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시절의 기록 데뷔 40년 맞는 가수 김세레나

화려했던 시절의 기록 데뷔 40년 맞는 가수 김세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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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래도 진심과 열정으로
노래 인생 엮어온 지난 40년을 뒤돌아본다!


열일곱 어린 나이부터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로 인기를 누렸던 김세레나. 민족의 정서를 노래에 담아 전하는 ‘국보 민요 가수’로 정식 데뷔한 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인기 절정의 스타로, 그리고 한 여자로 살아온 지난 40년을 반추해봤다.


“일단 거울 좀 보고요. 아무래도 흰 옷이 더 낫겠죠?”
화려했던 시절의 기록 데뷔 40년 맞는 가수 김세레나

화려했던 시절의 기록 데뷔 40년 맞는 가수 김세레나

인사를 끝내자마자 인터뷰에 앞서 사진부터 찍자고 제안했더니 김세레나(62)는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동행하는 스타일리스트도, 코디네이터도 없이 순식간에 준비를 마치고 나와 카메라 앞에 선다. “찍겠습니다”라는 사진 기자의 말과 함께 촬영이 시작되자 특별한 요구 없이도 카메라 셔터가 소리를 낼 때마다 원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바꾼다. 역시 ‘데뷔 40주년’을 한결같이 이어 온 ‘스타’답다. 처음 만난 기자에게도 스스럼없이 “들어오라”며 집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일일이 공연장을 찾아온 이들의 손을 덥석 부여잡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털털하고 화통한 성격의 그녀는 ‘그래도 연예인’이었다.


진실과 열정으로 살아온 지난 40년, 나는 ‘연예인’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그냥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나요? 연예인은 영원히 연예인으로 남아야죠. 저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왜 다들 나이와 연관짓는지 모르겠어요. 연예인들 중에서 조금만 나이 들면 ‘그만두겠다’ 그러거나 자신에게 소홀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그런 거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예인은 일종의 ‘상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팬들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함께 어울리며 나이 들어가는 거죠.”

그래서일까. 목소리는 쌩쌩했고 몸매는 날씬했으며 행동 하나하나에는 활력이 넘쳤다. “김세레나는 아직도 여전히 멋있고 대단해”라는 말을 듣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산다는 그녀 앞에서 “건강은 어떠세요?”라는 첫 질문은 속으로 꿀꺽 삼켜버렸다.

“노래도 겉모습도 나 아직 괜찮거든.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연 요청도 꾸준히 들어오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30분 이상 운동을 해요. 뒷산에 오를 때도 있고, 좋아하는 사우나도 하고요. 얼굴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내 모습이 예뻐 보일 수 있도록 항상 신경 써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또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뭐든 한 가지 이상 배우려고 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들 의남씨와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아들 의남씨와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최근 대학원에서 스피치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는 김세레나는 지방 공연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출석하고 있다.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다 보면 결국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악기든, 외국어든, 학문이든 가리지 않고 늘 공부를 한단다. 일단 ‘자신의 것’이 된 배움은 꼭 쓸데가 생기게 마련인데다, 항상 팬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이러한 노력이 있기에 일단 한번 김세레나의 팬이 된 이들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수십 년 전부터 그녀의 구성진 목소리와 절절한 노래 솜씨에 매료된 팬들은 이제는 노래뿐 아니라 이러한 그녀의 열정과 됨됨이에 반해 변치 않는 사랑을 보낸다.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 정도 열리는 공연은 언제나 매진이다. 지난 5월 7~8일에 있었던 어버이날 기념 ‘효 디너 콘서트’ 또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개그맨 엄용수의 사회로 진행된 공연에는 평소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김영란, 김흥국 등이 게스트로 출연했고, 가수 준비 중인 아들 진의남씨도 무대에 올라 실력을 뽐냈다.

“젊은 시절부터 제 노래를 좋아해주셨던 팬들이 변함없이 공연장을 찾아주세요. 요즘은 제가 TV에도 잘 안 나가니까 제 노래를 들을 데가 없다고 섭섭해하시더라고요. 오랜만에 준비한 공연이라 저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민요 가수 공연이라고 해서 한복 입고 ‘새타령’만 부르지 않아요. 대중에게 친숙한 가요나 팝송도 엮었고, 탭댄스도 췄는데 호응이 정말 뜨거워서 뿌듯하더라고요.”

무대 위라면 장소가 크건 작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녀지만, 특히 규모가 큰 공연을 펼칠 때면 그녀의 진가가 더욱 유감없이 발휘된다. 스무 살 소녀 시절부터 베트남 위문공연을 했고 각종 정·재계 모임에 이르기까지 서보지 않은 무대가 없었던 만큼 좌중을 압도하는 그녀의 공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내 모든 것을 펼치고 쏟아낼 수 있는 무대를 정말 사랑해요. 아마도 제게 천성적으로 타고난 무언가가 있나 봐요. 어릴 때부터 아무리 높은 사람들이 있어도, 상황이 열악해도 무대에 서면 떨리지도 않고 늘 신이 났으니까요. 간혹 몸이 피곤하고 안 좋을 때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씻은 듯이 나아요. 그 위에서는 오직 관객과 내가 함께 즐겁다는 것 외에는 생각나지 않아요.”

딱히 말주변이 뛰어나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를 가든 분위기를 압도하며 화사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아마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꾸며낸 모습이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했던 시절의 기록 데뷔 40년 맞는 가수 김세레나

화려했던 시절의 기록 데뷔 40년 맞는 가수 김세레나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시대를 풍미했던 ‘갑돌이와 갑순이’, ‘새타령’, ‘성주풀이’, ‘짚세기 신고 왔네’ 등의 히트곡뿐 아니라 팬들이 불러주고 좋아해주는 모든 노래가 소중하다는 그녀는 부르는 노래마다 진심과 열정을 담아낸다.

‘대중을 위한 연예인’이라는 자부심은 강하지만 절대 교만하지는 않다. 인기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다. 동료나 선후배를 만나도, 팬들을 만나도 언제나 먼저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이 바로 그녀다.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먼 데 있지 않다. 인간적으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을 잊지 않는 것, 그뿐이다.


방송금지 조치로 인한 좌절·두 번의 결혼과 이혼,
최선을 다해 헤쳐온 질곡의 삶

1965년, 동아방송(TBC) 라디오 노래자랑 프로그램인 ‘가요백일장’에서 여고생 신분으로 최우수상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한 김세레나는 1969년 첫 음반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후 100여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가요계를 평정했던 그녀를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국보급 민요 가수’였다. 특히, ‘국보’라는 칭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붙여준 것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됐었다.

“박 전 대통령이 제 열렬한 팬이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중요한 모임이 있으니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서 인연을 맺었던 것을 시작으로 국빈급 만찬 등에도 자주 참석했어요. 박 전 대통령이 노래를 무척 잘하셨는데 한번은 제 노래 ‘갑돌이와 갑순이’를 3절까지 부르시는 거예요. 그 곡이 가사가 무척 헷갈리는 곡인데, 단 한 소절도 틀리지 않고 완창하시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박 전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 때문에 그녀가 하루아침에 방송 3사로부터 출연 금지를 당했던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그녀를 언짢게 생각한 육영수 여사가 김세레나가 방송 출연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것. 노래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그 시절, 갑작스러운 소식에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에 약을 구해 한꺼번에 털어 넣기도 했어요. 그렇게 큰일을 감당하기에는 제가 너무 어렸었거든요. 무사히 살아나긴 했지만 앞이 막막했어요. 다행히 얼마 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씨가 우연히 그 일을 알게 돼 조치를 풀어주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분께 평생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박 전 대통령뿐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그녀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1970~80년대 그녀의 인기는 대단했다. 정계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재계 인사들도 그녀의 노래를 듣고자 했다. 외국 바이어와의 사업 파티 등에도 언제나 참석했고, 월남전 때는 최다 위문공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모든 무대가 의미 있지만 특히 월남전에서 전후방 위문공연을 다녔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울퉁불퉁한 길을 몇 시간씩 지나서 음향 시설도 좋지 못한 무대에서 노래를 해야 했지만 많은 박수를 받았고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그야말로 희열을 느꼈거든요. 돈보다는 노래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데서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1 지난 5월 7일 공연에서 김세레나는 정열적인 탭 댄서로 변신해 큰 박수를 받았다. 2 ‘세레나 누나’ 공연에 내가 빠질 수 없다며 무대에 오른 김흥국. 공연 내내 관객보다 더 흥에 겨워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3 가수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 진의남씨가 무대에 올랐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지만 놀랄 만한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1 지난 5월 7일 공연에서 김세레나는 정열적인 탭 댄서로 변신해 큰 박수를 받았다. 2 ‘세레나 누나’ 공연에 내가 빠질 수 없다며 무대에 오른 김흥국. 공연 내내 관객보다 더 흥에 겨워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3 가수 준비를 하고 있는 아들 진의남씨가 무대에 올랐다. 다소 긴장한 듯 보였지만 놀랄 만한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예쁜데다 노래까지 잘하니 당시의 인기는 지금의 ‘국민 여동생’ 못지않았다. 공연 도중 무대에 뛰어올라온 팬이 무작정 끌어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한창 활동하던 때에는 극성 팬에 의해 납치당할 뻔한 아찔한 경험도 몇 번 있었다.

“납치당할 뻔했을 때는 나도 너무 무섭고 겁이 났어요. 순간순간 슬기롭게 위기를 모면했지만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때도 있었죠. 어떤 때는 화도 났지만 뭐, 어쩌겠어요. 제가 좋아서 그렇다는데(웃음).”

그렇게 그녀를 쫓아다니고 실제로 프러포즈하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김세레나는 좋은 부부의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숱한 구애를 거절하고 선택한 사랑은 그녀에게 두 번 모두 이혼이라는 결과를 안겼고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사람을 잘 믿는 편인데다 언제나 사랑 앞에서 순수하고 열정적인 탓에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받은 게 없었다.

“연예인들이 유명해지면 재벌가나 좋은 집안에 시집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결혼한다고 할 때도 부모님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전부 말렸어요. 저는 계속 ‘스타’였고 돈도 있을 만큼 있었기에 착하고 불쌍한 사람을 만나 내조해서 사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두 번이나 했죠.”

김세레나가 스물한 살에 만났던 첫 남편은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은 색소폰 연주자였다. 결혼반지를 받기는커녕 남편에게 색소폰을 사주고 건강을 돌봐주면서 결혼을 감행했지만 남편은 술과 도박, 여자 문제로 그녀에게 큰 상처만 남겼다. 평소 연예인들이 ‘쉽게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는 것’을 싫어했던 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겠다는 각오로 버텼지만 거짓말을 일삼는 남편의 모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아버지로서도 자격 미달이었다. 실망한 아들은 이혼 후 한 번도 아버지 얼굴을 보겠다고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엄마 성(姓)으로 바꾸고 싶다는 아들의 이야기에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며 말릴 정도였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벌가 아들의 끈질긴 구애도 거절하고 택한 두 번째 남편 또한 첫 남편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그녀는 또 한 번 같은 가시밭길을 걷고 말았다.

4·5 한복을 입고 노래하는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그녀다. 6 팬들과 함께 노래하며 어울리는 무대가 좋다.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팬들에게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4·5 한복을 입고 노래하는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그녀다. 6 팬들과 함께 노래하며 어울리는 무대가 좋다.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팬들에게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푹 빠지는 성격이에요. 모든 걸 걸죠. 사실 지금도 그래요. 사랑에 있어서는 소녀 같은 마음이라 만약 누군가 마음을 주는 사람이 생기면 금방 표가 나요. 주변에서 다 눈치 챌 정도로 소문이 나죠. 게다가 저는 얼굴이나 조건은 절대 안 보거든요. 그냥 내 마음이 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아요.”

사랑에 있어서도, 노래에 있어서도 진심과 열정을 바치는 그녀는 아픔과 환희, 고통과 영광이 뒤섞인 지난 4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담담하고도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앞으로도 그녀는 전국을 돌며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고마운 팬들을 위한 공연을 계속할 예정이다. 오는 9월에는 미국 공연도 계획되어 있다. 어떤 때는 어깨가 들썩일 만큼 흥겹고 기쁘면서도, 또 어떤 때는 애달프게 가슴이 저려오는 오묘한 민요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더욱 많이 전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우리네 인생과 꼭 닮은 민요로 시대를 헤쳐 온 김세레나. 우리의 삶이 이어지는 한, 그녀의 노래도 계속될 것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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