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간 정상을 지켰던 가수 이승철. 그가 10집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신작은 지난 앨범처럼 발라드가 아닌
록사운드를 표방하고 있지만 음반 전체가 물 흐르듯 전개된다. 십수 년을 함께한 밴드 ‘황제’와 내조의 여왕인 아내, 그리고 예쁜 두 딸 덕분이다.
하지만 퍽이나 다행스럽다. 우려와 달리 그의 10집은 정규 앨범이다. 정성껏 마련한 화보집 같은 사진이 빼곡히 있고, 11개 트랙의 각 곡에는 노랫말과 이와 관련된 곡 정보가 꼼꼼히 쓰여 있다. 재킷 페이지에는 곡 작업에 참가한 스태프들의 작업 장면을 담은 사진도 실렸다. 여느 가수들의 싱글과 미니음반에서는 이런 소소했던 풍경마저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역발상으로 이뤄졌습니다. 20년 이상 된 가수들은 달라야 한다, 여겼습니다. 주눅 들지도 말고 위축되지도 말아야 하고…. 뒤로 물러서면 설수록 음악 팬들은 더 멀어질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좋은 음악을 위한 역발상 투자
그의 10집 앨범 「뮤토피아」는 지금까지 들인 음반 투자액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좋은 음악을 뽑아내기 위해 약 4억원의 비용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 9집 때 했던 걱정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택한 셈이며, 이는 그가 의도한 첫 번째 역발상이다.
또 다른 역발상을 거론하기에 앞서 10집 음반이 소개하는 화제의 타이틀곡 ‘손톱이 빠져서’부터 언급해야 할 듯하다. 딱 두 번 들었을 뿐인데 멜로디 라인이 아주 쉽게 혀끝에 박혀버린다. 게다가 이별의 아픔을 손톱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손톱이 빠져서’는 요즘 트렌드의 가사도 포착하고 있다. 이승철은 작곡가 전해성이 쓴 이 노래에 대해 “그래도 손톱이 빠진 게 총 맞은 것보다는 덜 아프지 않냐”며 한참 동안 껄껄댔다.
노래는 이승철이 지난 8집과 9집에서 선보였던 발라드 스타일의 곡이 아닌, 드럼과 베이스, 전자기타가 아우러지는 록 사운드를 표방하고 있다. 역발상의 두 번째 단서가 바로 타이틀곡에 드러나는 장르적 속성이다. 이승철은 “발라드로 아주 좋은 곡들이 많이 나왔다”면서 “하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써 뺐다”고 털어놓았다. 9집 ‘소리쳐’의 작곡가 홍진영이 쓴 ‘사랑은 힘들다(가제)’는 그런 이유로 앨범에 실리지 못했다. 아쉽긴 하지만 이승철의 결단은 옳아 보인다. 이승철은 “부활의 팬들에게도, 오늘날의 대중음악 팬들에게도 기계로 일일이 찍는 음악 대신, 실제로 연주를 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앨범에는 이 밖에 레게, 보사노바처럼 그가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도 등장한다.
전작과 다른 점으로는 그와 십수 년을 함께 지낸 그의 밴드 ‘황제’가 앨범 구석구석에 배치됐다는 사실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전문 작곡가, 전문 세션을 대신해 이승철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황제 밴드를 음반으로 끌어들였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최원혁이 편곡을 맡은 트랙도 많다. 키보드를 담당하는 유미란, 드럼의 이상훈도 곡을 썼다. 음반 전체가 물 흐르듯 전개되는 데는 이 같이 식구들의 영향이 커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따스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아내이자 ‘내조의 여왕(?)’인 박현정씨가 간담회장에 함께 있었고, 예쁜 두 딸도 활짝 웃으며 기자들과 인사를 했다.
“이렇게 편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앨범은 그래서 더욱 뛰어나고, 그래서 더한 자신감을 자아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판매량을 결코 의식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각오와는 달리 지난 5월 6일 출시된 앨범은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초도 4만 장을 돌파했고, 인터넷 여기저기서 그의 음악에 대한 자발적인 리뷰가 떠오른다.
“11집은 10집보다, 12집은 11집보다 더 많은 돈과 정성을 쏟으려 한다. 그게 후배들과 음악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바른 방식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승철의 머리 뒤로 둥근 달이 떠 있었다. 그 밑으로 한강의 야경이 형형색색의 불빛을 내며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글 / 강수진 기자(스포츠 칸 문화연예부) ■사진 / 루이엔터테인먼트제공
