마는 딸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 감정을 잡기 가장 어려웠던 신이다.
“엄마가 아이의 뺨을 때려야만 하는 상황에 대해 상상을 못하겠더라구요. 아직 저희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기면증은 병 자체보다 2차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이 아이를 강하게 제압해야 된다고 되뇌면서 뺨을 때렸어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키워드인 ‘아줌마들의 사랑’, ‘줌마렐라 신드롬’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었다.
“제가 ‘줌마렐라’ 부류에 속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번 영화가 연인이 있는 엄마 역할이라서 그럴까요? 여자 감독이라 상당히 다양한 여성의 심리를 건드려요. 영화 속에서는 손잡는 장면이나 키스 장면 하나 없어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참 아쉬웠어요(웃음).”
‘줌마렐라’의 또 하나의 조건은 아줌마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지녀야 함인데, 그녀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의 연기활동을 응원하는 따뜻한 가정을 배경으로 뒀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는 대배우를 향한 그녀의 본격적인 걸음을 주목해본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