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

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댓글 공유하기

20년 가까운 세월 그 작은 라디오 부스에서 그녀가 뽑아내는 웃음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시대, 최유라는 하나의 브랜드다. 늘 사람이 걸려서 사람을 챙겨야 하는 그녀에게, 귀만 열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라디오는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온전한 무대다. 얼굴만 봐도 반사적으로 ‘까르르’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방송인 최유라가 이달의 주인공이다. (편집자 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생활밀착형 DJ, 방송일 잘하는 주부
최유라_ 박사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엊그제는 제 다음 시간대 라디오 진행하는 (김)미화 언니 만나서 지난번 인터뷰 기사 얘기를 했어요.

김진세_ 최근에 안 좋은 일 있으셨잖아요. 힘내시라고 전화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최유라_ 많이들 힘들어했어요. DJ들과 PD들(사측)과의 투쟁이었어요. 살다 살다 그런 투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제 우리도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 했죠.

김진세_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에요. 요즘은 사회도 그렇고, 희한한 일들이 많이 생기는 거 같아요. 참, 인터뷰 잘 안 하신다고 들었는데,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최유라_ 제가 인터뷰를 잘 안 하는 사람 중에서도 꽤 유명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방송 진행을 오래하다 보니 어디 가서 인터뷰 대상이 된다는 게 굉장히 어색하고 쑥스러워서요(웃음). 또 한 가지 이유는 결혼 19년째, 방송 20년째를 맞는데, 별 들고남이 없이 1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같은 모습으로 살아서 달리 할 얘기가 없으니 잘 나서지 않게 되더라고요.

김진세_ 실은 제가 최유라씨 팬이에요. 전문의 된 후 뒤늦게 군 생활하면서 그때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열심히 들었어요. 이종환씨와 하실 때였죠. 그러니까 18년째 진행하고 있는 거죠?

최유라_ 20년이에요!

김진세_ 억지로 꾸며내서 하는 거라면 불가능한 세월이었겠죠?

최유라_ 못하죠. 라디오 진행하면서 인생관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아직 제 인생의 정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나마 답에 접근했다고 생각하는 건 ‘일상에 꾸밈이 없이 정직을 담으면 나를 이길 자가 없다’는 거예요.

김진세_ 20년 동안 매일같이 마이크 앞에 서고 계신데… 지루하지는 않으세요?

최유라_ 매일매일이 달라요. 재미있는 편지 소개 코너를 20년간 해온다는 게 참 신기하죠? 주제가 비슷한 경우는 있어도 내용은 다 달라요. 저는 얘깃거리를 제 일상에서 찾아요. 방송 중 상대방이 요즘 건강을 위해 뭔가를 먹는다고 하면 “저도 오늘 아침 남편이 목이 아프다고 해서 도라지청을 해줬는데,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해요. 그럼 훨씬 대화가 풍성해져요. 상대방이 다른 게 더 좋다고 권하면 “어머 그래요? 그럼 제가 내일 해보고 말씀드릴게요”라고 한다던가. 그런 대화를 20년 동안 주고받는 거예요.

김진세_ 최유라씨의 방송 원칙이 있다면요?

최유라_ 저는 ‘따뜻함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 한번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정겨움이 있는 방송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마이크 앞에서 솔직한 게 탈이기도 하지만 득이 될 때가 많아요.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오래전 일인데, “제가 서세원씨 꼬임에 빠져서 35인치 텔레비전을 샀거든요. 저희 집이 20평이라, 드라마 한 편 보고 나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타이레놀을 한 알 먹어야 해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때 청취자들이 빵 터졌어요. 용기 있는 얘기라며(웃음). 제가 푼수 짓을 하니까 다들 좋아하셨어요. 그렇게 청취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갔더니 이제는 제가 편안한지 속 얘기를 하고 싶어 하세요. “우리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요” 이러면서(웃음). 그럼 전 “그걸 가만 놔둬요!”라고 해요. “사랑으로 보듬어주세요”라는 전형적인 코멘트는 제 성격상 못해요. 또 그럼 방송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김진세_ 생활하듯이 방송하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깜짝 놀란 게, ‘이건 정말 자신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유라_ 전, 자신 있어요. 생활과 가까운 것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어요.

최유라 덕에 ‘국민 아버님’이 된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파트너 조영남과 함께.

최유라 덕에 ‘국민 아버님’이 된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파트너 조영남과 함께.

김진세_ 웬만하면 그러기 힘들지 않나요? 그러려면 생활 자체도 정말 잘해야 하니까요.

최유라_ 잘하는 건 모르겠는데, 다 해봤기 때문에 누가 물으면 모르지는 않아요. 실패했더라도 해봤으니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 더하면, 솔직함이죠.


내 인생의 두 가지 사건
김진세_ 최유라씨의 예전 기사 중에 ‘슈퍼우먼’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더군요. 방송인으로도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고, 또 주부로서의 이미지도 완벽해 보이잖아요. 물론 우열을 가리기 힘들겠지만,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최유라_ (망설임 없이) 주부 쪽이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 애매한 게, 전 주부 역할을 잘해내면, 방송인으로서의 가치도 동반 상승해요. 가정 일을 잘하면 방송에서 얘기할 거리가 많다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김진세_ 인터뷰 전에 담당 기자와 상의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최유라씨는 방송인인데 가정생활을 잘하는 분이 아니고, 가정주부인데 방송을 잘하는 분이라고.

최유라_ 그렇죠, 그렇죠? 그게 맞아요. 난 정말 연예인도 아니야(웃음).

김진세_ 데뷔는 영화로 하지 않았나요(동국대 재학 중 ‘수탉’으로 데뷔해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최유라_ 영화는 교수님 추천받아서 아르바이트 삼아 한 것뿐이에요. 물론 그 덕에 유명해졌지만, 영화가 지금의 저를 만든 건 아니니까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어요.

김진세_ 그래도 왜 버리셨어요?

최유라_ 제 궁극적인 꿈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가는 거예요. 저 혼자만 꿈꾸고서 이뤄내면 심심하잖아요? 성취했을 때 나눠 가질 사람이 주변에 좀 있어야 그들 앞에서 으스대기도 하고, 함께 기뻐하기도 하고(웃음). 뭐든 재밌자고, 좋자고 하는 일인데요. 제 꿈은 내 가족과 같이, 내 가족이 바라보는 방향 안에서 찾고 싶은 거고 또 찾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김진세_ 가족을 으뜸으로 여기는 분이시군요. 부모님은 어떤 분이세요?

최유라_ 지금도 수원에서 두 분이 약국을 운영하세요. 어머니가 억척스러우세요. 함경북도 덕원 출신이신데, 지금 왜관에 있는 성베네딕도 수도원이 덕원에 있었거든요. 외가 쪽이 천주교 집안이라 당시 수도사들 식사를 다 해드렸대요. 외할아버지는 피난 내려와서 강원도에 본인 재산으로 공소를 지어서 천주교를 전파하셨어요. 생활력 강하고 신앙심, 가족애, 동료애가 남다른 분들이죠.

김진세_ 요즘은 달라졌지만, 천주교 하면 보수적인 면이 강했잖아요. 영화 출연했을 때 집안에서는 난리 났겠네요?

최유라_ 난리 났죠. 할아버지는 딴따라라며 제 세배도 안 받으셨어요.

김진세_ 시나리오 보면서 ‘이건 우리 집에서 보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최유라_ 그때는 어떤 심정이었냐면요, 제가 신문방송학과 지망했다가 재수해서 연극영화과에 갔어요. 정말 꿈같은 대학생활을 했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그러다가 일종의 객기로 예술을 하겠노라며 배우로 나선 거죠. 어른들이 보면 웃기지도 않을 잘난 척이 자라나던 때였어요.

김진세_ 그 전까지 모범생으로 살다가 조금 벗어난 길을 가신 거죠?

최유라_ 많이 벗어났죠. 완전히 전복시킨 거예요. 온 집안을 뒤집어서 링 위에 내친 거죠.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몰라요. 인생에 딱 두 번 그 짓을 했어요.

김진세_ 다른 한 번은 언제였나요?

최유라_ 영화 출연 후에 매스컴을 타다가, 대학 3학년 때 ‘뽀뽀뽀’ 뽀미 언니로 발탁돼 방송을 시작했거든요. 만날 교내 공연 준비하느라 연애라는 걸 모르고 살다가 (당시 카메라맨인) 남편을 만났어요. 박사님하고 약간 비슷하게 생겼어요. 굉장히 온화하고 점잖아요. 인연이 되려니까 그랬겠죠. 그런데 당시 제가 좀 알려졌다고 열애설 기사가 터졌어요. 그때는 제가 그걸 못 견디겠더라고요. 연예인이라서 그런 기사에 오르내린다는 얘기도 듣기 싫고, 또 이건 집안의 수치인 거예요. 그래서 남편을 잡고 신문사에 연락을 했어요. 나 결혼하니까 기사 내달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스포츠조선 1면에 ‘뽀미 언니 꽃가마 탄다’고 났잖아요. 우리 엄마는 바로 그날로 쓰러지시고…. 그게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친 사고예요.

김진세_ 두 번째 사건은 성공하신 거네요?

최유라_ 성공하긴 성공했죠(웃음). 첫 번째도 성공한 셈이고요.


아들, 딸은 우리 부부의 축소판
김진세_ 연기를 쭉 하셨어도 잘하셨을 거 같은데요? 라디오에서 편지 읽을 때도 그냥 안 읽으시잖아요.

최유라_ 잘은 할 거 같아요. 왜냐면 전 뭘 하나 붙들면 무지하게 열심히 해요. 바보 같을 정도로요. 심지어 쓸데없이 확장시켜요. 음식을 좋아하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 일본 등 모든 요리학교를 수료해요.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 하나만 남았네요(웃음). “식당 하려나 봐” 소리도 듣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집에서 맛있게 해 먹으려고(웃음). 제가 그런 면이 있어요.

김진세_ 20년간 방송 펑크 없는 DJ로도 유명한데, 건강관리는요?

최유라_ 저희는 잘 놀러 다녀요. 둘이서 자주 여행을 다니면, 할 일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잘 사나 봐요.

김진세_ 그냥 훌쩍 떠나는 편이세요. 아니면 테마를 정해서 떠나는 편이세요?

최유라_ 우리가 다 알아서 계획을 짜고 준비해요. 여행사? 필요 없어요. 미아가 되더라도 우리가 직접 부딪쳐보는 게 재밌어요(웃음). 내비게이션 나오기 전에 미국 여행 할 때는 직접 지도를 보면서 다녔어요. 남자들은 군대에서 지도 보는 법 배운다면서요?

김진세_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라는 책이 있어요. 남녀 뇌의 차이에 대해 다룬 책인데, 여자는 공간 감각이 좀 떨어진대요.

최유라_ 어쩐지 힘들더라.

김진세_ 학창 시절 해부학 수업에 정해진 시간에 뼈 조각을 놓고 어느 부위인지 맞추는 시험을 보는데, 그걸 ‘땡시’라고 해요. 시간이 촉박하니까 얼마나 압박감이 생기겠어요? 그런데 여자들이 공간 감각이 떨어져서 그걸 잘 못 봐요. 반면 남자들은 뭘 못하냐면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해요.

최유라_ 우린 두 가지는 물론 서너 가지도 한꺼번에 하는데.

김진세_ 여자들은 요리하면서 전화 통화하고 음악까지 듣잖아요.

최유라_ 거기다 “얘야 시간 됐다. 학원가라” 얘기까지 하죠(웃음).

김진세_ 자녀는 어떻게 두셨어요?

최유라_ 지금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아들이 10학년, 딸이 8학년. 우리나라로 치면 고 1, 중 3인 거죠. 아이들 유학 보낼 때, 저희는 유학원 통하지 않고 식구들 힘으로 다 준비했어요. 영어를 잘 못하니까 학교 홈페이지 들어가서 커리큘럼, 액티비티 체크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어요. 그렇게 10개 학교를 뽑았고, 정말 미국 아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지금의 학교에 정착했어요. 유학생을 받지 않는 곳인데, 교장선생님 면담까지 거쳐서 입학을 했죠. 우리 아들이 그 학교 1호 유학생이에요.

김진세_ 뿌듯하셨겠어요?

최유라_ 그럼요. 굉장한 모험을 한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옮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가자마자 대통령상을 받더니, 주 대표로 골프 대회에도 나가고요. 저는 그걸 원했던 거예요. 어떤 상을 받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도전할 것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원했거든요. 오빠 따라간 둘째도 감동이에요. 비즈 공예품을 만들어 팔아서 570달러를 벌어서는 홈스테이하는 집 주인아주머니께 150달러 드리고, 자기가 200달러 갖고, 나머지는 학교에 기부했대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굉장히 멋있는 연필깎이를 사서 ‘지니 맹이 너희들을 위해서 기증한 거니까 기쁘게 쓰자’고 새겨놨다는 거예요.

김진세_ 정말 멋있는 일이네요. 아이들과 떨어져 있다는 염려에서 부모가 벗어날 수 있는 건, 아이들을 믿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최유라_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즉시 인터넷 메신저를 접속해요. 인사도 나누고 옷 입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요. 또 매일 통화하니까 아이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요. 딸아이는 오늘 화장실에 몇 번 갔는지도 엄마한테 보고를 하니까(웃음).

김진세_ 기러기 아빠 4만 시대잖아요. 아이들은 간혹 칭얼대면서 기대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때 부모가 곁에 없는 걸 참 힘들어하더라고요. 어쨌든 최유라씨는 아이들이 멀리 있지만, 메신저 덕분에 또 가까이 있는 거잖아요. 집에 있을 때보다 더 가깝기도 하겠어요?

최유라_ 그럼요. 예전부터 가깝게 지내왔기 때문에 아이들도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확 들지는 않나 봐요.

김진세_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부모랑 같이 사는 또래 남자아이보다 훨씬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도 있어요.

최유라_ 네, 훠얼씬 많이 해요. 일주일에 두세 번 제가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요. 한국 친구들이 준비하는 논술 주제를 얘기하기도 하고, 신문에 나오는 우등생들의 사례를 알려주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아들 잘 키우는 법을 다룬 책을 샀어요. 그 책을 밑줄 치면서 읽다가 ‘네가 잘 크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널 키우기가 딸보다 힘든 거 같아. 그래서 엄마가 아들 잘 키우는 법이라는 책을 읽는다. 웃기지 않니? 잘 커다오’(웃음). 이런 식으로 메일을 써요.


내조의 여왕, 정리의 여왕
김진세_ ‘지금은 라디오 시대’만 해도 참 많은 분들과 함께하셨어요.

최유라_ ‘대한민국 제일 잘나가는 남자들을 파트너로 갈아 치운 최초의 여성 라디오 DJ’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잘나가는 남자들과 골고루 한(웃음), 여자 MC도 없었더라고요. 권투선수로 치면 최고의 선수를 상대로 스파링 연습을 한 것과 똑같아요. 정재환씨부터 서세원씨, 황인용씨, 이종환씨, 전유성씨, 토크쇼 같이한 이상벽 선생님, 지금 조영남 아저씨까지. 말발로 잘나가는 남자들과는 다 해봤으니까, 다른 여자 MC들보다는 제가 잘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렇게까지 했는데 못하면 엄마가 고액 과외를 시켜놨는데 성적이 안 오르는 거랑 다름없잖아요(웃음).

김진세_ 최유라씨 혼자 할 수도 있고, 본인이 더 앞서 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잘나가는 여자 MC가 좀 못 나가는 남자 MC를 데리고 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그 점에 있어서 아쉽다거나 바라는 점은 없으신지?

최유라_ 그건 없어요. 방송 일이든, 집에서든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띄울까?’를 고민해요. 그 사람이 떠야, 제가 뜨는 거예요. 방송 현황을 봐도 그렇고 가정도 그래요. 주변을 봐도 남편이 뜬 집의 와이프가 멋있어 보여요. 제가 어쩌다 강의를 나가면 젊은 주부들에게 “상대를 띄우라”고 해요. 숨은 공로자는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그거야말로 최고의 전략이라고요.

김진세_ 얼마 전 조영남씨의 미네르바 관련 발언으로 좀 시끄러웠잖아요. 그 때 제가 주목한 건 그 상황을 잘 정리하고 넘어가는 최유라씨의 아우름이었어요.

최유라_ 조영남씨와 파트너가 됐을 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인간적이고 수더분한 아저씨로 띄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어느 날 조영남씨가 여권 문제로 대사관에 갔더니 여직원들이 “아이고, 아버님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하기에 “오빠가 말이야”라고 하셨대요. 그걸 듣고는 제가 “아버님이구만”이라고 받아쳤어요. ‘아버님’이라는 단어가 뭔가 이 사람과 조화롭지 않은 듯하면서도 웃겼거든요. 그러다가 방송 중에 우연찮게 “제 여친이 말이죠”라고 하시기에 “여친이 많으세요? 네에, 다음 거 진행하시죠, 아버님”이라고 했어요.

일동_ (웃음)

최유라_ 그 이후 청취자 문자가 물밀듯이 올라오는 거예요. ‘아버님 맞네요’라고. 요거 반응이 괜찮은데! 그런데 재밌다고 막 쓰면 싫증나잖아요. 딱딱 포인트에 맞춰서 하루에 한 번씩만 썼어요. 처음에는 조영남씨도 “무슨 아버님이야”라며 싫어하시더니 청취자 반응이 좋으니까 “거, 참. 허허” 이러면서 받아들이세요. 요즘은 ‘전 국민의 아버님’이잖아요(웃음). 요즘은 인터뷰에서 제 덕에 떴다는 말씀을 하시나 봐요. 이런 거죠, 서로 윈윈(Win-Win)하는 거예요.

김진세_ 어떻게 보면 최유라씨야말로 진정한 내조의 여왕이죠. 그 역할이 만들어진 건,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봐야 할까요?

최유라_ 우리 어머니는 제가 대학 다닐 때 아침 일찍 공연 준비하러 나가는 날이면 친구들 도시락까지 챙겨주셨어요. 예전에 수도원 수사님들 먹여 살리던 집안 내력이 있어서, 어머니도 뭐만 있으면 펼쳐서 잔치를 벌여요. 국수 한 그릇 우리 식구만 해먹은 적이 없어요. 청소하는 아주머니, 관리소 아저씨 등 다 부르시죠. 저도 지금 뭘 하면 아들한테 “빈대떡 두 장 경비 아저씨께 갖다드려라” 해요. 그게 몸에 밴 거예요. 자꾸 사람이 걸려요.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김진세_ 그럼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잖아요. 베푸는 즐거움이죠.

최유라_ 웃긴 게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 다녀오면서 아이스크림을 사면, 경비아저씨에게 하나 드리고 오는 거예요. 제가 하는 걸 별 생각 없이 따라 하더라고요.

김진세_ 그렇게 몸에 배는 게 무서운 거예요.

최유라_ 네. 그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자산이에요.

김진세_ 어머니 성정이라면, 약국 일도 직접 나서서 많이 하셨겠는데요?

최유라_ 어머니는 워낙 일이 많으셨어요. 지금도 아침이면 마당에서 새 불러 모으시고, 유기견 보살피느라 바쁘세요. 저희 집 앞에 그렇게 개를 버리고들 가세요. 대문 앞에 상자가 있어서 열어보면 ‘잘 부탁드립니다. 최유라씨 어머님 댁이시죠?’라고 써 있대요. 아휴, 저희 집은 유기견 천국이에요. 저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그 똥글똥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어떻게 내치냐”며 다 거두세요. 늙고 병든 아이들이 우리 어머니를 만나서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놀라워요.


결혼 19년, 진화 중인 부부 커뮤니케이션
김진세_ 큰딸이잖아요. 살면서 부모님의 위기를 지켜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최유라_ 왜 없었겠어요? 집안마다 그렇듯 집 담보로 가족들 돈 해줬다가 까먹고, 돈 벌어서 막고… 저희 아버지도 평생 그러면서 사셨어요. 어렸을 때 집안에 노란 딱지 붙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어요.

김진세_ 두 분 사이는 좋으시죠?

최유라_ 네. 어머니가 늘 일러준 말씀이 있어요. “여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남편은 만들어지는 거다. 천성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바뀔 수가 있다. 현명하게 잘해라.” 돈에 쪼들릴 때나, 속상해서 속병을 앓을 때 어머니께 전화 걸어서 하소연을 하면, 우리 어머니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만 하세요. 오죽하면 언젠가 토크쇼 나가서 어머니한테 서운하다고 말했겠어요. 내가 그런 일로 전화를 했을 때는 이미 원하는 답을 정해놓고 하는 거잖아요. 위로를 좀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목메는 듯 목을 가다듬으며). 아마 어머니는 제 전화 끊고 나서 분명 입술 꾹 깨물고 울었을 거예요. 우리 집 여자들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걸 아니까, 어머니가 그럴 거라는 걸 뻔히 알죠. 그런데 저도 제 아이들에게 그런식으로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김진세_ 그렇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지잖아요. 자꾸 눌러만 놓으면 안 돼요.

최유라_ 결정적인 때에는 얘기를 해요.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니까, 결국은 어떻게 호들갑을 떨어도 해결되지 않는 사안이 있어요. 공연히 에너지만 낭비하다가 몸도 축나고, 마음도 축나고 해결점은 없는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김진세_ 맞아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스트레스를 피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예요.

최유라_ 그럴 때 다지고 다지고 다지고…. 더 초연해야 한다는 걸 저도 요즘은 느껴요.

김진세_ 사람 마음 잘 읽으시죠? 그러실 거 같아요.

최유라_ 네, 굉장히 잘 읽어요. 그래서 되게 불편하기도 해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_ 얘기를 들어보니까, 당대 최고의 재담꾼들과 잘 지내는 것도 다 그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네요. 남편분과도 그렇게?

최유라_ 남편이 더 힘들죠. 저희 남편은 엄청 꼼꼼한 완벽주의자예요. 그런데 자신은 ‘그냥 평범’도 아니고, ‘너~무 평범’하대요. 그런 면이 저에겐 스트레스인 거죠. 부부가 살면서 예쁘게만 말하지는 않잖아요.‘애정의 왜곡된 표현이라면 내가 받아줄게’ 하고 살았어요.

김진세_ 실은 아내가 꼼꼼하면 남편은 편해요. 다 챙겨주니까. 그런데 거꾸로라면 불편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최유라_ 많아요. 저는 그렇게 꼼꼼한 사람은 아닌데, 남편하고 살면서 규모 있는 삶을 배웠어요. 그건 좋은 점이에요. 예전에는 갑갑한 게 있어도 가슴 치고 혼자 울고 말았거든요. 요즘은 “내가 볼 때 당신은 완벽주의의 틀에서 해방되면 스스로가 참 편안해질 거 같아. 어때?’라고 얘기를 해요.

김진세_ 표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부부가 같이 산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거든요. 같이 살면서 표현을 하지 않으면 으레 그런 줄 알고 자기 색깔로만 나가게 되고, 어느 날 돌이켜보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든요. 싫은 소리도 자꾸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꼼꼼하고 완벽주의자라는 걸 이해하니까, 피할 땐 피해주고.

최유라_ 요즘은 들이받기도 해요(웃음). 심하게 들이받아요.

김진세_ (웃음) 어떻게요?

최유라_서랍을 여닫다 보면 전깃줄이 잘 끼어요.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이것 봐라, 조금만 신경 쓰면, 1초만 생각하면 될 것을!”이라고 늘 잔소리를 해요. 전에는 속으로 꽁 하면서 다시 닫았지만, 요즘은 제가 잘 쓰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 이거 안 하면 죽어?”

일동_ (웃음)

김진세_ 그거 좀 써먹어봐야겠는데요(웃음).

최유라_ 맨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듣고 조금 ‘띵’ 한 모양이더라고요(웃음). “잘못 해놓고는 큰소리치네” 이러다가 요즘은 저를 안 건드려요(웃음). 아, 그리고 대학원이 도움이 됐어요. 요즘 남편이 커뮤니케이션론을 배우면서 저를 생각한대요. 왜 마누라가 반항을 하는지 자신을 돌아본다면서요.

김진세_ 대학원도 함께 들어가신 거예요?

최유라_ 방송 일 계속하면서, 신문방송학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었는데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요. 제가 올해 마흔 셋인데 마흔 다섯에 시작하는 것보다는 마흔 다섯에 끝내는 게 나을 거 같았어요. 지금 1학기예요. 근데 너무 힘들어요(웃음).

김진세_ 저도 마흔 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는데, 머리가 안 돌아가더군요. 두 번 세 번 봐도 머리에 안 들어오고.

최유라_ 안 되죠? 외워지지도 않고?(웃음) 처음에는 남편과 같은 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큰일날 뻔했어요. 제 무덤을 팔 뻔한 거죠(웃음). 각자 모교 대학원을 갔는데, 그러길 정말 잘했어요. 해방돼서(웃음).

김진세_ 부부의 기적을 이루려면, 가끔은 떨어뜨려놔야 해요(웃음).

최유라_ 그것도 필요하고요. 서로 ‘너네 학교가 좋네, 우리 학교가 좋네’ 유치한 싸움도 하면서 대화가 많아졌어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_ 인터뷰 준비하면서 바깥분이 부러웠었어요(웃음). 최유라씨가 음식을 잘하시잖아요? ‘사랑은 위장을 통과한다’는 속담도 있는데, 음식을 잘하는 여자랑 사는 남자, 운동을 같이하는 여자와 사는 남자는 바람을 안 피운대요(웃음). 그래서 부럽다 했는데, 그런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 그러니까(웃음).

최유라_ 그게 제 무기잖아요(웃음). 요즘 남편이 정말 잘해줘요. 어찌나 신경을 써주는지 정말 꽃가마 탄 거 같아요.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
김진세_ 두 분만 지내다 보면 굉장히 사이가 좋아질 수도, 혹은 나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제 생각에는 좀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죽어?”라는 말이 사실은 두 분의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싶네요. 이젠 바깥분이 바뀌셔야 할 시점이잖아요?

최유라_ 남편한테 “예전에는 아예 포기하고 돌아서서 욕했는데, 이젠 당신이 변하니까 한발 더 다가서는 거야. 이게 당신에 대한 관심이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더러 ‘개똥철학’이래요(웃음). 그런 대화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변화예요. 제가 너무 말을 잘하지 않았어요? 애정의 표현이라고 하니까, 남편도 다 들어요. 요즘은 새로운 재미가 뭐냐면요, 남편 학교 가는 날 굉장히 신경 써서 입혀서 보내는 거예요. MBC 카메라맨 중에 제일 멋쟁이가 우리 남편이에요. 옷 잘 입는 남자가 멋있거든요. 하물며 내 남편인데 옷을 못 입었다? 용서가 안 되는 거죠. 우리 집안 여자들은 내 바운더리에 있는 사람이 좀 처지는 거, 용서가 안 되거든요(웃음). 식구가 아니라 지인이라도 “네가 잘돼야 해. 뭐가 어려워? 도와줄게”라며 어떻게든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들이라.

김진세_ 친하게 지내야겠네요(웃음).

최유라_ (웃음) 먹는 게 부실하다 싶으면 집으로 불러서 먹이고 손에 들려서 보내고, 게장 담그면 동네에 다 돌리고 그래요. 우리 딸은 자기 오빠 식성을 알아서 이것저것 만들어서 벌써부터 보살펴요. 우리 집안 여자들은 어쩔 수가 없어요(웃음).

김진세_ 최유라씨를 지탱하는 힘 가운데 하나가 또 있죠. 힘들 때는 종교적인 영향이 도움이 되죠?

최유라_ 네.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제게 필요한 말을 한마디씩 해주실 때, 이런 식으로 말씀이 떨어지는구나 실감해요. 김수환 추기경님과도 그래서 친해졌죠. 제가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위원회 홍보대사예요. 그 부분도 실천을 해서, 생기는 대로 낳아서 이른 나이에 학부형이 됐는데 그것도 복이에요. 제가 재밌게 놀기에는 참 여러 가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너무 행복하다고만 한 거 같은데, 또 그리 행복하지만도 않아요. 고민도 많고.

김진세_ 그렇겠죠. 고민이라는 건?

최유라_ 전 고민을 떠안고 사는 사람이에요. 성격상 잘 떨치지를 못해요.

김진세_ 그런 스트레스는 뭔가를 배우면서 해소하시는가 봐요.

최유라_ 맞아요. 그렇게 동양 자수도 배우고, 퀼트도 배우고.

김진세_ 그렇게 하는 건, 곧 본인한테 뭔가를 해주는 거잖아요. 다들 살기 힘들다고 하는 때라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더 어려운 거 같아요. 살아가는 데 이것만은 꼭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긍정의 힘을 일러주신다면?

최유라_ 예전에 제가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을 때, 왜 사람들이 여기까지밖에 생각을 못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었어요. 물론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주부에게는 집안일 다 하고 자기 일 하면서 가족을 챙기는 게 불가능한 일이죠. 사람이 시간을 쥐락펴락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사람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내 남편, 내 아이에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전 꼭 해야 해요. 그건 가족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잖아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소소한 일상을 더 신경 썼으면 하는 거예요. 엄마들이 모여서 어느 학원이 좋고, 어느 선생님이 좋은지 얘기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학원과 학원을 옮겨가면서 길거리에서 떡볶이, 튀긴 만두로 허기를 달래거든요. 제가 살고 있는 목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에요. 전 그게 안타깝다는 거예요. 주먹밥이라도 만들어 먹일 수 있잖아요. 사랑의 형태가 포장을 조금만 달리하면 좀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요?

김진세_ 사랑이요?

최유라_ 사랑이라고밖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데, 그걸 어떻게 보세요? 사랑이죠?

김진세_ 얘기를 듣다 보니까 최유라씨는 자신을 둘러싼 큰 테두리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어요. 그게 사랑인 거죠.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듯이.

최유라_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 그래요.



김진세의 에필로그
최유라, 솔직하고 당당한 내조의 여왕
그녀는 솔직했다. ‘있는 그대로’를 방송한다고 했다. 어떻게 있는 그대로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소위 방송 혹은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꾸밈’은 성공의 덕목이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거꾸로다. 자신의 삶을 대중이 스스럼없이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열어놓을 정도로 솔직했다.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프로그램의 장점이라고 했다. 너무 자신에 찬 솔직함이다. ‘모두 다 잘할 수는 없지만, 어떻다고 이야기는 해줄 수 있다’는 겸손한 자신감 덕분이다. 또 그녀는 파트너를 잘 다룰 줄 아는 영민함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프로그램은 언제나 1위를 달린다. 그녀의 파트너들은 덕택에, 때늦게 인기를 회복하기도 하고 혹은 위험에서 구출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2인자이며 절대 1인자의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최고의 내조자인 셈이다. 솔직한 방송인으로 또 배려 깊은 내조자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유라의 긍정의 힘은 무엇일까?

그녀에게는 본능마저 통제할 수 있는 놀라운 ‘자제력’이 있다. 사람이 자신을 누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본능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은 통제하기가 힘들다. 식욕이 그렇고, 성욕과 수면욕이 그러하며, 명예욕이나 권력욕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자신을 드러내서 남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이다. 너도 나도 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요즘에, 더군다나 그녀처럼 재능이 많은 사람이 자신을 누르고 산다는 것은 ‘득도(得道)’에 가깝다. 주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선 어머니와 가족들은 그녀에게 신념이자 종교였다. 신인상까지 거머쥐게 했던 영화는 가족의 반대로 깨끗이 접었다. 남편의 튀지 않았으면 하는 평범한 소망도, 그녀는 군말 않고 받아들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가족’이라는 신념 덕분에.

그녀에게는 ‘화합의 지혜’가 있다. 주변과의 어울림. 하모니를 중시하는 그녀는 지휘자와 같다.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슴을 두드리는 타악기, 심금을 울리는 현악기, 머릿속을 공명하게 하는 관악기 등으로 표현되는 그 멋진 음악 어디에도 지휘자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그 음악은 지휘자의 역량과 특징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전혀 다르게 표현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서지 않고 전체를 움직이는 지휘자의 마법을 그녀는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 주변에는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또 최고의 내조가 가능하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주변과 화합하는 지혜는 그녀를 진정한 내조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는 남자 DJ를 비롯한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 하나 힘들어하거나 나빠지거나 미워지는 것을 그냥 모른 척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재미’있어 한다는 사실이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인생의 힘을 재미에서 찾는다고 했다. 고통이나 실패나 두려움을 보기보다는, 밝고 즐거운 재미를 보는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다. 낙천적인 사람과는 함께 있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니 그녀와의 인터뷰가 재미없을 수 없었다. 마치 그녀가 진행하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가 부동의 청취율 1위를 차지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코너처럼,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재미있고 행복했던 ‘웃음이 묻어나는 인터뷰’였다.



긍정의 힘을 보태는 선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최유라에게 선물하는 한 권의 책,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이번에는 최유라씨의 이야기에서 선물에 대한 힌트를 얻었어요. 남편과 자동차로 미국 여행을 하면서 지도 때문에 싸우셨다는, 재미있고 부러운 이야기를 듣고서요.

모르는 길을 갈 때, 자동차의 조수석은 진짜 이름값을 하지요. 운전자 입에 김밥도 넣어줘야 하고, 생수도 마시기 좋게 빨대를 꽂아줘야 하고, 또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는 톨게이트며, 중간에 휴게실이며 알려줘야 할 게 많으니까요. 그러려면 지도를 볼 줄 알아야 하는데, 만만치 않지요.

최유라씨뿐만 아니라 많은 부부들이 이 문제로 다툰다고 해요. 남자들은 지도를 잘 보는데, 여자들에게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남자와 여자의 대뇌 구조의 차이 혹은 심리적인 차이 때문인데요. 이번에 선물할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앨런 피즈, 가야넷)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워낙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분이지만, 조그만 차이에서도 감정의 큰 틈이 생기듯,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한다면 부부 금슬이 더욱 좋아질 겁니다. 물론 바깥분도 읽어보셔야지요. 왜 여자는 지도를 못 읽는지요. 그러면 “그런다고 죽어?”라는 ‘달관-협박형 추임새’가 필요 없겠지요!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최유라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최유라씨에게 선물한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를 보내드립니다.


김진세 박사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주부가 누릴 수 있는 유희를 아는 여자 최유라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 파리6대학의과대학에서 메조테라피 학위를 받은 뒤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며, 고려제일신경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마흔의 심리학」(공저)을 쓰고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를 번역했다. 최근 펴낸, 시작이 두려운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 「스타트 신드롬」과 더불어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을 나란히 베스트셀러 랭킹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기획&정리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경향신문 포토뱅크 장소 협찬 / MEA(Marriott Executive Apartments) 서울(02-2090-8000)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